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

연극 교육을 위한 하나의 보고서




안치운 / 중앙대 강사

연극 교육은 연극을 위한 교육과 연극들을 위한 교육을 동시에 뜻한다. 전자의 경우는 연극을 예술로 보는 입장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후자는 연극의 매체로서의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연극놀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연극놀이는 연극에 비해서 복잡하지 않은 일종의 창의적 놀이다.

보는 사람과 하는 사람의 구별이 없고 정해진 텍스트가 없고 노는 장소도 구애받지 않아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연극 교육의 출발을 상상력을 통한 놀이로 삼았을 때 참여자들이 지니는 논다는 것의 고정되고 경박한 뜻매김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거나 학생들에게 있어서나 놀이와 논다는 개념의 부정적인 인식은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이 지닌 놀이 개념은 조작된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있어서 문화적 설득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연극과 연극들

'연극 교육'이라는 강의가 우리 대학에서 1989년 처음으로 개설되면서 필자는 이 강의를 통하여 여러 학생들과 정면으로 연극 교육의 문제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강좌의 개설 목적은 학생들에게 우선 연극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일과 둘째로는 연극과 교육의 관계, 즉 연극의 교육적 효용을 가르치는데 있다. 강의 초반에 가장 곤혹스러운 문제는 무엇보다는 학생들이 연극을 반드시 관객과 마주하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있었다.

물론, 연극이란 극장에서 관객과 드라마가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백남준의 작품 이름처럼 극장에만 드라마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학생들이 생각하는 연극 범주에는 단 하나의 연극이 있을 뿐이었다. 즉 관객을 위한 연극만을 생각했지 자기 자신을 위한 연극을 전혀 염두에 두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의 잘못된 연극 환경 때문이다. (주1)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로 서양 연극의 절대적 영향 탓이다. 따라서 연극 교육에 관한 문제는 우선 한국 연극에 대해 원칙없는 서양적 연극 논리의 강요에서 벗어나고 현실 문제 연구에 대한 올바른 접근에서 출발한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하여 한국 연극의 방향에 관해서 방법론적 토론이 일상적으로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연극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모든 이들의 몫이다.

억압적 연극 이론

이런 연극교육의 문제는 단순히 대학원 연극 교육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와 같은 외향적 증후는 한국 연극의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보이는 이상스런 행위와 말의 표현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이를 강제적으로 주입시키고 있다. 불편함은 쌍방이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연극 행위를 통하여 배우 스스로가 예술적 감동이라든가 자유스런 표현의 일차적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의 상상력 결핍으로 인하여 그들이 맡은 연기는 곧 모순된 역할이고 그들이 보인 표현은 관객들과 당연히 부자연스런 소통을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가 보건대 그 가장 커다란 이유는 제도 교육에서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연극 예술이 바로 서양의 문학적 연극론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주2)

특히 대학에서는 연기 훈련에 관한 기초적 훈련에서부터 연극 미학, 연극 연출, 연극사 등의 많은 부분을 모두 서양 연극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극의 출발을 쓰여진 희곡 문학으로 하고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극의 출발을 쓰여진 희곡 문학으로 하고 있으므로 연기자 각자의 놀이적 상상력은 늘 부자유로운 형편이다. 그리고 정해진 텍스트에 구속당하게 되어 배우들의 몸과 언어를 통한 표현이 제한적이다.

이를 연극 교육적으로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억압을 당하고 있었다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억압의 증후는 일반적으로 자기 스스로는 심리적 방어에 의해서, 맡은 역할에 관해서는 창의적 상상력에 의해서, 관객과 극장의 환경에 관해서는 표현과 연극적 약속에 의해서 풀어지게 마련이다. 심리적 해석으로는 배우들은 제 스스로 주어진 상황과 역할과 자신을 동화하고 조정함으로써 극복 할 수 있다. 따라서 무대 위에서 암기된 대사만을 내세워 언어 표현위주로 같은 말을 답답하게 지껄이지 않을 수 없는 배우들은 바로 심리적으로 억압되어 있어 그의 상상력이 발휘될 수 없고 극장에 있는 관객들은 배우의 불안한 양태로 인하여 고문을 당하기 일쑤다.

연극 예술적 제도-이를 달리 말하면 연극에서 대사와 육체적 표현의 연기는 이렇게 해야한다는 일종의 이론가와 연출가들에 의해서 제도화된 폭력적 이론 원칙과 이들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연극예술의 생산과 소비 과정의 전체적 실형 체계-에 억압받는 배우는 이를 극복할 의무가 누구보다도 먼저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한국 연극계는 서양 연극의 이론적 강요를 정당화하고 합법적으로 논리화하는 경향이 심하다. 그 한 예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우리의 전통 연극이 원시적 연극이라고 쓰여있다. 교양있는 사람들이 쓴 글이다.

결국 이런 서양 연극 이론의 절대적 구속력 아래에서 한국 연극에 관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준비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서양 연극의 내용과 형식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연기자는 무대에서 맡은 역에 고문당하고 결국 연극 예술은 관객들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연극 예술이 현실의 구체적이고 역사적 조건들을 도외시한 결과이고 한국 연극의 합법적 발전과정도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옴치고 뛸 수 없는 오늘의 연극 안팎의 족쇄들, 그 사상적, 예술적, 제도적 모순들을 극복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극복의 기저는 다름아닌 상상력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상상력의 존재 근거는 억압과 구속이다. 즉 억압은 그 극복의 방법으로 상상력이라는 해결사를 낳는다.

닫혀진 곳에서의 억압이 현실 원칙이라면 상상력은 바로 열린 세계를 필요로 하는 욕망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원칙은 상황과 환경 그리고 대상에 따라서 무수히 변수로 꿈틀거리며 그 외벽의 증후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억압의 방대 기저는 곧 해방을 위한 상상력을 의미한다. 이 상상력의 위대함은 그 행위와 경험에 있다. 이는 곧 상상력에 의한 말과 행동에 의한 표현의 상호 통화를 가르킨다.

그리고 억압의 동기는 연극적 제도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억압적 활동을 만들게 되며 이로 인해 관객은 그 억압적 환경에 끌려 들어가 이른바 정신적, 육체적 고문을 당할 수밖에 없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는 연극이 관객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이다. 만약 배우들이 무대라는 현실 제도 속에서 스스로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는 다음의 몇 가지 형태로 그 대응을 나눌 수 있다. 첫째로는 스스로의 상상력이 배제된 채 지시되고 반복된 형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경우다. 이런 부류에 속하는 배우들은 제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기는 역부족이라고 무척 고통스러워 하기 때문에 항상 연출가나 그 무엇으로부터 가해지는 폭력적 프로그램을 요구한다. 그 안에서 그들이 느끼는 것은 예외없는 편안함이다.

이들은 마조키스트적 연기자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그 편안함에는 살아있는 움직임과 표현은 없다. 그리고 오래 계속된 결과 나름대로 자기의 행동 양식 즉 연기의 적응력을 담보로 하는 이론적 땟국물이 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배꼽의 때처럼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감히 떼어 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본인에게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둘째로는 위의 경우에 비해 조금 개량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도취적 양태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잘생긴 얼굴과 굵은 목소리 그리고 잘 발달된 육체의 내보임으로 관객들을 유혹한다. 본인들은 이를 연극 예술의 조건 속에서 다듬어지고 세련된 세속적 트임이라고 강변할 수 있겠지만, 분명컨대 이는 생산 과정의 잘못된 틀이 찍어낸 허상의 퍼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적어도 자기들이 이 시대에 잘 팔릴 수 있는 상품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반격할 지 모른다. 왜냐하면 생산 과정은 분명 소비 과정을 전제로 하고 제품을 생산해내고 있고,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바로 광고문의 공인되고 화려한 거짓 제도다.

결국 이렇게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무대에서 비슷비슷한 배우들을 한 동아리로 엮어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연극적 재생산의 결과에 의해서다. 이런 맥락에서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적 가치의 통화 법칙은 연극적으로도 타당성이 있는 말이다. 또한 어떤 연출가 밑에 있는 배우들이나 같은 극단에 소속되어 있는 배우들이 비슷한 말투와 표현 방식을 고수하면서 뻔뻔스런 조화를 자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연극 예술에 있어서도 지나친 예술적 의리는 서로의 예술가적 건강을 해치는 법이다.

세 번째로는 억압된 심리가 굴곡되어 나타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긍정적으로 보면 이러한 형태는 기존의 폭력적 연기술의 반동으로서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드러냄의 밑바탕에는 폭력에 대한 수비적 대응으로서 해방욕구가 깔려 있다. 따라서 개인적 차원의 자위 행위와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상상력의 공간이 지니는 깊이는 없다. 그리고 이런 류의 연기자들은 무대 위에서 스스로의 의상행위(衣傷行爲)를 통하여 관객들로부터 보호받고 위로받고자 한다.

그러한 배우의 연기 표현은 일차적으로 관객들에게 호소력을 지닐 수 있으나 식상하게 만들기는 매일반이다. 이는 배우와 관객을 지금, 여기의 시공간 속에 동류항으로 묶고 있기보다는 각기 다른 자취를 그리게끔 하기 때문이다. 즉 몸으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며 결국 연극의 긍극적 목표인 상호 통화는 불가능하게 된다.

이는 마치 폐쇄회로에 갇힌 채 계속 떠도는 전자파의 움직임에 비유될 수 있다. 그 상호 통화는 우선 무대 위의 연기자들끼리의 통화 고장을 초래하고 나아가 관객과의 교신 또한 단절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호 통화의 중층적 구조-즉 연기자와 연기자끼리의 내적소통과 연기자들과 관객들과의 외적 소통-를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연극 예술이 이러한 환경에서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실천과 전망

그렇다면 폭력적 연기법에 의해 정신적 성장을 멈춰버린 배우들의 예술적 정체현상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러고 잃어버린 관객을 찾아나서는 일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또한 배우들이 풍부한 상상력을 지니고 제도적 억압과 지배에서 해방되기 위한 적절하고도 해로운 표현 방법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하여 이 땅의 모두가 필요로 하는 연극 예술가가 되는 치료 행위는 어떻게 가능한가?

필자는 이제 한국 연극의 새로운 위상을 위해서 현실적 조건을 무시한 채 전개되는 서구 연극 지향의 연구 자세를 극복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이런 빗나간 주장은 실로 사대주의적이고 반민족적 식민성의 학문 연구와 예술 실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연극 예술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오고 땅에서 솟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이라는 터전에서 활동하는 인간, 그리고 인간의 현실적 삶의 과정이라는 토대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연극의 재구축이다. 우리가 누구를 위해 연극 행위를 하는가? 그들은 바로 이 땅에 사는 우리들이며 이를 책임질 사람들은 바로 연극 예술의 주체인 생산자들이다. 이는 단순히 선언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연극예술가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삶의 존재 방식으로서의 실천이다.

한국 연극의 전망과 이를 위한 연극 교육의 실천은 우리 연극의 현단계에서 주어진 여건과 상황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현실적 제약이다. 연극 교육은 바로 이러한 한국 연극의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실천 논리의 하나이다. 그 현실적 장애는 바로 지나친 서구 연극 지향이며 그 증세는 우리 연극을 혼수 상태로 빠뜨리고 있다. 원시적 연극 형태에서 근대적이고 예술적인 연극 형태를 향한 서양 연극의 과잉 소비는 한국 연극의 전통을 자연 파괴시켰고 자율적 창조 능력을 빼앗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한국 연극을 위한 연극 교육의 필요성은 바로 잃어버린 한국 연극 전통의 효율성을 되찾고 가속화되어 가고 있는 서양 연극의 신화를 깨뜨리는데 있다. 이로써 새로운 연극 문화가 가능해진다. 즉 연극계에서 집단적 헤게모니와 얼치기 연극인들의 권위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필자는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서 셰익스피어의 출생지와 생년월일 그리고 그의 희곡 작품 이름이 무엇인가가 시험에 출제된 것을 본 적이 있다. 잘못된 일이다. 도대체 이런 강요된 지식이 학생들의 연극적 상상력을 위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지금까지 바로 이런 서양 연극의 물량 공급에 한국 연극의 전통과, 공동체적 놀이에 관한 개념이 왜곡되어 왔다. 결국 연극 교육의 가장 기본적 명제는 이런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필자주

1) 우리나라 연극 환경과 제도 교육에 있어서 한국 교육 문제는 필자의 글, 공연 예술의 새로운 제도연구:관객론을 중심으로,「예술과 비평」, 90년 봄호(본권 19호)를 참조

2) 우리나라 제도교육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연극 교육의 내용에 관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밝혔다. '연극교육과 제도교육',「한국 연극」'90년 8월호 (통권 1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