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공산권미술교류의 현황
서성록 / 미술평론가·안동대교수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동구미술의 한국진출 내지는 공산권과의 문화교류는 새로운 국제정치의 질서로 탄생한 탈냉전 시대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좁게는 88년 이후 추진된 공산권과의 일련의 국교수립에서 얻은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동구권 전시회는 조사된 자료를 통해 보면, 81년 폴란드의 「스노크 판화전」부터이며, 85년 「동구의 현대판화전」, 87년 「동구 오늘의 작가전」 정도였지만,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소련, 폴란드, 헝가리, 유고, 체코 등 동구권의 미술을 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올림픽 행사는 문화적으로 엄청난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서구, 일본에만 편중되던 국제미술에의 관심과 전시개최의 판도 변화가 그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가 접속하는 대상국의 다변화를 꾀할 수 있었던 것이 다른 하나의 현상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동구권 전시교류의 의미가 주어진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그간 어떤 유형의 동구 미술전이 열렸고 반면 한국 작가의 동구 미술전은 얼마나 개최되었는지, 또 남긴 문제는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동구미술에 대한 관심이 유발된 것은 88년 올림픽 게임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88년 5건의 행사가 관주도, 민간주도로 개회되었는데 89년에는 8건, 그리고 90년에는 무려 24건이나 개최되어 해외미술의 국내전 중 일정부분을 동구미술이 차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들은 개인전, 단체전, 쌍방교류전, 다국적 작가들이 참여한 종합전 등 전시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소개되었는데 90년까지 열린 전시의 총 건수는 41건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국가별로 보면 소련 9건, 중국 16건, 헝가리 3건, 유고 4건, 폴란드 1건, 기타(종합전) 8건으로 집계되었다.
동구미술전이 개최되면서 우리에게 남긴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해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동구문화 및 동구미술에 대해 사전정보가 전혀 없었던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네들의 문화예술을 이념적으로 '범죄 시' 했고, 따라서 아무런 태세 없이 개최된 동구미술 행사는 그저 낯설기만 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려했던 이념적 슬로건이나 선전, 선동의 측면은 발견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 이탈리아의 미술평론가 아킬레보니토 올리바의 말처럼 그것은 '긍정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부정하는 유토피아', 즉 사회주의 이념의 해체의 증후를 뚜렷이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동구미술은 탈이념화의 현장이었던 셈이다. 집단 대신 개인이, 사상보다는 자유가, 타율성보다는 자율성이, 관계미술보다는 언더그라운드가 강조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는 예기이다. 소련의 미술전문가 레베데바의 말처럼 그들은 '박해의 시대'에서 '해방의 시대'로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소비에트 연방과 다른 동유럽 국가들에게 거의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된 사회주의 미술이 이념적으로 강화된 것은 50년대 '철의 장막' 시기와 60년대 '냉전' 시기를 통해서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전체주의의 정책적 배려를 등에 업은 관계적이고 순전히 이념찬양적인 미술이 동유럽 문화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였으며, 마르크시즘에서 출발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동유럽의 지리적 특성에 상관없이 유일한 공식예술로 당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상부구조에 대한 하부구조의 우위와 문화에 대한 경제의 우위를 주장하는 마르크시즘 논리를 바탕으로 미술은 열등한 창작 행위로 간주되면서 국가기관의 통제하여 놓이게 되어 당의 지침을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80년대 동유럽 미술의 탈이념화 경향은 50년대의 유고, 폴란드, 헝가리 그리고 60년대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부분적으로 일났던 전위적 시도들의 결과로 평가되지만 탈이념화 전개를 가능케 한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고르바초프가 사회주의 제도 전반에 걸쳐 일으킨 반성적인 개혁의 기류에 의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수정주의적 실용주의 노선이 자유진영 국가들과의 금지된 대화의 재개를 허락함으로써 그늘에 묻혀 있던 작가들은 실로 오랜만에 햇살을 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독단적인 관료체제 안에서 빈약해질 대로 빈약해진 미술언어의 다양성을 회복해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같이 다시 태어나는 동구미술의 흐름을 보여주었던 전시로는 「동구 오늘의 작가전(87)」, 「국제야외조각초대전(88)」,「국제현대미술회화전(88)」,「소련현대미술전(89)」,「유고현대미술전(90)」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호암 갤러리에서 열린 「소련현대미술전」은 소련문화성 주관 아래 선정된 칸딘스키, 말레비치 같은 러시아 초기 아방가르드 작가들로부터 페로스트로이카 이후의 청년작가들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각 지역을 대표하는 33명의 작품이 소개되어 소련의 과거와 현재의 미술 흐름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기회가 되어 주었다. 절대주의 회화를 확립한 말레비치, 정서적 경험을 직관, 상상력과 결합시킨 칸딘스키, 60년대 초부터 비구상적 추상회화의 대표자로 알려진 크로피프니츠키, 드미트리플라빈스키, 절대주의를 새롭게 해석하여 구조적 색채와 형태에 대한 탐색, 공간처리, 시각적 구조를 강조하는 올가 찌리야노바, 겐다니다니 쭈브코프, 미하일 체루시, 나탈리야 킴 그리고 자유로운 연상과 신화적 이미지들로 무의식적 본능을 환기시키는 안드레이 메드베데프, 알렉산더 카리토노프, 비야체스랄프 칼리닌, 마지막으로 강렬한 표현성이 드러나는 네오 프리미티브 회화의 이리나 오를로바와 바실리 세프첸코 등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최초의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관심을 기울였던 축적된 이념과 미적 기반이 비록 긴 공백상태를 갖기는 했지만 그후 소련의 많은 미술가들에 의해서 꾸준히 검토되고 주장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81년 이후에서 90년까지 국내에서 개최된 동구 공산권 미술 행사는 연도별로 정리하며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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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동구작가 한국 미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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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맥시밀리안 스노크 판화전」
1981. 7. 17∼20 그로리치 화랑
폴란드 작가로 「상황 1」,「상황 2」,「대지의 발견」 등 출품
1985년
「동구의 현대 판화전」
1985. 12. 23∼86. 1. 23 워커힐 미술관
체코슬로바키아 6명, 폴란드 6명, 유고슬라비아 3명, 헝가리 4명 등 모두 19명의 작가 48점 출품.
1987년
「세계의 40년 화가 40인전」
1987. 8. 10∼31 워커힐 미술관
유네스코 40주년 기념으로 소련, 헝가리,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작가 출품.
「동구의 오늘의 작가전」
1987. 12. 1∼31 현대미술관
불가리아 1명, 체코슬로바키아 3명, 폴란드 3명, 루마니아 1명, 소련 1명, 유고슬라비아 1명 등 20여 점 출품.
1988년
「국제현대미술회화전」
1988. 9. 17∼10. 5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올림픽의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기획된 전시로서 동유럽에서 8개국 19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이 전시를 계기로 동구권 미술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참가 작가들을 국적별로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불가리아: 이반 칸체프, 니콜라이 마이스트로프
체코슬로바키아: 아드리에나 시모토바, 알렉스 를리나르치크
헝가리: 일로나 케세루, 타마스 헨체
폴란드: 레온 타라세비치, 에드워드 뒤르니크
동독: 하라드 메츠케스, 볼커 헨체, 발터 리부다
루마니아: 소린 일포베아노
소련: 그리차 브루스킨, 이반 추즈코프, 프란시스코 인반테, 블라디미르 얀렐레브스키
유고슬라비아: 에도 무르디치, 페르디낭 쿨머
「국제야외조각초대전」
1988. 9. 12 올림픽조각공원
1, 2차 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 36점과 67개국에서 156점 출품. 이중 동구권 미술은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동독, 소련, 유고 등 7개국에서 18명이 참가했다. 작가명단은 다음과 같다.
불가리아: 엠에밀 포포브, 이반 루세프
체코: 알레스 베셀리, 스타니슬라트 콜리발
헝가리: 길라 파우어, 이스트반 하라즈티
폴란드: 제르지 칼리나, 그르제고르즈 클라만
동독: 빌란트 포르스터
루마니아: 콘스탄틴 포포비치, 호레아 플라만두
소련: 레오니드 베를린, 라자르 가다에프, 한 체 본 마쿠마라, 보리스 오를로프, 마리아나 로 마노프스카야
유고슬라비아: 즈본코 론카리치, 스라브코 코바치
「88 세계현대작가 초대전」
1988. 9. 1∼7
LA 소재 국제미술가 협회 후원으로 52개국에서 70명이 참여했으며 이중 동구권 작가도 소수 포함됨.
「드미트리 슈슈칼로프전」
1988. 11. 29∼12. 4 서울 갤러리
동아일보가 주최한 소련 출신의 작가 슈슈칼로프의 작품 30여 점.
「소련현대미술전」
1988. 12. 1∼31 현대미술관
소련 태생의 3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12명 작가, 13여 점 전시.
1989년
「독일 동과 서 현대 판화전」
1989. 2. 8∼3. 8 워커힐 미술관
동독 작가 22명의 작품
「미하일 체미아킨 판화전」
1989. 2. 21∼28 진화랑
소련작가로 「농부」,「러시아 이야기」 등 22점의 판화 출품.
「소련현대판화 5인전」
1989. 3. 3∼14 현대 화랑 강남분점
「헝가리 현대미술전」
1989. 5. 9∼6. 17 워커힐 미술관
헝가리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주최로 80년대 헝가리 미술의 다양한 경향을 소개, 10명의 작가의 유화 35점 전시.
「에도 무르디티 작품전」
1989. 5. 25∼6. 3 두손 갤러리
「유고슬라비아 나이브 페인팅전」
1989. 6. 26∼7. 2 공간 미술관
「피렌체 괴괴스전」
1989. 11. 2∼11. 4
헝가리 출신 작가로 고대상형문자를 형상화한 20여 점 전시.
「유고슬라비아 현대미술전」
1989. 12. 13∼18 롯데백화점 문화행사장
1990년
「중국 현대수묵화전」
1990. 2. 7∼18 무역센터 현대미술관
중국의 황지견 등 19명의 동양화가 전시.
「장망과 중국 현대목판화전」
1990. 2. 9∼15 그림마당 민(중국 목판화전)
「등림 수묵화전」
1990. 4. 4∼10 백송 화랑(중국의 동양화가)
「유발서 작품전」
1990. 4. 11∼20 백상 미술관(중국의 동양화가)
「시베리아 맘모스 및 극동지역 출토품 전시회」
1990. 4. 18∼5. 14 롯데백화점 잠실점 특별전시장
「유고 현대미술전」
1990. 4. 19∼6. 2 국립현대미술관
에도 무르티치 외 유고의 현대미술 작가전.
「서울 국제방법전 90」
1990. 4. 20∼25 미술회관 동숭 미술관 에이스 아트 갤러리
「바자렐리전」
1990. 4. 21∼6. 10 국립현대미술관
헝가리 태생의 세계적인 옵티칼 아티스트인 바라렐리의 한국전.
「채진휘전」
1990. 5. 5∼8 세종문화회관(중국의 수묵화가)
「한중서화교류전」
1990. 5. 31∼6. 5 그랜드 백화점 문화홀
한국과 중국 서예작가들의 교류전.
「중국화 작품전」
1990. 6. 23∼6. 25 롯데미술관
왕성례외 다수의 중국 동양화가 작품전.
「로버트 카파전」
1990. 7. 18∼30 롯데백화점 미술관(헝가리 태생의 작가)
「90 한중수묵화전」
1990. 7. 27∼8. 1 미술회관
「정소종전」
1990. 7. 30∼8. 6 한선 갤러리(중국)
「오붕비전」
1990. 8. 1∼7 갤러리 2000(중국)
「소련 현대미술전」
1990. 8. 7∼31 호암 갤러리
칸딘스키에서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의 러시아-소련의 현대미술전. 소련 연방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작가 33명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요제 시우라전」
1990. 8. 25∼31 워커힐 미술관(유고)
「미하일 제미아킨」
1990. 8. 28∼9. 6 맥 갤러리(소련)
「진구림 중국화전」
1990. 9. 24∼9. 30 부산일보 전시실(중국)
「중국현대동판화가 장윤령전」
1990. 10. 25∼11. 8 브렝땅 백화점(중국)
「관옥량전」
1990. 11. 11∼22 백상 미술관(중국)
「오관중전」
1990. 11. 29∼12. 12 현 화랑(중국)
「중국현대작가 서화전」
1990. 12. 8∼12. 12 기아산업 전주지사 2층 전시실(중국)
「중국 조선족작가전」
1990. 12. 10∼16 부산 갤러리 월드
동구미술의 적극적 유치가 민간차원에서 원활한 데 비해, 반대로 한국 작가의 동구진출은 대단히 미약한 편이다. 그 직접적 이유는 한국 미술 유치에 드는 비용을 이들 국가에서 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정부의 대외홍보 의욕이 저조할 뿐만 아니라 문화 정책적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으리라 본다.
동구권에서 개최된 전시행사의 대부분이 개인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점과 그나마도 소규모로 개최되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다음은 한국작가의 동구미술전을 연도별로 정리한 것이다.
1981 「백금남 작품전」(폴란드)
1983 「루브리아나 국제판화 비엔날레」(유고)
1989 「동방의 빛전」(베를린, 헝가리)
「89 한국현대회화전」(베를린, 헝가리)
1990 「박영하 개인전」(헝가리 기욜 문화센터)
「문신 조각전」(헝가리)
「박권수 개인전」(소련 모스크바 시민전시장)
「한국현대회화의 오늘전」(헝가리, 폴란드 산투스야노스 박물관, 강구원 강정현 외)
「이봉호 서예전」(중국 연변작가협회 회의실)
「제18회 지중회 조각심포지엄」(유고, 참여작가 엄태정)
「한중서예교류전」(중국 연변 해외연의회관)
「김병종 작품전」(헝가리 산도어래토피 시립미술관, 폴란드 배즈 더 투르 갤러리, 소 련)
「김순지 작품전」(중국 진로의 집, 중국화 연구원)
「한국서예교류전」(중국 광동성 광주 미술관)
위의 기록에서 보듯이 한국작가의 동구미술 전시행사는 총 건수는 19건이며 국가별로는 헝가리가 6건으로 가장 많고 중국 4건, 폴란드 3건, 소련과 유고가 각각 2건 그리고 기타 2건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는 81년 1건, 83년 1건, 89년 4건, 그리고 90년에 13건으로 올림픽 개최 이후의 작품전이 대폭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동구미술전 40건에 비하면 50퍼센트 정도에 머물고 있어 문화역조 현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외형상 총 건수가 19건이지만, 실질적 행사 건수는 14건이며, 5건은 동일 내용의 전시를 여러 지역에서 순회 전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열린 동구미술이나 한국작가의 동구 전시회를 수치만 앞세워 문화의 쌍방교류의 불균형을 지적하는 것은 불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단일 전시라도 서로의 이해를 증진할 수 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문화의 전반적 기본적 흐름을 동구에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개발이 요청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회화니 조각이니 하는 순수미술의 문제로 범주를 좁혀 접근할 수도 있지만, 한국 고유의 문화적 특성을 알리기 위해 소통의 폭을 좀더 넓혀가야 할 것이며, 이를 체계적, 종합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정부 당국의 관심과 지원을 지금보다 배가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의 교류의 주체는 개인, 기업, 민간단체였지만, 정부는 나름대로의 교류활성화 방안책을 수립하여 보다 긴 안목에서 동구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한편 한국미술의 소개에도 똑같은 중요성을 두어 불균형 문제를 점진적으로 시정해가야 한다고 본다. 이럴 때에만 동구 공산권의 문화예술에 대한 정보미비, 관련 연구활동의 저조, 짜임새 있는 한국 미술 기획전시물의 개발부진, 동구미술의 일방적 주입 따위의 산적한 문제들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