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음악

국악기 개량의 실태와 문제점




진회숙 / 음악평론가

인간의 모든 활동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하늘아래 불변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그에 맞는 옷을 갈아입는데, 이것이 인간사의 순리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호가 항상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변화를 원치 않는 저항세력이 나타나 순조로운 변화를 방해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변화를 원하지 않는 성향을 우리는 보수성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제까지 우리는 보수성이라는 말을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보수적인 성향은 급진적인 성향과 더불어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을 이루는 두 개의 중요한 축이다. 만약 어떤 사회가 급진주의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그 사회는 끊임없는 혁명과 반란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보수주의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그 사회는 영원히 침체와 안일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이다. 음악의 역사란 한 마디로 기존의 음악과 새로운 음악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과 양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동안 저항을 계속하던 기존의 음악은 결국 새로운 음악의 자리를 내주고 말며, 그 음악 또한 다른 음악의 도전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음악의 변화는 그 시대의 역사, 사회, 정치, 경제에 있어서의 변화를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오늘날 국악기 개량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역사적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악기의 개량은 처음부터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한 어떤 인위적인 사업이나 계획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것은 음악이 그 시대의 흐름을 수용하는 과정속에서 생긴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악기개량은 음악의 변화에 따른 음악 자체의 내부적인 필요에 의해 결과되는 것이지 악기개량을 위해서 음악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국악기 개량이라는 반대의 수순을 밟으려고 하는 것은 전통음악이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나 그 자체의 독자적 영역 속에 갇혀 있어서 그 내부에서 자발적인 개발의 동기를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악기 개량에 관한 논의는 60년대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구체적인 결실을 보게된 것은 1985년, 국립국악원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공동으로 국악기 개량사업계획을 수립하고 난 후부터이다. 이때 국립국악원에 국악기 개량위원회가 발족되었으며, 이 위원회가 향후 5년간 국악기 개량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지난 5년간의 국악기 개량위원회의 활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앞으로의 국악기 개량이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추진되어야 할 것인가를 모색하기 위한 『국악기 개량 방향정립을 위한 심포지엄』이 1985년 12월 문예진흥원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한만영의「국악기 개량의 기본방향」, 장사훈의「국악기 개량의 실제와 문제점」, 박동욱의 「타악기 개량의 방향과 가능성」, 박홍수의 「국악기 현대화와 국악음계」 등이 발표되었다.

이 후 국악기 개량위원회는 기초 학술반과 악기 제작반을 두고 구체적인 악기개량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기초 학술반에서는 악기 제작에 관련된 과학적인 문제를 연구했는데, 권오성의 「국악기 개량을 위한 12율의 음정치 연구」, 김용국의「국악기 연주음에 대한 음계진동수의 스펙트럼 분석에 관한 연구」, 안수길의 「개량 태평소와 기존 태평소의 스펙트럼 분석에 관한 연구」등이 그것이다.

악기 제작반은 실제 악기를 제작하는 일을 맡았는데, 그 동안 추진된 악기제작 현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태평소는 기존의 것에 키(KEY)를 부착하여 반음 연주를 가능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을 저음용, 중음용, 고음용의 세 종류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개량 태평소는 예상했던 것만큼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실제로 악기를 연주해 보니 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고 음정이 불안했으며, 당초에 의도한 반음의 연주도 곤란했기 때문이다.

음높이가 없이 단지 한 음만을 내는 나각은 중음용, 저음용의 두 종류로 제작되었는데, 구하기 힘든 자연생 소라대신에 합성수지를 사용해서 제작했다. 중음용은 취구에 마우스 피스를, 저음용은 둥근 플라스틱판을 부착해 이것을 입에 대고 불도록 하였다. 실제로 불어보니 불기에도 편하고 소리도 좋아서 나각의 개량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발은 네 종류로 만들었다. 서양의 알프스 혼처럼 길이가 아주 긴 나발과, 각기 다른 세 개의 음역을 연주할 수 있는 세단나발, 발브가 부착된 저음용 나발과 발브가 없는 저음용 나발이 바로 그것이다. 네 종류의 나발에는 모두 마우스 피스를 꼽도록 하였다. 그러나 길이가 긴 나발은 행진할 때 들고 다니기 힘들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고 세단나발은 음역이 바뀔 때마다 단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세 개의 음역을 동시에 연주할 수 없다는 단점이 지적되었다.

향비파, 당비파, 월금 등은 이 악기들이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악기 개량이라기보다는 악기복원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향비파는 1930년대 이후에 사용하지 않는 악기인데, 현의 굵기를 4가닥에서 6가닥으로 조정하였고, 개방현의 음높이도 조정하고, 쾌의 수와 간격도 조정하였다. 당비파는 쾌의 수와 간격만 향비파와 다르고 나머지 것은 모두 향비파와 같은 체제로 만들었다. 월금은 제작 재료, 현의 굵기, 개방현의 음높이 등은 모두 향·당비파와 동일하고 괘수와 간격만 조절하였다. 이 악기의 줄은 모두 거문고, 가야금과 같이 명주실로 만들었는데, 시연 결과 같은 명주실임에도 불구하고 가야금, 거문고와는 다른 음색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따라서 이 악기들은 앞으로 국악에 새로운 음색을 첨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악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음량이 너무 작은 점인데, 이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연구와 보완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해금의 개량은 음량을 증대시키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음량의 증대를 위하여 공명통과 자루를 장미목으로 만들고 공명통의 내면을 나발모양으로 만들었으며, 공명통이 몸에 직접 닿지 않도록 받침대를 만들었다. 또한 저음을 담당하는 저음용 해금도 함께 개발했는데, 이것은 앞의 것과 체제는 같고 크기만 크게 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연주해 본 결과 소리는 커졌으나 재질이 바뀜에 따라 기존 해금과는 다른 소리가 난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금은 원래 14줄이었던 것을 24줄로 증대시켰으며, 통을 크게 하여 음량과 음역을 넓혔다. 개량 양금은 높은 음역의 줄은 외줄을 쓰고 낮은 음역의 줄은 합선으로 하였는데, 따라서 음역간의 음색의 차이가 문제점으로 남아 있다.

용고, 좌고, 무고, 대고 들의 북 종류들은 모두 가죽에 대한 온도, 습도, 광선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음정조절을 위하여 통 속에 가죽을 신축할 수 있는 철제 조리개를 부착시키고 외부에서 이 조리개를 조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타악기들은 가장 성공적인 악기개량의 예에 속한다.

운라는 기존 10음에 17음, 25음으로 늘리고 행진하면서 연주할 수 있도록 틀의 재료를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바꾸고 받침띠를 만들었다. 이것 역시 효용성이 높은 악기로 평가되고 있다.

이상이 국립국악원이 85년부터 89년까지 5년 동안 추진한 악기개량사업의 요지이다. 이 사업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이번에 개량된 악기 중에 전통음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거문고, 가야금, 향피리, 대금 등과 같은 악기가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각, 나발, 태평소 등은 취타 계통의 음악을 제외하면 전통음악에 잘 편성되지 않는 악기이며, 월금, 향비파, 당비파 역시 현재는 연주되지 않는 악기이다. 그렇다면 가장 많이 쓰이는 악기 중에는 해금만이 유일하게 개량악기가 되는데, 이 또한 직접 전통음악에 가져다 쓰기에는 음질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이번에 추진된 악기개량은 전통음악의 모습을 크게 바꾸지는 못했다.

이렇게 새로 개량된 악기들이 전통음악에 쉽사리 적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우선은 음질상의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번에 개량된 해금의 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재질을 바꾸고 크기를 바꾸고 나니 음질마저도 바뀌어 버린 것이다. 본래 악기라는 것은 같은 재질로 만들어도 여러 가지 미묘한 차이에 의해 다른 소리가 나게 마련이다. 따라서 전혀 다른 재질로 악기를 만들었을 경우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소리가 커지긴 했으나 가느다란 명주실과 같은 소리의 섬세함이나 나긋나긋함이 부족해져서 전통음악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악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전통악기 본래의 음향적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그 표현력을 더욱 증대시킨 개량악기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적인 측면에서 이것은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음향을 고수하느냐 아니면 새로운 음향의 가능성을 위해 이것을 과감히 포기하느냐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일종의 타협안(?)이 제시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기존의 국악기는 전통음악의 연주에 사용하고, 개량악기는 창작국악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통음악과 창작국악을 전혀 다른 카테고리에 두는 이분법적 사고로서, 창작국악을 전통음악의 역사적 연결 고리로 보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창작국악이라는 용어 자체가 무의미해 지고 말 것이다. 창작국악 혹은 신국악이라는 말은 스스로 단어의 끝에 '국악'이라는 접미어를 붙임으로써 자신의 음악적 방향성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전통의 계승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국악기와 개량악기를 분리시켜 사용하는 방법은 전통음악의 역사적 지속성을 단절시키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전통적인 음향의 보존과 새로운 가능성의 모색이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할 수밖에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앞에서 이미 얘기했듯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악기 개량이 음악 자체의 내부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이란 본래 그것을 연주하는 악기와 변증법적인 관계에 있다. 어느 것이 선후라고 할 수 없이 반복되는 이 음악과 악기간의 영원한 대화는 끊임없이 서로에게 자기수정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미 그 자체의 자발적인 발전동기를 잃어버린 국악은 음악적으로 악기에게 자기수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악기 개량에 대한 요구는 주로 외부적인 동기, 그 중에서도 특히 현재 우리의 음악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서양 음악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 대부분이다.

출발의 동기가 이러했기 때문에 우리의 악기개량은 소리를 크게 하고, 음역을 넓히고, 가능하면 한 옥타브 내의 12개 반음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악기를 만들자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러한 기준에 따라 악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애초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서양 음악적인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 악기는 전통음악의 음악적 요구를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없는 악기가 되었으며, 음색이나 연주방법에 있어서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는 전통음악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특성과 개량악기의 음향적 기능이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보다 원론적인 문제로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무엇 때문에 국악기를 개량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시대가 바뀌었으나 음악도 바뀌어야 하고 따라서 악기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국악기 개량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한 아주 기초적인 명분에 불과하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상의 문제는 그 기준을 어디에다 두느냐에 따라 아주 현저한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우리 악기가 시대에 맞지 않고 낙후되어 있다고 하는 의식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 음량이 작고, 음역이 좁으며, 12개의 반음을 자유롭게 내지 못하기 때문에 낙후되어 있다고 하는 의식은 이상적인 악기의 모델로서 서양악기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나온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 악기가 이와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 음악이 그 특성상 이런 종류의 악기를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음악적으로 이조나 전조를 자유롭게 해야할 필요가 있었다면 진작에 이런 악기가 개발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서양 음악적인 입장에서 볼 때 한계라고 느껴지는 것은 사실 한계라기보다는 그 자체를 하나의 고유한 특성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는 서양악기가 우리 악기와 같이 다양한 여음을 만들어낼 수 없는 한계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이다.

12음을 모두 낼 수 없다는 것 역시 이와 같은 입장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어떤 악기가 얼마만큼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판단 기준을 그 악기가 낼 수 있는 음의 수에 두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한음을 아주 미세하게 쪼개서 낼 수 있는 전자 악기가 가장 표현력이 풍부한 악기라는 결론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음악은 서양의 12음을 모두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음질의 변화나 주법상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음의 수를 늘리는 것은 그 효용성의 측면에서 볼 때 그다지 바람직한 시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국악기 개량의 기본모델을 우리와 음악어법이 다른 서양음악에 두고 이에 상응하는 형태의 국악기를 만들려는 생각은 애초부터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갈등은 개량악기의 시연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그 악기를 위해 새로 창작된 곡을 연주할 때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기존의 전통음악을 연주할 때에 바람직한 효과를 거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다. 그러나 개량악기가 기존 악기보다 전통음악을 연주하기에 수월하지 않다면 이는 개량이 아니라 개악(改惡)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악기개량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개량된 악기가 얼마만큼 그 자체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표현력의 증대를 꾀하는가에 있는 것이다. 고유성의 문제는 또한 예술성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전통악기의 기법은 유구한 세월이 빚어낸 예술성의 응축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 악기가 가진 여러 가능성이 가장 합당한 형태로 표출된 것이 오늘의 전통음악이기 때문에 이것을 깰만한 아주 절박한 이유가 없는 이상 우리는 그 악기 고유의 특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국악기 개량은 전통음악의 연주를 전제로 하여, 보다 구체적인 음악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악기로 이런 음악을 연주했을 경우, 기존의 악기와 비교해 어떠한 음향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음질의 대비와 섬세함의 문제, 풍부한 여음과 주법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 전체적인 앙상블에 있어서 각 악기 간 음량을 적당히 안배하는 방안 등이 이러한 과정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악기개량이 그 악기만의 고유한 음향의 세계를 충분히 열어 주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지 그 악기가 가진 본래의 '특성'을 포기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하프와 같은 가야금, 플롯 같은 대금, 클라리넷 같은 태평소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