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심층분석

국악 교육에 관하여




서한범 / 단국대 교수

건전한 사고와 교양을 갖춘 품위 있는 사회인을 길러내야 할 학교의 교육이, 마치 입시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듯 해서 뜻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학교의 교육은 곧 입시를 위한 준비 교육이어서 입시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적은 예능 과목은 공부할 필요가 없는 불필요한 과목으로 전락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왜 우리의 교육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건전한 사회인'을 길러내는 일과 "예능 과목"이 관계가 없거나, 또는 있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는지 도시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 불필요한 과목 속에 음악 시간이 포함된다.

학교에서는 푸대접을 받고 있는 음악 교육이지만, 문교부가 정하고 있는 음악 교육의 목표를 살펴보면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필수적이며 중요한 교과목임을 알 수 있다.

가령 "음악의 체험을 통하여 음악성과 창조성을 계발하고 정서를 풍부히 하여 조화된 인격을 형성하고 동시에 바람직한 국민으로서의 교양을 높이도록 한다"든가, 또는 "우리나라의 음악과 다른 나라의 음악을 이해하고 조상들이 남긴 문화 유산을 계승하여 민족 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 및 태도를 기른다" 등은 음악 교육의 존재를 분명히 규정하고 있는 내용인 것이다.

음악이야말로 인간성 향상을 위한 강한 추진력이며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사회 생활에 있어서 협동성을 형성하며 창조적 태도를 기르는 중요한 교육과정인 것은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현실은 이 과정을 외면하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국악 교육의 문제는 어떠한가 ?

학교의 음악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해도 음악 교육의 과정이나 내용이 서양음악 위주의 일방적인 내용이어서 국악 교육의 비중은 형편없는 실정인데 그나마 음악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의 국악 교육은 논할 대상조차 못되고 있는 형편이다.

잘 모르겠다는 이유로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것쯤으로 알고 있는 교사가 아직도 많은가 하면, 배움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국악을 어렵고 생소하게만 느끼게 된다는 학생들이 태반이다.

결국 국악 교육의 부재(不在)가 이 땅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제 나라 음악이 다른 나라에 비해 우수한 음악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능력조차 키우지 못한 채 음악 문화의 불구자로 만들어 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 국악 교육의 부재(不在)를 만들고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 ? 아니 그보다도 국악 교육이 학교에서 정상적으로 활성화 될 수 있는 방안은 어떤 것인가 ? 한두 가지 문제로 해결 될 수는 없겠으나 우선 다음의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국민적 관심 속에 국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서서히 진행시키는 문제이다. 둘째는 학교의 교과과정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서 주체성 있는 교육 정책을 수립해 나가는 문제이며, 셋째로 지도자의 양성을 서두르는 계획도 국악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시급한 방안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국악에 대한 인식의 전환 문제는 국악 교육의 밑받침 역할을 수행하는 원초적인 문제라고 하겠다.

우리 사회는 기능과 그에 종사하는 기능인을 경시하는 좋지 않은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과거의 우리 역사가 우리에게 안겨준 악습의 잔재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고려시대의 계급 구성이 그러했고, 조선시대의 예능인에게 천민(賤民)이란 굴레를 씌어 놓은 제도들이 또한 그러한 것이다. 천민은 과거를 볼 수 없도록 제도를 묶어 놓았으니 글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고 공부가 없으니 자연히 재주만을 믿고 살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능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몇 백년전의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허다한 것 같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이 가야금을 들고 다니거나 국악을 공부한다고 하면 '집안'이 어떻고, '가문'이 어떻다며 만류하는 부모님들을 만나기 쉽다. 거기에 외래 문화의 선호 사상은 강해서 같은 음악이라도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배우러 다닌다면서 우쭐대는 꼴도 보게 된다.

우리 전통음악 중 일부분이 여흥의 도구로 차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체의 국악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왼손에는 책을 들고 오른손에는 악기를 들어 예와 악을 익혀왔던 선비사상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禮)로써 사람된 도리나 질서를 배워왔고 악(樂)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함께 느껴왔던 선인들의 생활 철학이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인가 ?

국악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은 빠를수록 좋다. 그 인식의 전환은 교육 현장에서 음악의 실체를 통해 경험되어져야 확실해지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서만이 가장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국악 활성화의 밑거름이라고 믿는다.

다음으로 제기하고 싶은 국악 교육의 활성화 방안으로는 문교당국의 적극적이고도 과감한 교육정책을 들 수 있다. 쉽게 한마디로 말한다면 문교 당국이 국악 교육에도 마땅히 신경을 써야 되겠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국악 전문인들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중학교 과정은 91학년도부터 실시될 국악중학교 단 한곳뿐이고, 고등학교 과정은 국악고교, 국악예술학교, 남도예술학교 등 3곳뿐이다. 또한 대학 과정은 '59년도에 설치된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전국 14개의 대학에 국악과가 있을 뿐이다. 14개의 국악과 중에서도 '80년대에 설치한 학교가 경북대, 전남대, 부산대, 영남대, 중앙대, 단국대, 우석대, 청주대, 전북대, 서울예전 등 10개교이며 한양대, 이화여대, 추계예술학교(4년제 대학 과정)등 3개 학교가 70년대에 설치되었고, 서울대학교만이 '59년도에 설치되었을 뿐이다.

서울대학을 제외하면 국악 전문인을 양성하기 시작한 대학 과정의 교육기관은 그 연륜이 짧으니 이제야 시작인 셈이다. 또한 그 교육기관의 수가 전국적으로 볼 때 너무 적다. 아직도 강원, 제주, 경남, 충남, 경기 지방과 인천, 대전 등 직할시에는 대학 과정의 국악과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 지방들의 국립대학은 정책적으로도 문교 당국이 국악과의 신설을 추진하도록 적극적인 권고와 독려를 해주기 바란다.

초·중등학교의 음악을 지도하고 있는 교사들의 대부분이 교육대학이나 음악(양악)대학, 또는 음악(양악)교육과를 졸업한 사람들인데 이들에게 국악 교육을 시키도록 아무리 강조한다고 해도 그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교사가 되기 이전에 국악 교육을 받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도 능력이 없음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국악 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현재에도 마치 어쩔 수 없이 구색만 맞추는 형식적인 강의 배정과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음악학과나 음악교육학과, 또는 교육대학에서 장차 초·중등학교의 교사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겐 국악 실기 및 이론의 강의를 보다 더 강화해서 수강토록 하는 제도적 보완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초등학교의 교사 양성 기관인 전국의 교육대학 중에 국악을 전공한 교수가 있는 대학은 단 1곳뿐이니 이는 문교 당국이 국악 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게 만들고 있다.

문교 당국이 국악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신경 써주어야 할 중요한 문제가 대학의 교과과정뿐 아니라 일반 초·중등학교의 음악 교과서를 제작해 내는 일이다. 현행 고등학교의 음악 교과서 5종을 분석한 S고교 K교사의 석사 학위 논문에 의하면 가창의 경우, 한국의 민요는 전체곡 수의 13.8%에 불과하고 기악의 경우, 가야금의 조현법, 피리, 단소의 안공법 등이 실려 있으나 내용이 서로 다르게 표기되어 있었으며, 감상의 경우는 매우 심각할 정도로 교과서마다 감상곡의 수가 차이를 나타냈으며 그 내용도 빈약하다는 결론을 짓고 있다.

특히 우리를 놀랍게 하는 내용은 "심지어 감상곡이 한 곡도 없는 교과서가 5종 중에서 3종이나 된다는 것은 자국의 전통음악을 무시한 채 서양 음악을 위주로 하여 교과서를 펴낸 저자에게도 문제가 있음은 물론, 검인정 때 국악 전문인을 심사위원으로 의뢰하지 않은 행정 당국에도 그 책임이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그는 또 5종의 교과서에 실린 민요들을 비교 분석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류들을 지적하면서 "국어나 국사 등 다른 교과서에서는 몇 개의 맞춤법에 잘못이 있거나 용어의 잘못이 있어도 크게 문제화시키면서 음악 검인정 교과서에는 그 몇 십 배의 과오를 저질러도 교육상 지장이 없는지가 의심스럽다"고 개탄하고 있었다.

서양 음악 일변도로 짜여진 현행 교과서 속에 국악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으로 낮은 편인데 그나마 그 내용이 불확실하고 오류가 많다고 하는 점은 국악 교육을 정상화하는데 있어 치명적인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국악 부분의 내용은 어느 개인의 주장이나 학설보다는 한국국악교육학회나 국립국악원, 또는 대학의 연구소에 의뢰하여 보편적이고도 타당성 있는 내용을 싣도록 해야 하며 교과서 제작에 관한 문제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될 것으로 믿는다.

여기엔 국악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도 책임이 있다. 개인의 의견이 아닌 공동의 연구로 각급 학교, 각 학년에 적절한 교과 내용을 선정하고 용어의 정의에서부터 국악 교육에 필요한 자료까지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과 과정이나 교과서 제작의 문제는 당국과 국악 교육계 인사들의 긴밀한 협조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국악 교육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세 번째로 제시하고 싶은 것은 국악을 전공한 교사들의 확보 문제이다.

국악 교육의 성패는 오르지 지도자의 의도와 열의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국민적 관심 속에 국악에 관한 인식의 전환이 시작되고 있고 학교의 교과 과정이나 교과서의 내용이 보완되어 실행에 옮길 단계가 되었다 해도 지도자가 지도할 의욕이 없거나 능력이 없다면 이는 국악 교육이 성취될 수 없게 마련이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 국악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많은 원인들 중에서 교사의 지도 능력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을 각종 연구 보고서는 입증하고 있다.

서울 D고교의 B교사가 서울 시내 음악 교사 100명을 대상으로 '국악을 지도할 수 있는가 ?'를 묻는 설문에 95명의 '자신 없다'라는 대답을 하였고, S고교의 K교사가 지난해 발표한 논문 속에서 '국악 교육이 실제 현장에서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82%이상의 응답자가 '전혀, 또는 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부정적인 답을 하였다 한다.

그러나 국악 교육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100%의 응답자가 '반드시 또는 필요하다'라는 응답을 했고 그 필요한 이유를 87% 이상의 응답자들이 '국적 있는 교육의 필요성과 국악이 우수한 음악이기 때문에'라는 답을 했다고 발표하였다.

이상의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일선 교육 현장에서 국악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의 대부분이 국악교육의 필요성은 크게 인정하면서도 지도할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교사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의 앞날을 위해서 그리고 국악교육의 장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현직 교사들의 국악 연수회, 강습회, 발표회, 지도서 발간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들 수 있겠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는 소극적인 방법이다.

보다 더 적극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국악을 전달해서 지도할 국악 전담 교사를 확보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현재 전국의 14개 대학 국악과를 졸업하는 졸업생의 수가 줄잡아 300∼400여명에 이르고 있으므로 인적 자원은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80년 이전에 설치된 서울대, 한양대, 이화여대의 극히 일부 학생들에게만 교사 자격증이 발급되고 있기 때문에 국악 교육을 담당할 교사의 확보가 현재로는 쉽지 않은 편이다. 더구나 이들 대학들이 서울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지방 학교에서 국악 교사를 초빙할 경우, 여러 여건상 희망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문교 당국은 교사 수급의 계획상 교사자격증을 제한할 필요가 있겠으나 특수한 경우에는 획일적인 정책에 묶이지 말고 자격증을 부여해서 국악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국악과 졸업생들에게 무조건 교사 자격증을 부여하는 특혜를 주라는 요청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는 엄격하고 공정한 자격 심사를 거쳐 자격이 있는 졸업생들에겐 그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학생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교 당국의 긍정적인 검토를 기대한다.

입시만을 앞세워 단편적인 지식 암기에만 급급한 인상을 주고 있는 오늘의 학교 교육에서 음악 교육자체가 존재의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는 그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붙어 있는 국악의 교육문제를 논의하는 자체가 부질없는 일 같아 우울하기만 하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국악 교육의 정상화 방안으로 국악에 대한 인식의 전환, 문교 당국의 교육정책, 그리고 국악 전담 교사의 확보 방안들을 제시해 보았다. 그 외에도 초·중등학교의 국악교육을 정상화하는 방안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그러한 논의는 별도의 지면을 통해 제시하고자 한다.

"국악과 그 예술성을 알고 모르는 것은 교육에 달렸다 해도 좋을 것이네. 오랫동안 국악이 젊은 세대에 의하여 등한시된 것은 명백히 국악 교육이 결여된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네"

문화예술진흥원의 발간한 「국악교육지도서」에 서언(序言)을 쓰시면서 강조하시던 은사 이혜구(李惠求) 선생의 말씀이 오늘따라 새삼 크게 들려 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