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 / 예술과 과학기술

현대 전자음악의 발달




박재은 / 작곡가

1940년대 터키의 이스탄불 라디오 앙카라(Radio Ankara)에서 음향 기술자(Sound Engineer)로 일을 하던 작곡가, 뷰렌트 아렐(Bulent Arel)은 어느 날 그의 방 천장 위에 있는 오래된 형광등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전기가 만들어 내는 소리' 바로 그것은 그때 당시 그의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새로운 소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 어느 정도 타당한 소리였다.

그는 이 형광등 소리를 음원화(Sound Source)하여 녹음을 여러 번 하고 이 녹음된 테이프를 잘게 자름으로써 Tape Splicing 혹은 Tape Loop를 만들어 소리의 같은 패턴이 자꾸 자꾸 반복될 수 있는 Ostinato를 얻게 된다. 또한 그는 Ostinato에 회전 속도를 조절하여 빨리 도는 높은 소리, 천천히 도는 낮은 소리 등의 음형을 만들어 짧은 2분 짜리 전자음악 테이프 작품을 완성한다.

그는 이것을 들고 이미 이러한 작업을 구체화시켜 실현하고 있던 프랑스의 전자 음악 스튜디오를 찾게 된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되살리며 "이것이야말로 당시의 최첨단 과학이 음악에 스며드는 모습이었다"라도 회고하였다. 그는 이러한 테이프 테크닉(Tape Technique)을 두고 물감에 자주 비유하여 이야기하는데, 화가가 추상화를 자유로이 그리려 할 때 그는 몇 개의 기존 물감(Ready Made 제품)을 가지고는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충분히 나타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색을 스스로 물감의 재료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자기 자신이 만든 물감의 배합 과정에서 그야말로 이미 독창적인 그의 표현언어가 반쯤은 만들어진 것이다.

전자음악은 이렇게 작곡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표현의 수단으로 이제까지의 어떤 물감보다 훌륭하고 독창적일 수 있다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한편 1948년 이후 파리(Paris)의 구체음악가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게 전자음악에 접근하고 있다.

그것은 우선 그들이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로써 무엇을 표현해 보고자하는 소리의 창출보다는 새로운 기술의 소산물이 낳은 발명의 기쁨으로서의 음들을 만들어낸 것이라 할 때 전자에 예로 들었던 터키의 작곡가 뷰렌트 아렐의 경우와는 조금 다른 태도라 할 수 있다.

음악과 과학 기술의 만남

전자는 필연적인 표현의 언어로서 도구를 사용한 반면, 후자는 도구의 사용으로 비롯된 우연한 음악의 생성이기에 후자의 경우 작업의 최종 결과에서 오는 음악의 미(美)와 구성력 등은 그리 많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자음악의 출현은 이렇게 새로운 음악 표현을 갈구하던 작가들의 시대정신에 부응하여 나타난 귀결이라고 하는 점에서 이 두 가지 예는 음악이 과학기술과 만나는 일반적인 두 가지 양상을 보인다.

전통음악 즉 조성음악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작곡가들이 가졌던 새로운 소리의 창출에 대한 음악가들의 호기심이 도구의 발달을 낳고, 도구의 발달은 음악가들에게 소리의 개념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상호 보강 작용이 일어난다. 이런 경우 과학과 음악 그 어느 것이 더 우선이라고 말하기란 어렵다. 사회적, 문화적 진보에 따라 예술적 형태와 그 수단의 탄생은 당연한 사실이다. 19세기의 위대한 과학적 진보, 특히 전자공학, 음향학 분야의 진보로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음악의 여러 분야에 그 진로를 바꾸는 데 영향을 끼쳤다.

악기의 발달, 녹음 기술의 발달은 마침내 전자음악과 컴퓨터 음악의 출현 등을 현실화되게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분야에서 가장 우선으로 우리가 이해하고 지나가야 하는 점은 도구의 발달로 인해 소리의 개념이 달라진 사실과 그러한 도구의 발달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음악가들의 창조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이 새로운 첨단과학과 음악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시대를 도래시켰다는 것이다.

이에 이 논단에서는 그러한 변혁의 순간들은 가능케 한 몇 가지 음악사적 사건과 그것과 관련된 도구의 발달과 작가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바로크를 거쳐 고전, 낭만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기법은 쇤 베르크 악파라 부르는 제2빈악파의 12음 기법이 나타나고 자리잡아감에 따라 '옛 것'으로 주저앉고 만다.

이에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의 차이점을 흔히 조성의 존재 유무로 구분한다. '조성의 부정'으로부터 그 시발점을 찾던 무조음악은 불협화음을 그 주축으로 하는데 원래 불협화음이란 전통음악의 단조로움을 피하려고 보조적인 수단으로 쓰던 것을 무조음악에서는 이 보조 수단을 주축으로 삼음으로써 초창기 청중들로부터는 외면을 당하였다. 그러나 불협화음으로 시작된 새로운 화성, 새로운 선율은 어느새 악곡의 주된 요소로 자리잡기 시작하여 기존 악기법을 독특하게 바꾸거나 악기에 특수한 장치를 하여 악기가 가진 최대의 가능성을 활용하게 되었다.


악보의 표기도 점점 더 논리적이고 계획적으로 치밀해져가 도표, 숫자의 이용과 고도의 수학 개념이 음향악에 수반하여 나타나기도 하였는데 음 높이, 음 길이, 강약, 악상부호 등 모든 것을 프로그램화하던 이 음악은 곡(曲)자체의 미(美)에 치중하기보다는 그 논리에 대한 변명(?)과 이해가 앞서야 했다는 난점도 함께 가지게 되었다.

쇤 베르그 악파의 베베른은 처음부터 축소형식의 작곡가로 출발했다. 제2빈악파의 에피그램 작가로 불리는 그는 한 개의 음표를 오선지에 옮길 때마다 거듭 거듭 생각하는 신중과 논리를 수반하여, 다른 작곡가들이 몇 장의 오선지를 꽉꽉 메우는 동안 그는 겨우 두어 개의 음에 그의 최대의 음악성과 논리성을 부여하였다. Post-webern 악파로 불리는 일견의 젊은 세대 작곡가인 스톡하우젠(Stockhausen), 불레즈(Boulez), 달라피콜라 (Dallapiccola) 등은 Webern의 논리를 계승 발전시켜 음고, 음색, 음량, 리듬, 박자, 템포 등을 최대한 제어하는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 중의 스톡하우젠은 음렬기법을 전자음악에 도입하여 이용하였다. 또 이러한 통제의 개념은 컴퓨터 음악에도 후일 이어진다.

전자음악에 대한 소리의 경험은 사람들에게 특히 음악가들에게 그 동안의 전통음악에 대한 개념과 소리의 개념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된다. 한 마디로 개안이 되었다고나 할까, 한계성과 함께 같이 존속되는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는 그들로 하여금 그 동안의 전통음악이 얼마나 보편화되었던 작업이었나를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물론 전통음악 자체도 유명한 Switched On Bach 레코드에 나타난 Bach의 음악처럼 전자적으로 연주될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전통악기의 소리 범위를 넘어선 음조, 리듬 강약, 음색의 정확성과 미세함에 작곡가들은 넓어진 자유와 가능성의 의미를 만끽하게 되었다. 또한 음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경험으로부터 오는 이해는 기존 음악가들의 새로운 소리 개념을 불러일으키기도 해, 이러한 체계적 지식은 기존 악기로 작곡 연주되는 음악에 큰 변화와 발견을 가져오게 된다.

1950년 이후 녹음기와 전자음향기기의 발명과 발견은 미국과 전 유럽의 많은 나라가 앞다투어 전자음악 스튜디오를 개설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1951년 문을 연 서부독일(그 당시)쾰른 방송국의 전자음악 스튜디오는 헤르베르트 아이메르트(Herbert Eimert)를 선봉으로 스톡하우젠의 활약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는 자칫 말살되기 쉬운 상상력과 인간화를 전자음악의 기계화 위협으로부터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독창성을 띤 실험을 한다. 즉 인성을 이용한 전자음악과 청중과 만나는 무대의 마련 등이 그것이다. 또한 전통음악과의 만남도 시도하여 기존의 음악을 전자 음악적으로 편집 개조하여 자신의 작품을 만듦으로써 전통음악의 콜라주(Colàgê)를 전자음악으로 완성시켰다.

이러한 스톡하우젠의 시도는 미국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에게서 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케이지의 업적은 우연성의 음악(aleatoric)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에 있다고 하겠다.

음렬을 임의로 작성, 일정한 시간을 연주시키는 가운데 순간 순간의 우연이 음악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음렬을 여러 대의 라디오 소리로 믹스(Mix)하여 우연성 음악의 개념을 전자 음악화하였다. 이런 우연성 음악의 시도는 전자음악에 쓰여진 외에도 폴란드의 작곡가 펜데레츠키(Pendercki)의 곡과 루토스라브스키(Lutoslawski)의 작품 전반에 걸쳐 사용됨으로써 작은 제어 안에서 만들어지는 커다란 자유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존 케이지(John Cage)의 경우 우연성의 음악을 전자음악성향에 맞추는 것을 마음에 두고 만들어 갔다면, 이 폴란드 작곡가들은 역현상으로 전자음악전 음들의 작위를 영향으로 받아 기존 악기의 곡으로 옮겼다고 생각할 때 굳이 이 두 장르에(전자음악, 기존음악의 영향권) 영향의 우선을 따지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상호 보완적인 음악과 첨단 기술

우연성의 음악과 때를 같이하여 나타난 악기 주법은 거의 즉흥 연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연주 기법으로 작곡가는 아주 소규모의 일정한 제한만을 가하고 나머지는 연주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연주 기법인 것이다. 물론 이 전체적인 윤곽도 작곡가의 머리에는 커다란 그림으로 이미 그려져 있었겠지만….

즉흥 연주(Improvisatory performance)는 새로운 소리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을 뿐 아니라 새로운 악기 주법의 개발이라는 확대된 개념을 낳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독주 악기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합주된 소리의 형태까지도 포함된다. 특히 이런 합주된 형태는 전자 음향을 방불케 하는 소리의 합성된 모습이 되기도 했다.

전자음향에 기초를 둔 또 다른 작곡가는 1923년 헝가리 태생 작곡가인 리게티를 들 수 있다. 그의 작품 「레퀴엠」과「론타나」등의 작품에 나타난 새로운 다성음악(Poly phony)은 배경음악처럼 깔리면서 거의 드러남 없이 평면적인 효과를 내게 되는데, 이것은 철저한 대위법적 악절의 규칙을 따른 결과의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평면적 효과는 빙산의 일각으로만 드러난 음악적 효과에 의한 것이고, 그것이 생성되기까지의 음의 생성은 매우 전자 음향적인 배경을 지닌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전자 음향적 시도를 굳이 멀리 리게티(Lighetti)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초기 무조음악의 많은 음악에 나타난 대표적인 두 가지 현상을 작곡가들이 기존 음악에 도입시킨 예를 봄으로써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밀집된 음향의 융단이라는 Klangfarbenharmonie와 Tone Cluster(불협화음 덩어리)의 두 가지 현상이 그것인데, Klangfarbenharmonie는 Schöberg 관현악 작품과 Alban Berg의 관현악 작품에 쓰여진 모습을 볼 수 있고 Tone Cluster는 미국 작곡가인 Henry Cowell의 오케스트라곡에서 새롭게 개발된 기법이라고 하나 Dehussy 의 혹은 Ravel 그리고 Bartok, Stravinsky의 봄의 제전 등에 이미 시도된 바 있다. 이 두 개념은 전자음악의 개념으로 바뀌어 개념화되어 부르는데 Klangfarbenharmonie와 Cluster는 이렇게 전통음악과 전자음악을 접목시킨 주요한 기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여러 작곡가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노력해 온 음악 기기의 기술자들에 의해 전자음악의 신디사이저(Synthesizer)는 상당한 발전을 하게 되고, 이것의 제어장치에 컴퓨터가 절충됨으로써 컴퓨터 음악이란 용어가 시작된다.

이것은 드뷔시와 그의 세대가 갈망해 오던 '불협화음의 해방'으로부터 시작되어 '음악적 재료에 방해받지 않은 지속'이란 브조니(Busoni)의 소망을 이뤄주기에 충분하였다.

컴퓨터 음악이란 용어는 전자의 제어장치로서의 기능을 하는 컴퓨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음악을 컴퓨터가 기보화 하여 음향화까지 시키는 것도 포함한다. 이 개념에서의 컴퓨터 음악은 아직 완벽한 상태는 아니다. 전통악기의 영역을 대신하고 있기도 하다. 혹은 악기 자체가 컴퓨터화 되어 가기도 하고 있다.

음악인들의 끊임없는 새로운 음에 대한 갈구는 첨단 과학 기술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표현 양식을 더욱 넓혀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의 분야를 넓혀 주는 상호 보완적 작용을 한다.

음악과 첨단 과학의 만남은 결국 인간다운 문명 즉 미래학자 존 나이스벗(John Naisbett)이 말하는 하이테크 하이 터치(Hi-Tech-Hi-Touch)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