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명의 국제무대 일급 연주가들
이인해 / 시인·월간 『객석』편집부장
최근 외신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갈채 받는 한국인 음악가들의 소식이 계속 날아들고 있다. 지난 1월에 소프라노 조수미가 시카고 리릭 오페라 무대에서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역으로 데뷔해 성공적인 공연을 마쳤다는 낭보가 있는가 하면, 2월에는 소프라노 박정원이 정명훈의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무대에서 차이코프스키 『스페이드 여왕』의 프릴레파 역을 열연해 다혈질의 프랑스 관객들을 수분 동안 연주 회장에서 떠 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소식이다.
소프라노 김원정 역시 지난 2월 파리 펠레스 오페라 극장에서 비발디 오페라 『주니타 트리움판스』의 여주인공 바간스 역을 맡아 10여 차례 기립박수를 받았고, 소프라노 신영옥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베르디 『리골레토』의 질다 역을 열연해 메트 무대의 선배 홍혜경 못지 않은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진은 1월 26일 카네기홀 데뷔연주를 끝낸 후 뉴욕타임스로부터 "테크닉 면에서 완벽할 뿐만 아니라 힘이 넘치는 연주가"라는 호평을 받았는가 하면, 천재소녀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는 장영주(사라 장)가 리카르도 무치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해 미도리에 이은 천재소녀로 또 한번 화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이밖에도 맨해튼 음대에서 박사코스를 밟고 있는 피아니스트 황윤하가 카네기홀 웨일 리사이틀 홀에서 지난 2월 2일 뉴욕무대의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고 전하고, 뉴욕 유스 심포니 주최 콩쿠르에서 11살의 소녀 첼리스트 강문선이 역대 입상자 가운데 최연소로 1등을 차지했다는 소식이 있고,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 재학중인 소프라노 임희재가 보스턴 에머슨 마제스틱 극장에서 푸치니 『라보엠』의 미미 역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는 소식도 날아들었다.
이처럼 한국의 음악가들이 세계무대에서 성공적인 연주를 가졌다는 소식이 한달 사이에도 몇 건씩 날아드는 것은 지금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 음악가의 수가 그만큼 많다는 증거도 되고, 시시비비가 있겠지만 어떻든 전 세대 한국인들의 교육에 대한 투자가 이제 세계무대에서 성공적인 열매를 거두고 있다는 증거도 되겠다. 그렇다면 지금 세계무대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음악가의 수는 얼마나 되고, 그들은 누구일까. 여기에서는 그 수많은 음악가들 중에서 작곡부문을 제외하고 일급수준에 올라있는 연주가들만의 면모를 살펴본다.
지휘 분야, 정명훈이 선두주자
1989년 5월 25일 파리 오페라 이사장인 피에르 베르테는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정명훈(38세)을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0개월 후 정명훈은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개관 공연에서 베를리오즈의 대작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지휘해 세계 정상급 지휘자 대열에 성큼 올라섰다. 그에 관한 가장 최근의 소식은 바스티유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스페이드 여왕』을 지난 2월 26일부터 막을 올려 대단한 갈채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1953년 서울 출생.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7살에 서울 시향과 하이든의 협주곡을 협연, 1961년 9살에 미국 유학, 11살에 콜롬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에 소속되어 최연소 프로 연주자로 나섰다. 매네스 음대를 마치고 다시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지휘 수업, 피아니스트로서는 매네스 음대 재학시절인 73년 뮌헨국제 콩쿠르 2위, 74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2위 입상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며, 78년에 지휘자로 변신해 로스앤젤레스 필의 부지휘자가 된다. 84년에는 서독의 자브뤼켄 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맡으면서 유럽 무대에 진출, 87년에는 이탈리아 피렌체 오페라 극장의 수석 객원지휘자직을 겸하면서 오페라 지휘로 본격 진입. 88년에 이탈리아 음악평론가 협회의 「프레미오 아비아티」상을 수상해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 무대도 석권했다. 그러던 그가 세계 제1급의 바스티유 무대에 선 것은 약관의 36살. 이제 그는 명실공히 피아니스트의 명성을 얻고, 지휘자로서 세계 무대에서 정상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및 음악감독인 곽 승(48세)도 세계 지휘계에서 착실히 기반을 다지고 있는 인물이다. 원래 트럼펫을 공부하던 그가 지휘로 전환한 것은 22살 때. 매네스 음대 지휘과를 마치고 조프리 발레단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공식적인 무대에 섰다. 다시 매네스 음대 지휘과 교수 겸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있다가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를 거쳐 80년에 미국 5대 교향악단의 하나인 클리블랜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가 되면서 미국악단에 그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된다. 당시 그를 이끌어주었던 지휘자는 클리블랜드의 상임이었던 로린 마젤, 그 밑에서 지휘공부를 착실히 다진 그가 오스틴 심포니로 옮긴 것은 83년, 이때부터 그는 미국 남부지방의 음악을 이끄는 주요인물의 하나가 되었다.
KBS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있다가(86∼89년) 미국의 스탁턴 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지휘자로 되돌아간 원경수(62세)도 미국 악단에서는 비교적 알려진 인물이다.
서울대 음대, 신시내티 음악원, 인디애나 대학, 잘츠브르크 모짜르테움을 거치면서 바이올린, 지휘, 작곡을 공부한 원경수는 전 세대의 유명한 지휘자 피에르 몽피 밑에서 배우면서 세계 지휘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비인 뮤직페라인 오케스트라, 파리 샹젤리제 극장 오케스트라,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등이 그가 객원 지휘를 거친 곳. 31년만에 외국생활을 청산하고 KBS향으로 왔다가 다시 스탁턴 교향악단으로 돌아갔지만, 그와 협연한 경험이 있는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프 에센바하는 원경수를 가리켜 "훌륭한 오케스트라 지도자이며, 풍부한 음악적 개성을 지닌 빛나는 지휘자"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3월 8일 서울 시향을 객원 지휘하느라고 잠시 내한한 젊은 지휘자 유 종(34세)은 이제 곧 세계무대에서 진가를 나타낼 유망주. 어린 시절 부모의 반대에 부딪쳐 인문계 공부를 시작한 그는 76년 펜실베니아 대학에 입학하면서 불문학을 공부하는 틈틈이 작곡과 지휘를 공부했다.
펜실베니아 졸업 후 앙등레 프레빈의 추천으로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로서 나이렌버그에게 지휘를, 작곡은 조지 크럼과 제이라이스에게 배웠다. 재학시절 펜실베니아 대학 오케스트라와 뉴저지 교향악단의 학생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소련 므라빈스키의 후계자로 지목되는 박탕 조르다니아에게 사사, 레닌그라드 지휘악파를 계승하고 있다고도 한다.
국내 데뷔는 지난 83년 고려교향악단을 지휘한 것이 첫 경험. 현재 그는 90년 1월부터 이끌어가고 있는 헝가리안 비르투오지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있으면서 동구를 중심으로 서서히 세계무대에 부상하고 있다.
강세의 현악기 주자들
아마도 한국인의 체질과 감성에 가장 잘 맞는 서양악기가 바이올린이 아닌지 모르겠다. 최근에서는 성악부문에서도 국제무대의 스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그래도 수적으로 단연 강세를 띠고 있는 분야가 현악기이다. 그들 중 선두그룹이 정경화, 김영욱, 강동석이다.
정경화는 1947년(44세) 서울에서 태어났다. 4살부터 피아노 수업을 받았으나 별 재능을 안보이다가 6살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9살에 서울 시향과 멘델스존 협주곡을 협연한 그녀는 61년 줄리아드 음악원으로 유학하면서 이반 갈라미언의 문하생이 된다. 67년 19살의 나이로 리벤트리트 콩쿠르 우승, 이후 그녀는 세계무대로 진출하는데 70년 런던 심포니와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협연해 앙드레 프레빈과 명콤비를 이룬다. 이어서 몬트리올 심포니의 샤를르 뒤토와를 만나 그 명성을 굳건히 한 그녀가 84년 결혼, 잠시 활동을 중단하더니 86년 2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브람스를 연주하여 건재를 과시했다.
86년부터 EMI-엔젤과 독점계약을 맺고 레코딩에 전념하는 그녀는 이미 89년에 리카르도 무티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드보르작을, 90년에는 크리스토프 풀 도흐나니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시벨리우스를, 이번 시즌에는 클라우스텐슈테드의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와 베토벤을 레코딩하는 등 쉴새없이 연주와 녹음계획을 짜고 있다. 지난 3월 24일에는 필립 몰의 반주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프랑크의 소나타, 브람스의 소나타를 들려주어 8년만에 조국무대에서의 독주회를 갖기도 했다.
최근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크리스토흐 에센바하가 지휘하는 런던 필과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1∼5번)을 CD로 출반하여 화제를 모았던 김영욱(44세), 지난해 연말(1990년12월 3일과 9일) 바로크합주단과 모차르트 협주곡 5작품을 협연하기 위해 잠시 귀국했던 김영욱은 현재 뉴욕의 콜롬비아 아티스트사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1년에 80회 정도 연주회를 갖는다. 한때 100회 이상의 스케줄도 가져봤으나 체질상 무리라고 하면서 성실한 연주를 강조한다.
1947년 서울 출생, 4살에 피아노를 시작했다가 7살에 바이올린으로 바꾼 그를 루돌프 제르킨의 주선으로 13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커티스 음악원에 다니면서 이반 갈라미언의 문하로 들어간다. 64년 유진 오먼디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랄로의 작품을 협연, 그 이듬해에는 워싱톤의 메리뚨 포스트 콩쿠르에서 1위 입상하면서 미국무대에 등장했다. 이후 뉴욕 필, 비인 필, 베를린 필, 런던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 등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계속적인 협연을 가졌고, 80년부터는 첼리스트 요요마, 피아니스트 엠마누엘 엑스와 엑스-김-마 트리오를 결성하여 실내악운동도 펼치고 있다.
매네스 음대에서 음악분석을 다시 공부하기도 한 그는 피아니스트이자 절친한 친구인 피터 제르킨과 최근까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국 연주를 갖기도 했다.
지난해 연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멜버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두 차례의 협연을 성공리에 끝낸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37세)은 현재 파리에 거주하면서 1년의 반 이상을 외국연주 여행으로 보내고 있다.
13살이던 67년 미국으로 떠나 줄리아드 음악원과 커티스 음악원에서 공부했고, 17살의 나이로 워싱톤의 메리워드 포스트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등 콩쿠르 경력이 다채롭다. 75년에 몬트리올 국제 콩쿠르과 칼플레쉬 콩쿠르 우승,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3위 입상하여 국제적 스타로 부상한 그는 81년 미국을 떠나 파리에 정착하면서 연주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81년에는 권위 있는 롱 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심사위원을 맡기도 한 그는 레코드 취입을 별로 하지 않다가 최근에 시벨리우스, 슈베르트 등의 작품을 갖고 6장의 CD를 내고 있다.
연주보다 바이올린 교수로 보다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강 효(52세)는 현재 음악의 명문 줄리아드의 유일한 한국인 교수로 있다. 64년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줄리아드로 유학간 그는 도로시 딜레이에게 사사하고, 줄리아드를 마친 후 케네디 센터 현악 4중주단 멤버로 활동하면서 연주가로 나셨다. 그러나 77년 아스펜 음악제에서 바이올린 교수로 참가하면서 연주가보다는 교수로서의 활약상이 두드러졌으며, 84년부터는 이차크 펼만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도 위촉받고 있다. 독주보다는 실내악 연주가로 주로 활동하는 그의 명콤비는 같은 줄리아드의 교수이며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레온 플라이셔.
초창기 한국 교향악단의 산모역할을 한 전 서울 시향의 상임지휘자 김생려의 아들 김원모도 연주보다는 교수로서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1939년 서울 출생.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떠나 매네스 음악학교와 맨해튼 대학, 플로리다 주립대학을 마쳤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바이올린 연주학 박사이며, 이반 갈라미언, 나탄 밀스타인 등의 대가에게 바이올린 수업을 받았다.
현재 조지아 대학 바이올린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앙상블 활동에도 주력하여 프로 아트 콰르텟의 제 1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음대 제1회 졸업생인 바이올리니스트 안용구(67세)는 이화여고 교사로 재직하다가 54년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의 뮌헨 음대와 비인 국립아카데미, 영국의 길드홀 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 공부를 한 그는 59년 귀국하여 국립교향악단 악장과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다. 이때 4중주단, 3중주단 등을 조직하여 실내악 운동을 펼치기도 한 그는 68년 도미하여 현재까지 피바디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64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실내악 무대에 자주 나서고 있다.
지난해 1월 예술의 전당 신년음악회에서 9살 짜리 소녀로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완벽하게 연주하여 장안을 떠들썩하게 한 장영주(사라 장)금년 들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파가니니를 성공적으로 협연하여 또다시 국내악단과 미국악단의 화제가 되었다.
그녀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이끌어주기 시작한 당대 최고의 바이올린 교수인 줄리아드의 도로시 딜레이. 장영주가 겨우 5살 때 도로시 딜레이는 그녀가 연주하는 멘델스존과 차이코프스키를 듣고 그녀를 미국악단에 소개하면서 문하생으로 가르치기 시작한다. 도로시 딜레이는 주빈 메타가 이끄는 뉴욕 필과의 오디션을 주선해 협연을 하게 하는 등 "장양과 같은 천재를 만나기는 처음"이라고 하면서 그녀를 미도리 이상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우겠다고 다짐. 지난해 한국무대에서 연주를 갖기 전 뉴욕에서도 1월13일 뉴욕 필의 신년음악회에서 파가니니를 연주하여 6차례의 커튼콜을 받았다. 현재 그녀는 줄리아드 예비학교에서 도로시 딜레이에게 사사 받고 있으며, 필라델피아에 있는 프랜드 초등학교 4년 생이기도 하다.
뉴욕 필의 유일한 한국인 단원인 바이올리니스트 함혜영(29세). 1962년 서울 출생의 그녀가 바이올린을 시작한 것은 다른 사람보다 다소 늦은 12살 때. 그러나 그녀는 3년만에 이화·경향 콩쿠르에서 대상을 타는 등 빠른 발전을 보였다. 중학교 2학년 때인 77년 미국으로 떠나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 그후 줄리아드 음악원과 대학원에 다녔다. 재학중 학교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았었고, 뉴욕 필하모닉 주최 영 아티스트 컴피티션에서 우승하기도 한 그녀가 뉴욕 필의 정식 단원이 된 것은 86년 10월 25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뉴욕 필의 오디션에 통과하면서부터이다.
현재 그녀는 일주일에 네 번씩 뉴욕 필의 콘서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89년에 이어 92년 뉴욕 필 창립 150주년 기념 세계 순회연주 때 다시 서울을 찾을 예정이다.
로스트로포비치가 이끄는 워싱톤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복수(40세). 1951년 생인 김복수는 6살부터 바이올린을 공부했으며, 고등학생 때 국향과 서울 시향 등과 협연했다. 73년에 도미, 줄리아드에 들어가 도로시 딜레이 문하생이된다. 줄리아드 대학원을 수석으로 마친 그는 시애틀 심포니, 볼티모어심포니, 오마하 심포니, 네브래스카 심포니 등에서 솔리스트 겸 악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미국의 일급 교향악단인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제 1 바이올린 파트의 주자로 있는 황보엽. 1968년 위스콘신 음대로 유학을 떠난 그는 이 학교 졸업 후 밀워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74년 보스턴 심포니 오디션을 통과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는 현재 교향악단 활동 외에 보스턴 심포니의 멤버로 구성된 하우그폰 현악 4중주단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고도 있다.
이밖에도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는 수없이 많다.
이미 지난 84년에 연주자로서는 최고의 과정인 파리고등음악원의 음악분야 박사과정인 트르와지엠 시클을 1등으로 마치고, 파가니니 콩쿠르 3위, 롱 티보 콩쿠르 3위, 그리고 마침내 90년대 칼 플레시 국제 콩쿠르 우등을 한 양성식, 비니아프스키 콩쿠르 1등, 시벨리우스 콩쿠르 대상, 엘리자베스 콩쿠르 특별상 등의 콩쿠르 입상경력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1975년 동양인으로는 처음 호주의 멜버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종신단원이 되어 호주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바이올리니스트 정승영, 줄리아드의 도로시 딜레이 문하에서 일본의 미도리 고토와 동갑 나기로 주목을 받다가 쾰른 음대, 영국의 로열 칼리지를 거쳐 유럽 무대에서 비상하는 금년 20살의 바이올리니스트 황수지. 71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에서 5년간 바이올린을 공부하고 85년에 엘리자베스 콩쿠르 2위 입상, 그후에 뉴욕의 허드슨강에서 바지 콘서트를 시작해 주목을 받고 있는 금년 43살의 배익환, 그리고 90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3위에 입상하여 새로운 유망주로 부상한 금년 18살의 재미교포 바이올리니스트 엘리사박도 머지않아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집고 넘어가야 할 아티스트이다.
첼리스트 조영창(33세)은 82년부터 독일의 쾰른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주자로 활동해 왔는데, 87년부터는 에센국립음대의 첼로과 정교수로 재직하면서 교육자의 길도 겸하고 있다. 5살 때 피아노를 배우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첼로를 바꾼 그는 13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로렌스 레서, 야노스 쉬타거 등의 거장에게 사사했다.
82년에 뮌헨 콩쿠르에 도전해 1등 없는 2위에 입상, 유럽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조여방,·영미 두 누이와 조 트리오를 결성해 77년 제네바 콩쿠르 트리오 부문 2위, 80년 뮌헨 콩쿠르에 트리오 부문 3위 입상하기도 했다.
미국 볼티모어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첼로 수석으로 있는 이창우, 그는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야노스 쉬타거의 눈에 띄어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 장학생으로 유학. 그후 멕시코시티로 가서 멕시코 할라파 교향악단의 수석 첼리스트로 있다가 캐나다 국립예술센터 교향악단과 아틀랜틱 심포니의 수석을 거쳤다.
19살의 나이로 미국 5대 교향악단의 하나인 필라델피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첼로 주자로 입단한 첼리스트 박상민(23세), 6살 때부터 첼로를 시작한 그는 79년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음악원에는 1,40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NFAA에서 심사하는 미국대통령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화제를 뿌리기도 했으며, 2살 터울의 형인 바이올리니스트 박상우와 함께 형제 연주가로 활동하기도 한다.
피아노 분야 양에 비해 질적 열세,
우리 음악도들이 가장 선호하는 악기는 피아노이고, 실제로 국내외적으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배우는 악기도 그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보이는 연주가들 중에서 피아노 분야는 그 양적인 수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신체적인 핸디캡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가 많은 만큼 세계적인 스타들이 배출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이런 가운데 단연 두각을 보이는 피아니스트는 서혜경(31세).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의 매네스 음대를 거쳐 줄리아드 음악원의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5살 때 피아노를 시작한 그녀는 80년 이탈리아의 부조니 콩쿠르 2위 입상으로 국제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83년에 다시 뮌헨 콩쿠르에 재도전하여 2위에 입상해 탄탄한 실력을 과시했다.
이후부터 그녀는 쉴새없이 세계무대에서 연주회를 가졌고, 85년에는 영예의 링컨센터상인 윌리엄 페첵상을 받았다. 그런 만큼 그녀의 레퍼토리는 모차르트에서 프로코피에프까지 50여 곡에 이른다. 열정이 넘치는 만큼 기복이 심한 문제도 안고 있으며, 최근에는 다소 슬럼프에 빠져 있는 듯도 하지만, 지난 88년 6월 미국 카네기홀에서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 20명을 후원하여 특별연주회를 마련했는데, 서혜경은 여기에서 최연소자로, 유일한 여성 피아니스트로 선정되었었다.
8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여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로지나 레빈에게 사사한 백건우(46세)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세계무대에 그 이름이 나타났다. 유럽무대 등장은 나옴버그 콩쿠르 입상 후 74년에 파리 국립오케스트라와 라벨의 협주곡을 연주하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그는 파리를 중심으로 연주하면서 라벨과 메시앙에 몰두했다. 이밖에도 그는 리스트와 스크리아빈에 뛰어난 해석을 보인다는 평을 듣는다. 10여 년 전에 9장의 레코드를 출반하고는 레코딩을 중단했었는데 최근에 다시 레코드 녹음을 재개하겠다는 소식.
피아니스트보다는 교수의 길로 정진하는 한동일(50세)은 아마도 우리 피아니스트 가운데서 가장 먼저 세계무대에 등장한 연주자일 것이다. 1941년 함흥에서 태어나 3살부터 피아노수업을 받기 시작한 그는 6·25 전쟁시기에 미 제5공군 사령관의 도움으로 줄리아드 예비학교로 유학을 떠나 로지나 레빈에게 사사한다. 56년 15살의 어린 나이로 카네기홀 무대에 선 그는 이곳에서 뉴욕 필과 차이코프스키 1번을 협연해 '한국에서 온 신동'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65년 리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미국무대에 정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3년 뒤 런던 연주회에서 몸에 이상이 생겨 불가불 교수의 길로 들어선다. 현재 그는 인디애나 주립대학을 거쳐 텍사스 주립대학 음악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뉴욕에서 선상음악회를 주관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과 협연을 자주 갖는다.
최근 국내 무대에 나타나기 시작한 문익주는 커티스 음악원과 인디애나 주립대학을 거쳐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구적 피아니스트, 몬트리올 국제 콩쿠르와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지나 박하우어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하면서 미국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데뷔는 79년 미네소타 심포니와 협연하면서 이루어졌으며, 현재 LA의 캘리포니아 음대 교수로 있으며, 89년부터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UCLA 피아노 콩쿠르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4살에 피아노를 시작하여 9살에 독주회를 가졌던 서주희. 11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커티스 음악학교 오디션에 합격해 이후 9년간 이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 커티스에서 볼레트 교수에게, 개인적으로 레온 흘라이셔 교수에게 사사한 그녀가 미국무대를 떠나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게 되는 것은 84년 영국의 리즈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나이로 2위에 입상하면서부터이다.
이후 그녀는 유럽과 미국, 호주의 오케스트라와 세계각지의 순회연주를 계속하는데 뉴욕타임스는 그녀의 연주를 독특한 터치, 웅장하고 귀족적인 사운드라고 평한바 있다.
이밖에 런던 왕립 음악원과 대학원을 마치고 런던을 중심으로 착실히 기반을 다지고 있는 민혜성(29세)은 87년 이탈리아의 에토레 포졸리 국제 콩쿠르에서 3등 입상, 이보다 앞서 85년에는 영국의 뉴포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영국무대에 등장했다. 역시 같은 런던 왕립 음악원에서 공부하면서 라두 루푸에게 사사한 채정원은 86년 영국 헤스팅스 페스티벌에서 우승하여 영국무대에 등장, 현재 연주활동을 벌이면서 런던 왕립음악원의 조교로 있다. 1979년 서울예고 재학 중 도미하여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를 마친 피아니스트 이경미는 90년 5월 불가리아 심포니에타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를 협연하는 등 주로 동구권 중심으로 활동해 왔는데, 금년 5월 링컨센터의 모짜르테움에 재학 중 지난 85년에 비오티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유럽무대에 등장한 이미주도 다음 세대의 피아니스트로 기대할 만한 연주자다.
이제 시작단계인 관악 분야
우리 교향악단 발전에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것의 하나가 훌륭한 관악주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관악분야에서 세계무대에 등장한 연주자는 거의 없다시피 하는데, 그 가운데 최근에 플루트에서 송여진과 송영지 두 연주가가 나타나 고군분투하고 있다. 물론 그들 이전에 제일교포 김창국이 국제적인 플루티스트로 각광을 받았지만, 그는 일본에 귀화했다.
송여진(26세)은 11살 때부터 플루트를 시작해 서울예고 1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맨해튼 음대를 다니다가 유럽으로 옮겨 비인 국립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미국에서는 랜솜 윌든과 줄리어스 베이커에게 사사, 유럽에서는 비인 필의 수석 플루티스트인 볼프강 슐츠에게 배웠다. 유럽 플롯계에서 '떠오르는 새별'로 불리는 송여진은, 지난해 소련의 렌니그라드 심포니와 협연해 화제를 모았는데, 금년에 다시 초청 받아 소련 연주를 계획하고 있다.
현재 그녀는 뮌헨에 본부를 둔 비말라 실내악단의 플루티스트로서 유럽 무대에서 바쁜 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플루티스트 송영지는 87년 11월 이탈리아의 부키 국제 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하여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25살의 재원. 서울예고 재학 중 줄리아드 음악원으로 유학간 그녀는 한국학생으로서는 처음으로 이곳에서 플루트를 전공, 줄리어스 베이커에게 사사하다가 니스 여름음악제에서 알랭 마리옹 교수를 만나 84년 파리고등음악원으로 전학했다가 현재 스위스 제네바 음악원에 다시 진학하여 막상스 라류에게 사사하고 있다. 유럽무대 진출은 88년 1월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리사이틀을 가짐으로써 시작되었다.
최근 승승장구의 성악분야
유럽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소프라노 조수미가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도 격찬을 받더니 이번에는 시카고 무대에서 그녀의 장기인 '밤의 여왕'역을 유감없이 발휘해 역시 세계 정상급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90∼91년 그녀는 메트에서 『가면무도회』, 코벤트 가든에서 『호프만의 이야기』, 시카고에서 『마술피리』, 로마에서『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 비인에서 『마술피리』 등 유럽과 미국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대활약을 보이고 있다.
그녀의 본명은 조수경. 1962년 출생으로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으로 유학했다. 6살부터 피아노를, 초등학교 때는 가야금과 무용도 배웠다. 85년에 비초티 콩쿠르에서 우승, 이어서 국제 콩쿠르에서 1등한 아티스트만 모여서 경연을 벌이는 아레나 디 벨로나 콩쿠르에서 1등을 했고, 86년 카라얀과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국제적인 도약의 계기를 잡았다. 카라얀은 오디션에서 조수미를 극찬했고, 마침내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도밍고와 같이 『가면무도회』를 공연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동양의 진주같이 빛났다'는 찬사와 함께 가는 곳마다 화제를 터뜨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87년 1월 제임스 레바인이 지휘하는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 『라보엠』의 미미역을 성공적으로 불러 화제가 되었던 소프라노 홍혜경(33세). 당시 그녀는 주연급으로 메트 무대에 선 최초의 한국인이다. 이후 그녀는 87∼88년 시즌까지 제임스 레바인과 계약연장을 가져 메트 무대에서 활동을 했으며, 당시 뉴욕타임스는 그녀를 가장 기대되는 성악가로 지목하기도 했다.
선명회 합창단 시절부터 재능을 보인 그녀는 15살의 나이에 줄리아드 예비학교로 유학을 떠나 84년 줄리아드 대학원을 마치면서 메트로폴리탄 오디션에 통과되어 뉴욕무대와 관계를 맺는다. 미국에서 오페라 데뷔는 83년 시카고에서 『라보엠』의 뮤제타역으로 출연한 것이 처음이지만, 그녀의 성공은 메트 무대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지난 1월 5일과 12일에도 홍혜경은 메트 무대에서 『파우스트』와 『리골레토』에 출연해 91년도를 화려하게 시작했다.
독일에서 헬렌 퀸으로 불리는 소프라노 권혜선, 현재 그녀는 베를린, 뮌헨과 더불어 독일의 3대 오페라단의 하나인 함부르크 오페라단의 프리마 돈나인데, 89년도에 함부르크 오페라 애호가 2,000명이 뽑는 '89년도 함부르크의 가장 인기 있는 성악가'로 권혜선을 지목해 함부르크에서의 그녀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79년 이화여고 졸업 후 곧바로 쾰른 음대로 유학을 갔다. 84년 졸업하면서 비스바덴, 쾰른, 뮌헨 등의 오페라단에 게스트로 활약했고, 85∼87년까지 하겐 오페라단과 전속계약으로 활약했고, 함부르크 오페라단과는 87∼91년까지 계약되어 있다.
그녀의 장기는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역,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에서 체르비네타역,『사랑의 묘약』중에서 아디다역이라고 하는데, 당분간 독일무대에서 활동하다가 미국무대에도 진출하겠다고 한다.
한국 성악가로 바그너 오페라에 출연하기는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바그너 가수』라는 명칭이 있을까. 그만큼 바그너 오페라는 풍부하고 깊은 성량을 요구한다. 여기에 한국인 바리톤 강병운(필립 강)이 바이로이트 무대에서 연속적으로 『니벨룽겐의 반지』전4부작 공연에서 하프너와 하겐역을 하고 있다. 그의 바이로이트 무대는 88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금년까지 계속 출연계약이 되어 있다.
1948년 출생인 그는 서울대 음대 졸업 후 김자경 오페라단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74년 베를린 음대에 유학하면서 유럽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79년 마리오 델모나코 콩쿠르 1위에 입상하면서 이탈리아와 독일무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베를린 오페라 하웃, 부퍼탈 오페라 하우스, 뉘른 베르크 오페라 하우스를 거쳐 현재 만하임 오페라단 소속으로 있다.
홍혜경의 뒤를 이어 메트 무대의 주연가수로 떠오른 소프라노 신영옥(30세), 지난 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오디션을 거쳐 유일한 소프라노로 입단했던 그녀는 91년 1월 『리골레토』공연 중 감기로 홍혜경이 도중 하차하자 대역을 맡아 단번에 메트의 주역이 된 것이다.
서울 출생. 17살에 도미하여 줄리아드에서 학사, 석사를 마친 후 88년 스폴레토 페스티벌에서 『루살카』의 우드 스프라이트역을, 이듬해에는『피가로의 결혼』에서 수잔나역을 맡아 유럽무대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그 동안 그녀는 쿠세비츠키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등 성실한 준비를 해왔는데, 그녀의 이번 메트 데뷔로 세계 최고의 오페라 무대를 홍혜경, 조수미, 신영옥이 누비게 되었다.
바리톤 최현수(32세). 지난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성악부문 우승으로 국내외에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는 연세대 음대를 졸업하고 서울시립합창단에서 1년간 활동하다가 이탈리아로 건너가 베르디 음악원과 오지모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86년 베르디 국제 콩쿠르 우승, 88년 파바로티 국제 콩쿠르 우승 등 10여 개의 콩쿠르에 입상, 계속적인 도전과 노력 가운데서 오늘의 영광을 안았다. 파바로티 콩쿠르 우승 후에 파바로티와 함께 공연하는 등 벌써부터 세계악단의 주목을 받았었는데,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석권으로 그는 탄탄대로를 달리게 되었다.
이탈리아 사람보다도 더 멋진 벨칸토를 구사한다고 알려진 테너 박세원.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 음대를 나와 오지모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계속한 그는 그 동안 『토스카』의 주역만도 30여 회 하는 등 이탈리아 중심의 유럽무대에서 한창 성가를 높이고 있다. 89년에는 한국인 성악가로는 처음 노르웨이 국립오페라단의 『라트라비아타』 주역무대를 갖기도 했던 그는 현재 이탈리아와 국내무대를 오가면서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도 세계무대에서 주역급으로 활약하는 성악가가 많다. 한양대 음대를 마치고 줄리아드음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최근 유럽 무대에서 두각을 보인 소프라노 박정원(34세). 그녀는 지난 1월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비제의 『진주조개잡이』의 여주인공을 맡아 호평을 받았었는데, 정명훈의 바스티유에서 『스페이드 여왕』에 출연해 또다시 화제를 모았다고 전한다. 소프라노 이명숙은 서울대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68년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데, 틈틈이 성악무대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 마르세유 오페라 극장에서 『투란도트』의 류역으로 출연했던 그녀는 지난 3월 19일 국내무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바리톤 이재환은 87년 제노바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리골레토역을 성공적으로 해내 현재 이탈리아에서 베르디 가수로 각광을 받고 있는 유망주. 지난 89년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에서 오페라 부문 1등 없는 2등에 입상하여 화제를 모았던 바리톤 장유상 또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두각을 나타낼 성악가이다. 소프라노 김영미.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을 나와 이탈리아에서 여러 개의 국제 콩쿠르에 입상했던 그녀는 미국으로 무대를 옮긴 뒤 82년 필라델피아 오페라단에서 『사랑의 묘약』의 파바로티 상대역으로 화제를 모았고, 88년에는 뉴욕시티 오페라단에서 『나비부인』의 주인공 역을 열연해 성공적인 무대를 가졌었다. 최근에는 뚜렷한 무대가 보이지 않으나 대단한 미성을 소유하고 있어 기대가 되는 성악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