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음악과 함께 출발한 개량악기 논의
윤중강 / 음악평론가
한국음악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전통음악이요, 다른 하나는 창작음악이다. 전자는 한국음악이 시작된 태동기로부터 금세기 초반, 일제강점기까지의 음악들을 두루 아우르는 용어로 쓰인다. 전통음악에는 작고개념이란 존재치 않거나 중요치 않았으며, 주로 연주행위 자체를 통해 음악의 생산·수용관계가 그대로 이루어졌다. 후자는 해방공간 이후의 음악들을 말한다. 완성된 실체라 할 전통음악에 반하여, 창작음악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에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아울러 창작음악이 시작되면서 이전시대에는 없었던 작곡가가 등장하였으며, 이제 음악의 생산은 국악적인 음악성과 서구적인 작곡법을 겸비한 작곡가들이 주도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의 악기개량이란 창작음악에만 국한된 것이다. 왜냐하면 전통음악은 예로부터 전래된 국악기로 충분히 표현이 가능한 것이었고, 오히려 어떤 다른 악기로는 독특한 표현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전 시기에도 악기개량이 있었으나, 본 논의에는 포함시키지 않고자 하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악에 관련된 사람들은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이러한 새로운 음악에 대한 욕구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표출된다. 하나는 음악 내적인 변화, 곧 선율이나 리듬을 바꿔보려는 '악보'를 통한 노력이요, 다른 하나는 음악 외적인 변화, 곧 음악을 담는 그릇이라 할 '악기'를 바꿈으로써 음색이나 연주법 등을 새롭게 해보려는 노력이다.
전통사회의 해체기로부터 일제 강점기에 거쳐서도 악기개량은 계속되었던 바, 주요한 것은 가야금과 아쟁의 개량이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산조음악이 출현하면서 가야금이란 악기도 바뀐다. 예전의 악기자체가 크며 줄 사이의 간격이 넓은 풍류가야금에서, 재래악기보다는 악기 크기가 작아 비교적 운반이 간편하고 줄 사이의 간격이 좁아 빠른 기교가 특징적이라 할 산조가야금이 새롭게 고안된 것이다.
일제강점기때의 신무용 공연현장에서였다. 당시 민속악 연주자였던 박성옥은 최승희의 무용반주를 위해 기존의 아쟁(정악아쟁)을 개량하여 민속음악 연중에 편리한 아쟁을 만들었다. 이후에 개량된 아쟁으로 산조가락까지 연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이 악기를 산조아쟁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일제강점기에도 분명 악기개량은 이루어졌고, 이 때 개량된 악기가 마치 오래된 악기처럼 지금의 연주자들에게 전혀 거부감 없이 수용되어 왔다. 반면에 창작음악의 시대에 개량된 악기는 지금 현재 상황으로는 연주자들에게 거의 외면되고 있는 형편이다.
개량악기를 보는 두 개의 시각
개량악기가 창작음악에 수요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 이론가나 작곡가, 연주가들의 분석은 서로 다르다.
악기개량에 참여한 이론가나 작곡가는 새로 만들어진 악기가 활발히 보급되지 못하는 원인을 연주가들이 전통음악에만 안주하려는 성향 때문이라고 치부한다. 그들의 주자에 따른다면 연주자들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음악연마에만 정열을 쏟기 때문에, 새로운 연주기교나 새로운 악기의 소화능력은 상실되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개량악기를 보는 연주자들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개량악기가 '개량(改良)'의 역할, 곧 음색·음량 등을 좋게 바꾸는 역할을 전혀 못했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기존의 연주법이나 악기마다의 특성이 훼손된 개악이 더욱 많다는 지적이다.
악기개량
창작음악의 시작과 더불어 악기개량에 관한 논의와 개량악기 제작은 계속되어왔다.
이 가운데서 비중 있는 국악기 개량사업을 들면, 1960년대에 국악기 개량연구위원회가 발족(1964. 12. 5) 되어 악기 개량을 추진한 결과 1980년대에 국립국악원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공동 주최하여 국악기 개량위원회를 발족(1985.9.13)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뒤의 사업은 5년간(1985∼1989) 지속된 사업으로서 그 성과는 국악기 개량위원화의 이름으로 나온 「국악기 개량 종합보고서」를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앞의 두 경우를 중심으로 살펴볼 때, 악기개량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 작업이었으며, 그 의도만을 따져본다면 어떤 하자도 발견되지 않는다.
첫째, 음역(音域)을 확대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전통음악보다 상대적으로 넓은 음역을 낼 수 있는 악기를 개발하려는 시도는 중음역 중심의 전래 악기에 저음부나 고음부를 보강하려는 작업이었다.
음역을 넓히는 방법은 하나의 악기만을 가지고 음역을 넓히는 방법과 같은 종류의 악기를 각각 고음, 중음, 저음 악기로 나누어 제작하는 경우로 나뉘었다. 전자는 가야금의 예로써 현악기의 현(絃)수를 기존의 악기보다 늘림으로써 악기의 음역을 확대하는 경우이다. 후자는 관악기의 개량에 많았는데, 한 대의 태평소를 개량하여 고음태평소, 중음태평소, 저음태평소의 세 가지로 개량한 예를 들 수 있다.
둘째, 음량(音量)을 증대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우리의 전통악기 가운데는 타악기와 관악기의 몇 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내에서 연주하기에 적합하도록 만든 방중악(房中樂)악기이며, 따라서 큰 소리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았고, 때로는 음량이 큰 악기는 천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전통악기와 전통음악이 근대악의 넓은 극장에 수용되면서 보다 큰 음향은 필수 불가결하게 되었다. 따라서 기존 악기의 공명통의 크기를 늘려본다거나 악기본체의 재료나 현의 재료를 음량이 커질 수 있는 재료로 대치해 보려는 시도가 계속되었다.
셋째, 현대적, 서구적 연주법을 가능하게 하는 개량이다.
5음계 연주가 쉽게 만들어진 국악기를 7음계를 포함한 12반음(전통음악에서는 이를 12율이라고 한다. 전통음악에서도 음 체계의 이론상으로는 서양음악과 유사한 12음 체계가 존재했다)의 연주가 가능하도록 개량하는 방법이었다.
이 경우에는 관악기의 지공(指孔)사이 간격과 악기구명의 수효를 바꾼다거나, 관악기에다가 밸브를 달아서 반음 음정내기나 이조(移調)를 비교적 쉽게 해보려는 작업들이었다. 현악기(가야금)의 경우는 기존 악기가 5음계 중심으로 조율된 것을 7음계로 다시 안족을 옮겨보는 방법을 택했다.
이러한 악기개량은 그 '명분'으로 볼 때는 매우 긍정적인 것이었으나, 그것이 실제로 악기연주에 그대로 효과적으로 반영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전통악기보다 큰 음량을 내려고 바꿔본 개량악기가 재질(材質)에서는 전통악기(한국악기)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음색(音色)을 되살려 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아울러 새로운 7음 내지 12음 체계로 변화된 개량악기는 평균율(전통음악의 음정은 평균율이 아니다. 궁정음악계통의 음악은 순정율계가 많고, 민속음악의 경우 지역마다 음과 음 사이의 거리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의 연주를 전제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악기만이 갖는 우수한 농현법, 즉 요성(搖聲), 퇴성( 退聲), 추성(推聲) 등의 시김대(장식음)처리가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적잖았나 보여진다.
따라서 악기 개량은 좋게 만드는 개량(改良)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개악(改惡)이라는 비난의 여론이 드세었던 과거가 있다.
개량에 성공한 현악기들
거의 한 세대에 걸쳐 계속된 개량악기가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관악기·타악기·현악기 셋으로 개량악기를 나눠 살펴본다면, 관악기나 타악기 계통의 개량악기가 성과가 적은데 반해 개량된 현악기는 이제 조금씩 대중화되고 있는 추세에 놓여있다 하겠다.
1. 개량된 가야금
개량악기 중에서 현재 가장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는 악기라면 21현금을 들 수 있겠다.
이 악기는 1대의 악기를 통해 기존의 정악이나 산조 등을 모두 연주할 수 있고, 아울러 음역이 확대됨으로써 서양 음악적인 선율(오른손)과 화성(왼손)을 동시에 연주할 수 있도록 고안된 악기였다. 21현금이 첫 선을 보인 것은 지난 85년이었으며, 이후 21줄 가야금을 위한 창작곡이 양산됨으로써, 악기의 보급이나 연주곡의 확산 등에서 개량악기로는 좋은 선례를 보인 셈이다.
21현금을 고안하고 처음으로 작품을 만든 이는 이성천이며, 이후 17현금과 18현금이 각각 박일훈과 황병주에 의해 고안되었다. 이 악기들은 기존의 12줄 가야금과 21현금의 장점을 두루 수용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악기이며, 이 악기들을 위한 창작곡도 적잖게 발표되었다.
이성천은 기존의 여섯 줄만 가지고 음 체계를 달리해보는 개현(改絃) 작업을 시도한 바 있다. 그는 유현과 대현사이에 현을 하나 첨가시켜 이를 중현(中絃)이라 이름했고, 이 악기는 대신 괘상청이 없어지고 쾌하청이 청현이 된 셈이다.
이재화도 거문고를 개량하였는데, 특별히 줄 하나를 더 늘린 7현 거문고(화현금)를 제작하였다. 이 악기는 거문고에서 중심적으로 쓰이는 유현과 대현 사이에 화현(和絃)이라는 새 줄을 첨가한 것이 특색이다. 앞의 개량 거문고나 위의 화현금이나, 모두 줄을 2줄(기존의 거문고의 경우는 2줄이다)로 늘림으로써 그만큼 악기의 어법이 다양해지고, 결과적으로 보다 빠른 기교를 요하는 음악을 연주하기에 쉬운 거문고가 된 것이다.
2. 복원된 비파류
현악기의 개량에서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은 향비파, 당비파, 원금 등 비파류 악기들의 개량이다. 이 악기들은 엄밀한 의미로 따져 본다면 '개량'이라기보다는 '복원'이라는 용어가 적합할 듯싶다. 비파류 계통의 악기는 1930년대까지만 하여도 정악에서 사용됐으나, 이후 궁정계통 음악인들의 안이한 연주태도와 현대음악사의 파행과정의 여파로 슬그머니 기존의 악기편성에서 빠졌던 과거가 있다.
따라서 향비파, 당비파, 월금 등의 악기복원은 어떤 개량악기 작업보다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비파류 악기는 아직까지는 여러면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그 동안 우리 음악계에서는 비파류 전공자가 없었음으로 아직까지는 비파연주자의 연주력이 수준급(동아시아의 비파계통 연주와 비교해서)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둘째 현재 복원된 비파가 이 악기만의 독특한 음색이나, 연주법상의 특징을 전혀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비파의 현(絃)을 바꿔 본다거나, 현대 작곡가가 참여하여 한국비파만의 독특한 연주법이 개발된다면, 비파는 분명 잃었던 제 소리를 찾고, 현대국악과 관현악에서 큰 몫을 하리라고 생각된다. (중국민족의 현대 관현악곡에서 비파는 마치 서양음악의 관현악에서 바이올린처럼 중요한 선율을 담당하며, 많은 비파협주곡이 있다)
개량악기의 수용방법
많은 우수한 개량악기들이 널리 연주되기 위해서는 첫째 국악관현악 단체에서 개량악기를 적극 수용하여야 하며, 둘째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개량악기를 가르쳐야 한다. 이와 같은 두 가지 방법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개량악기에 대한 지금까지의 노력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개량악기는 분명 창작음악의 필요성에 의해 생겨난 악기이기에, 현재 창작음악을 대표하고 있는 관현악단들은 개량악기를 적극 수용해야 할 책임이 있다. 개량악기가 국악관현악에 함께 편성됨으로써 국악관현악단은 음색, 음량, 연주법에 있어 지금보다 훨씬 다채로워 질 수가 있는 이점이 있다. 현재의 국악관현악에서 사용하는 악기의 수는 서양음악의 그것에 비해 적은 것이 사실이고, 또한 같은 악기군(群)들이 서로 동일한 선율만을 연주하게 되는 현 상황에서 볼 때, 개량악기가 첨가되어 음역 음색이 다채로워 진다면 국악관현악도 오케스트라의 2관 편성, 4관 편성 등과 같은 보다 발달된 악기편성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국악관현악단이 개량악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아울러 개량악기를 위한 위촉곡을 많이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개량악기를 대학에서 가르칠 필요가 있다. 개량악기의 전공은 시기상조라 하더라도 최소한 부전공으로 개량악기를 교육할 필요가 있다. 현행 대학의 커리큘럼에서는 대개 거문고, 가야금, 대금, 해금, 피리 등의 완성 악기를 전공으로 가르치며 양금이나 아쟁은 전공이 없는 대학이 많다. 그러나, 이 두 악기의 경우 관현악 연주에는 필수적이므로 대개 현악연주자들이 부전공이나 개인적으로 배우게 된다. 마찬가지로 개량악기 전공은 개설하지 못한다하더라도 국악관현악단의 편성에서는 빠지지 않는다면, 대학에서 부전공으로 배워보려는 학생이 분명 있을 것이다.
국악관현악단과 대학의 국악과에서 개량악기에 대해 보다 '열린 마음'을 갖지 않는 이상, 저간의 개량악기에 대한 작업들이 실효를 거둘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아시아권의 악기개량
아시아 음악권에서 민족악기를 중심으로 한 관현악단을 둔 나라는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중국, 대만, 홍콩, 그리고 북한 등 3개 민족의 6개 지역이다. 한국을 제외한 이 지역의 민족음악 관현악단은 일찍부터 나름대로 악기 개량을 시도했고, 개량악기를 관현악곡에 적극적으로 수용해왔다.
한국은 민족의 전통음악에 관한 한 가장 잘 보존된 지역임은 부인할 수 없으나, 창작음악과 관련해서는 연주력이 가장 뒤떨어지는 지역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른 지역의 음악들은 일찍부터 개량악기를 수용하였고, 새로운 연주법을 고안하는데 힘썼음에 반하여, 한국은 너무 전통성-어떤 의미로 보면 복고성에만 연연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아시아 다른 지역의 개량악기가 어떻게 창작음악에 수용되었는가 하는 선례와 개량악기의 특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한민족의 단일한 국악관현악단을 위하여
개량악기에 대한 논의가 있을 때마다 주장하고 싶은 것의 하나가 북한악기를 수용하자는 입장이다.
북한의 음악도 긴 역사의 흐름속에서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음악이라면, 그들의 개량악기도 분명 우리의 악기로 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 때 우리는 음악 외적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북한의 음악을 폄하시킨 일이 있었다.
북한의 악기개량이 민족음악을 '변조', '변질', '왜곡' 시키는 처사라고 비난했지만, 우리고 결국 악기개량을 해야한다는 목소리는 은연중 지속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때론 우리가 개량한 악기중의 일부는-북한 악기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제작하더라도-북한의 악기와 비슷한 것도 있기도 했다.
남한이 전통음악에서 전통성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처지에 있다고 볼 때, 이제는 창작음악을 위해 북한의 개량악기를 조심스레 수입해보는 것도 우리 음악사의 변화 발전과 단일민족의 화합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
남북한 악기는 실제로 협주했을 때 전혀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음색이나 연주법이 더욱 다양해질 수 있는 것을 필자는 지난해 12월 「송년통일전통음악제」의 마지막 곡인「우리의 소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공연에 앞서 남북의 연주자들은 단지 함께 부를 노래곡조만을 약속하고 연주에 임했을 뿐이다. 그러나 남북한 악기의 어울림은 훌륭했다. 전통을 고수한 남쪽에 재래 악기와 전통악기를 모두 바꾼 북쪽의 개량악기는 조화롭게 어울렸던 것이다.
남쪽의 전통악기가 자연스러움을 소중히 여겨 악기자체 재료의 음색을 그대로 강조하였다면 북한의 개량악기는 공명된 소리를 중시하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따라서 북한의 악기는 음색이 화려하나 오래들으면 피곤해지기 쉬운 면이 있고, 남쪽의 악기는 질박한 음색이어서 선뜻 호감이 가지 않는 단점이 있다.
보다 대승적인 입장에서 북한의 악기와 음악을 수용한다면 앞으로 남한은 개량악기 개발에 있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의 악기가 함께 편성된 국악관현악이 탄생된다면 각각의 악기들의 단점은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게 되는 반면, 장점은 최대한 살리는 민족 화합의 악단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