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계의 열띤 '장단 논쟁'
-제2회 「91 국악학 전국대회」
송혜진 / 음악평론가
한국전통음악의 장단을 총체적으로 살피기 위해 기획된 국악학 분야의 큰 이야기 마당이 지난 5월 23일과 24일 양일간, 천안에 있는 단국대 예술관에서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약 100명의 국악학 전공자들이 제2회 「91 국악학 전국대회(한국국악학회, 한국국악교육학회 주최)」라는 명칭 아래 모였던 이 자리는 전국 대회의 명색이 무색하지 않게 대회 규모와 토론의 열기가 대단했다.
이날 학술 대회장에서의 열기의 의미는 두 가지로 풀이해 볼 수 있다. 한가지는 토론의 주제에 연유한다. 그 동안 우리 음악을 설명하면서 수없이 사용해 온 '장단'이란 용어가 사실은 단일화된 용례 없이 제각기 다르게 쓰여 왔기 때문에 학자마다, 연주자마다 여기에 대해 할 말이 많았던 것이다. 더욱이 그 동안의 학회에서 이처럼 '장단'만을 놓고 이야기 마당을 벌인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각기 다양한 이론(理論)과 이론(異論)을 가지로 있던 이들이 속 시원히 자기 주장을 펴고자 벼르던 자리였다고 생각된다.
다른 한가지 의미는 오랫동안 침체의 골에서 벗어날 줄 모르던 한국국악학회가 내실 있는 활동을 재개하려는데 대한 기대감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한국국악학회는 1948년 해방 직후 이혜구, 성경린, 장사훈의 발의로 발족한 국악학회의 후신으로 오늘날까지 국악학의 발달에 큰 공헌을 해 왔다. 그 동안 한국국악학회는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정기 월례 연구 발표회를 계속해 오는 한편 학회지 「한국음악연구」발간을 통하여 신진들의 연구 활동을 부추겨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주요 국악 관계 자료집과 연구서를 출판해 내는 일과 외국 학자들과의 학술 교류를 추진하는 창구 역할면에서도 한몫 했다. 이 같은 학회의 활동은 국악학 인구를 꾸준히 배출시켜 온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중심으로 국악학계를 대표하면서 꾸준히 지속되었다. 그런데 1980년 중반을 넘어서면서 각 대학의 국악과 설치가 늘어나고 학계의 관심이 여러 방면으로 분산되면서 학회 활동이 저조해지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학회를 이끌어 오던 1세대 국악학자들이 퇴진하고 2세대로 대물림하면서 재정비의 시간을 갖는 듯 했다. 그러다가 2세대의 이끄는 국악학회는 그 동안 축적되어 온 한국음악학을 재조명하고 국악학의 새로운 방향 제시를 위해 88년 제1회 국악학 전국대회를 열면서 활성화 조짐을 보였으며, 이번 제2회 전국 대회를 통해 학회 활동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이번 학술 대회는 23일 오후 2시 한명희 교수(서울시립대)의 사회로 시작되어 국악 학계의 원로 이혜구 박사(서울대 명예교수)의 「장단의 개념」과 국악학회장 권오성 교수(한양대)의 「한국전통음악의 장단론」등 두 편의 발제 강연이 있었으며 이밖에 양일간의 토론 자리에서는 정악에서부터 민속악에 걸친 다양한 '장단 섭렵'이 이루어졌다. 이론가, 연주가 등이 다양하게 발표자, 논평자로 나서서 열띤 논쟁을 벌인 이 자리에서는 국악 각 갈래에서 제각기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 용어의 문제, 개념의 문제, 채보의 문제, 장단 구조 이해에 관한 문제 등이 거론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모았던 것은 이혜구 박사의 발제 강연이었다. 이 박사는 강연 내용을 '장단이란 용어 사용의 모호성', '장단의 개념 정리'로 구분하여 50여분 동안 발표하였다. 발표 첫 부분에서 이 박사는 고악보로부터 현재 사용되고 있는 악보를 모두 검토하여 모호하게 사용된 장단 개념을 지적하고 <장단은 일정한 박자를 가진 박절(拍節) 또는 소절의 집합체>라고 정의했으며, 두 번째 부분에서는 장단을 이루는 박자와 소절의 구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내었다. 이 같은 이혜구 박사의 기조 발표는 지칠 줄 모르는 노학자의 학문 탐구열을 후학들에게 보여준 점과 방대한 악보설법을 기초로 한국전통음악의 박자 체계를 명료하게 정리해 내었다는 점에서 세미나의 첫 자리를 감동으로 이끌었다. 이밖에 한양대 권오성 교수는 '묶고, 맺고, 끊고, 겪고….' 등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장단과 가락 명칭을 음악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모색하여 장단 연구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소견을 피력하였다.
이상의 기조 발표에 이어 이틀간 발표된 주제는 단국대의 서한범 교수에 의한 「정악 장단론」, 국립국악원의 타악기 연주자 박종설씨에 의한 「민속악 장단 구조에 대한 분석」, 국립국악권 학예연구사 김현숙씨에 의한 「농악에서 채보와 분석의 문제」, 전북대 정회천 교수에 의한 「판소리 장단에 관한 연구」,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씨의「무속 음악 장단의 음악적 특징」, 음악 평론가 윤중강씨의 「조선 후기 장단 명칭에 관한 시대적 연관성에 대하여」 등으로 전통음악 전 분야를 아우르는 것이었다. 여기에 논평으로 나선 이는 각 분야의 이론가와 연주자를 비롯하여 국문학계 소장 학자와 음악 사회학에 관심을 가진 양악 평론가 등이 참여해 토론의 색채를 다양하게 이끌기도 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짜임새 있게 발표된 것은 김현숙씨의 「농악에서 채보와 분석의 문제」였다. 현장에서의 오랜 실기 학습 경험과 이론적 안목을 갖춘 김현숙씨는 그 동안 이루어졌던 농악 연구가 농악의 장단 구조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지 못한 이들에 의해 이루어진 점과 그릇된 채보를 바탕으로 분석한 농악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올바른 연구 길잡이를 제시해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한편 이번 세미나에서 가장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현재 한 장단이 24박이라 규정되고 있는 진양조의 장단 구조였다. 이 문제는 최근 일련의 민속 음악 연구자들에 의해 심심지 않게 거론되어 온 것인데 이번 세미나에서는 판소리의 장단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전북대의 정회천 교수가 '진양조 장단 6박론'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토론에 열기를 더한 것이다. 정회천 교수는 판소리의 기원을 무가(巫歌) 및 기층 음악으로 본다는 전제하에 무가의 지양과 육자백이의 진양이 모두 6박인 점을 들어 판소리의 진양조 장단이 6박이어야 옳다고 주장을 폈으며, 이에 대해서 가야금 연주자 및 민속 음악 연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가야금 산조와 판소리의 선율 구조와 음악 진행이 24박을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과 24박의 기저를 이루는 '기-경-결-해(起-景-結-解)' 혹은 '기-승-전-결(起-承-轉-結)'의 양론으로 진양 6박론에 맞섰다. 여기에 대해 이보형 씨는 <진양조 기본박은 6박이지만 일제시대 판소리 명창들이 진양조의 장단을 기-경-결-해의 논리로 음악을 다시 짬으로써 하나의 진양조 논리 구조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후 가야금 산조 연주자들도 24박 이론에 의거 음악을 연주하게 된 과정을 제시하여 <현재의 진양조는 6박자를 기본으로 하는 한 장단 24박이 옳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물론 이 논쟁은 뾰족한 해답을 내지 못하고 끝이 났다. 그리고 진양조 장단 6박론과 24박론은 진양조의 음악 구조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결부되어 앞으로도 상당한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윤중강씨가 발표한 「조선 후기 장단 명칭에 관한 시대적 연관성에 관하여」는 장단 명칭과 사회현상을 결부시킨 것으로서 참신한 착상이 주목되었다. 그러나 이 발표는 주제의 참신성에도 불구하고 내용상의 비약이 많은데다 세미나의 전반적인 내용이 장단의 구조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하는데 초점이 두어졌던 까닭에 진지한 토론으로 연결되지는 못하였다.
많은 논쟁거리와 진지한 토론으로 열기를 띠었던 이번 국악학회의 전국 대회는 이론가와 연구자들이 다같이 참여하여 장단이라는 문제를 놓고 다각도로 검토했다는 점에서 매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주제 선정과 토론 내용이 지나치게 장단 자체의 구조 파악에 편중된 나머지 실제로 장단이 음악 안에서 맡은 역할과 기능이 거의 고려되지 못했다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장단의 본체를 이해하고 음악 안에서의 기능을 살피기 위해서는 장단과 선율과의 관계, 장단과 음악 형식과의 관계, 장단과 템포와의 관계 등을 함께 다루었어야 옳았으며 그밖에 연구 과정에서 요청되는 채보와 분석의 문제, 장단 형성의 음악사적 고찰 등도 전 분야에 걸쳐 균형 있게 거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같은 총체적인 검토 없이 장단 자체만을 쪼개다 보니 아전인수격의 해석이 분분했고 이야기는 풍성했으나 장단 이해에 대한 성과는 그리 크지 못 했다고 판단된다. 오랜만에 규합된 학회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시키고 국악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된 국악학회의 전국 대회가 앞으로도 성공적으로 계속되기 위해서는 대회의 규모는 물론 내실 있는 토론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