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티켓」의 역사적 의의
김윤철 / 연극평론가·세종대 교수
상반기 연극계 최대의 행사인 「사랑의 연극잔치」가 지난 5월 1일에 시작하여 6월 30일까지 계속된다. 다행히 중견연극인들을 주축으로 한 연극집행위원회의 헌신적인 노력과 언론사의 협조홍보에 힘입어 제법 뜨거운 열기가 공연장을 감싸면서 축제다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물론, 애당초 「연극 영화의 해」 제정이 즉흥적인 발상이었기 때문에 연극인들이 이 행사를 위한 단기계획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시간이 워낙 부족했고, 그 결과 「사랑의 연극잔치」의 대부분의 작품을 짧은 연습으로 막을 올릴 수 있는 재공연물들로 꾸려나가야만 하는 궁색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의 연극잔치」가 연극사적으로 차지하는 의미는 중차대하다. 우리 나라 최초로 정부가 직접 연극관람객에게 관람료의 일부를 지원하는 관객지원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5만 매를 발행한 「사랑티켓」 1매 당 2천 원씩을 정부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통해 부담하기로 하고 1억 원을 내놓았다. 총 32개 극단이 41편의 공연을 올리는 축제규모에 비해서 대단히 인색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전통적으로 문화예술 부문을 홀대해온 정부가 처음으로 직접적인 연극지원에 나섰다는 사실은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전환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보조금이 현실적인 지원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이 티켓을 행사 기간 내내 사용할 수 있도록 대폭 증액되어야 할 것이며, 또한 이 제도가 진정으로 연극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으려면 지원대상을 공정하게 사전 심사하는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악연극이 양연극을 구축하는 불행한 현상이 우리 연극계에 팽배하니까 말이다.
「사랑티켓」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연극인들이 호혜원칙에 따라서 기업으로 하여금 연극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즉 각 기업체는 5천 원 관람권을 정부보조금 2천 원을 뺀 3천 원에 할인구매해서 회사의 사원후생복지비를 활용하여 사원들에게 1천 원 내지 2천 원의 싼값으로 재판매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연극인들이 기업을 향해 문화사업지원을 소리 높여 호소해왔지만 대부분 반향 없는 외침으로 그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번의 「사랑티켓」 제도는 4월말 현재 3만 매 정도가 기업 또는 노조에 판매됐다는 사실이 입증해주듯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마치 프랑스에서 앙드레 말로나 쟈끄 랑 같은 문화부 장관 주도하에 꽃피웠던 기업문화 창달운동처럼, 한국연극의 메세나운동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그러나 기업의 문화사업 참여는 궁극적으로 세무상의 감세법 창설 없이는 활성화되기 어렵다. 따라서 연극계와 정부는 세제의 개혁 내지 보완작업을 공동으로 수행하여 보다 항구적으로 기업을 문화사업에 끌어들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기업의 관객지원제도가 항구적인 제도로 정착될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효과중의 하나는 그것이 연극의 상업주의화에 따른 폐해를 일부 흡수해 주리라는 것이다. 요즘처럼 물가고가 심하고 해마다 제작비가 급상승할 때 연극인들도 어쩔 수 없이 관람료를 올려야 한다. 3천 원 시대가 엊그제 같은데 5천 원은 이미 싼 편에 속하고 8천 원, 만원 또는 그 이상의 관람료도 어느덧 일반화되어 가는 추세다. 관람료가 비싸면 고정관객마저도 잃기 쉽다. 경험적으로 봐서 새로운 관객의 창출은 고정관객의 유지보다 어렵기 때문에 고정관객의 이탈은 곧 관객층의 약화를 뜻한다. 그 좋은 예로 미국 브로드웨이 연극의 경우 지난 3월호 어틀랜틱지에 따르며, 작년 시즌의 매표수입이 2억 8천 3백만 달러로 연3년째 최고기록을 수립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뮤지컬의 경우 무려 55 내지 60달러에 이르는 관람료 때문이었고, 실제 관객 수는 10년 전에 비해 약 3백만 명 가량이 오히려 감소하여 8백만에 그쳤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매표수입의 증가보다 관객수의 감소가 브로드웨이연극의 현대 상황을 보다 정직하게 반영해준다는 사실이다. 즉, 연극제작 편수를 비교하더라도 1967∼1968 시즌에는 브로드웨이에서 총 58편이 공연되었고 그중 44편이 비뮤지컬류였으며(진지한 연극이 25편, 희극은 19편), 뮤지컬은 14편에 불과했다. 그런데 1989∼1990 시즌에는 총 제작 편수가 35편으로 줄어들었고 그 중에 21편이 비뮤지컬류, 12편이 뮤지컬(이중 4편은 재공연), 그밖에 특수공연이 두 편 있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브로드웨이는 중산층조차도 접근하기 힘든 부유층만을 위한 상업연극 전용지역이 되고 말 것이다. 『마이 페어 레이디』를 제작한 전설적인 제작자 허먼 레빈이 개탄했듯이 브로드웨이가 '열 개의 극장만으로 충분할 날도 멀지 않게 될 것'이며, 연극평론가 토마스디쉬는 벌써 '브로드웨이의 죽음'을 예언하고 있다.
극작가 강월도는 한국연극의 장래가 성인관객의 확보여하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을 좀더 부연한다면, 중산층 관객이 큰 부담이 없이 극장을 방문할 수 있고 또 그러기를 즐길 때 한국연극의 건강한 발전이 기약된다는 것으로 타당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관람료 인상추이가 지금의 페이스대로 진행된다면 곧 2만원, 3만원 시대가 도래할 것이고, 그 때 가서는 연극관람이 연중행사화 할 소지가 충분히 있다. 그렇다고 사회전체가 급격한 물가앙등에 몸살을 앓고 있는데 유독 연극제작비만 묶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불가피한 제작비 인상분의 상당액을 정부와 기업의 이중지원제도로 흡수해서 중산층 관객의 이탈을 방지하거나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티켓」을 확대·발전시켜 항구적인 관객지원제도로 정착시키는데 문화부와 연극계가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두 달간 지속될 「사랑의 연극잔치」는 「사랑티켓」에 의해서 분명히 관극인구의 저변확대에 기여할 것이다. 이제부터의 과제는 이 새로운 관객들을 어떻게 고정관객으로 유도하느냐라 할 수 있다. 내적으로는 연극의 예술적 완성도를 꾸준히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겠고, 외적으로는 공연장 주변의 문화환경을 개선하는 일이겠다. 특별히 한국연극의 본거지라 할 대학로가 문제로 지적된다. 앞서 소개한 토마스 디쉬도 「브로드웨이의 죽음」이라는 글에서 그곳의 연극 불황이 그토록 절망적인 데까지 다다른 첫째 이유로서 연극예술과는 직업관련이 없는 맨해튼 거리의 우범지대화를 꼽고 있다. 22세 된 유타주의 시골 청년이 부모를 깡패들로부터 보호하려다 피살된 사건이 단적으로 말해두듯이, 양쪽에 극장들이 즐비한 맨해c튼 거리가 이미 험상궂고 너저분한 마약 암매상, 창녀, 걸인, 소매치기 등 불량배들의 차지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우리의 대학로가 그와 흡사한 모습을 띠기 시작한 지도 벌서 오래 됐다. 이는 아직 활짝 피어보지도 못한 한국의 연극문화에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대학로는 다른 누구보다도 연극인들의 생활 터전이다. 연극인들이 우선 적극적으로 환경정화에 나서야 한다. 「사랑티켓」이 새 관객을 많이 몰아준다 해도 딸 가진 부모가 걱정 때문에 딸을 보내지 못할 위험한 환경이라면, 관객지원제도가 아무리 훌륭히 보완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랑티켓」의 역사적 의의를 연극인 스스로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다. 설령 그것이 일회용의 기안이었다 해도, 그 동안 두텁게만 느껴졌던 국가정책상의 편견이라는 벽을 조금이나마 깨뜨렸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이 일을 계기로 보다 나은 항구적 연극지원제도에 대한 모색과 실천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