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봉석 / 중국연변 예술평론가
중국에 있는 200만 조선족들의 태반은 길림성 연변에 살고 있다. 1952년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수립되면서부터 연변은 중국 조선족들의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다.
자치 권리를 행사하는 연변의 문화 예술은 날로 번영 발전하고 있다. 그중 예술 단체들의 실태와 활약은 조선족들의 문화생활의 모습을 비쳐 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 단체의 성격과 방향
지금 연변에는 연변 가무단을 비롯한 14개 예술 단체가 있는데 주 1급에 4개, 현(시)급에 10개가 있다. 그중 조선족의 언어 문자를 표현 수단으로 하는 예술 단체는 10개가된다.
연변의 예술 단체는 국가 전인민소유제 사업 단위의 성질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소속된 단원들은 국가 간부 지표나 정식 노동자의 지표를 가져야 한다. 예술 단원의 명액은 국가에서 규정한다. 일단 규정된 명액은 자유로 변동시키지 못한다. 지금 예술 단체의 규모를 보면 주 1급의 예술 단체는 150∼300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현(시)급의 예술단은 70∼100명 정도로 조직되어 있다. 예술단에 들어오면 예술 급수에 따른 고정된 급료와 규정된 영양비 그리고 공연 회수에 의한 보조비를 받는다. 국가 1급의 예술가들은 대개 매월 300원(한국의 4만원 정도) 내외의 월급을 받고 일반 단원은 150원 정도를 받는다. 이러한 월급 수준은 타 직업의 공무원들에 비하면 높은 셈이다. 중국의 물가 수준이 한국보다 훨씬 낮은 점에 비추어 보면 이 정도의 급료로는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다. 60세가 된 단원은 퇴직 휴양하고 사업 연한이 30년 이상일 때는 100%의 봉급을 받는다. 혹 일부 단원들 중에서 예술 사업에 종사해야 할 타당성이 사라졌을 경우 여타 사업 단위로 전근된다. 그러므로 실직을 당할 일은 없다. 이러한 '철 밥통' 대우는 일부 예술 단원들이 적극성과 자각성을 갖지 못하게 하는 등의 폐단도 발생시켰으나 절대 다수의 예술인들은 신성한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예술 사업에 열중하고 있다.
예술 단체는 당 선전 기관의 정치적 영도를 받으며 그 실무 지도는 정부 문화 부문의 지도를 받는다. 예술 단체는 예술을 수단으로 하여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사업 단위이다. 그러므로 예술 단체의 활동은 어디까지나 <예술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 사회주의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견지한다. 사회주의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해야 한다는 이러한 정치적 좌표는 예술 단체의 활동에 그 어떤 정치적 구속과 틀을 부여하는 것 같이 생각되지만, 사실 이것은 예술의 목적은 인민들의 밝은 마음을 키우고 문명한 사회를 건설하며 인류의 진보를 도모한다는 숭고한 본질에서 출발한 것으로서 예술인들은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고 있다. 예술인들은 당의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문예 방침에 따라 창작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무릇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에 일조하고 인민들의 정신문화 생활에 밑거름이 되는 것이면 그 어떤 제재나 형식, 유파나 풍격(風格)의 작품이든지 창작 공연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작가들은 충분한 개성을 발휘할 수 있다. 사실 인민과 사회에 해악이 되는 예술을 만드는 것만큼 작가 자신을 구속시키는 예술 활동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연변의 예술 단체들은 인민들의 마음을 밝게 하고 문명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숭고한 직업 단체로서 신선하게 사업해 가며 예술인들은 '인간 정신의 기사'로서의 고상한 지위를 갖고 사회와 인민들의 존대를 받는다. 비교적 유족한 생활 대우를 받으며 민족 예술은 꽃피우는 성스러운 원예사로 인민들의 신망을 안고 웃음 속에서 사업해 가는 것이 연변 조선족 예술인들의 현재 위치이며 그들을 한 품에 안고 활약해 가는 것이 또한 연변 예술 단체의 참모습이다.
예술 단체의 구조와 운영
예술 단체의 내부 구조는 주 1급 단체와 현 급 단체가 규모가 다름에 따라 그 분화와 전문화에서 정도의 차이를 나타내긴 하지만 구조 체계는 기본적으로 같다.
예술단들은 주로 한 명의 단장과 부단장 약간 명을 둔다. 단장은 전체를 통솔하고 부단장은 실무 단장과 행정 단장으로 나누어 책임 지도를 실시한다. 실무 단장은 주로 예술 생산을 틀어쥐고 행정 단장은 예술단의 후근사업과 공연 활동을 조직한다.
예술단에서는, 예술위원회가 예술단의 모든 예술 종목을 결정하고 공연의 프로그램을 결정한다. 예술단 실무 부분 산하에는 대체로 창작조, 배우단, 무대 미술조가 있는데 창작조에는 문자 창작, 안무, 연출, 음악 창작원들이 망라되어 있고 배우단은 성악, 무용, 기악 등으로 나누어 각기 책임자를 두고 있다. 무대 미술조에는 무대미술, 효과, 장치, 조명등의 인원들이 망라되어 있다.
예술 단체는 국가의 지원을 기본으로 지방 경제의 지원과 개인 기업체의 후원을 받는 세 가지 경제 지원 도경을 거쳐 운영된다. 주 1급 예술 단체와 현 급 예술 단체에 대한 국가의 지원금은 일정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것을 기본으로 하여 단원들은 월급, 사업비, 창작비를 받고 있다. 큰 예술단은 대개 일년에 150만원(한국 원화로 1억 7천만 원 정도)의 지원금을 받고 작은 예술단은 15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받는다. 이 돈으로는 창작 비용을 충분히 해결할 수 없기에 예술 종목 준비에는 따로 예산 경비를 제출하여 지방 재정을 지원 받거나 자체적으로 도경을 찾아 개인 기업체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예술단은 대체로 자체 손익의 원칙 하에 운영된다. 가능하면 경비를 절약하고 공연 수입을 높여 자체의 건설에 보태고 단원들의 생활 복리도 돌본다. 공연 수입은 일정한 비례로 국가에 상납하고 나머지는 예술단에서 사용한다. 예술단의 공연 입장료는 3∼5원(한국 원화로 6천 원 정도)으로 그 수입은 적지 않다. 단원수가 적은데 반해 많은 공연을 하는 예술단은 상당한 공연 수입을 얻어 예술단 자체 건설과 단원들의 복리를 위해 큰 몫을 하고 있다. 예술 공연시 초대권 발급은 가능하면 제한하고 있다. 시연 때 초대권을 발급하면 그뿐이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해마다 공연 예술 단체를 평가하여 공연 수준, 공연 회수, 공연 수입 등에 따라 등수를 매기고 등급에 따라 장려금을 지불하는데 1∼2만원(한국 원화로 200만원 정도) 정도의 상금을 탄다.
예술 단체는 두 가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한 방면으로는 국가에서 전문 양성한 인재(예술대학 혹은 예술 전문학교 졸업생)를 받아들이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예술 단체에서 양성반을 꾸려 인재를 물색하고 양성하여 보충하는 것이다. 예술 단체는 전업성이 강한 자체의 특성에 따라 수시로 '신진대사'를 진행하여 전업 요구에 적합치 않은 단원은 다른 사업 단위로 전근시키고 새로운 단원을 받아들인다. 예술단의 정원은 제한되어 있기에 임의로 정원을 확대할 수 없다.
예술단의 풍격(風格)과 공연 회수, 공연 장르는 자체로 결정한다. 예술 단체는 자기의 독특한 풍격과 특점을 살리는데 많은 신경을 쓴다. 왜냐하면 불과 1백만도 안 되는 관중을 대상으로 하여 예술 단체들이 비집고 있기 때문에 관중을 쟁취해야 할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다. 연변 가무단은 자치주 직속 예술 단체이므로 주급의 행사와 외국손님 접대, 관중을 위한 공연 프로를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대형 종합성 가무 종목을 위주로 가극, 가무, 교향악 등 프로를 준비하고 때론 소분대 공연대를 조직하여 공장과 농촌에 내려가기도 한다. 그 외 「연변 연극단」은 장막극 공연을 위주로 소분대 공연을 하고 연길시 「조선족 예술단」은 전통성이 강한 예술 종목들을 꾸리는데 힘을 기울인다. 기타 지방 예술단은 대체로 가무와 극, 가극을 들고 나오면서 주로 소형의 가(歌), 무(舞), 구연(口演)이 결합된 종합 공연을 진행한다. 왜냐하면 지방 예술단은 공연의 소형화, 다양화의 원칙을 견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급의 예술 단체는 전업성이 강하고 현 급의 지방 예술단은 일전다능(一專多能)의 재간둥이들의 표현성이 강하다. 내용이 생동하고 형식이 다양하며 다채로운 표현들로 충만 된 이러한 공연들은 관중들에게 잘 받아들여진다. 그러므로 연변의 예술 단체들은 관중이 없어서가 아니라 예술 생산이 어려워 문제가 된다.
예술 생산과 공연 활동
예술 단체의 생명력은 예술 생산에 의해 결정된다. 때문에 예술 생산은 예술 단체의 기본적인 실천이 된다. 수준 높은 예술을 생산을 못하면 단원들은 의미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예술 단체는 모든 신경을 예술 생산에 집중한다. 연변 예술 단체의 기본 관중은 조선족이며 그 기본 과업은 민족 예술을 진흥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유구한 문화 예술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조선족들의 심미 요구에 부합되는 예술 창작을 하는 것을 선차적 과업으로 삼는다.
예술 생산은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하나는 예술단의 창작조를 중심으로 전 단원이 동원되어 창작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 사회적으로 작품 공모를 진행하거나 적극적인 인자들을 동원하여 작품을 걷어들이는 것이다. 예술 작품의 생산 과정은 매 창작 인원들이 자기의 작품 주제, 의도, 형식, 특징들을 먼저 창작조에 제기하고 그것을 가지고 열렬한 토론을 전개하여 보충 의견들을 제기하면서 창작의 가능 여부를 종합 진단한다. 다소 파악이 된 작품이면 연습에 들어가고 기본 윤곽을 세운 다음 예술위원회의 토론을 거쳐 최후 결정한다. 이러한 종합 진단을 여러 번 걸친다. 그렇다고 하여 작가의 독창적인 견해를 묵살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연변의 공연 작품들은 대개가 개인 지혜와 집합 지혜의 결합 산물로 나타난다. 이렇게 나온 작품이라 할지라도 최후 판결은 시연 공연에서 내린다. 사회적 효과와 관중의 공명대를 이루지 못할 경우 그 작품은 정식 공연으로 나가지 못한다. 때문에 연변에서 예술산품의 우수성 여부는 관객인 인민 대중이 결정한다. 이리하여 인민 대중은 예술의 진정한 평론가라는 원칙이 철저히 관철된다.
예술단의 공연 활동은 자체로서 조직한다. 그러나 어느 지방, 어느 극장에 가서 공연하든지 그 지방의 문화 부문 산하의 연출 공사를 경유하여야 한다. 문화 부문 산하의 연출 공사는 예술 단체의 공연을 선전하고 조직하고 중지시키는 권한을 갖는다.
예술 단체의 공연은 사회효익과 경제효익을 통일시키며 사회적효익을 첫 자리에 놓는다는 원칙을 견지한다. 내용이 용속하고 졸렬한 공연은 허용치 않는다. 그러므로 단순한 상업적 공연은 연변의 무대에서는 금지된다. 진지한 감동과 생동하는 예술 형상의 심미 공명으로 관중을 끌어들여 경제적 수입을 높이는 것과, 관중의 편리를 도모하여 관중을 찾아 공연하며 관중에게 예술적 향기를 주는 것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대극장에서 공연할 뿐만 아니라 소극장, 심지어는 온돌방에서도 공연 활동을 벌이는 것은 연변 예술 단체들의 기본으로 되고 있다. 이리하여 예술은 대중을 필요로 하고 대중들은 더욱 예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모든 예술 단체의 예술 생산과 공연 활동의 좌우명으로 되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무거운 연출 공구들을 짊어지고 가파른 산길을 넘어 산간 벽지의 마을을 찾아 공연하고 그것도 성이 차지 않으면 밤이 새도록 오락 잔치를 벌여 주는 것은 예술 단체들에게 나타나는 미담으로 되고 있다.
주요 예술 단체의 근황
자치주 직속 예술 단체인 「연변 가무단」은 중국 조선족들의 문화 예술 수준을 과시하고 있는 전문 예술 단체이다.
창단 4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연변 가무단」은 300여명의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는바 그 가운데 8명의 국가 1급의 작곡, 지휘, 안무, 창작 인원들이 있으며 23명의 국가 2급의 예술가들이 망라되어 있다. 60여명의 악대와 150여명의 성악, 무용수들을 갖고 있는 「연변 가무단」은 비교적 충분한 예술 대오를 갖추고 있어 각종 예술 장르의 공연을 의미 있게 조직할 수 잇다.
민족 특색이 짙고 생화 맛이 농후한 것은 연변 가무단의 예술 종목의 주요한 특징으로 되고 있는바, 일찍 무대에 올린 대합창 「장백의 노래」와 표현 독창 「처녀의 노래」는 세계 무대에서 상을 받았고 군무 「부채춤」,「물동이 춤」은 세계의 인기를 모았다. 그리고 가야금 병창 「장백산은 우리의 자랑」, 북 병창 「꽃피는 우리 살림」, 무용 「장고춤」,「논물관리원」,「농악무」는 나라 안팎에서 절찬을 받아 조선족 예술의 향기를 널리 풍기었다. 최근에는 또 가극「아리랑」을 전국 무대에 올려 창작 표현 최우수상을 받았고 금년에는 무극 「춘향전」을 국경 아시안 게임 예술제에 올려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연변 가무단」은 14차례나 북경에 가 외국의 사절들을 위해 공연함으로써 영예로운 국가 1급 표현 예술 단체의 칭호를 받았으며 소련, 조선, 일본, 미국, 남 슬라브 등 8개 나라에서 공연을 하여 그 성가를 널리 떨치었다.
1956년 「연변 가무단」의 연극조로부터 독립되어 나온「연변 연극단」은 인민들의 존대와 사랑을 받는 훌륭한 예술 단체로 소문 높다. 「연변 연극단」은 일찍이 연극 「춘향전」을 무대에 올려 연변 인민들을 들썩하게 하였고 북경 무대에서 공연하여 표현 1등상의 영예를 안아 왔다. 뒤이어 고전 명극 「심청전」을 공연하여 조선족 인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1959년에는 또 자체로 창작극 「장백의 아들」을 성공적으로 공연하여 인민들의 갈채를 받았다. 최근에는 장막 희극 「털 없는 개」를 무대에 올려 불과 3개월도 안 되는 사이에 100차의 공연 차수를 돌파하였다.
연길시 「조선족 구연(口演)단」은 80년대에 「연변 연극단」으로부터 독립되어 나온 애 어린 예술 단체이지만 신랄한 풍자와 웃음으로 생활을 생생하게 담아 내는 재치로 인해 관중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특히 연변에서 새롭게 창조해 낸 구연 형식인 「구포인」을 비롯한 만담, 재담, 극소품 등은 조선 인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전통적 예술에 현대적 미감을 곱게 씌워 이채를 모으고 있는 연길시 「조선족 예술단」, 가극 창작에 남다른 솜씨를 보여 독특한 인기를 끄는 「춘춘시 예술단」, 연극과 가무를 엇바꾸어 관중들의 심미 정취를 촉발시키고 있는 「룡정시 예술단」, 가무종합공연과 구연 공연의 결합으로 다채로움을 자아내고 있는 「화룡현 예술단」 등이 각각의 특점과 풍격을 과시하고 있다. 연변의 무대예술은 말 그대로 백화가 다투어 피는 아름다운 경연장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