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이론과 실제
이장직 / 음악평론가
「현대음악사」, 폴 그리피스 저, 박경종 역, 삼호출판사. 223쪽
'드뷔시에서 불레즈까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인상주의, 후기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음열주의, 전자음악, 우연음악 등의 현대 음악의 사조를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 현대 예술의 한 분야로서의 현대 음악이 어떻게 타예술과 관련을 맺으면서 전개되어 왔는가를 매우 쉬운 필치로 서술하고 있다.
음악인보다 오히려 일반 음악 애호가나 현대 음악을 이해하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씌여진 이 책은 풍부한 삽화와 사진 자료를 곁들임으로써 시각적인 분위기를 제시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정도의 상식적 내용만 이해한다면 국내에서 개최되는 현대 음악 연주회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개략적이나마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불레즈 이후의 경향들, 예를 들어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포스트 모더니즘 계열의 음악에 대한 정보는 수록하고 있지 않으며 현대 음악 입문서의 성격이 강하다.
아쉬운 것은 역자의 머리말이나 원전의 소개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불란서의 음악가들」, 조명희 편역, 청한문화사
이 책은 베를리오즈, 비제, 드뷔시, 라벨, 풀랑 등의 19세기 이후의 프랑스 작곡가 다섯 명에 대한 생애와 작품에 관한 것이다.
주로 작곡가의 일생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고 있으며, 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입문서와 음악 전문가를 위한 이론서 사이에서 다소 애매한 위치를 나타내고 있다. 각각 다른 저자의 책을 요약하여 번역한 것이어서 체제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으며, 문장도 번역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불어판 원본을 직접 옮겨 소개했다는 점과 독일 음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프랑스 작곡가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될 만하다.
「대중화 시대의 음악」, 이장직 저, 삼호출판사
'음악의 사회사', '음악과 사회'에 이어 내놓은 저자의 평론집이다. 제1부에서는 음악평과 가요평이 실려 있으며, 제2부에는 음악 평론의 문제, 제3부에는 음악의 사회사, 제4부에는 대중음악에 관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80년대 이후의 음악계의 경향을 '대중화'라는 단어로 요약한다. 클래식과 팝의 만남, 사물놀이의 보급, 실내악 인구의 증가 등은 음악 문화가 양적으로 팽창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성의 획득이라는 새로운 경향을 드러내고 있음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80년대 이후의 예술음악 종사자들의 실용음악 참여가 증가하고 있음은 매우 반가운 일로 여겨진다.
저자는 대중가요와 여러 음악 장르에 대한 심층 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음악 비평이 결국 사회 비평을 지향해야 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음악 바깥에 존재하는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인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음악 내부에 스며든 사회구조를 발견해내는 작업을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한국음악학」, 이강숙 저, 민음사
'열린 음악의 세계', '음악의 방법', '음악적 모국어를 위하여', '음악의 이해', '음악 선생님을 위하여' 이후에 내놓은 저자의 역작이다.
앞의 책들이 짧은 분량의 시평들을 엮은 것이라고 한다면, '한국음악학'은 음악학의 정의, 역사, 방법, 영역, 기능에 대한 체계적인 저술이라 할 수 있다.
제1장 '음악학의 정의'에서 저자는 종래의 정의를 소개한 후 '음악학은 음악을 전체로 보는 언급 활동'이라는 저자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린다. 음악의 형식과 내용, 음악의 보편성과 특수성, 통합 음악학의 시도 등과 같은 개념이 이 짧은 정의에 함축되어 있다.
제2장 '음악학의 성립'에서는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와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음악학이 태동되었으며, 그 합리주의 정신을 지금, 여기에 현재화하는 것이 음악학자로서의 사명임을 강조한다. 음악학의 형성과정을 해석학의 역사와 관련해서 살펴봄으로써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정신과학'으로서의 음악학의 위치를 가늠하게 해준다.
제3장 '음악학의 방법'은 참된 지식과 신념의 구분, 전체와 부분, 종합과 분석의 변증법적 과정으로서의 음악학, 음악 비평의 기초로서의 음악학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인문·사회 과학에서의 방법론적 논쟁, 즉 자연 과학과 정신 과학 이 둘중 음악학이 어느 편에 기울여져야 하는지에 관한 깊이 있는 천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4장 '음악학의 영역'에서는 지금까지의 여러 음악학의 분야를 열거한 다음, 음악해석학과 음악수사학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제5장 '음악학의 기능'에서는 음악학이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음악학은 결국 민족음악의 창조에 기여하는 '한국음악학'으로 귀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이 책제목을 '음악학 개론'이나 '음악학 입문'으로 하지 않고 '한국음악학'이라고 한 것은, 근대적 음악학의 성립 배경에 독일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크게 작용했음을 생각할 때,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모든 학문의 성격은 민족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한국음악학'을 지향해야 하는 당위성은, 음악학에 내재해 있는 서구적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데 있다.
이 책이 갖는 의의를 몇 가지 지적하자면, 첫째로 글렌 헤이돈의 '음악학이란 무엇인가'가 1981년에 번역되어 출판된 이후 음악 이론계의 성장에 비추어 볼 때 음악학의 각 분야(분과학으로서의 음악학)에서의 저술은 활발했으나 각 분야를 묶어주는 구심력으로서의 저술(통합학으로서의 음악학)은 부족했는데, 이 책이 그 최초의 개설서가 되는 셈이다.
둘째로, 한국 음악학의 목표를 민족음악의 창조에 기여하는 것으로 봄으로써 음악학이 단순히 지적인 호기심의 발동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뚜렷한 역사의식과 현실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민족음악이란 '음악적 모국어로 된 좋은 음악으로서 우리 현실의 사회적 관계 개선에 기여하는 음악이어야 한다.'
이 책은 특정 문화권의 시각에 묶여져 있는 음악계 일반의 풍토에 대한 학문적 반성의 요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 문화권의 음악관으로부터 탈피야말로 음악의 올바른 이해 방법이며 음악학의 출발점이다. '영원한 초심자', '방법론적 순환성'이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포괄적 음악성으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연습'의 과정에 해당한다.
이러한 방법론은 민족음악이나 '한국음악학'이 공유해야 하는데, 민족음악을 추구하는 '마음'과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함'은 가능태로서 작용하며, 이것은 음악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음악수사학, 음악해석학이 음악을 포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믿음은 음악학의 본질에 대한 저자 자신의 성격 규명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체계적 음악학에 대한 언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음악에서의 자연 / 정신과학 방법론의 적용 한계에 대한 투철한 사고가 결여되어 있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책은 결국 '한국음악론으로서의 음악학'이나 '음악학 운동'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음악학적 지식을 습득하기보다는 음악학자 또는 음악수용자로서의 기본 자세를 정립해 나가는 것, 그리고 '사고의 섬세성'을 획득해 나가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