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시대의 지역문화발전을 위한 정책
강병주 /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주임연구원
해방이후 지난 45년간 우리 국민은 지방자치를 동경해 왔고 우리의 이러한 염원은 기초 지방자치단체를 위한 의회를 운영할 위원을 선출함으로써 이제 실현되어 가고 있다. 그러면 지방자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
지방자치란 문화적으로 지방문화 시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경제성장 위주의 중앙집권 시대에 다져진 외형적인 발전을 기초로 인간의 개성이 존중되고 지역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정치제도를 의미한다. 지방자치가 실시되면 문화의 지방화 시대가 도래되어 문화, 예술 활동이 각 지역으로 분산되어 지역 특유의 문화활동이 활발히 전개될 것이며 경제성장 시대에 형성된 획일적인 중앙문화가 다양한 지방문화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각 지역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다양하고 독특한 향토문화를 창조하여 이것을 그 지역 고유의 문화로 보존시켜 왔으며 이는 한국 전통문화의 기반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이 땅에서 시작된 산업화는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선호하면서 경제 성장 최우선의 물질숭배 문화를 잉태했고 일자리를 찾아 시골에서 도시로 많은 사람들이 집중되어 급격한 도시화를 가져왔다. 한편 텔레비전, 비디오, 테이프 등의 전파매체를 주축으로 해서 서구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도시문화의 보급은 문화적 획일주의를 초래했고 향토 및 지방문화에 대한 도시문화의 우월성을 빚어내게 되었다. 더욱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지향의 국가발전 정책은 지방문화를 체계적으로 보존, 계승, 발전시키지 못한 채 도시문화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위축되게 했으며 산업사회속의 매스컴 발달에 따른 도시문화에 대한 동경심은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문화적 열등의식을 가지게 하였다.
중앙집권 체제하의 도시문화는 경제주의적 물질문명에 기초를 두고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있기 때문에 지방주민들로 하여금 그 지역고유의 향토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기 보다는 오히려 도시문화에 대한 동경과 열등의식을 자극하여 지방의 문화창조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오늘의 우리나라 지방은 지역문화를 보전하고 이를 현대적 상황에 적합하도록 계승, 발전시키는데 실패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지방민의 향토애가 상실되고 이는 더 나아가 자기 상실과 인간상실의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따라서 오랜 역사를 통하여 민족문화의 원천이 되어왔던 각 지역의 다양한 향토문화를 전통문화로 계승, 발전시켜 체계적으로 보존하며 지방민의 문화적 창조능력을 활성화시켜 문화의식을 함양하고 지역특성과 전통에 부합되는 지역문화를 창달함은 지방자치의 정신적 지주를 단단히 다지고 각 지역의 정신적 풍요로움을 제공한다.
한 지역의 문화적 전통이란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생겨나는 정신적 유산이므로 지방문화의 진흥과 전통문화의 개발은 지역간의 문화격차 해소를 위한 기초 작업이며 고향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실체를 회복시켜 지방자치가 더욱 공고히 자리잡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러면 지방문화 발전이 지방자치 시대에는 왜 그토록 중요한가?
서울을 동경하게 만드는 도시 문화가 정치적인 면에서 중앙집권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라고 한다면, 지방문화는 아래에서 고찰할 수 있는 몇 가지 연유로 지방자치를 더욱 풍요롭고 기름지게 만드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지방문화는 지방자치의 기틀이 된다. 지방자치의 주된 관심사는 주민의 공동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 주민의 공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역문화가 쇠퇴하거나 상실되면 향토애나 애향심도 사라지며 이는 결국 지역 공동체 의식의 상실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난 30여 년간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이미 지역 공동체 의식의 붕괴를 경험했다. 지방문화가 활성화되면 향토예술 같은 전통 문화가 살아나고 각 지역의 특색 있는 생활양식이 새로운 지방문화를 형성하게 되어, 이는 지역민의 자존심을 일으켜 애향심 및 향토애로 발전하면서 그로부터 생기는 지역공동체 의식은 지방자치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공감대를 만들어준다.
둘째, 지방문화는 지방자치에 필요한 다원화와 분권화에 기여한다. 중앙집권 체제에서의 정치체제는 전국적인 업무의 획일화 및 권위의 중앙 집중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지방자치 하에서의 정치형태는 각 지역 및 분야별로 전문화와 자율화가 요구되며 문화의 다원화 및 지방화가 이루어질 때 정치적인 자치가 성숙된다. 왜냐하면 획일주의 혹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속에서는 사회여건이 권위주의적이고 제도적인 틀 속에 갖혀있기 때문에 획기적인 사회적 변혁은 기대하기 힘들지만 문화가 지방화 되고 분권화될 때 다원주의적 사고가 가능하며 이는 사회전체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줄 수 있다.
셋째. 중앙문화 아닌 지방문화만이 지방자치 시대에 요청되는 지역민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에 부응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문화향수 면에서 지역간의 격차가 매우 크다. 특히 서울과 지방간의 격차는 심각할 정도로 커서 대다수의 문화시설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대부분의 문화활동도 서울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 하에서 발생될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는 지방문화가 활성화되어야만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지방문화의 쇠퇴 현상은 여러 가지 이유로부터 발생하는데 여기서는 그 가운데 두드러진 세 가지 이유를 분석해본다. 사람들은 흔히 과거 30년간의 경제 성장이 시민들로 하여금 더욱 문화인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때 문화인이란 개량된 주택 혹은 텔레비전, 냉장고 등의 전자제품의 보급증가로 인한 생활의 편리함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훨씬 편리해진 생활환경속에서 살면서도 왜 오늘날 그들의 문화가 빈곤하다고 개탄하고 있는가 ?
산업화 및 경제성장 우선주의는 도시에 과다한 산업체를 집중시켰고 이는 인구의 대도시 집중, 상업자본의 대도시 편중을 초래했으며 그로 인해 인구가 감소하고 산업체가 입지하지 않은 지방은 문화시설 및 문화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인적, 경제적 여력이 없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문화·예술을 주로 하는 기업이 대도시 이외에는 설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지방문화의 쇠퇴를 초래한 또 하나의 이유는 문화에 종사하는 많은 인력이 대도시로 이주해 감으로써 대도시 이외의 지방은 문화적으로 더욱 황폐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화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은 한편으로는 창작활동에 종사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인으로서의 역할이 있다. 그런데 문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지방에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의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예술 활동과 실제 생활과의 갈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지역에 머물기 위해서 대도시로 이동하게 된다.
지방문화 쇠퇴의 세 번째 이유는 과거의 정치적 중앙집권주의가 경제 사회 문화면에까지 영향을 미침으로써 지방문화 보다는 전국문화 및 중앙문화의 발전에 커다란 비중을 두어 왔다는 점이다. 중앙집권 아래에서의 문화의 보존과 계승은 한 국가의 문화적 우월성과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추구되기 때문에 시민들의 문화향수 및 문화활동에의 참가보다는 문화적 유산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주 관심사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지방문화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들며, 이러한 현상은 지방자치가 실시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지방 자치가 실시되면 문화적 지방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면 지방문화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가 ? 여기에 관해서는 우선 문화란 본질적으로 자생적으로 발생하고 변천하는 것인데 과연 인위적인 발전방향이 있을 수 있느냐라는 점에서 두 가지 견해로 갈린다.
자유주의 입장을 따르면, 어떤 사회의 사회경제적 발전은 문화면에서도 발전을 유도하기 때문에 어떤 민간단체나 정부가 주도하는 문화발전정책 같은 것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와는 반대로 구조주의의 입장에 의할 것 같으면 문화는 자연발생적이지만 문화를 자유방임 상태로 내버려두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기 때문에 한 사회의 가치 개념 및 기준에 적합한 문화정책을 수립하여 이를 추구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는 주장이다.
문화와 예술이 개인의 내면적 갈구와 체험을 바탕으로 창조되고 또 개인이 모인 집합체가 사회인 점을 고려하면 정부나 지역 자치단체가 반드시 문화정책의 수립자가 되어야할 당위성은 없지만, 현실적으로 일반 시민의 문화활동이 저절로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기도 힘들고 현대 정부의 관료체제와 행정부의 활동이 사회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여 지방의 문화활동을 촉진하고 후원하는 문화발전 정책은 필요하다고 하겠다.
정부의 지방문화 발전에의 참여를 위해서 우선 해결되어야 할 점은 문화발전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라는 개념 정리이다. 문화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한 시대 한 지역에서 강조되는 문화의 발전방향이 다른 시대 다른 지역에서 반드시 강조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시대, 장소 및 사람들의 인식여하에 따라서 문화를 창조하고 보존 전승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로 이야기 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지방문화의 쇠퇴 및 왜곡현상을 시정하는 맥락에서 전개하도록 하겠다.
지방문화의 발전방향으로 제일 먼저 손꼽을 수 있는 것은 현재 가장 빈번히 사람들에 의해 지적을 받고 있는 중앙과 지방의 문화적 격차를 줄이기 위하여 지방문화를 중앙문화의 종속문화가 되도록 발전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방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 보존하고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작업을 단순히 복고적인 차원을 떠나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주민들의 퇴조해 가고 있는 향토애를 불러 일으켜 우리의 긍지와 자부심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의 창출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제시할 수 있는 지방문화의 발전방향은 지방 분권화를 위하여 문화적 획일주의를 극복하고 각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를 창출하고 보존하여 지방문화의 다양성을 이룩하도록 나아가는 것이다. 지방정부는 지방문화의 발전이 지역주민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며, 지역문화가 주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통해 이루어짐으로써 지역별로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하여 자생적인 문화발전의 기반이 조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각 지방자치 단체는 지역문화의 잠재력을 발굴, 활용하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문화정책 발전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지방문화가 추구해야할 기본방향은 각 지역의 전통문화를 원형대로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우리의 생활양식 및 가치개념에 적합한 각 지역 고유의 문화를 재창조하는데 두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지방문화 발전방향을 현실적으로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몇 가지 정책대안을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지방문화의 발전을 위한 장기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하고 일년의 계획은 정월에 세우라는 격언이 있다. 세상이 크고 작은 성공과 영광 뒤에는 먼 날을 설계하는 장기 계획과 매일 매일의 활동을 위해 필요한 세부계획이 반드시 존재한다. 지방문화의 발전을 위한 장기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지역의 문화에 관련된 역사 연구가 있어야 한다. 지방문화란 일정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형성된 관습과 생활양식의 결정체이므로 지방문화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과거 문화에 대한 지식의 섭렵이 미래의 지방문화 발전을 위한 기초가 된다. 과거의 지방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유물 유적을 발굴하고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이다. 문화재의 범주도 과거의 전통문화 예술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담은 민간신앙, 생활문화 등 그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역마다 지방문화 및 향토자료를 연구하고 분석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며, 이 조직의 구성원은 그 지방의 지역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역문화에 대한 연구대상으로는 그 지역 주민의 문화에 대한 다양한 요구와 의견을 살펴보기 위해 지역주민의 문화의식, 문화활동 실태, 문화시설 이용현황, 문화행정에 대한 요망사항 등을 파악해야 하며, 지역의 문화발전과 관련이 깊은 자연, 지리, 민속, 관광자원 등도 파악해야 한다.
지방문화 발전을 위한 두 번째 정책대안은 지방문화를 관리하는 행정체계의 전환 및 개선을 들 수 있다. 종래의 중앙집권적 문화행정을 지역의 전통과 특성을 고려한 지원, 육성 행정으로 바꾸어야 한다. 지방문화의 육성과 발전의 주체는 지역 주민임을 인식하면, 지방문화 행정의 역할은 주민들이 각종 문화행사에 참가할 수 있도록 문화시설을 확충, 정비한다든지 지방에서 문화 및 예술 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처우개선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지방문화행정은 일반 행정처럼 지시나 통제를 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고 육성하는 행정체제로 개선되어야 한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 중앙정부는 전국적이고 광역적인 시각에서 지방문화를 위한 행정이 전국적으로 균형 되게 개발하면서 각 지역의 특성과 자율성을 존중해서 상호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각 지방정부는 제 고장의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주민들을 계몽하고 각 지역의 실정과 형편에 적합한 문화공간 및 시설확보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중앙정부는 지역문화 진흥기금 조성, 지역 예술활동지원 등을 계속하여 추진하되 지방자치 단체들의 자발적인 문화발전 의지가 강화될 수 있는 정책이 수립되어야겠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중앙정부에서 주도해왔던 대규모 문화행사의 관장, 문화유물 보존 등을 지방정부로 대폭 이양해야 한다.
한편 지방정부는 지방문화 행사에서 지역 주민들이 피동적 관객이 아닌 문화 행사의 주체가 되도록 유도하고 문화 예술 분야에 관련되는 기구에 종사하는 인력을 증원하고 그들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대우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한 지역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간의 문화교류를 유발하고 각종 문화단체들이 자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야 하며, 우리의 지방문화를 외국의 지방문화와 비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국제적인 지역문화 행사도 지방정부에서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