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연극

분단 현실의 희곡적 수용과 희곡이라는 글쓰기

-「오장군의 발톱」(박조열 지음),「희곡 작법」(레이조드 에그리 지음·김선 옮김)




김성희 / 연극평론가 단국대 강사

얼마전 발간된 박조열의 희곡집 「오장군의 발톱」과 레이조스 에그리의 「희곡 작법」을 주의 깊게 읽었다. 「오장군의 발톱」은 현실 인식이나 연극적 형상화의 단단함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고, 「희곡 작법」은 희곡 '쓰기' 혹은 '읽기'에 대한 매우 구체적이고 친절한 안내를 해주고 있는 뛰어난 책이었기 때문이다.

희곡집 「오장군의 발톱」은 원로 작가 박조열의 첫 희곡집이다. 이 책에는 그가 지난 1963년부터 76년까지 발표한 희곡 9편이 모두 실려 있으며, 이들 작품들을 살펴볼 때 70년대 중반 이후 작가 활동을 중단한 것에 대해 아쉬움과 함께 의문을 품게 하기도 한다. 또한 발표시기에 비추어 볼 때 뒤늦은 발간이지만, 오늘의 시점에서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는 빛나는 생명력으로 놀라움과 기쁨을 동시에 주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꿰뚫고 있는 지속적인 관심은 무엇보다 우리의 분단 현실이다. 작가가 후기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남북 분단'에 대한 집착은 통일 문제를 제재로 한 작품을 금기 시 하였던 지난날의 정치 상황과 상충하면서 일종의 자멸 작용을 한>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진술은 작가가 일찍 붓을 놓아 버린 이유를 설명해 주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우리 희곡사에서 그의 작품이 갖는 독특한 위상을 설정해 주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박조열 만큼 분단 현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연극적 감수성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해 낸 희곡작가가 드물다는 점에서 그의 작가적 위상을 독보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작가로서는 치명적 약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계(관)의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주로 작품 활동을 한 시기가 강압적 권위주의 체제였고, 특히 공연 예술에 관이 개입하여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했던 불행한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분단 현실과 통일에 대한 그의 일관된 작가적 관심은 시대의 양심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의 비인간적 양상을 그린 「오장군의 발톱」이 1975년에 공연 연습을 하던 중, 예륜의 '공연 불가'결정으로 막을 올리지 못하고 14년이나 묶여 있다가 지난 88년에야 공연되었다는 유명한 일화는 강압적 체제하에서 작가에게 가해지는 무형의 폭력, 그리하여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검열하거나 침묵하게 만들어 버렸던 현상의 임상 보고서일 것이다.

9편의 희곡을 살펴보면 분단 문제와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뛰어난 연극적 상상력과 감수성 그리고 언어적 표현력에 힘입어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대략 주제적 관심이나 표현 기법으로 분류하면 첫째, 분단 현실과 통일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관광 지대」,「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조만식은 아직도 살아 있는가」,「가면과 진실」 등을 들 수 있다. 둘째로는 남녀의 사랑이나 따뜻한 인간애를 경쾌한 희극으로 그린 「토끼와 포수」,「소식」 등이 있으며, 셋째로는 우화적, 상징적 기법으로 전쟁의 비인간화와 강압적 시대 현실을 그린 「오장군의 발톱」,「흰둥이의 방문」 등의 작품들이 있다.

먼저 분단 현실과 통일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을 살펴보면, 자칫 관념적으로 빠질 수 있는 소재들을 지적이고 해학적인 방법으로 다루고 있어 예술적 성취를 거두고 있는 「관광 지대」「목이긴 두 사람의 대화」가 돋보인다. 그런가 하면 「조만식은 아직도 살아 있는가」나 「가면과 진실」은 기록주의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관심을 끌고 있지만 경직된 반공 이데올로기로 역사를 재조명했을 뿐, 희곡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의 육화가 갈등구조 속에 살아나 있지 않아서 관념성의 과잉이 작품의 연극성을 짓눌러 버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네 편의 작품들은 분단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과 극복 의지를 동일한 정신 구도로 삼고 있는 작품이지만, 작가가 연극적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이데올로기 문제를 자연스럽게 용해시키고 융화시켜 표현했을 때 희곡적 성공을 얻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데뷔작이기도한 「광광 지대」는 '판문점 명도소송'이라는 부제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 분단 현실의 상징적 지점인 판문점 휴전 회의실의 회담 장면을 소극의 수법으로 스케치하고 있다. 역사적 비극의 현장을 '관광 지대'로 역설적으로 뒤집어, 관광객들이 '구경'하러 가는 분단 체제의 고착화 현상이 풍자되고 있다. 관광객을 안내하는 해설자역의 한남북이라는 인물 역시 분단 현실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판문점 일대의 땅주인으로, 휴전 회의실이 이전의 자기집이라고 하고, 자기 부모가 부부 싸움을 하며 틀어박히던 방들이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고 설명한다. 한 가정의 부부 싸움이 확대되어 남북의 분단으로 고착화되고, 그 판문점에서는 남파 간첩과 월북한 황소가 교환되는 웃지 못 할 사건들이 벌어진다. 북한측이 지나치게 희화화되어 그려진 것은 작가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탓이기는 하지만,- 판문점 회의로 축약되는 1960년대의 정치 현실을 매우 재치 있게 커리커추어한 작품이다.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는 데뷔작에서부터 일관적으로 나타난, 일종의 '경계선' 콤플렉스라 부를 만한 소재를 우화의 기법으로 그리고 있다. 황량한 벌판에 경계책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서 있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러한 우화적 상황이 우리의 분단 현실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들의 대장들을 기다리며 한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는' 두 건달들 같이. 그러나 베케트의 고도가 희망·죽음·기다림 같은 보편적인 인간 조건을 상징한 대상이었다면, 「목이 긴…」의 '대장들'은 사형 집행 명령서에 사인하는 냉혹한 권력자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만큼 박조열의 현실 인식은 철조망으로 경계책을 쳐 놓고 철조망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속수무책으로 기다려야만 하는, '그래서 목이 길어지는' 악몽과 함께 비관적으로 드러난다. 통일의 권한을 쥔 대장들은 언젠가 와서 철조망을 걷어 내겠다고 말만 할 뿐, 결코 나타나지 않고, 분단의 고착과 억압을 상징하는 벌판의 바람은 더욱 거세어지기만 할 따름이다.

이처럼 박조열은 분단이라는 시대 상황이 개인의 삶을 억압하고 삶의 조건을 결정짓는 구조적 악이라고 파악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통일에의 희망이나 기다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목이 긴…」의 우화를 통해 부조리극 스타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분단의 극복이라는 시대의 명제를 개인의 소박한 삶의 차원으로는 마음의 벽을 헐어 버리는 따뜻한 인간애에서 찾고 있다. 그의 뛰어난 희극 「토끼와 포수」는 서로 대조적인 인물 유형들이 서로 마음의 경계선을 허물고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뛰어난 극적 구성과 재치 있는 대사로 구축해 내고 있다.

「소식」 역시 소품이지만, 황량한 삶을 살아온 도둑이 따듯한 사랑에 의해 인간성을 회복해 간다는 얘기를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서로를 증오하며 마음의 벽을 높이 쌓아 온 부부의 이야기는 「불임증 부부」라는 우화 스타일의 극에서 '지옥'으로 상징화된다. 이 희곡의 상상력의 역동성은 '지옥'이 바로 '무한한 공간에 감금당한 고독'으로 형상화되어 있다는 데서 그 빛을 발한다. 이 부부의 불임증은 사실 서로에 대한 증오와 불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들은 죽어 지옥에 가서야 비로소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의 진실을 대면한다. 그들 사이의 경계선은 그 순간 사라지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데, 그들은 지옥의 규칙상 혼자 있어야 하므로 서로 영원히 헤어져야만 한다.

이처럼 작가는 '분단'을 비단 정치 현실에서만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내밀한 인간의 삶과 내면 풍경에서도 포착한다.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은 바로 모든 분단의 철조망을 스스로 끊어 버리는 때에야 가능하며, 억압적 권력자로 인해 비록 끊기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끊으려는, 극복하려는 의지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강하게 가진 만큼 그에 비례해서 인간을 권력이나 체제의 도구로 전락시켜 버리는 권력악을 고발하고 있다. 「흰둥이의 방문」은 소시민의 아파트 응접실을 무대 공간으로 삼아, 소시민의 일상적 삶의 풍경과 권력의 하수인으로서의 비인간성을 한 인물 안에 압축시켜 형상화함으로써 위에 말한 주제를 충격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극중 인물 '남편'은 아내의 무관심에도, 혹은 아내의 심부름에도 순종하는 지극히 착하고 유순한 소시민으로 나타난다. 갑자기 개가 방문하여 남편의 몫인 라면을 먹어 치우고, 남편에게 짐승들의 말인 울음소리들을 따라 하게 하고는 가버린다. 그후 그는 전화를 받고 데모 진압의 임무를 수행하러 가기 위해 경찰복을 입는다. 경찰 제복을 입으면서 그는 욕을 해대고 살의와 증오로 무장하게 된다. 이 희곡은 유순한 소시민이 경찰복을 입게 되면서 권력의 주구로 변모해 가는, 인간성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 역시 '권력의 추구'라는 상징성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고 있다. 인간성의 극단적인 변모는 가장 역동적인 무대적 힘을 발휘한다. 소시민을 증오심으로만 뭉쳐진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배후의 권력 체계와, 경계선 양편에 나누어 서서 돌과 최루탄을 던지고 쏘는 대리전 역시 철조망을 걷어 내지 않는 한 끝없이 이어질 분단 구조의 축도임에 분명하다.

그의 대표작인 「오장군의 발톱」은 그의 이전 희곡들이 보여 왔던 세계관과 인물 구도를 가장 완숙하고 감동적인 차원으로 구축한 뛰어난 작품이다. 무대장치로 지시되어 있는 동화적인 세계 속에서, 해와 꽃과 나무, 소와 살고 있던 농부 오장군은 어느 날 징집영장을 받는다. 군대 체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오장군은 혹독한 기합과 놀림을 받다가 사령관의 어깨를 주물러 주는 병사로 차출됐다가 적군의 정보 교란 작전용 병사로 적지에 떨어져 체포되고, 마침내는 '죽음까지도 연기로 장식한' 교활한 스파이로서 총살당한다. 이 희곡에서는 뚜렷하게 자연, 동화적 세계와 문명, 전쟁의 세계가 대립적으로 구축되어 뛰어난 연극성을 발휘하고 있다. 「오장군」,「꽃분이」,「어머니」,「먹쇠(소)」가 속해 있는 동화적 세계는 남을 속이거나 살상하는 일없이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유토피아적 세계이다. 그러나 전쟁은 승리·기능성·권모술수를 필요로 한다. 오장군이 꽃분이나 엄마를 부르며 죽는 최후까지도 '동쪽나라 만세'라는 애국적 행위로 위장된다. 이 작품이 감동을 주는 요인은 분명하다. 바로 전쟁의 비인간성, 야만성을 통해 결국은 우리 사회, 우리 문명의 비인간성,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을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며, 오장군이 속해 있던 동화적 자연의 세계는 문명화하면서 떠나오고 말았지만 우리의 본향이며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이 희곡에는 풍부한 시청각적 연극 기호들의 활용으로 연극적 상상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말없는 나레이터'로서의 구음과 클라리넷의 활용(아누이의「도둑들의 무도회」와 흡사하지만), 나무와 꽃들의 걸어다님, 소의 인간적 활용 등 자유 분방하게 풀어헤친 상상력이 보는 연극의 즐거움을 희곡 속에서 느끼게 한다.

우리 창작 희곡이 부진하다거나, 혹은 일반적으로 희곡을 '읽기'나 '쓰기'의 대상으로 접하는데 서먹한 독자나 문학도들이 많다는 현상은, 사실 희곡이라는 글쓰기의 특별한 어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글쓰기에 대해 안내해 주는 책이 거의 소개된 적이 없었다는 데도 원인의 일단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레이조스 에그리의 「희곡 작법」은 희곡이나 드라마 장르에 관심 있는 모든 이에게 특별한 관심을 끌 만하다.

저자는 <헝가리 출신의 극작가이자 뉴욕에서 오래 동안 극작 학교를 운영>해 온 사람으로 옮긴이에 의해 소개되고 있는데, 이 책은 장점은 역시 저자가 극작의 체험, 그리고 극작을 지도해 본 풍부한 체험을 바탕으로 기술했다는데 있다. 그 동안 번역은 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베이커 교수나 로슨의 「극작법」이 단순히 희곡 이론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 저서는 하나의 착상이 어떻게 플롯과 인물 성격의 형상화를 입어 희곡으로 완성되는가 하는 창작 과정을 구체적 예와 함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이래 희곡의 중심 요소를 주로 플롯으로 설정했던 것과는 달리 저자는 끝없이 <변화하는 내적, 외적 자극에 지속적으로 강렬하게 반응하는 영원히 변화하는 '인물'>을 희곡의 토대로 설정하여 이론을 전개해 가고 예증해 나가고 있다. 그 '인물'은 생리적, 사회적, 심리적 차원이 결합된 3차원적 인간이며, 갈등과 움직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새로운 시각은 흔히 글쓰기와 영감의 산물이며 재능이나 남다른 감수성, 상상력의 결과라는, 소위 낭만주의적 '천재관'을 거부하는데 있다. 그는 '인간의 삶과 자연현상들에는 모두 그것을 지배하는 규칙이 있는데, 왜 글쓰기라고 규칙이 없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극작상의 규칙들을 정밀하게 제시하고 다양한 예를 들어가면서 마치 강의하듯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극작 규칙의 제1조로, 먼저 희곡을 쓰기 전에 극에서 시종일관 나타내려고 하는 주제나 의도인 '전제'를 명확히 세우라고 말한다. 그는 여러 희곡들의 예를 들어 '전제'들을 분석해 보기도 하고, 보편적인 몇몇 전제들을 친절하게 제시하기도 한다. 특히 최초의 착상을 어떻게 '전제'로 구축하고, 또 이야기의 골격을 갖추어 나갈 것인가의 과정을 설명해 주는 부분은 기존의 극작법에 관한 책들이 결여하고 있는 부분으로, 희곡을 읽거나 쓰려는 문학도에게 매우 구체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기존의 극작법과 다른 시각을 보이는 부분은, 희곡 이론에서 '필수적 장면', '긴장'의 중요성을 거론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 개념들을 불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인간의 성격을 3차원적으로 구축해 놓기만 하면 그러한 연극의 부분들은 자연스럽게 자라난다고 말하고 있다. 명확한 전제로부터 자라난 등장 인물들은 갈등을 통해 전제를 입증하며, 갈등 사이에는 전환이 존재하여 자연스럽게 극행동이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인형의 집」의 예문을 통해 입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희곡은 등장 인물 중의 하나 또는 몇몇의 삶의 전환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대사는 작가가 아니라 등장 인물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극히 평범하면서 놓치기 쉬운 극작의 규칙들을 상세한 예문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는 '착상을 얻는 법'까지 설명함으로써, 글쓰기의 초보자들도 도움을 얻도록 배려하고 있다.

대략 이 책의 장점들이나, 특징을 열거해 보았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론적 토대라고 주장한 '변증법적 접근법'이 매우 강조되어 있기는 하나, 이 책에서는 그 방법론이 다른 극작 규칙들의 설명에 비해 구체적으로 제시되거나 예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책의 극작법은 사실주의 희곡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다양한 희곡 양식의 이해와 글쓰기에는 제한이 있다는 것도 지적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