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극의 새로운 경향
이병훈 / 연출가
유럽연극의 새로운 경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전통을 이해해야만 된다. 왜냐하면 새롭다는 것은 '무'의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유산을 바탕으로 과거를 새롭게 바라보고 다시 발견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다양한 연극을 접하면서 느낀 것 중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것도 그러한 전통을 현대와 잘 어울리게 만들어 새로운 무대양식으로 보여준 공연들이었다. 그들은 고전작품들을 새롭게 해석, 그것을 현대적인 새로운 연극양식에 담아 무대에 자주 올린다. 사실 유럽의 유명한 연출가는 모두 고전연출가들이다. 영국의 브룩(Brook), 이태리의 스트렐러(Strehler), 독일의 스타인(Stein), 불란서의 비테(Vitez)등 …. 필자가 관람한 연극 가운데에서도 인상에 남는 것은 고전극들이었고 그 수 또한 많았다.
이태리 피콜로 극장에서 본 죠르지오 스트렐러(Giorgio Strehler) 연출·주연의 『Faust』, 이태리「떼아트로 스타빌레 디 제노바(Teatro Stabile di Genova)」극단이 독일의 대표적 연출가 페터 스타인(Peter Stein)을 초청해서 연출을 맡긴 셰익스피어의『Titus Andronicus(티투스 안드로니쿠스)』, 코메디 프랑세즈(Comédie-Francaise)에서 상연한 뮈세(Musset)의 『Lorenzaccio(로렌자치오)』와 스페인 연출가 루이스 빠스꾸알(Louis Pasqual)이 연출한 셰익스피어의 『뜻대로 하세요』와 벨기에 「테아트로 바리아 드 브뤼셀(Théâtre Varia de Bruxelles)」극단이 상연한 라신느(Racine)의『Britannicus(브리타니쿠스)』, 「La Tempéte(태풍)」극단이 현대복장으로 상연한『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상 드니(Saint Denis) 극장에서 상연한 세네카(Seneque)의 『Phedre(페드라)』, 스위스의 실험적 연출가인 마티아스랑 호프(Matthias Langhoff)가 연출한 『Macbeth(맥베드)』, 프랑스의 쟝피에르 벵상(Jean-Pierre Vincent)이 연출한 희랍 3부작 『Oedipe Tyran(폭군 외디프스)』·『Oedipe a Colone(콜론느에서의 외디프스)』와 아리스토파네스의 『Oiseaux(새들)』,「영화에서의 연극 페스티발」에서 영화로 본 앙트완느 비테스(Antoine Vitez) 연출의『Electra(엘렉트라)』 등….
그러면 이런 다양한 고전 작품들을 어떤 방법으로 무대에 형상화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스타인 연출의 『티투스 안드로니쿠스』는, 셰익스피어 최초의 비극으로 로마제정시대의 퇴폐적 궁정생활을 바탕으로 한,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복수극이다. 무대에서의 흔치않은 가혹한 행위-사람의 살을 파 먹이거나, 강간한 뒤 두 손목을 자르고 혀를 빼버리는-를 복수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내용상의 난점으로 인해 자주 상연되지 않은 작품이다. 스타인이 로마의 복수극이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로마와 현대가 한 무대에 교묘하게 공존하는 새로운 무대를 만들었다. 의상도 로마시대 의상을 단순화시켜 입혔으며, 병사들은 미식축구 선수나 전투경찰들처럼 스폰지가 든 상의와 헬멧을 쓰고 허리에는 기다란 곤봉을 찼다. 어떻게 보면 이 시대의 얘기가 아닌 먼 시대의 얘기 같고 어떻게 보면 신문 사회면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이 시대의 얘기 같기도 하고…….
손목과 발목을 실제로 자르거나-물론 의수·의족이지만-거꾸로 매달아 놓고 귀를 자르는가 하면 그 상태에서 머리를 막 흔들어 피를 짜내는 행위들을 관객 앞에 거침없이 해냄으로써 인간들이 잔혹한 행위를 얼마나 거리낌없이 해내고 있는가를 고발하고 있다. 이 연극의 무대공간은 차갑게 느껴지는 철근으로 만들어진 단순한 박스세트(box set)이지만 3면의 벽이 따로 따로 분리되면서 좌우로 또는 앞뒤로 이동하여 공간을 넓혀주거나 좁혀주어, 사실적인 장소를 설명하기보다는 공간의 변화를 통해 극의 상황을 체험케 한다. 공간 그 자체가 이미 연극의 언어로 작용하는 셈이다.
또한 벽 전체가 문으로 되어 있어 장면에 따라 한 개의 문 또는 3개 때로는 22개의 모든 문이 열려서 다양한 등·퇴장구로 사용되면서 무대는 다양한 공간으로 변한다. 뿐만 아니라 무대바닥이 뚫려 있어서 그 안으로 빠진다거나 이층의 문만 열려서 상하 무대가 되기도 하는, 상·하, 좌·우, 전·후의 모든 공간이 다 이용되는 입체공간의 무대였다. 또한 암전 동안에는 이 쇠문들을 소리내어 닫음으로써 이 작품의 소름끼치는 분위기를 청각적으로도 실현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음악, 연기, 조명, 의상, 배우들의 절제된 움직임 등 무대 위의 모든 것이 잘 계산된 정확함과 단순성 간단함을 바탕으로 하여 그러면서도 과감한 표현으로 강렬함을 보여준 공연으로, 극소수의 미학이 고전작품과 잘 결합된 좋은 예가 되었다.
죠르지오 스트렐러 연출·주연의 『파우스트』. 이태리의 피콜로 극장하면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스트렐러이다. 우리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유럽에서는 피터 브룩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장이다. 그의 연출의 특성은 대사, 움직임, 조명, 음향, 무대 등을 배우와 똑같이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이 『파우스트』공연에서도 그것이 잘 드러난다. 관객이 입장하면 거대한 빈 돌출무대에 스포트라이트가 켜져 있고, 본 무대는 닫혀있다. 극이 시작되면서 돌출무대의 바닥이 갈라지고 메피스토가 나체로 뜨거운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장면이 무대 위로 나타난다. 천사들은 멀리 본무대 위에서 합창한다. 이렇게 시작되어 무대바닥이 다시 닫히면 빈 무대에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가 악보대 위에 놓여진 대본을 서로 주고받으며 읽는다. 장면이 끝나면 다시 바닥이 갈라지면서 기구가 올라오고, 다시 내려가고, 그리고 닫히면서 빈 무대…. 그렇기 때문에 공간개념, 조명, 음향 등이 공연의 들러리가 아니라 전면에 나서게 되어 작품의 중요한 의미소로 작용한다. 있음과 없음, 비어있음과 충만함이 교차되면서 리듬을 만들어 내고, 파우스트의 영혼의 고뇌를 단순하고 간결하면서도 깊게 표현해 내고 있다. 단출한 표현의 예로서는 서재 장면이 바닥에 몇 권의 책을 흩뜨려 놓은 것으로 표현되었고, 교회 장면도 한 대의 조명으로 교회 창살을 비쳐 극장 전체가 교회로 바뀌어지는 효과를 얻어내었다. 최소치의 표현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어내는 경제적인 연출이랄까, 많은 부분을 관객의 상상력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동양화의 여백의 미를 느끼게 하는 공연이었다. 『로렌자치오』역시 단일 장치였다. 약간 기울어진 뒷벽과 오른쪽 무대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인간 형상의 조각품, 그 밑에 하체만 누워있는 형상의 조각품이 전부이다. 이 바닥의 조각품은 의자, 소파, 침대로 사용된다. 그러나 뒷벽에 달린 몇 개의 문이 열리고 닫히며, 조명의 변화에 따라 30여 가지에 이른 장면의 변화를 보여준다. 상황이 상승되는 장면에서는 문이 모두 열리면서 여러 문으로 동시에 많은 군중이 등장하여 광장의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문 하나만 열려 그 앞에서 독백 장면을 연출해내기도 하며, 공작의 망토 속이 털로 되어 있어 뒤집어서 바닥에 덮으면 그것이 바로 침실이 된다던가, 흰 나무판을 들고 서 있다가 바닥에 덮으면 그 행위는 또한 바로 관을 땅에 묻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된다든지 하여, 앞의 공연들처럼 단순하면서도 경제적인 표현으로 연극적인 재미와 다양하고 신속한 공간의 전환을 보여준다. 이상 간단히 살려본 공연의 예를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특징들을 발견해 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연극 공간의 창출에 힘을 쓰고 공간을 언어화시킨다는 점이다. 공간 체험이 언어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즉 공간 체험을 통해서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미지를 갖게 된다. 설명적이라기보다 암시적이랄까, 무대표현이 점점 단순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 단순함은 강력한 표현으로 나타난다. 또 빈 공간 개념이 구체적으로 많은 연극에서 보여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부분은 동양사람인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들의 새로운 연극이라는 것이 동양적인 예술표현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다. 단 70년대처럼 외형적으로 동양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정서를 상당히 잘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의 전통에 근거한 무대미학과 표현양식이 다각도로 연구되어야 할 중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