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주의 미술의 청신호
이재언 / 미술평론가, 서울시립대 강사
90년대 들어 미술계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모더니즘 대 리얼리즘이라는 양극 이데올로기의 지배가 종식되고 교착되기 시작하면서, 다종적이고 다원적인 개체들의 공존과 교류라는 고무적인 현상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80년대부터의 국제정세가 배타적 이데올로기를 포기하고 공존과 화해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예술에도 어떤 형태로든 공조의 필요를 인식시키고 있다는 점이나, 후기산업사회에 있어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종래의 미학적 신념이나 예술적 가치관에 어떤 변화들을 초래할 만한 징후들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들을 지적할 수 잇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80년대 후반을 냉각기로 거치면서 대결구조가 서로의 은밀한 영향관계와 불가피한 보완관계라는 사실 앞에서 무력해져, 더 이상의 배타성은 무모한 에너지의 소모이거나 위장된 선명성에 불과함을 드러낼 뿐이라는 점이 자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종래 제도권 대 비제도권이라는 도식 자체가 설득력 있는 기준을 가진 구분이 아닌 자의적인 것이라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또한 어느 쪽에서나 더욱 치열하고 진지한 창작의 필요 앞에서 상호간의 이해와 수용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될 명제에 직면해서는, 본질의 구명 못지 않게 행위 일반의 준칙을 순화시켜 가는 것이 역사적으로는 당연한 귀결이라 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현상은 최근 있었던 몇 가지 전시 활동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몇 가지 전시기획 등을 통해서 잘 확인되고 잇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단체전으로는 지난해 구랍에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젊은 시각- 내일의 제안전」을 들 수 있고, 개인전으로는 「임옥상전」(1991. 1 .7∼1. 31., 호암 갤러리)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임옥상전」은 하나의 이벤트라면 이벤트이다. 이는 80년대 한국 현대미술사를 통하여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민중미술의 제1세대이자 대표자격인 임옥상 한 개인의 작품전으로서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미술현상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비쳐주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80년대를 통해 가장 각광을 받은 엘리트 작가이면서도 가장 탁월하게 민중성을 부각시킨 작가를 꼽는다면 단연 임옥상이다. 그 누구도 그가 민중미술의 대표작가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수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스로는 민중작가로의 편입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임옥상의 회화가 지니는 어법이 리얼리즘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점만이 그를 소위 스타로 만든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자신의 표현기조를 리얼리즘의 방법론에 두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면서도, 그의 화면이 언제나 상상력으로 번득이고 있다는 것이 소위 폭넓은 인기의 근거가 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새」,「하수구」,「보리밭」,「토끼와 늑대」등의 작품들은 초현실주의적 방법이 그에게 있어 대단히 유력한 어법의 근간임을 입증시켜 주고 잇다. 그런가 하면 「일월도」연작에서는 팝아트에 가까운 만화 이미지를 등장시킴으로서 상상력의 성가를 높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대상이 가지는 연상기능을 상당 부분 전유하는 개인적 상상력과 경험을 공유하는 사회적 상상력을 적절히 조화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로부터 작가는 항상 이데올로기를 외적 필연성에 의해서보다는 내적 필연성에 의해 선택하는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즉 임옥상은 리얼리즘 미술의 조형적 원리가 구체적이고 생동적인 사실성과 인식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여타의 형식요건들과 연대 혹은 절충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개인의 신앙적 미의식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임옥상의 그림들이 리얼리즘 자체의 사실성 밖의 것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데에는 종래의 회화가 접근하지 못한 잉여 부분들을 진지하게 다루어보고자 하는 원초적인 탈모던(그렇다고 포스트모더니즘 그 자체와 반드시 동일시될 필요는 없다. 즉 반모던에 가까운) 미학이 잠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근거로는 일련의 「일월도」와 같은 짙은 풍자 효과와 연작「아프리카 현대사」에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효과 등은 일종의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물론 전자의 그림과 후자의 그림에서 느끼는 재미와 성질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전자의 경우에 얻어지는 경험은 일종의 희화화의 것으로, 희화에 의한 감각적 재미로부터 풍자에 의한 관념적 재미로까지 전이되는 것이며, 후자의 경우는 극적 분절의 형식을 빌어 우리에게 생소한 아프리카 민족사에 우리의 민족사적 감정을 이입하는 측면에서 심각한 의식을 환기하는 재미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공통적으로는 작가의 말대로 천상의 복음과 같은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민중들의 군상이 만들어낸 이 땅 위에서의 다양한 감정들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다.
이 밖에도 임옥상의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리얼리스트로서의 전통에의 귀소본능을 파편적 혹은 혼합적 모조(pastiche)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들풀」이나 「땅」연작과 같은 작품들에서 보여주고 있는 산수화적 처리에 양화적 묘사를 결합시킨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작가가 우리의 민족적 감성을 환기시켜 가면서 형상적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하는 점은 임옥상 회화의 압권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종이 부조를 이용한 회화 표현에 있어 색채의 중후한 색조와 종이 부조의 부드러운 마티에르 효과 등을 통해 공동체적 감성과 정서적 전달을 보다 충실히 하고자 하는 점은 급진성을 보이는 리얼리스트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여 볼 때 스스로 민중미술 작가가 아닌 민중작가 임옥상은, 자신의 리얼리즘을 사회주의적 혹은 급진적인 것으로 비약시키기보다는 비판적인 것으로 정의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 삶의 심층에까지 전달될 수 있는 미적 형식을 모색하고 있는 탈모더니스트라 할 수가 있다. 돌이켜 보건대 국제관계 속에서의 우리 미술의 향방을 일찍부터 삶 자체로 전향시키고자 했으며, 오늘날의 자아 소외와 분열현상을 조심스럽게 담아내고 있는 점 등은 임옥상 회화를 재해석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하는 대목들이다. 그렇다면 숙명적으로 택한 리얼리즘과 탈모더니즘의 중간지대에 서있는 임옥상이 겪은 희생의 내용이 무엇이며, 분량이 얼마나 되는지 어느 정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차후에라도 이데올로기의 소모적 대립이 더 이상 작가들의 자유로움을 구속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