문예리뷰 / 전통

황해도 평산 지정닦이 소놀이굿




김선풍 / 중앙대 교수

소놀이는 주로 기호(畿湖)와 해서(海西)지방에서 연회되어 온 것이다. 그동안 기호지방에서도 양주군 일대에서만 그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었고, 그에 관한 연구도 아직은 연천한 형편이다.

무형문화재 117호로 지정된「양주(楊洲)소놀이」는 이두현에 의해 정리가 되었으나「황해도 평산(平山) 지정닦기 소놀음굿」은 정병호가 85년 12월에「문화예술」지에 발표한 것이 고작이다. 현재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하지만 발표논문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정 교수에 의하면 이 굿은 재담이 주가 되고 즉흥 무용인 소흉내춤, 무당춤, 농경모의춤, 지신밟기춤, 씨뿌리기춤이 주가 된다.

필자가 찾아간 곳은 인천시 문화회관광장, 날은 10월 7일 오후. 인천직할시 예총이 주관하는 제8회 제물포예술제의 행사 중의 한 마당으로 펼치는 이 굿은 황해도 평산소놀음굿보존회가 주관하여 있었다.

소놀이굿은 쇠굿, 소굿, 마부타령굿 등으로 불리는 일종의 자손 번창, 가세 번창과 풍년을 기원하는 재수굿(慶事굿)으로 토지신, 제석신(帝釋神), 우신(牛神)을 위로하는 굿판이라 할 수 있다.

양주 소놀이굿의 기원설은 양주지방의 신인 감악산(紺岳山)에서 나왔다는 설, 농경 의례의 하나로 기풍(祈豊)하는 데서 나왔다는 설, 소장수가 잘 되기를 바라는 데서 나왔다는 설, 궁중의례에서 흘러 나왔다는 설, 굿의 여흥으로 이루어졌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첫 번째에 우선은 흥미를 갖게 된다. 축제란 신화없는 놀이판이 있을 수 있으나 신화(神話)를 동반하지 않은 놀이판이란 민속적 의미로 보아 별로 가치가 없을뿐더러 신화에 뿌리를 둔 것일수록 생명력이 강인하기 때문이다.

감악은 양주(楊洲)·파주(坡州)·연천(連川) 일대의 신산으로 고려이래 감악산신으로 봉해져 별기사(別祈思)를 향해 오던 곳으로 주변 부락은 물론 서울지방까지도 이 산에 치성을 드리고, 봄과 가을에 매일 수 십 패의 굿이 들고, 산정(山頂)과 상당(上堂)에서 제석거리(帝釋巨里)가 중심이 되어 굿판이 벌어져 왔다.

평산 소놀음굿은 어떠한가. 평산도 크게 굿의 열두석 수 중의 하나인 제석굿→소놀음굿→방아찧는 놀이로 나뉘어 해가 질 무렵에 시작해서 동이 트는 새벽까지 계속된다. 실제 현지에서는 부정을 풀고 나서 산천굿, 칠성굿, 장군거리 순으로 진행되었다.

굿을 진행하고 지도하는 이는 장보배 할머니, 굿의 보존자이기도 하지만 꾸부정한 할머니가 평산 얘기만 꺼내도 흥분을 하고 눈시울이 달라졌다.

멸악산맥의 정기를 이어받은 황해도 평산 사람들. 그것도 육갑신장할아버지나, 칠성 장군 등의 신이 내린 분(6명)으로 구성된 팀이란 점이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전자에 필자는 차전(車戰)놀이의 발생을 평산 신씨(申氏)의 시조인 신숭겸(申崇謙) 장군신을 추모하기 위한 춘천과 가평 주민들의 놀이임을 입증한 바 있어 이 놀이도 신 장군 신화와 연관되지 않을까 일단은 의심해 보았다.

연백평야를 앞자락에 깔고 있는 평산군은 산 높고 골 깊어 그 형세가 당당한 곳이다. 그러니 평산 사람들은 이 지방 지형에 영향받아 그 지세(地勢)가 빚어낸 수호신, 다시 말해 그곳에서 씨족을 이룬 평산 신씨를 마다하고 다른 씨족 신을 수호신으로 내세울 이유는 없었다.

주지하는 대로 신숭겸(?∼927년) 장군은 살신성인으로 태조 왕건을 보위하면서 공산전(公山戰927년)에서 태조의 어의(御衣)를 바꿔입고 어차(御車)를 타고 견훤의 적진에 뛰어들어 장렬히 전사한 영웅이기에 그 분에 대한 추모의 정과 충의 정신은 후세에 귀감이 되어 왔다. 이는 신숭겸, 김락(金樂) 두 개국 공신을 흠모·추도하여 향가인「탁이장가(倬二將歌)」까지 지었던 역사적 사실만 보아도 알 만하다. 분명 그 노래가 향가식 표기로 기록되어 있고, 오랜 세월동안 전승되어 왔다는 사실도 애국충절 사상을 존숭했던 우리민족의 성정 때문인 것으로 안다. 예종(睿宗)은 항상 신 장군의 목상(木像)을 만들어 놓고 조회 때마다 술을 따랐다고 하니 가이 짐작이 가는 일이다.

흔히 원시적 민속놀이의 발생은 그들 사회의 왕이나 장군들의 위대한 치적이라든가 위엄을 기리기 위한 기념 행사나 제의에서 시작되기 일쑤다. 그들은 노래로 아니면 연극으로 위대한 분을 하나하나 묘사 연출해 간다. 신 장군에 대한 흥미로운 점은 경상도 안동, 강원도 춘천, 황해도 평산에서 신격화되었다는 사실이다.

황해도 예성강 상류에 있는 태백산성은 일명 성황산성(城隍山城)이라고 하거니와 그곳에 태사사(太師詞)가 있어 개국 공신이었던 신숭겸(申崇謙), 비현경(悲玄慶), 홍유(洪儒), 지겸(智謙)을 인격신으로 모시고 있는 곳이다. 태백산성은 봄이면 부녀자들이 춤을 추며 성밟기를 하는 곳으로 성돌이를 하면 무병 장수하고 1년 내내 신수가 좋아진다는 곳이다.

특히 신 장군의 상은 철상(鐵像) (장보배 할머니는 石像이라고 주장)으로 되어 있는데 눈이 부리부리하고 매우 무섭게 생겨서 누구든 눈만 마주쳐도 학질병이 낫고 재수가 좋으며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녀가 눈총이 맞았을 땐 아이까지 잉태한다는 俗信까지 전하니, 미루어 그 분의 신앙이 어떠했는지 추단할 수 있겠다.

천신인 제석신(帝釋神)에게 올리는 제석굿은 제석신의 권능으로 풍농(祮農)·풍산(祮産)을 기원하는데 역점이 두어진다. 프레이저Frager가「황금가지Golden Bough편」에서 소놀이를 예로 들고나서 곡령(穀靈, Corn Spirit)에 관한 의식놀이를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탁견(卓見)이라 할 수 있다. 한 알의 밀알도 버리지 않는 우리 민족의 알(卵) 숭배사상이 이 민속 행사에 숨겨 있는 것이다. 일본의 우신제는 모내기 의식에 놀리는 예축행사에 머물러 있으나, 우리의 소놀이굿은 '신곡(新穀)맞이' 경사굿이라 할 수 있다.

이 굿의 특징은 어미갈이소(약대)와 새끼소 두 마리가 등장하여 삼불 제석과 마부와의 익살맞은 재담과 한국인 특유의 해학의 한 마당을 펼치는데 있다.

지정닦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소놀음으로 들어가는데 농경사회에서 가족처럼 귀중한 존재가 소였기 때문인 것으로, 소를 하나의 가족의 성원으로 보아 왔던 우리 선민의 의식에서도 알 수 있다. 삼불 제석과 마부가 나누는 재담, 칠성님과 북할머니와 나누는 재담 내용 속에서 과거 우리 민족의 생활 중심이 무엇이었는가를 알게 하였고, 이 시대의 삶을 영위하는 이들의 꿈과 애환, 기쁨과 슬픔을 생생하게 알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더욱 더 끌게 하고 있다. 간단한 멍석 조각 한 장을 뒤짚어 쓰고도 그처럼 모의적인 독특한 춤을 창출해 냈고 웃음과 흥의 한 마당으로 끌고 갔던 조상들의 놀이 감각도 놀라왔다.

이제 부정을 가시는 일로부터 산천굿, 칠성굿, 장군거리를 마치고 드디어 쌍작두 그네 타기로 들어갔다. 우연히 신히 집혀 쌍작두그네를 타게 되었다고 하는 이선비씨. 이들의 모든 놀이굿은 버선 한조각 감지 않은 맨발 그네 타기를 위한 점층법적 과정이었던 것으로 간담이 서늘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서서히 대단원을 맺었다.

우리 민속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더 가슴을 열고 받아들일 것은 우리 민속 속에 숨겨있는 우리 민족의 문화 혼인 것이다. 그날 김금화씨가 돌리는 떡 한 조각에서 조상의 뜨거운 피를 느껴 보기도 했다. 해질녘 발길을 돌리며 젯상의 서리왓대, 전빨, 목단화, 칠성곶갈, 밴대기떡, 기름잡이떡이 눈에 가물가물 거리고 신 장군과 작두그네 연상 때문에 달리는 차 속도가 균형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