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문화

그리스 문화를 이끄는 4인의 여성




허 권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과장

최근 국내에서도 여성의 사회 참여는 두드러진 현상이고 정치, 경제, 교육 등 제반 분야에서 전문적인 기능을 수행해 오고 있지만 예술계에서 여성의 역할은 타분야에서 보다 더욱 더 진취적이고 독창적인 영역을 굳혀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의 문화적 기능

우리의 전통문화 가치의 전승과 계승에 관한 학계의 연구 결과를 보면 여성이 전통적 관습, 예절, 가치를 다음 세대로 전수하는데 남성의 역할보다 크다고 한다.

이는 가정을 중심으로 양육, 교육, 의식주에 대한 책임 분담이 컸기 때문이며 도시 여성보다 농촌 여성 그리고 핵가족 보다 대가족의 여성에서 비중이 매우 높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여성이야말로 전통문화의 보호자요 계승자라고 할 수 있으나, 현대적 의미로서의 여성 참여가 강조됨으로 인해, 전통적인 여성관과 여성의 문화 전승 역할이 감소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여성의 숫자가 늘어가고 있으며, 민족문화의 발전과 진흥에 기여하는 여성의 임무는 더욱 강조될 전망이다.

이런 시가에서 볼 때, 근자에 그리스의 문화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4인의 여성은 앞으로 우리 여성이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의 제고 및 앞으로의 역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스는 현대화 과정에서 민족문화의 진흥, 지방 문화의 육성 및 대중의 문화 생활을 진작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을 받고 있다. 조안나 파판토니우 등 4인의 여성은 전통문화를 육성 발전시키고 이를 청소년 등 일반 대중에게 전달키 위해 각기 재단을 설립하고 미술관, 박물관, 문화센터 등을 설립하는 왕성한 의욕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사항은 이들 여성이 아테네를 중심으로 문화사업을 전개하기보다는 문화의 불모지와 정체지인 지방 도시에서 대중과 문화를 연결하는 시대적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안나 파판토니우(Joanna Papantoniou)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조안나 파판토니우 여사는 연재 1만 5천 점이 넘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민속박물관(Peloponnesian Folklore Museum)과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파판토니우 여사는 과거 26년간의 업적을 토대로 민속박물관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 기관으로 성장시킨 공로로 1981년 유럽박물관상을 수상하였으며, 그리스 역사와 문화에서 거의 잊혀져 버릴 뻔했던 펠로포네시아 시대의 유물을 민족사적 측면에서 발굴했던 인물이다.

1974년 그리스의 나브필라온에 박물관을 설립한 이래, 파판토니우 여사는 두 가지의 원칙을 고수해 오고 있다. 우선,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과 미술품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교육과 연구 사업을 수행하는 문화센터이며 둘째, 모든 유물은 특성에 따라 보존하여 전시되는 기법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의상뿐 아니라 무용·음악과 관련된 많은 악기도 연구와 검증을 거쳐 전시되고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그녀의 집안이 오늘날 그리스 문화의 보존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리라 예견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사업가로 군납품업에 전념했고 이때 쌓은 상술로 지금까지 번창하는 통조림 회사를 설립하는 등 문화예술과는 동떨어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파판토니우 여사가 운영하고 있는 박물관과 재단의 총예산 중 매년 25%를 지원하는 중요한 재원조달 단체로 파판토니우 여사에게는 매우 중요한 후원 기관이다.

1981년 유럽박물관상의 수상은 비록 많은 액수는 아니더라도 그리스 정부의 지원을 가능케 한 계기가 되었다.

여성으로서 사회 사업 및 문화진흥 사업을 전개하면서 갖는 고충에 대해 "오직 전문성만이 여성의 사회 참여를 강화시킨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여사는 그리스 문화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엘리스 고우란드리스(Elise Goulandris)

그리스가 자랑하는 또 다른 여성으로 남편과 함께 재단을 설립, 예술교육센터, 현대미술관, 근대미술관을 개설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선 그녀의 첫 번째 사업이었던 예술교육센터는 예술적, 미적, 사회적 메시지가 전달되는 문화 공간이어야 한다는 믿음 아래 추진된 사업이었다. 미술관 설계자로 널리 알려진 파파다치가 구상한 이 센터는 오늘날 정부의 부속기관으로 성격이 변했는데 이는 소장된 유물의 보존이 어려워서 이루어진 조치였다.

남편과 함께 안드로스(Andros)라는 역사 도시를 지키고 있는 엘리스 고우란드리스는 각종 문화예술이 아테네에 편중된 사실을 가슴 아파하면서 그리스 전역에 문화운동을 일으켜 문화 확산 내지 지역 문화를 진흥시켜야 한다는 생각 끝에 두 번째 사업인 현대미술관의 건립을 추진하였다. 3년간의 공사 기간이 소요된 이 미술관은 그리스 미술사의 발전 과정을 정리하고 현대미술과의 접목을 시도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세계의 미술 조류를 수용하고 이를 미술인에게 교육시키기 위해 근대미술관을 건립한 것도 그녀의 세 번째 목표였다.

외국에 나갈 형편이 안 되는 화가나 학생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근대 미술관은 그리스의 명소로 등장했으며, 매년 관람객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니키 고우란드리스(Nicky Goulandris)

남편과 함께 재단을 설립, 자연사박물관을 설립한 니키 고우란드리스의 관심은 예술적이기보다는 학문적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25년 전에 자연사박물관을 건설하여, 그 당시 생태계의 파괴, 환경오염 및 천연자원의 중요성에 대해 전문적 지식과 이해가 없었던 일반 대중을 계몽하고, 전문 학자로 하여금 연구와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여 학문발전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니키 고우란드리스 여사가 설립한 자연사박물관은 그리스의 유일한 자연사박물관이기도 하다. 그녀가 이토록 자연사박물관에 관심을 쏟은 이유는 그리스가 유럽에서 제일 빈곤한 산림을 갖고 있으며 정부의 예산도 0.4%만 산림 보호에 투여되는 실정을 안타까워했기 때문이었다.

매년 480종 이상의 철새가 도래하고 많은 유습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로 황폐화되고 있는 천연자원의 보호를 문화적 차원에서 보존하는 문화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한 니키 고우란드리스 여사는 식물도감을 간행하기도 했다.

민간 재단에 의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자연사박물관은 EC의 정책 지원을 받지 못했으나 작년부터 EC는 박물관이 제출한 6개 지원서 중 4개 사업에 대한 지원을 결정하는 등 자연사박물관이 추진중인 문화 사업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돌리 고우란드리스(Dolly Goulandris)

엘리스 고우란드리스와 같은 집안 식구인 돌리는 시클라드 섬의 유적지를 복원하는데 앞장섰던 고고학 전공 학자이기도 하다.

약 3천 점의 석상을 수집한 돌리 여사는 재단과 박물관을 설립, 그리스 문화의 보존과 해외 유출을 방지하는데 심혈을 기우려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