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장편소설의 경향에 관한 일반적 고찰
신덕룡 / 문학평론가·광주대 교수
들어가는 말
최근 '전작 소설' 또는 '전작 장편 소설'이란 용어가 심심지 않게 거론되고 있다. 용어 자체로 보자면 이 말은 '연재를 거치지 않고 길게 써낸 장편소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장편 소설이 신문이나 문예지를 통해 연재되다가 연재가 끝난 후 장편소설로 묶여 출판되는 일이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이러한 관행은 적어도 우리나라에 있어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전작 소설'이란 말은 연재를 거치지 않고 완성된 작품을 출판사가 직접 책으로 묶어 내놓은 '전작 출판'된 소설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빈번하게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신문이나 문예지를 거치지 않고 87년 3월에 출판되어 문단에 비상한 관심을 일으킨 작품으로 복거일의 『비명(碑銘)을 찾아서』란 작품을 들 수 있다. '대체역사(Alternative History)'라는 특이한 소설적 방법을 통해 현실적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이 작품은 출판과 더불어 우리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으로, 또 전작 출판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물론 전작 출판이란 면에서 보면 최초의 작품은 아니었다. 박경리, 이호철, 한승원 등의 몇몇 작품(『출판 저널』91. 4 .20 참조)이나 발표되지 않은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하여 수상작을 결정하고 이를 출판하는 경우가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인의 작품으로 전작 출판과 동시에 데뷔작이 된 것으로는 처음이 아닌가 한다. 문제는 이 이후로 가장 짧은 기간에 대하소설을 써내고 있는 고원정의 『빙벽』을 위시하여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연재를 거치지 않고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87년에 출간된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나 고원정의 『빙벽』(1부)은 우리나라 출판 문화에 있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와 같은 현상은 신문이나 각종 문예지, 종합지에서의 연재소설이 과거와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한다는 점, 열악한 출판계의 사정으로 전작 출판이 불가능했던 점에 비추어 전향적인 흐름에로의 변화라 할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변화의 양상을 살핌에 있어 몇까지 전제를 하고자 한다.
첫째, 본고에서 대상으로 선정된 작품은 출판과 더불어 문단의 일각에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에 국한된다. 이것은 필자 자신의 게으름으로 인해 모든 작품을 섭렵 할 수 없었음에 대한 고백인 동시에 기왕에 논의된 작품들을 바탕으로 흐름의 윤곽을 살펴보자는 의도이다.
둘째, 대상으로 선정된 작품에 대한 문학성의 평가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십 수 편의 작품에 대한 작품론의 차원이 아니라 이들 작품의 경향을 살펴보자는 의도였기 때문이며, 이들 작품들에 대한 소박한 의문을 풀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라는 의미에서다.
셋째, 소박한 의문은 다름 아닌 전작 소설을 내놓은 작가들, 이들이 추구하는 문학 세계나 형상화된 내용 등 극히 일반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이다. 따라서 분류를 통해 전반적인 흐름이나 이에 대한 경향 그리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 이를 통한 작가나 출판계의 전망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친다는 사실이다.
'전작 소설' 의 작가들
본고에서 대상으로 선정한 작가들은 출판 년도 순으로 보면 대개 다음과 같다.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문학과지성사, 1987), 고원정의 『빙벽1∼8권』(현암사, 1987∼ ), 김남일의 『청년일기』(풀빛, 1988), 유순하의 『생성』(풀빛, 1988), 복거일의『높은 산 낮은 이야기』(문학과지성사, 1988), 정소성의 『여자의 성』(세계일보출판국, 1990), 이경자의 『머나먼 사랑』(풀빛, 1990), 윤정신의 『누나의 방』(청하, 1990),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민음사, 1990), 최용운의 『흰 겨울 검은 봄』(세계사, 1991), 이남희의 『바다로부터의 긴 이별』(풀빛, 1991), 안재성의 『사랑의 조건』(한길사, 1991), 최수철의 『알몸과 육성』(열음사, 1991), 한림화의 『한라산의 노을』(한길사, 1991) 등 13명의 작가와 14편의 작품이다.
우선 이들의 책을 출판한 출판사별로 볼 때 풀빛(4편), 문학과지성사(2편), 한길사(2편)의 순으로 나타나는 데 이들 출판사에서 본격적으로 전작 출판을 시도하면서 출판 문화의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 출판사가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내용의 작품을 전작 출판했다는 것과 함께 다양성의 측면에서 다른 출판사에서의 관심이 요구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들 출판사를 통해 자신의 장편소설을 간행해 직접 독자의 대면을 시도하고 있는 작가들은 대개 어떤 사람들인가 ? 좀더 구체적으로 이들의 연령층은 어떤 분포를 지니고 있는가 ? 이들의 전작 소설은 데뷔 후 얼마간의 시간적 거리를 가지고 발표되었는가 ?
전작 소설을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끌고 있는 작가들의 연령층은 대개 다음과 같다. 가장 나이가 적은 안재성(31세)에서 고령자인 유순하(49세)에 이르기까지 13명중에 30대가 7명, 40대가 6명으로 나타난다. 이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까지 모두 9명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전작 장편을 통해 직접 독자와 대면하고 있는 작가들의 대다수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에 걸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전작 소설 출판 년도와 데뷔 년도를 비교하면 데뷔 이후 5년 이내가 5명, 5년∼10년 이내가 3명, 전작 소설이 데뷔작인 경우가 2명으로 나타나는 바, 문단 데뷔 5년을 전후한 작가들이 '전작 장편 소설'의 작가군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30대 중반 이후 40대 초반에 이르면서, 데뷔 후 5년을 전후해서 전작 출판을 한 작가가 '전작 장편 소설'의 주역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 문단의 사정과 작가 자신의 문제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문단의 사정이라면 기존의 문예지가 지닌 보수성, 독자들의 독서 경향의 변화를 생각할 수 있다. 우선 문예지의 발표 지면의 한계를 생각할 수 있다. 80년대 들어 많은 문예지가 창간되었지만 그것이 월간지가 아닌 계간지나 부정기적으로 발행되는 무크지였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80년대 말 문예진흥기금이 끊김에 따라 기존의 월간지조차 계간지로 바뀌어 가는 실정이며 또한 『현대문학』,『문학 사상』,『문학 정신』등 몇몇의 문예지를 제외하고는 연재의 형식으로 작품을 발표할 수도 없다. 또한 기존의 문예지에서 연재를 하는 작가는 대부분 중견작가로 고정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들에 의해 점유된 지면을 신진작가가 할애 받기에는 증가한 작가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 있음도 사실이다. 위의 사정에 미루어 작가적 역량을 보일 기회조차 많지 않은 현실에서 연재를 시작한다는 것은 편집자의 결단이나 특별한 의도가 없는 한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또한 최근 독자들의 독서 경향이 단편보다 중편이나 장편을 선호하고 있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는 신진 작가들에게 두 가지의 불리한 점이 되고 있다. 첫째는 한정된 발표 지면이 작품의 양으로 보아 점점 축소된다는 것이다. 한정된 지면에 중편이나 장편이 전재됨으로 인해 적은 수의 작가만이 지면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신진작가에게 돌아오는 지면의 몫이 적을 수밖에 없다. 둘째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독자가 문예지에 연재되는 작품을 일일이 찾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근 문예지에서 내걸고 있는 각종의 문학상에 단편이 아닌 중편 위주로 수상작이 결정되는 것이나 연재물보다는 문학성 있는 작품을 한번에 전재하고 있는 것은 독서 경향의 변모에 따른 문예지의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자신의 문제는 외적 상황의 변화와 비교할 때 더욱 심각하다. 우선 80년대 들어 작가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는 80년대 초 기존의 몇몇 문예지가 폐간되면서 수많은 동인지, 무크지를 통해 많은 신인이 배출된 결과였다. 과거에는 문단 등용의 길이 신춘 문예나 문예지의 추천을 통한 좁은 길이었으나, 80년대에 들어 이런 기존의 관념이 무너지게 되었다. 기성, 신인의 구별 없이 각종의 잡지를 통해 자신의 글이 발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수의 잡지들이 경영상의 이유로 폐간됨에 따라 신인들의 살아남기 위한 움직임은 기존의 문예지를 통한 경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한정된 지면에 매달리기보다는 독자와의 직접 대면을 모색하게 되었고, 30대 후반의 작가들에서 특별한 직장 없이 오로지 글쓰는 일에 매달리는 전업 작가가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현상은 '전작 소설'의 작가들이 대개 80년대 초반에서 중반에 걸쳐 데뷔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대부분이 신춘 문예와 문예지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했지만 작가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못했다. 따라서 이들에 의한 '전작 소설'의 발표는 외적 조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전문가 의식이 발로된 단적인 예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복거일과 하일지의 전작 출판을 통한 데뷔는 특기할 만하다.
과거 시집을 통해 문단에 데뷔한 일은 왕왕 있어 왔지만 '전작 소설'을 통해 문단에 데뷔한 경우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출판사의 속성상,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작가의 연재된 작품을 출판하는 것이 관례였고, 영세한 출판사의 사정으로 보아 작가의 발굴보다는 이러한 일이 훨씬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작 소설'의 여러 모습
1) 시간적, 공간적 배경
대상으로 선정한 작품들에서 사건 전개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매우 특징적인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별표 1)
표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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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간적 배경 |
해방 직후 |
70년대 후반·80년대 후반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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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편 |
1 |
10 |
2 |
각 시대적 배경을 보면 다음의 사실이 드러난다. 첫째, 전작 소설의 대부분이 70년대 말 10·26으로 야기된 시대적 격동의 시작에서 5·18, 6·29, 노동자 투쟁, 총선, 대선, 6공화국 출범 등 시대적 흐름의 변화에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해방 직후의 제주도 4·3 항쟁을 다루고 있는 한림화의 『한라산의 노을』 역시 이러한 시대적 변혁의 와중에 새롭게 제기된 역사의 복원이란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최수철을 제외한 30대작가 전부와 유순하와 정소성 등 40대 작가가 80년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와 같은 사실은 두 가지 설명을 가능케 하고 있다, 첫째로 우리의 현대 문학사에서 보여지듯 항시 시대적 상황이 문학적 형상을 압도하고 있던 전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학이 상상력을 통해 바람직한 미래를 보여주기보다는 현실이 주는 중압에 대응해 온 과정의 연속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둘째로 전작 장편소설을 쓴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충분히 묘사하고자 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80년대가 평범한 역사의 한 부분이 아닌 충격과 경악, 분노와 격정, 좌절과 감동을 동시에 맛보게 한 시기였기에 이를 배경으로 한 삶의 형상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도 보여준다. 특히 30대의 작가들에 의한 80년대 삶의 형상화는 이들이 직접 대학에서 또는 대학 졸업 후 누구보다도 역사적 삶 앞에 영향을 받았으며, 이 시기가 자기 자신의 문제에서 나아가 역사적 삶에로의 방향전환을 촉구한 시기였음을 말해 주기에 충분하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80년대의 삶을 그려낸 작품들의 대부분이 역사와 첨예하게 부딪치는 공간을 소설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다. 우선 이들 소설에 나타난 공간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별표 2)
표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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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공간적 배경 |
대학 |
노동현장 |
병영 |
도시 |
가정 |
특정지역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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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편 |
2 |
4 |
2 |
2 |
2 |
1 |
1 |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 가운데 윤정선의 『누나의 방』, 이경자의 『머나먼 사랑』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설이 대학, 공장, 탄광, 병영을 소설적 공간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대학, 공장, 탄광이 시대적 삶과 첨예하게 부딪치는 현장이었음과 이들 작품들의 대부분이 역사적 삶의 형상화에 힘을 기울였거나 최소한 시대적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학을 소설적 공간으로 한 작품으로 김남일의 『청년 일기』는 70년대 말의 극심한 정권의 탄압 아래 학생운동을 하던 주인공이 시대적 변화와 함께 겪는 정신적 변화, 즉 성숙에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대적 아픔을 같이 하던 친구들의 해외로의 도피, 노동 운동에로의 헌신, 학생운동 전면으로의 등장 등의 변화를 통해서 대학인의 길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은 80년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운동사의 궤적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공장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으로 안재성의 『사랑의 조건』, 유순하의 『생성』 등의 작품은 모두 노동자의 열악한 삶과 노동쟁의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안재성이 철저한 노동자의 계급적 당파성과 이들에 의한 역사의 승리를 그려내고 있다면, 유순하의 경우 중간 관리자의 입장에서 오늘의 노동운동의 현장을 그려내고 있다. 모두 노동쟁의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지만 사로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것은 80년대 말 노동운동을 형상화한 많은 작품들에서 논의되었던 세계관의 차이와 한계, 또는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외에 특이할 사항은 이남희의 『바다로부터의 긴 이별』과 최용운의 『흰 겨울 검은 봄』이라 할 수 있다. 이남희의 『바다로부터의 긴 이별』은 소설적 배경이 공단의 주변, 즉 노동 현장이 아닌 인간이 배제된 산업화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바닷가의 마을을 공간으로 하여 공해로 인해 야기되는 열악한 삶의 조건을 다루고 있다. 80년대 말부터 본격적인 사회 문제로 등장한 공해 문제를 구체적인 공간에서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최용운의 『흰 겨울 검은 봄』은 탄광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미 80년대에 김종서의『탄(炭)』이 탄광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탄광을 배경으로 작품을 형상화한 작품이 드물다는 의미에서다. 이것은 직접 체험이 선행되지 않고는 탄광과 같이 특수한 공간에서의 삶을 형상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해 주기도 한다.
병영을 소설적 공간으로 하고 있는 고원정의 『빙벽』 역시 특이할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병영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공간은 사회의 축소로 나타난다. 개인과 전체의 만남에서 항시 개인의 패배가 기정사실이 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병영은 정치권력의 속성을 축소시킨 공간인 동시에 전체주의적 사고의 근원지라는 작가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전작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대학, 공장, 탄광, 병영은 단순한 공간적 다양성이 아닌 역사적 삶의 현장이요, 80년대 우리 삶의 변화를 일구어 내던 운동의 현장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의 문학적 형상이 우리 삶의 진실 드러내기라는 측면에서, 한림화의 『한라산의 노을』의 공간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된 공간에서의 삶의 진실 드러내기의 단면이 된다.
2)주제 및 문예사조적 경향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서의 창작 방법이나 작가의 세계관에 관한 문제는 전작 소설의 분류에 있어 중요한 변별점을 마련한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분류를 전체적으로 다시금 정리하는 의미에서다. 우선, 주제를 낳기 위해 동원된 재료로서의 제재를 살펴보면 노동 현장, 공해 문제, 4·3 항쟁, 전체주의 사고 등 사회현상에서 제재를 취한 작품이 6편, 병영에서 2편, 애정 문제에서 4편, 기타 2편으로 나타난다.
소설의 제재를 사회 현실에서 취해 온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그 성격상 사회 개혁이나 변화에의 전망을 주제로 한 작품이 대다수였음을 시사해 준다. 즉 제재의 성격이 작품의 주제로 연결된다는 점에서-이남희의 『바다로부터의 긴 이별』, 안재성의 『사랑의 조건』, 최용운의 『흰 겨울 검은 봄』,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등의 작품-시대적 삶의 현장을 소설화한 작품이 모두 사회 비판이나 사회변혁을 위한 적극적인 의지를 담아 내고 있음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애정 문제에서 제재를 취한 윤정선의 『누나의 방』과 정소성의 『여자의 성』, 이경자의 『머나먼 사랑』은 비극적 사랑을 통해 파괴된 삶을 그려내고 있다. 부분적으로 사회적 현실이 드러나고 있으나 이러한 요소는 주제를 형상화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근친 상간이나 예기치 않은 격정에 휩싸여 그 비극적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랑의 종말을 그리는데 충실해 왔다. 이러한 작품을 낭만주의 계열이라 한다면, 하일지와 최수철의 경우는 모더니즘 계열이다.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은 인간관계의 허상을 그리고 있다. 그 방법으로 빠른 템포의 일상적 대화, 익명의 주인공, 치밀한 묘사 등 현대 사회의 여러 특성을 소설 속에 넣고 있다는 점에서, 최수철의 『알몸과 육성』은 글쓰기 자체를 소재로 한 개인주의적 세계와 형식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의 경향을 띠고 있다.(하일지의 경우 포스트모더니즘적 요소가 강하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실험 단계라는 점에서 모더니즘으로 묶는다.)
이렇게 볼 때, 전작 소설의 문예사조적 경향은 사실주의 계열, 낭만주의 계열, 모더니즘 계열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실주의 계열이 9편, 낭만주의 계열이 3편, 모더니즘 계열이 2편임을 알 수 있다. 위의 사실은 우리 시대가 사실주의의 시대임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특히 창작 방법으로서의 사실주의는 80년대를 형상화한 작품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광주 항쟁으로 시작된 80년대의 삶은 과거 참여 문학론, 민족 문학론이 지향한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80년대 중반 이후 대부분의 소설이 이러한 경향을 띠고 있었다. 특히 이 시기에 노정 된 리얼리즘 논쟁은 문학적 형상의 성격에 관한 문제로 서로 다른 미학적 견해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었음을 상기하게 된다. 소위 80년대 작가군을 주축으로 노동자계급의 세계관과 이에 바탕을 둔 혁명적 인간형의 창출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입장과 문학의 인식적·예술적 가치를 중시하는 비판적 리얼리즘의 입장은 80년대 우리시대의 리얼리즘 논의의 핵심을 이루던 요소였다. 이것은 노동 현장에서 진정한 노동자적 삶을 그려낸 안재성의 『사랑의 조건』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주인공의 형상에 역점을 두는 것에서, 유순하의 『생성』은 정치 선동이나 계급적 당파성을 떠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의 문학적 형상을 중간 관리자의 입장에서 그려내고 있다는데서 단적으로 차이를 드러낸다. 후자의 경우 노동자계급의 엄숙주의를 통한 정치적 선동과 비교하여 객관적 현실 인식에의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세계관적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문제는 80년대 중반 이후 노동 소설에 대한 비판-엄숙주의, 노동자의 진정성, 영웅성, 지나친 정치적 태도로 인한 작품의 경직성 등-이 노동 소설의 폭과 깊이를 다원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유순하나 안재성의 작품은 우리나라 노동 소설의 현재를 말해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남희의 『바다로부터의 긴 이별』은 단순히 투쟁적 노동 소설이 아니라 산업화 이후 피폐해진 환경과 자본가의 탐욕으로 빚어진 환경문제를 제기함에 있어 노동 소설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외에 대하소설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빙벽』이 전체주의에 맞서 끊임없이 대결하는 깨어 있는 개인의 정신과 의지에 대한 믿음을, 김남일의 『청년 일기』가 사회 현실의 변화에 병행한 의식의 발전을, 복거일의 『높은 땅 낮은 이야기』가 최전선에 근무하는 젊은이의 소박한 통일에의 열망을, 한림화의 『한라산의 노을』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주의 문학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전통적인 소설 기법을 이용한 우리 삶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맺는말
독자들의 장편소설 선호 경향과 병행해서 출간되는 전작 장편소설이 문단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일은 우리 문학사에 있어 획기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나 고원정의 『빙벽』, 유순하의 『생성』,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 등의 작품은 출판과 동시에 문단에 새바람과 충격을 안겨 주었던 작품들이다. 이는 이들 작품들이 그 문학성에 있어서나 주제의 진지함에 있어서나, 그 작가적 역량에 있어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은 우선 이들이 신인층이라는 데서 빛을 발휘한다. 과거 대부분의 장편소설이 특정한 몇몇 작가에 국한되어 쓰여지고 있었다는 점, 이들의 연재 소설이 독자의 반응 정도에 따라 책으로 출판되었음에 비추어 신인들의 전작 출판은 그만큼 모험이 뒤따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에겐 작가적 역량 확인에 그치는 것이지만 출판사의 경우 막대한 경영상의 압박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험이 행해지고 있음은 우리 출판 문화의 성숙과 더불어 출판 문화의 제길 찾기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첫째, 전작 소설을 써낸 작가들의 대부분이 신인층이라는 점은 작가측에서 볼 때, 살아남기 위한 전문가 의식이 구체화된 결과라 할 수 있다. 한정된 지면을 극복하고 단편 대신 장편으로 자신의 작가적 역량을 가장 효과적으로 인정받는 길은 전작 출판을 통한 독자와의 직접 대화였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러한 노력은 출판사의 의도와 어느 정도의 일치점을 마련한다. 출판사 측에서 보면 재능 있는 신진작가의 발굴과 성장에 기여함은 물론 일정한 지향점을 표방한, 자신의 의도에 맞는 작품을 출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풀빛』에서 노동 소설 위주로 출판을 한다거나, 『문학과지성사』에서 자유주의적 시각을 갖춘 작품들의 작품을 많이 출판하는 것, 『한길사』에서 시대적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아직 전작 출판을 하고 있지 않지만 『창작과비평사』가 자신들의 방향에 걸맞은 작가들을 결집시키고 있는 것은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작가의 의도와 출판사의 의도가 일치하는데서 전작 출판은 점점 더 활성화될 전망이고 보면 이는 우리 문학사에 획기적 전환의 계기로 작용 할 것임이 분명하다.
둘째, 출판 문화의 성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잡지사에서는 연재물을 싣고, 이 작품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졌다고 했을 때 출판사가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출판사에서 책으로 엮어지는 작가의 작품이 대개 인기 작가의 작품에 한정되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독자들의 독서 수준이 향상되어 감에 따라 이들의 다양한 욕구를 몇몇 작가로 충족시키기엔 부족함이 있었다는 사실과 출판사가 과거와 달리 문화의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자 한다는 의욕이 신인층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과거 잡지사에 맡겨졌던 문학가들의 발표 지면을 출판사가 적극적으로 떠맡은 의미에서도 바람직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셋째, 장편화의 경향은 독자들의 독서 경향 이외에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문학가들의 노력에 의거하고 있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80년대와 같은 변혁기의 삶을 평상화함에 있어 짧은 단편으로는 현실의 변화하는 측면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는 자기 점검의 움직임이다. 복잡, 다양한 현실과 미래에의 전망을 총체적으로 그려내기 위해서는 장편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 의식의 결과가 소설의 장편화 경향으로 나타났고, 대부분의 전작 장편소설이 사실주의 계열에 속해 있음이 이를 반증한다.
이와 같은 전작 장편소설 출판의 배경과 경향에는 작품성의 문제 즉 일정한 수준에 다다른 작품이 출판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잇다. 14편의 작품에 대한 일반적 경향을 살피는 과정에서 필자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던 의문은 이 문제였다. 몇몇 작품의 경우 작가의 수준은 물론 출판사의 작가 선정 기준이 무엇이었냐는 의문이 들 정도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신인들의 겨우 보다 중견작가들의 경우에 심했는데 이는 작가의 안이한 자세와 출판사측의 게으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TV, 비디오, 영화 등 전파, 영상 매체에 의한 수동성에 길들여지고 있는 독자층의 독서에 대한 실망이나 작가에 대한 불신을 가속화시킬 우려마저 있다. 따라서 출판사측의 작가에 대한 투자는 문학성과 대중성을 갖춘 작가를 지원, 발굴하는 방향에서 적극적으로 되어야 한다.
여하튼 신진작가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전작 장편소설의 계속적인 출간은 출판사의 자세 변화의 힘입은 바 있지만 우리 문학사에 있어서 새로운 차원을 마련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본격적인 전업 작가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단편 위주의 작품이 아닌 장편화의 경향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한국 문학의 폭과 깊이를 담보하고 있다는 것, 기성작가들의 분발을 촉구한다는 점등은 90년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마련할 것이란 전망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