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문화 공간

도쿄 긴자(銀座) 하쿠힌칸(博品館劇場) 극장




이강렬 / 연극평론가

일본의 연극은 세계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도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며 활발한 창작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전통극에 대한 오랜 계승의 맥과 사실주의 계열 작품을 해 오는 연극 단체와 새롭고 다양한 실험극들이 함께 공존하면서도 독특한 일본적 향취를 잃지 않고 있다는데 특색이 있다.

한편으로 극단의 개성과 극장의 기획력이 잘 맞닥뜨려져 연극이 침체되지 않고 활발한 활동을 가능하게 해 주는 큰 작용이 된다. 특히 극장의 기능은 일본 공연예술계의 특징을 살려주고 관객을 모으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은 결국 다양성과 개성을 갖춘 기획력인데 첨단 산업사회 구조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개성의 관객들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는 결국 극장의 기획도 관객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극단들은 대체로 전통에 대한 강한 집착 때문에 매우 보수적이고, 새로움보다는 과거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극단의 전통에 관한 이 같은 아집은 신세대의 젊은 관객들에게는 즐거움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새로운 조류를 받아드리려는 노력은 관객들과 직접 맞닥뜨려서 상업성을 획득해야하는 극장의 주된 임무에서 아이디어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연륜이 얼마 되지 않은 새로운 극장의 출범은 단순히 극장 공간의 양적 증가가 아니라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기획이 함께 수반된 명실공히 살아있는 공간으로서 태동을 하게 된다.

이 같은 흐름은 오늘날 일본에 있는 많은 극장이 하고 있는 임무이면서 우수한 연극의 태동에 자극이 되어준다.

오늘날 일본 특히 도쿄(東京)에서 만도 100여 개의 크고 작은 극장들이 다양한 개성을 갖고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도쿄에서도 가장 번화한 상업 중심지 긴자(銀座)에 위치한 「하쿠힌칸(博品館)극장」은 연륜은 그리 오래지 않지만 기획력이 돋보이는 극장중의 하나이다.

긴자라면 일본의 전통 있는 백화점들이 즐비한 소비적인 이미지를 떠올릴지 몰라도 화랑이나 극장 등 문화적인 기반이 잘 가꾸어진 지역이다. 따라서 이곳은 도시의 다른 어떤 곳보다도 일본적인 향취가 문화적으로 융화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 4정목(4丁目) 사거리에서 신바시(新橋)쪽으로 약 500m 거리에 위치한 하쿠힌칸(博品館) 빌딩의 8층에 있는 400석 규모의 중극장이 바로 「하쿠힌칸 극장」이다. 이 건물의 1층에서 4층까지는 모두 아동완구 전문백화점으로 항상 어린아이들이 부모들의 손을 잡고 즐겨 찾는, 긴자에서도 인기 있는 건물중의 하나이다. 이 건물의 7층이 극장 사무실로 이곳에서 공연되어지는 모든 작품들은 기획하는 사령탑이기도 하다. (東京都 中央區 銀座 8丁目 8-11 銀座 博品館)

1978년 개관 당시부터 이 극장은 전문 기획자들이 오랜 시간 극장의 운영 전반에 관한 철저한 분석에 의해 계획이 수립되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즉 이 지역의 특수한 상황과 계층에 관한 심도 깊은 조사에 의거하여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작품을 기획해 나가는 일인데 입지조건 자체가 어린아이에서 노년층까지 워낙 다양해 처음에는 많은 애로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20대 중반이상 30, 40대를 중심관객으로 삼고 기획되어지며 이 점에서 상당히 성공한 극장이다.

그러나 주된 공연물은 연극이며 사실주의 연극에서부터 실험극까지 폭넓게 기획되고 있다. 기획되어지는 작품들은 처음부터 제작비 전체를 책임지고 작품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 일부 제작지원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대부분이 프로듀서 시스템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있다.

필요에 의해 대관을 하긴 하지만 이때 작품의 경향이나 수준을 면밀히 검토하여 극장 전체의 개성과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데 힘쓴다.

자체 제작과 대관 공연의 비율을 지난 해 90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총 공연된 작품 33편중 자체제작 17편, 대관공연 16편으로 반반의 비율이다.

내용별로 보면 뮤지컬과 연극이 20편이고 플라멩고 페스티벌을 포함한 무용이 6편, 샹송 콘서트 등 대중음악 리사이틀이 4편 그리고 개그 라이브와 전통극 『라쿠고(落語)』가 3편이 있다.

뮤지컬, 연극 20편 중 창작극과 번역극의 비율은 7 : 3으로 창작극이 70%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번역극은 진부한 사실주의류나 코미디 아류보다는 서구의 실험극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외국작품을 번역, 소개하는 차원을 떠나 번역한 작품을 다시 그 나라에서 공연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일본연극의 국제화를 꾀하는데도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영국 현대극을 일본어로 번역, 공연하고 다시 런던으로 건너가 런던의 실험적 화제작들의 발표장이 되고 있는 유명한 「로열티 극장」에서 상연하면서 이 작품의 또 다른 일본화 경향을 띤 실험극으로서 좋은 평을 얻기도 했다.

이 같은 독특한 아이디어도 이 극장의 기획팀에 의해 창출되어졌다.

지난 해 공연일수는 모두 312일이며 총 공연회수는 410회이다. 이 통계로 알 수 있듯이 공연장으로서의 가동율은 무대 연습일까지 포함한다면 거의 100%에 가깝다.

이처럼 1년을 각기 다른 작품으로 조화를 이루며 공연장을 가동시킬 수 있는 이면에는 극장 자체 내에 전날 공연기획자들이 하나의 팀을 이뤄 작품에서부터 홍보에 이르기까지 세분화된 전문적인 자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무대공연만 국한하여 상연한다면 공간이 일정한 이미지의 한계를 갖게 된다는 점에 유의하면서 자칫 먼 장르로 인식 되어오던 대중예술까지도 간간이 수용하는 탄력성을 유지하고 있는 점은 이 극장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와 유사한 일본의 극장들이 갖는 특수성이다.

즉 상업성을 목적에 두고 있더라도 그것 자체가 별로 눈에 띄지 않게 하면서 실리를 찾는 기획 방법이랄까. 일본의 극장은 이 점에서도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히쿠힌칸 극장」은 그 자체가 상업성을 기반에 둔 상가건물이라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오락성질은 코미디나 쇼 같은 것들로 채워 넣고 있지는 않다.

작품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제작비에도 많은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일본도 우리처럼 연극의 입장수입 자체가 극단이나 극장의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관객이 없는 극장은 그 자체가 존속의미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 극장의 입장료는 보통 5천엔(한화 약 3만원 정도)이며 몇 장의 초대장은 있지만 그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따라서 좌석 수는 곧 입장수입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으로 예약 시스템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당일 날 현장에서 티켓을 구입하여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이 때문에 극장은 많은 제작 지원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유지가 가능하다.

티켓은 전날 판매회사에 위탁하며 한편으로 자체서도 여러 매체를 동원하여 홍보에 신경을 쓴다.

극장은 현대식으로 여느 극장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내부시설이다. 그러나 구조적인 면에서 다른 극장과는 조금 다른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객석이 무대보다 낮고 평면적인 극장과는 달리 무대쪽의 객석보다 뒤쪽으로 갈수록 높아진 완만한 경사를 지닌 입체적인 객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처음 이 극장으로 들어서면 영화관 같은 느낌이 들면서 시계가 편안하다.

관객들은 이 극장에 들어서기 위해 1층에서 극장이 있는 8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게되지만 많은 사람들은 4층까지 진열되어 있는 각양각색의 완구들을 보는 즐거움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극장의 입구에 들어서면 40평 정도의 상당히 넓은 로비가 있으며 이곳에서 간단한 음식과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다.

극장 출입구는 모두 4개로 로비의 중앙을 기준으로 좌우 두 개와 각기 다른 면에 하나씩 있다.

객석은 좌석이 381석이지만 입석 14석이 유동식으로 마련될 수 있기에 총 395명의 수용이 가능하다. 무대는 가로 10.8m이며 세로 7.2m이며 높이가 4.5m이며 약 24평으로 되어있다.

분장실은 이 극장의 한 층 아래인 층에 마련되어 있으며 모두 5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다. 방이 이렇게 여러 개로 나뉘어져 있는 이유는 배역과 인물에 따라 각기 성격을 갖출 수 있도록 한 배려에서이다.

방은 No.1부터 2명이 사용할 수 있는 3.3평 규모와 No.2은 5명이 사용할 수 있는 3.5평 규모의 방이고 No.3은 6명이 사용할 수 있는 40평 규모이고 No.5A는 12명이 사용할 수 있는 15평의 방이며 No.5B는 13명이 사용할 수 있는 같은 크기이다. (No. 4는 없다)

이밖에도 별도로 욕실과 샤워룸이 각각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조명시설을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전원용량·304w 180KVA

부하회로·126(3Kw×102, 6Kw×24)

조광방식·전자 클로스바 60개×수동 5단

기재류·500w플레빌렌즈×44

500w평면볼록렌즈×20

1Kw 플레빌렌즈×20

1Kw 평면볼록렌즈×45

2Kw×20, 3Kw×8

750w 스포트×73

EQS Effect spot×12, 필림머쉰×4 그외 특수효과 조명기재 다수

영사설비·70㎜, 35㎜겸용 영사기설비.

음향설비·앰프 100Kw(8Ω)×8

600Kw(8Ω)×23

스피커 합계 28개.

녹음기 스테리오 2,

모노 2, 카세트 1,

그 외, 마이크, 와이

어레스 마이크, 음향

효과 기재 다수.

일본은 대소 어떤 극장에 가보아도 조명이나 기계설비가 잘 갖춰져 있다.

따라서 작품이나 연출자의 의도가 거의 충족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적인 측면에 많은 투자를 한다.

이 극장도 열거한 이외에도 다양하고 부족함이 없을 여러 기재들이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데 필요를 기다리고 있다.

연극에서도 배우나 희곡에 못지 않게 조명 등 극장 메커니즘을 이용한 연출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관객은 좋은 줄거리나 배우의 연기보다도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체험을 극장 공간에서 만끽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일본의 극장 기획자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로 83년에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둔 뮤지컬 『CATS』는 공연 자체보다는 신쥬구(新宿)의 공지에 만들어진 엄청난 시설의 가설극장에 대한 호기심이 더 크게 작용한 무대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관객을 실은 객석이 무대를 중심으로 회전이 가능한 시설을 했던 이 가설극장은 당시 전무후무한 엄청난 관객을 동원한 공연이었다.

새로운 것과 충격적인 것을 좋아하는 오늘날 일본인들의 사고가 맞닥뜨려져 성공한 기획이었다. 「하쿠힌칸 극장」도 쇼핑과 향락의 첨단을 걷는 긴자 거리에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조화와 갈등을 이겨내며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극장의 시설도 그것이 살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뛰어난 기획과 그에 수반된 좋은 작품밖에 없다. 이 극장도 이 같은 평범한 진리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하나의 작은 사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