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센 세계 연극제」의 문화전략과 방향
이윤택 / 시인·문학평론가·연극연출가
남의 돈으로 치른 세계연극제
6월 27일부터 7월 14일까지 독일 루르 지방의 상업도시 에센에서는 24개국 50여 개 연극·무용 작품들이 공연되었고, 이 공연들로 에센은 일약 유럽 공연예술계의 새로운 중심으로 각광받았다. 에센은 인구 70만의 상업도시로 독일 내에서는 문화예술의 불모지란 오명 속에 놓여 있는 부자도시다. 이웃한 뒤셀도르프나 보쿰에 비해 시민들의 문화적 관심이 빈약하고 문화시설 또한 대·소극장 합쳐 3개 정도에 불과했다. 대신 에센은 독일 내에서 가장 알찬 재정을 확보하고 있는 도시로 알려지고 있었다.
이번 「세계연극제」의 두 주역 하이메(연출가)와 리버만(기획자)은 바로 이 '문화 열등+ 알찬 재정'이란 도시적 특성을 십분 활용하는 문화전략을 구사한 것 같다. 연극은 어느 국가에서나 가난한 문화산업이다. 정부 보조금이나 기업체 후원으로 이루어지는 공연예술 재정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에센을 선택하면서, 「세계연극제」 집행위는 에센시 자체에서 380만 마르크의 후원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에센시, 장학재단, 폴크방 대학 재단으로부터 연극제 기본 예산을 확보했고, 예매 입장권 4만여 장이 거의 에센 시민들에게 소화되면서 100만 마르크의 수입을 오렸다. 한화 약 20억 원이란 돈을 에센이란 부자도시에서 긁어낸 것이다. 독일 연극인들의 기획력은 바로 이런 '남의 돈 긁어내기'에서 그 탁월한 능력이 입증되고 있었다.
연극제 총기획자 리버만은 에센시 뿐만 아니라 해외 참가작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홍보, 재정, 전략을 구사한 것 같다. 부국 일본이 스폰서 대상국으로 지목되면서 일본의 가부키, 부토, 현대극들이 대거 초청 기획되었다. 그 대신 연극제 총예산의 3분의 1정도를 일본측에서 부담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측에서는 일본연극 특집까지 꾸며준 영국 「에든버러 연극제」에는 스폰서국으로 나서면서 리버만의 제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독일 연극 기획자와 일본의 밀고 당기기식 스폰서 전략이 눈에 훤하게 들어온다. 우리나라 연극계처럼 외국 초청작품이라고 하면 왕복 항공료에 호텔 수박 등 고액의 개런티로 식사 대접하는 선심을 독일은 쓰지 않았다. 참가하는 공연단체는 가능한 한 참가국의 돈을 가지고 오게 하는 구두쇠 전략이 독일 연극인들의 기획 방향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독일의 구두쇠 전략 때문에 우리 「연희단 거리패」 또한 애를 먹었다. 항공료를 자비 부담해 달라는 요구가 독일문화원을 통해 문예진흥원에 제시되었고, 그래서 항공료를 문예진흥원의 지원금으로 충당했다. 3일 공연에 임비를 4일 밖에 주지 않겠다는 연극 집행위측의 주장도 나를 화나게 했다. 호텔 숙식비 지급을 이렇게 한다면 나머지 일정의 비용은 결국 우리가 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여기에다 개런티 지급까지 깎으려고 들었다. 원래 2일 공연으로 예정되어 있었고, 예매상황이 의외로 좋아지면서 3일 공연으로 둔갑되었는데 개런티는 2일 계산으로 지급하려고 했다. 이러한 독일의 연극제 집행위 측의 구두쇠 전략에 나는 완강하게 맞섰다. 독일문화원 문화담당 맹완호씨의 도움과 자문을 받으면서 악착같이 계약서에 사인을 않고 버틴 결과 우리는 5일 숙식 계산에 이틀 절반 수준의 개런티를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밀고 당기기에 한 달이란 기간이 걸렸다.
「에센 연극제」의 탁월한 기획자 리버만은 이런 방식으로 중남미 아시아 연극을 끌어들인 듯 하다. 극단으로 참가한 「신주쿠 양산박」은 대형 특수장치 무대로 각광을 받았는데 일본 자체 지원금이 2천 2백만엔(한화 1억2천만 원 상당)이었다. 한 극단이 참가하는데 1억이 넘는 지원금을 제공하는 일본측 사정을 감안한다면, 왜 일본연극이 세계무대에서 환영받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란 나라가 영국, 독일 등 유럽의 문화선진국 스폰서로 지목되고 있다는 자체가 신기롭고 씁쓸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남의 돈을 긁어모은다는 독일 연극계의 기획력에 감탄과 경이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우리 연극계가 반드시 배워야 할 문화전략인 것 같다. 국내공연이건 해외공연이건 문예진흥원 지원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 극계의 사정으로서는 극단 입장이나 문예진흥원 입장으로서나 상호 부담스러운 노릇이다. 연극에 대한 지원은 다양할수록 좋다. 참고사항으로 일본 「신주쿠 야산박」의 지원금 수혜 내역을 보면, 일본 국제문화기금, 공경도 지원금, 세이부 백화점 후원금 등이다. 그러니까 한 극단에서 1억이 넘는 제작비 지원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극계는 기획력에서 이미 후진적이다. 이 책임은 근본적으로 연극인들에게 있다.
지역연극제 성격의 실험극 페스티발
「연극, 미래로 가는 길-에센 91'세계연극제」는 엄밀한 의미에서 지역연극제 성격을 띄었다. 2년마다 지역을 순회하면서 개최하는 독일 세계연극제의 명목상의 위원장은 바이체커 대통령이지만, 철저하게 개최지에서 예산과 집행을 책임지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1989년 함부르크에 이어 열린 「에센 세계연극제」는 기존 3개의 극장 외에 폴크방 대학 구내, 광장의 가설 천막극장, 서점, 빈 화물칸 등의 무대로 변용 되면서 오히려 실험적이고 특색 있는 문화공간을 창출했다. 공간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연극은 적응할 수 있다는 모범을 보여주면서 「에센 세계연극제」는 유럽에서 가장 전위적인 연극들로 채워졌다. 현대연극이 극장 공간 속에 한정되어 있기를 거부하는 조류이기도 하지만, 열악한 문화시설의 취약점을 오히려 역이용해서 다양한 공연형태의 실험적인 충격들을 제시한 셈이다.
연극제 개막 작품으로 선정된 비엔나 「부르크 테아터」의 「영웅광장」(클라우스 페이마 연출)은 야외극으로 광장에서 공연되었다. 바로 이 야외극의 신선한 충격이 「에센 세계연극제」를 초반부터 열기를 모을 수 있게 한 비결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의「빵과 인형 극단」이 공연한 다섯 개의 레퍼토리도 모두 야외극 형태로 진행되었고, 낭송극 「피곤한 사냥」은 서점에서 공연되고 있었다. 서점이 무대가 되고, 통로를 막아서 나무 의자를 설치한 것이 객석이었다. 「신주쿠 양산박」은 자체 천막극장을 만들었고, 「연희단 거리패」가 공연한 극장은 백화점 내 소극장 카사노바(360석 규모)였다. 소극장으로 카사노바 1(360석), 카사노바 2(100석), 그릴로 극장(600석), 알토 극장(1000석 규모)이 에센의 공연장 전부였다. 여기에 폴크방 대학 구내 폴크방 아우라 극장, 광장의 천막극장이 동원되었고, 그 외는 기존 구조물을 이용한 공연이었던 셈이다. 여기서 24개국이 50여 개의 작품이 소화된 것이다.
이런 시설 내역이라면 우리는 부산이나 광주쯤에서도 얼마든지 세계연극제를 유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시설물이 아니다. 내용의 질이며 방향성인 것이다. 우리의 문화투자가 고정시설물에 집중된 감이 없지 않은데 대한 반성 같은 것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문화투자는 시설 보다 인적 향상과 연구에 더 비중이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제부터라도 여기에 대한 자각은 있어야 할 것 같다.
독일의 세계연극제가 지역을(특히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순회하면서 개최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문화적으로 낙후된 도시에 세계 유수의 전위극과 수준 높은 공연예술 작품들을 대거 선보이면서 폭발적인 붐을 조성한다는 것이 독일 세계연극제 순회개최의 의도인 것 같았다. 이 기획의도는 에센에서 그대로 적중되었다. 극장마다 만원사례를 이루었고 에센 시민들은 새로운 연극에 놀라운 반응을 보여주었다. 「연희단 거래패」의 「오구-죽음의 형식」은 공연도중 7∼8번의 중간 박수와 탄성과 폭소를 받았다. 공연이 끝났을 때는 함성과 함께 5분 정도 계속되는 기립박수를 받았다. 객석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관객도 있었다. 서울이나 부산, 심지어 동경 공연에서보다도 더 열광적인 반응을 받은 셈이다.
여기에 대한 독일 연극인들의 분석은 일단 긍정적이었다. D. 링케 씨(전독일 ITI사무국장)는 "독일인들은 체면치레의 박수는 치지 않는다"라면서 공연의 성공을 축하해주었다. 헤벤그렌 여사(국제 연극협회 위원을 지낸 핀란드 연극인)는 "「오구-죽음의 형식」은 유럽에서 행해지는 죽음의 의식을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하게 하는 발상의 전환을 제공했다. 그것도 무거운 주제를 비교적 쉽고 대중적인 방법으로 소화해내면서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한 듯 하다"고 말했다. 헤벤그렌 여사는 「오구-죽음의 형식」 핀란드 공연을 제의했다. 일본의 연극평론가 에도가와 하세오씨는 "한국 문화의 새로운 변용이었다. 간단한 무대형식으로 연극적 에너지를 극대화함으로써 무엇보다도 연극이 재미있는 장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선후평을 남겼다. 이러한 반응을 에센 시민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재미였을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면서 문화적 관심도와 자부심을 고취시킨다는 것, 이제 바로 독일 연극인들의 지역연극에 대한 애정과 실제적인 육성책인 셈이다. 우리처럼 이름뿐인 지방연극제와는 발상 자체가 다른 것이다. 지역연극을 발전시키려면 가장 선진적인 문화유형을 제공하면서 열린 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주어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식의 지방자치는 오히려 지역문화를 폐쇄적인 독단과 원망에 빠지게 한다. 이점에서 「에센 세계 연극제」는 지역연극 활성화의 가장 구체적인 성공사례로 남는다. 에센 시민들은 이번 세계연극제를 계기로 문화시민으로서의 자각과 연극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킬 게 분명하다.
연극, 미래로 가는 길- 세계 연극의 방향
「에센 세계연극제」가 국제적 규모로서 손색이 없었던 것은 먼저 유럽의 최고 수준의 극단을 유치할 수 있었다는데 있다. 비엔나 「부르크 테아터」의 「영웅광장」, 프랑스 여류연출가가 이끄는 「태양극단」의 「레 아트리드」 등 유럽에서 가장 집중된 찬사를 받았던 공연들을 유치했다. 그리고 동구권, 중남미,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들을 최대한 다양하게 배치함으로써 세계연극제로서의 레퍼토리에 손색이 없었던 것이다.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에센 세계연극제」는 연극성 자체에 대한 미래 좌표를 설정해 놓고 있었다.
이번 「에센 세계연극제」에서 대주제로 선정된 것이 문화적 선진국과 저개발국으로 양분되어 있는 세계연극의 통합적 시각이었다. 유럽권과 비유럽권 연극의 시각 차와 수준 차를 상호 이해하고 교류하면서 세계연극의 영역을 세련된 서구 연극관으로만 파악하지 않으려는 자기반성이 엿보였다 고나 할까. 이런 의도에 부합하듯 유럽 연극인들에게는 중남미, 아시아 연극의 특수성을 연극적 범주로 수용하고 상호 발전적인 교류의 길을 트는 계기가 되었다.
연극제 개막행사 자체가 이러한 문화교류에 대한 워크숍이었다. '40명의 젊은이들이 축제를 시작합니다'라는 구호와 함께 유럽권 20명,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연극인 20명이 모여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주년」이라는 주제로 인종 차별주의 및 식민주의에 대한 연극적 수용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나치게 분화되어버린 서구연극에 대한 반성적 작업으로 총체극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오구-죽음의 형식」이 초청된 의도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었다. 언어의 의미적 기능에 매달리는 연극은 없었다. 어는 민족이 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연극은 없었다. 연극이 지니는 세계성은 시각, 청각, 정서적 충동 등에 의하여 보편적 이해와 공감에 도달하게 된다. 「에센 세계연극제」가 선정한 레퍼토리의 기준 또한 이런 것이었다. 춤과 노래와 대사가 함께 어우러지는 연극들 일색이었다. 극장 안 뿐만 아니라 도시 어느 공간에서도 공연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연극은 이제 의미와 그 장의 한계에 묶이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시켜준 것이 「에센 세계연극제」의 미래 좌표인 듯 하다. 이러한 세계연극 범주의 통합적 작업에 「오구- 죽음의 형식」이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서 기뻤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바람직한 반응을 얻어내어서 최소한의 한국연극에 대한 존재의미와 긍지를 심었다고 생각한다. 공연 다음날 중립지 「웨스트 도이체 알게마이네」 문화면에 난 신문평을 참고로 싣는다.
<「에센 세계연극제」는 한국의 마지막 공연과 함께 열광적으로 막을 내렸다. 비록 주제가「죽음의 형식」이었지만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카사노바 극장에 모인 관객들에게는 희극적인 민속극이었다. 그 연극은 많은 춤과 장단과 눈물과 폭소로 구성되었다. 유머와 스릴도 이 연극은 제공했다. 이 연극은 죽음을, 슬픈 최종 상황이라기 보다 뒤에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에너지로 파악했다. 작·연출자 이윤택은 이 죽음의 형식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지적 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통사회에 대한 비판적 도전의 시각이 깔려 있었다. 이 극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략)이것은 위트 넘치면서 풍자적이다. 그러면서도 아시아의 매혹적인 특성과 찬란함과 흥겨움이 축제의 의미 있는 대미를 장식했다.>(베른트 기제 베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