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국가의 중점목표수립에 따른 제언
허 권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과장
Ⅰ. 총체적 시각과 거시적인 접근
지구상의 어느 정부치고 당해 연도에 수립해야할 전략적 목표를 가지지 않고 있는 정부는 없다. 정부뿐 아니라 국제단체에서도 중점분야의 선정과 전략의 제시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라고 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복수의 개념으로 두 개의 목표를 설정하기도 하고, 사업의 집중화와 효율성이 크게 요구되는 경우에는 중장기 계획하에 단계적인 목표를 선정, 추진방향을 정하는 것이 보편적인 경향이다.
개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부와 국제기구의 중점방향에는 항상 주권자인 국민과 회원의 의견을 반영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강한 정책적 의지를 표방하는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따라서 중점목표가 어떠하던 간에 그 목표는 '현실의 반영'과 '미래의 개척'이라는 양면성을 띠게 마련이고, 재원과 행정력의 집중이 수반되게 된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장관회의의 한 보고서는 문화전략수립에 따른 기본적인 인식을 강조한 바 있다. 즉 문화전략은 총체적인 시각과 다부문적인 행동지침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그 결과 또한 문화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문화는 소위 문화예술기관만의 책임에서 벗어나 여러 부처간의 공동책임으로 인식되어가고 있다. 문화는 곧 사회의 모습이고 집단적 표현방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나 국제기구에서 문화전략을 수립할 때, 무엇보다도 타기관 ·타부처와의 공동전략 수립은 매우 중요하다. 연극영화의 해를 맞아 교육부처와의 협조는 매우 긴요하며 서울시, 관광공사 등과의 공동전략수립 또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총체적인 시각과 거시적인 접근이 매우 아쉽다고 볼 수 있다.
Ⅱ. 말레이시아·캐나다
1989년 우리는 2가지의 유사한 예를 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사례가 있을 수 있지만 문화전략을 수립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주기 때문에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그 한 예가 말레이시아이고 나머지 한 예가 캐나다의 문화정책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1989년을 말레이시아 문화의 해로 지정하고 이 기간중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과 해외교류 강화를 위한 사업안을 입안한 바 있다. 여러 사업 중 우리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이 「말레이 반도 탐방 프로그램」이었는데, 최근 자국이 개발한 국산승용차에 외국인 학자 ·문화예술인을 초청, 조별로 작성한 설문지를 갖고, 지정된 문화유적지로 가서, 자세한 조사를 한 뒤, 수도인 쿠알라품푸르에서 종합적인 학술회의를 개최한 사업이었다. 본인은 이 사업이 우리에게 주는 어떤 암시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즉, 산업경제분야와 연계한 착상이야말로 자국산 자동차를 홍보하는 한편 말레이 문화를 홍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닌가하고…. 우리의 경우, 미국·캐나다의 자동차 수입사를 초청, 고궁과 산업시설의 견학에 주안점을 둔데 반해, 말레이시아는 문화를 전면에 부가시키고 내부적으로는 자동차를 홍보하였다는데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캐나다는 우리의「연극 영화의 해」와 마찬가지로 이미 문화예술을 집중육성하기 위한 특별계획을 마련한 바 있다. 1989년을 「캐나다영화의 해」로 지정한 점이다. 캐나다문화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연방정부의 홍보성장관이었던 프로라 맥도널드 (Flora MacDonald)는 1987년 홍보성안에 조정위원회를 설치토록 지시하고, 2년 후에 있을 영화의 해와 관련된 각종의 사업, 재원조달방법, 홍보전략을 수립토록 한 바 있다. 이 당시, 조정위원회 의장으로 임명된 캐나다영화공사의 쟝 시로이스(Jean Sirois) 회장은 1989년 캐나다 영화의 해의 목표로 첫째, 자국의 영화문화와 유산을 대중에게 알리고 둘째, 일년 내내 영화관련 축제 및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국내영화계의 자생력을 높이고 셋째, 국제경쟁력을 강화, 자국영화의 해외진출을 본격화한다는데 주된 방침을 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유사한 프랑스도 영화의 해를 지정한 선례가 있다.
Ⅲ. 국제기구
유엔에서 다루는 국제문화를 축소해 보면, 결국 우리의 중앙부처가 염두에 두어야 할 문제와 대동소이함을 알게 된다. 이는 세계의 평화, 질서 유지 및 공존에 바탕을 둔 유엔의 창설이념은 국민의 안녕, 계층간·지역간 갈등해소 및 발전에 초점을 두고 있는 국가의 정치적 목적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각 국가의 다양한 의견과 이해 관계는 곧 국민들의 여러 목소리와 견해라고 볼 수 있다. 유엔도 세계의 문제 중 시급히 해결해야 할 분야를 특정 년도와 연계시키고 있는데 세계 도서의 해(72), 세계 인구의 해(74), 세계 여성의 해(81), 세계 아동의 해(79), 세계 장애자의 해(81), 세계 커뮤니케이션의 해(83), 세계 무주택자의 해(89), 세계 문화의 해(90)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세계 각국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요구되는 특정분야에 대해서는 중장기계획을 입안, 이러한 제문제의 해결을 타개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계획들로 세계여성개발 10개년 계획, 세계문화발전 10개년 계획 등들이 있다. 유엔은 집중적인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회원국가와 산하 전문기구와의 긴밀한 협력체제를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 예컨대 세계문화발전 10개년 계획(1988∼97)을 완수하는데 유네스코, 국제환경기구, UNDP 등과 사업안의 수립단계부터 지적교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유네스코는 각 회원국의 요청에 따라, 매 2년마다 개최되는 정기총회에서 인류문명사에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룩한 인물이나 사업에 대한 개념사업을 승인하고 있는데 1988∼1989년간에 승인된 사업으로 페르난도 페소아(Fernando Pessoa) 탄생 100주년 사업, 모하메드 하페즈시라지 600주기 기념사업 등이 있었다. 비록 유네스코본부가 승인한 사업은 아니더라도 각 회원국가가 유네스코의 간접적인 지원과 후원을 요청하는 사업도 많이 있는데 이 경우, 각 정부는 유네스코의 명칭을 후원기관으로 사용하게 된다. 최근 외신을 통해 국내에 알려진 소련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기념 사업은 이 범주에 속하게 된다. 우리의 경우, 매월 문화부가 지정하는 인물을 국제적으로 추인 받고 홍보하기 위해서는 소련, 멕시코 등이 외교적· 전술적으로 활용하는 이 방법을 이용하는 것을 권고하고 싶다.
유엔과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에서 추진되는 "올해의 기념사업"들은 하루 이틀 사이에 입안되기보다는 수년을 거쳐 자문위원과 집행위원들의 연구보고서에 기초, 세부적인 사업방향과 내용 그리고 예산조달방안 등을 면밀히 검토한 후, 종합계획서를 발표하게 된다. 캐나다의 경우에도 1989년 영화의 해를 선포하였지만, 이를 위해 2, 3년 전에 이 사안을 집중적으로 심의 할 기구를 발족시켰으며 각 부처간의 공동사업의 개발에 게을리 하지 않았음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다소, 복잡하고 지루한 과정이라는 점도 지적될 수 있으나 이러한 검토과정을 거치는 동안, 이 행사에 참여하는 여러 국가와 단체들은 나름대로 특성 있는 사업을 자체 개발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줄 뿐 아니라 동행사의 중요성과 인식을 널리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최근 문화부의 "연극영화의 해" 선포와 관련되어 갖가지 의견이 대두되고 있으며 사업안의 대폭수정이라는 단계까지 발전해가고 있다. 의견수렴과정, 타부처와의 공동보조, 캠페인의 집중적인 홍보, 예산안의 정확성 등에 많은 의의가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발전 10개년 계획(1988∼ )은 지난 1981년 멕시코에서 개최된 세계 문화장관회의에서 발의되어 근 8년만의 조정작업 끝에 실행단계에 옮겨졌음을 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