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리뷰 / 전통

영등할머니와 영등하르방




황루시 / 관동대 교수

봄바람처럼 변덕스러운 것이 있을까. 금방이라도 졸음이 올 듯 등살에 햇볕이 따뜻하더라도 어느새 땅위의 모든 것을 쓸어갈 듯 불어대는 봄바람, 좌우로 종횡무진 거칠기 짝이 없고 가끔씩은 궂은 비를 동반하여 얇은 옷을 파고드는 봄바람은 뼛속까지 떨리게 만든다. 마치 고양이처럼 영원히 길들일 수 없는 봄바람, 우리는 옛날부터 이럼 봄바람을 일러 영등할머니라 불러 왔다.

영등할머니는 음력 2월 초하루에 세상에 내려와 보름 또는 20일게,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는다. 영등할머니가 딸을 데리고 오면 땅위에는 바람이 분다. 치맛자락이 바람에 나부껴 예쁘게 보이기 위함이다. 그러나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때는 으레 비가 온다고 한다. 며느리를 비를 맞고 초라하게 만들려는 할머니의 심술 때문이다.

영등할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바로 심보의 성격을 보여준다. 제멋대로이고 변덕스러우며 거칠기 짝이 없는 바람의 모습으로 영등할머니 곧 풍신(風神)이 설정된 것이다.

음역 2월은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비바람은 농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육지에서 영등할머니는 농사의 풍흉을 좌우하는 신으로 여긴다. 대개 중부지역 이남에서 영등신앙이 강한데 2월 초하룻날이나 영등할머니가 올라가는 날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들고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믿는 습속이 있다. 영등신이 머무는 기간 중에는 논밭을 갈지 않고 물건을 사고 팔지 않는 등 많은 금기가 따르며 각 가정에서는 부엌이나 장독대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하면서 풍농도 기원한다.

현재 육지의 영등신앙은 개인적인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거의 사라진 형편이다.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주로 바다에서 물질하는 잠녀(해녀를 말한다)들이 믿는 집단신앙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 육지와 상당히 다른 면을 보여준다. 기본 성격이 바람이고 한 때 잠시 왔다가 돌아가는 신이라는 속성은 육지와 동일하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신을 설정하였다.

제주도의 무가「영등보풀이」에 의하면 영등은 원천군의 유대감댁 머슴이라고 한다. 영등이 죽은 후 유대감이 가엾이 여겨 제사를 지내주자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원천군에 풍년이 들도록 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원천군 사람들은 영등의 혼을 신으로 모시고 2월에 굿을 하여 덕을 빌었다. 영등하르방 또는 영등대왕으로 불리는 이 신은 농사의 풍년과 해산물의 수확을 도와준다고 믿는다.

영등하르방은 정월 말일에 서쪽 소섬(牛島)으로 들어와서 하루를 묵고 2월 초하룻날 한림의 수원당으로 들어와 제를 받은 후 보름에 다시 성산, 소섬을 거쳐 연평으로 빠져나간다고 생각된다. 수원당에서 행하던 영등하르방을 환영하는 굿은 현재 소멸되었고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는 것은 13일부터 보름사이에 행해지는 송별굿이다.

소섬을 비롯하여, 성산, 신양 그리고 제주시 건입동 찰머리당에서는 해마다 2월이면 제주도의 여인들이 힘을 모아 바다의 해산물이 잘되고 풍요한 삶을 기원하기 위해 영등굿을 한다.

제주도의 영등은 농신의 성격이 약하고 소라 전복은 그 밭에서 생산되는 수확물로 여겨지는 바로 이점이 본래 농신인 영등을 그네들의 신으로 모시게 한 이유가 되었을 법하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영등굿이 벌어지는 동안에 배타는 것을 금했다는 구절이 보이는데 이는 기후와도 관련될 수 있다. 그 시기에 특별히 풍랑이 많이 일어 위험하다면 이러한 종교적 금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등하르방이 바다의 고막을 까먹으면서 오기 때문에 2월 보름께면 속이 다 빈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그때쯤이면 해산물의 속이 빈다고 하니 영등굿을 통해 생식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믿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제주도의 영등굿은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과 자연환경 그리고 공동작업을 하는 잠녀들의 생활조건이 결합하여 형성된 제의라고 하겠다.

전생에 죄가 많아 쉐(소)로도 태어나지 못한 존재가 제주여자라고 한다. 그만큼 제주여자들의 삶은 고달프고 과중한 노동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중 잠녀들의 죄가 가장 컷을 법하다.

집안 살림하랴, 아이 키우랴, 조밭의 검질 매랴 그리고 사시사철 파도만 크게 일지 않으면 퍼렇게 몸이 얼 때까지 깊은 바다에 들어 물질하는 잠녀들. 가쁜 숨을 참고 열길 넘는 물 속 깊이 자맥질해서 전복이며 소라 떡조개를 따는 잠녀들의 삶은 고생의 연속일 뿐 아니라 칠성판을 지고 다니는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고난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온 삶의 현실엔 흔히 굿이 함께 있는데 영등굿은 바로 그중 하나인 것이다.

해마다 2월 14일이 벌어지는 제주시 칠머리당굿은 영등송신제로서 지난 80주년 주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칠머리당을 모시는 마을은 건입동과 용달동인데 굿의 주축은 물론 잠녀들이다. 영등굿이 가까워지면 하루를 떼어 공동작업을 하고 그 날의 수입으로 굿 비용을 마련한다. 이른 아침 잠녀들은 전날 탈의장에 모여서 정성껏 장만한 제물로 굿당을 채워간다. 요왕(용왕)상, 서낭상, 대령상, 공시상, 본소상을 차례로 진설한 뒤 각자 자기네 집 조상상을 놓아 정성을 드린다.

굿당 뒤쪽에는 병풍이 놓이고 창호지를 모양 있게 오린 살장과 발지전이 살짝 드리운 가운데 사해용왕신위·용왕대신신위·용왕부인신위·용왕서낭신위·영등대왕신위·영등부인신위·용왕사자신위·작본향신위가 모셔져 있다. 칠머리당의 당매인 심방(당골무당)은 소위 인간문화재인 안사인씨였는데 지난해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영등굿은 하늘과 땅이 개벽하여 우리나라가 생기고 차츰차츰 내려와 제주 섬이 인간의 터전이 된 역사를 구술하는 초감제로 시작된다. 이에 정성 올리는 사람들의 이름을 신에게 고한 뒤 신이 굿판에 강림하실 수 있도록 문을 여는 굿을 한다. 격렬한 춤으로 일만팔천 제주의 신들을 모두 굿당 안에 불러들이는 것이다.

영등굿에서 가장 중시하는 재차는 역시 요왕말이 굿이다.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이 잠녀들의 현실적 이해와 깊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먼저 바다에서부터 육지의 제장에 이르도록 요왕길을 만들다. 요왕길에 여기저기 나 있는 해초를 신칼로 베고 돌멩이를 치워 요왕님이 오실 수 있도록 길을 고른다. 길이 깨끗해지면 바닥에 미역 한 필로 요와다리를 깔고 요왕문을 만든다. 대나무를 반원으로 구부려 여덟 개의 문을 세우는데 심방은 축원으로 하나 하나의 문을 모두 열어간다.

드디어 문이 다 열려 물의 요왕과 뭍의 잠녀들이 만나면 심방은 흥겨운 닻 갈기 소리로 굿판을 끌어간다. 「서우젯소리」라고 하는 노래에 맞추어 심방과 잠녀들이 한데 얼려 춤추고 노는 것으로 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이제 굿은 거의 끝나가고 영등하르방을 송별하는 시간이다. 심방과 잠녀들은 배를 타고 나가 평소 물질하는 장소에 이르면 바다에 좁쌀을 뿌리면서 씨 드림을 한다.

좁씨 드렴수다 메역씨 드렴수다

고동씨 드렴수다 하영(많이) 엽소

우리 잠녀를 살게만 하여줍소

비록 뿌리는 것은 좁씨이나 이는 바다라는 거대한 밭에 뿌리는 온갖 해산물의 씨앗인 것이다. 먼바다까지 나아가 대표로 만든 모형 배에 제물을 싣고 띄어보내는 것으로 객귀를 물리면 굿은 모두 끝난다.

바람의 신 영등에 대한 신앙은 이처럼 육지와 섬에서 순조롭게 자연을 조절하여 풍요로움을 누리려는 기원으로 전승되어 왔다. 그러나 육지의 영등할머니 신앙이 개인적인 차원으로 떨어지고 그나마 영농기술의 발달로 사라지는 반면 제주도의 영등하르방은 아직까지 해마다 굿을 받고 있다. 이는 항상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는 제주도 잠녀들의 절실한 삶을 반영하는 동시에 공동작업에 길러진 공동체의식, 그리고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한 결과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