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용 제전과 91년 신인(新人)들
김영태 / 무용평론가, 시인
문화방송에서 주관하는 한국무용제전이 7회 째를 맞는다. 한국무용제전은 86년 2회 때 전통춤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하기로 했다.
뜻 있는 기획이었다. 그 때 재조명된 작품은 봉산탈춤, 학춤, 작법, 춘앵무, 진도씻김굿들이었다. 봉산탈춤 재조명 과정에서는 「혈(穴)」(李惠順 안무)이, 작법은 「모은 손 춤바람」(李魯淵 안무), 춘앵무는 「벗은 발로」(金海子 안무), 진도 씻김굿은 「산 자를 위한 방황」(林鶴璇 안무) 등이 오늘의 춤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했었다. 전통춤의 재조명은 87년 3회 때에도 관객들 호응으로 재시도되었는데 승무는 발레기법(金宣命 안무)으로 「속세의 번뇌가」를 탄생시켰으며, 처용무는 「둘은 뉘해연고」(임관규 안무), 강강술래는「파문」(崔恩姬 안무), 현대무용가 南貞鎬의「애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 가자」같은 가작을 남겼다. 「사라진 울타리」(尹德卿 안무)도 춤 재현의 비중이 큰 작품이었다.
88년 4회 때는 지나 반스가「베니리듬」을, 야마다 세스코가 「또 다른 天使」를, 프랑스 안무가 크리스틴 비르고스, 안느마리 레노가 「성상(聖像)」와「형상(形相)」 두 작품을 가사이 이끼라가「처녀를 위하여」를 안무했었다. 89년 5회 때는 미국 안무가 프리드만이 「로사 댄스」외 소품들을, 하나야끼 오모떼가 「원」을, 그리고 「활」(庚美利 안무)과 「민들레 왕국」(임학선 안무)은 그후 해외 무용제에 출품해서 각광을 받기도 했다.
90년 6회 때부터 주제가 정해졌다. 「90 자화상」이 그 주제였고, 선정된 다섯 단체는 주제작품 외에 신작들을 추가했다. 금년 7회 공연 주제는 「내일은 흐름 찾아」로 결정되었다. 91년 한국무용제전(5월 공연)은 문화방송 창사 30주년을 맞는 행사의 일환으로 여덟 단체가 선정되었고, 88 문화축전 때 내한했던 스베트라나 崔(소련)와 북경무용가 등 세 단체가 전야제에 초청되었다.
무용계 일각에서는 한국무용제전에 선정되는(위촉받은 선정위원 7명, 문화방송국 사업국 2명) 무용단체가 연거푸 참여한다는 것, 선정 기준의 모호함, 지방 단체는 소외되어 있다는 것 등 불만도 없지 않다. 문화방송 사업국쪽은 이런 항의를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한국무용제전은 문화방송이 무대를 대관 해주고, 프로그램, TV 광고 등 PR은 물론 공연제작비를 지원해주는 조건 때문에 무용인들의 관심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단체를 선정하는 과정은 토의가 아닌 선정위원들(7명)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다시 말해 종다수로 많은 점수를 얻은 무용단이 그 해 제전에 참여하는 것이다. 금년의 경우도 문화방송측이 전국 29개 무용단을 자료로 제시했고, 그 속에서 종다수 원칙에 의해 여덟 단체가 선정되었다. 지방 무용단은 그중 세 단체였다. 대구 효무회(백현순), 김현자 아카데미, 전북 장인숙 무용단, 부산 연무회(엄옥자) 등이 그래서 아깝게 탈락되었다.
91년에는 그 동안 자기모색과 성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신인들의 무대가 어느 해보다 기대된다.
국립발레단의 지난 세모에 공연했던 창작 발레 「고려애가」는 작품은 신통치 않았던 대신 왕무당과 무당들 (특히 4인의 선두 무당들)이 나오는 장면은「고려애가」체면을 살려주었다. 그 선두 무당을 중에서「카르멘」공연 때 미카엘라 역을 맡았던 이경란, 이재신의 개성을 나는 주목해보고 싶다. 「카르멘」에서 투우사로 나왔던 박상철, 전홍조 안무의 「매혹」2인무에서 전홍조와 춤추었던 이원국도 같은 말이 적용된다.
徐且瑛이 안무한 한국 초연 작품(전막 발레)「라 바야데드」에서는 김준희라는 스타가 탄생했다. 김준희는 힌두교 무희(舞姬) 니키야 역을 맡았는데 나는 김선희와 최태림를 혼합시킨 이상적 지체라고 쓴 적이 있다.
3회 발레 그랜드 페스티벌, 박인자가 안무한「세레나데」에서 문영길과 2인무를 춤춘 정미란도 대성할 무기였다. 표정도 몸매도, 그리고 정미란의 품위는 문훈숙의 데뷔 무대를 연상시켰다. 신애숙은 국립발레단에도 몸담았었는데 조승미가 안무한 「나」(한·일 교류 공연)에서 유종선과의 회전 곡선은 노숙했다. 「데니의 하루」(서울 무용제)에서도 신애숙은 이준규와 밀도 있는 듀엣을 춤추었다. 박금자가 안무한「돈키호테」전막 공연에서 니키야 역을 맡았던 김유미, 박선희, 조승미 발레단의 노인영, 유니버설 발레단「호두까기인형」에 솔로이스트로 나왔던 김혜영, 아라비아 춤을 춘 전숙영, 문의영이 안무한 「171 또는 비극 배우」에서 폭력의 재물이 되는 박지숙 그리고 비극 배우역 李昊勳, 심정희 등은 유망주들이다.
창무회 단원인 이미영은 「춤과 시, 미술과 음악과의 만남」에서 「안개의 나라」를 안무하고 출연했다. 무서운 신인답게 이미영은 안개 속 인상의 드라마를 비유와 상상력으로 엮어나갔다. 90년대에 배출된 신인의 대표 주자였다. 같은 창무회 단원 김소연은 한강 댄스 페스티벌에서「곰네」솔로를, 그리고 김춘수의 시 「뱀」을 안무했다. 여러 마리 뱀 중에서 그의 입지는 독특했다. 김태원이 「작은 그레이엄」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듯이,
리을 무용단 김현숙은 「무너지는 오후」로 데뷔했다. 가냘픈 미가(美佳), 그러나 탄력을 늦추기 않는 4인무에서 그는 독침처럼 날카로웠다. 날카로움 저편 또 다른 부드러움은 「아니마」를 연상시켰다. 두리 춤터에서 만났던 김수현은 동물적 본능과의 싸움을 「여자, 닫혀진 이름으로」에서 풀어나갔다. 파트너와의 불협화음 때문에 감정의 격류는 이음새가 필요했지만 독특한 개성이었다.
설무리 무대「새가 날아갈 때」에서 이숙현의 출연은 신선한 것이었다. 이숙현의 그 상처의 물음은 가능성 있는 신인 출현을 예고했다. 민준기 안무「대(竹)」(서울 무용제)에 출현했던 민향숙, 윤덕경 안무「매혹」에서 춤추었던 전혜정과 보현미, 김근리 안무「랑겔한스 섬 가문 날의 꿈」에 나왔던 김미경, 춤타래 무용단의 윤미라 등을 나는 주목하고 싶다.
현대무용단은 신인들의 세대교체가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워낙 신인들 벽이 두껍기 때문이다. 김은선은 박문숙 서울 무용단의 막내둥이, 그러나 「잃어버린 연적」에서 만만치 않은 패기를 과시했다. 컨템포러리 무용단의 박영수, 최두혁, 박은화 안무「푸른 언덕에서」에 출연했던 김성수, 세종대 최일규·정균국, 한양대 김남식 등은 앞으로의 예비 주역감들이다. 최병희·홍승엽·정운식·강송원·강경모들에서부터 세대 교체를 이루고 있다.
바탕골 신인 무대, 최경희(컨템포러리)는 「너와 나」에서 독특한 춤의 지분을 남겼다. 최경희는 90년대까지만 해도 2선에 머물러 있었다. 「꿈」에 이어「방」을 안무했던 부산 줌 무용단의 강미희, 신인 발표회 이후 「류(流)」등에서 급성장한 이운주, 「꽃잎 담은 화병」에서 농염한 춤(세 남자와의 갈등)으로 음지와 양지를 표현했던 김영미와 공간 무대 안무와 즉흥 시리즈에서 변옥연(「그 무엇」), 이정은(「맥」)은 신인들 중 선두주자들이었다. 특히 3인의 공동 안무 「錘」이후 이정은은「슈퍼스타」단역에서도 그의 역량을 입증했다.
이숙재 무용단의 에이스 최수균, 진영희의 뒤를 이어 동랑 댄스 앙상블 이은주는 「디스커스(대화)」에서 정운환과 (뱀이 허물을 벗듯 서로 탐하고, 떨어져 나갔다가 다시 접착되는 농염한 연속 스텝) 밀도 있는 인체실험을 보여주었다. 91년은 이들 신인들의 활약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