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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 사후 100주년 기념행사




이가림 / 인하대 교수

이 지상에 언뜻 모습을 비추고 사라져버린 혜성에 비유되기도 하는 천재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사망한지(1891년 9월)올해로 100년이 된다. 그래서 시인의 고향인 샤를르빌 메지에르에서 뿐 아니라 파리 및 마르세유 등지에서도 그를 추모하고 재조명하는 각종 전람회, 토론회, 강연회, 연극 필름 페스티발 등을 개최할 차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만을 들어보면, 샤를르빌 메지에르 시립도서관과 랭보 기념관이 주축이 되어 준비중인 「아르튀르 랭보, 초상화·데생 및 원고 Arthur Rimbaud, Portraits, Dessins et Manuscripts」(파리 도르세 미술관 10월 전시예정), 아랍 세계 연구소에서 계획하고 있는「아든에서의 랭보 Rimbaud à Aden」(3월∼4월 전시예정), 젊은 독일 화가 크리스토프 마이젠바헤르의 주도하에 에르네스트 피뇽, 장-자크 르벨 등 52명의 판화 작가들이 참여하는 「아르튀르 랭보, 또 하나의 얼굴 Arthur Rimbaud, I'autre visage」(5월∼6월 전시예정) 등 전시회를 꼽을 수 있다. 토론회로는 「파라드소바쥬」지(誌)에의 협력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약 40명의 참가자들이 벌이게 될 「랭보 사후 100주년을 맞이하여 Rimbaud Cent ans aprés」(9월 4일∼11일)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피에르 브뤼넬 교수를 중심으로 소르본느 대학에서 열릴 국제 토론회 「랭보와 그의 시대 Rimbaud et son temps」(9월23일), 루이 포레스티에와 앙드레 귀요 등 랭보 전문 연구가들에 의해 집중 토의될「지옥의 계절」에 관한 원탁 토론, 미셀 뷔토르, 이브 본느프와 등 당대 일급의 작가·시인들이 참여하는 샤를르빌 메지에르에서의 시의 밤도 아주 뜻깊은 행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생테티엔느의 문화원에서 만든 세르주 리브롱 연출의 뮤지컬 비극 「아브뒤 랭보 Abdu Rimb」(1월 15일부터 한달 반 동안 공연), 브뤼노 네테르 연출의「지옥의 계절 Une Saison en Enfer」, 이미 '90년 12월부터 오를리 지역에서 공연되기 시작하여 순회 공연에 들어간 알랭 로주니 연출의 「나는 랭보 시에 맞춰 블루스를 추고 싶다 I'ai le blues de Rimbaud」등의 연극과, 다큐멘터리 필름「바람 구두를 신은 사나이 L'homme aux semelles de vent」(미셸 퐁스 감독), FR3에서 방영 예정인 TV 다큐멘터리「랭보」(자크 트르푸엘 연출) 등도 기대해 볼 만한 프로그램들일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재조명, 재고찰(再考察)의 작업들이 그때그때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치밀한 계획과 준비 과정을 거쳐 새로운 가치 부여의 차원에까지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프랑스 문화의 축적의 힘을 엿보게 한다. 이번 랭보 사후 100주년 기념 행사들도 이 방면의 뛰어난 전문 연구가 및 예술가들이 오랜 기간 탐색해 온 작업의 결과들을, 때를 맞추어 발표한다는 그런 인상이다. 전통적 가치에 대해 유별난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프랑스인들의 태도가 1991년의 랭보 관련 행사들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르튀르 랭보는 하나의 기적이었다. 그의 놀랄 만한 조숙성과 또한 그러한 천재성만큼이나 아직도 풀지 못할 운명의 신비성은 확실히 그가 초자연적인 질서에 속한 기이한 존재였음을 느끼게 한다.

열 다섯 살부터 열 아홉 살에 이를 때까지 색다른 아름다움을 풍기는 환상적인 시와 불멸의 산문을 쓴 한 젊은이가 존재했다는 사실, 또한 그 젊은이는 아무도 밟아본 일이 없는 사고의 절정에 이르렀다는 사실, 이를 아는 사람은 다만 망연할 따름이다. 그는 열 아홉의 나이에 서슴없이 문학을 버렸고 짧은 생애의 다음 단계에서는 공상과 벗삼아 뭇 나라를 도보로 여행하면서 영웅주의에 넘치는 놀라운 행동을 해냈다. 유럽과 여러 대양(大洋)을 편력하고 생계를 위해 차례차례 무수한 작업을 전전하였으며 허다한 외국어를 체득하고 마침내는 아프리카 대륙에 좌초(坐礁)되어 그곳에서 지옥을 순회하는 참담한 삶의 여정을 끝맺었다.

서른 일곱 살의 순교자와도 같은 죽음이었다. 이것이 인류 역사에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아르튀르 랭보의 비극적인 생애이다."

가장 탁월한 랭보 전기 작가인 앙리 마타라쏘와 피에르 프티피스는 「아르튀르 랭보의 생애 La Vie d'Arthur Rimbaud」(Hachette, 1962) 책머리에서 비범했던 한 인간의 궤적을 이와 같이 짧게 정리한 바 있다.

15세 때 이미 모차르트에 비견할 만한 완성된 조숙함의 시를 씀으로써 당대의 문사들을 놀라게 했던 이 신동(神童) 시인의 삶은, 마치 극적 소설과도 같아서, 때때로 일반 독서가들로 하여금 흥미로운 전기적 사실에 빠져들게 하기도 한다.

1854년 샤를르빌에서 태어나 엄격한 편모(아버지는 그가 여섯 살 때 사망) 슬하에서 자란 랭보는 어릴 적부터 광범위하게 독서를 하여 열 한 살 때에는 벌써 이집트, 시리아, 바빌론을 포함한 고대사의 요약을 쓰는 등 이재(異才)로 알려졌으며, 학교에서도 매 과목마다 일등상을 타는 우수성을 보였다. 그의 시 창작은 1870년 열 다섯 살 때 랭보가 다니던 학교에 새로 부임해 온 젊은 교사 이장바르의 애정 어린 가르침에서 비롯되는데, 이장바르가 랭보에게 빌려준 당대 프랑스 시인들의 작품들을(당시 중학생들에게 금서로 되어 있었던 보들레르의 「악의 꽃들」을 포함하여) 읽고, 랭보는 그 가락과 기법을 그대로 살려 내는 시를 써내어 이 젊은 교사를 탄복하게 만든다.

이장바르와의 결별 이후 그는 그가 우등생이었던 샤를르빌 중학교와도 결별, 악마주의와 신성 모독의 관념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대시인으로 만들기 위해 죄의 촉성재배실에 몸을 맡긴 사나이" - 보들레르에 깊이 매료되어, 한 동안 방탕, 타락, 고뇌에 사로잡혀 지낸다. 한편 제정(帝政)의 붕괴에 박수를 치며 민중 봉기로 세워진 코뮌(commune)을 기쁨에 넘쳐 환호하는 정치적 감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열 일곱 살 때 랭보는 그의 최대의 걸작 「술 취한 배 Bateauivre」를 쓴다. 24연으로 된 장시인 이 작품은 아메리카 토인들에 의해 선원이 학살당한 한 표류선의 이야기를 노래한 광상시(狂想詩)인데, "한번도 바다에 간 적이 없었던 소년의 비전을 보는 상상력의 기적적 위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가 매개가 되어, 랭보는 폴 베를렌느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에 기이한 친교가 이루어지게 된다.

랭보로서는 처음으로 "동질적인 정신을 가진 시인"을 발견한 것이 되고, "자기 혼자 싸워야 할 적이었던 전세계에 둘이서 대항함으로써 세계에 지지 않을 기회를 얻었다"고 기뻐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은 브뤼셀 여행 도중 베를렌느가 랭보에게 권총을 쏘는 일이 발생한 것을 고비로 해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 사건이 있은 직후 랭보는 고향으로 돌아와 과거의 생활, 베를렌느와의 방랑 등을 바탕으로 해서 산문과 운문이 섞인 「지옥의 계절」을 쓴다. "나는 단순한 환각에 잠들도록 버릇 들였다. 공장 대신에 회교의 사원을, 북을 치는 천사들을, 하늘 길을 달리는 마차를, 호수 바닥에 있는 객실을 나는 보았다. 나는 괴물을, 신비를 본 것이다."

열 아홉 살 되던 1875년 이후 랭보는 문학을 포기한다. 그는 부둣가의 노무자에서 네덜란드의 외인부대 병사로, 다시 쟈바에서 삼림(森林) 생활을 하다가 1880년부터는 아든, 아라비아, 하라르, 아비시리아 등지에서 커피와 향수를 파는 상인이 되었으며, 최후 2년간은 무슨 국제 음모에 가담한 듯 하나 자세한 이력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 세기의 귀재(鬼才)가 사라진지 1세기가 흘러간 지금, 프랑스 문학·예술계는 그가 이룩해 놓은 "상상력의 기적"을 오늘의 정신적 삶에 여전히 유효한 값진 유산으로 받아들이려는 갖가지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부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