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

살아 있는 축제의 공동체 의식




신찬균 / 문화재위원·국민일보 논설위원실장

축제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다. 농경 사회에서 풍요한 추수가 끝나면 신에게 감사를 드리고 그 동안의 노고를 서로 위로하며 한동안을 즐겼다. 유목민족은 부족이 이동할 때마다 공동체 의식을 다지기 위한 놀이판이 있었고 새로운 대지에 정착하면 다시 제의적 의미와 함께 안녕을 위한 축제가 뒤따랐다. 그것은 새로운 출발을 뜻하기고 했고 새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고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제의적인 의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늘날의 축제는 현장성이 없어지고 본래의 제의성도 퇴색했지만 공동체 의식을 다지거나 기층 문화의 원형을 확인하는데는 더할 나위도 없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축제로 지탱되는 나라, 일본

세계 민족 가운데 일본인처럼 축제를 좋아하고 즐기는 민족은 드물 것이다. 축제는 한 마디로 일본의 바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일어의 마쓰리(祭り)는 그 원래의 뜻이 '바치다(獻)'이다. 신에게 귀한 음식을 올린다는 의미인 것이다.

추석 무렵 치러지는 다마 마쓰리는 혼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이다. 이 제사의 대상은 선조의 영혼이다.

일본의 축제는 설날부터 시작된다. 집집마다 소나무(松), 대나무(竹), 매화나무(梅)를 베어 다가 장식한다 소나무는 힘과 장수를 의미하고, 대는 생장이 빠를 뿐만 아니라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절대로 꺾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유연성을 상징한다. 또한 매화는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어서 즐겨 장식한다.

일본에서 가장 설날 기분을 내게 하는 장식이 가도마츠(門松)이다. 새끼로 만든 대(臺)에 대와 소나무 가지를 매단 것으로 문의 양쪽에 놓는다. 이 새끼줄은 시메나와(注連繩)라고 부르는데 원래는 유명한 신화에서 연유됐다.

설날이 지나고 7일과 15일에는 신년 축하의 마지막 날로서 장식물을 태운다. 아사구사 도리고(島越)에 신사의 축제는 그 가운데서도 유명하다. 큰 모닥불을 둘러싸고 사람들은 대나무 지팡이로 땅바닥을 두들기며 '돈돈 야키(자꾸 자꾸 태우기)'라고 외치며 빙빙 돈다. 모닥불에서 주운 작은 소나무 가지를 꽃병에 꽂아 두는 집도 있다.

일본에 축제가 얼마나 많은가는 우선 도쿄만 예를 들어도 알 수 있다. 신사나 사원에서 관례적으로 열리는 제례는 경건하고 종교적인 것에서부터 축제에 이르기까지 연간 250건에 달한다.

도쿄의 축제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은 오에시키(御會式)이다. 10월 12일과 13일 이틀 동안 열리는 오이시키는 리치렌 종의 개조 리치렌의 기일에 해당하는 법회이다. 1282년 리치렌이 입멸한 곳으로 알려진 본문사는 하루종일 참배자로 들끓는다. 신자들은 만등을 들고 장대 잡이 흰 종이로 장식된 장대를 휘두른다.

도쿄의 신사에서는 그곳에 모시고 잇는 우지가마(氏神)를 위한 제례를 올린다. 이때 신을 모신 가마가 창고에서 나온다. 미코시(神輿)라고 부르는 이 가마는 신의 혼령이 다른 곳으로 옮겨질 때 타는 가마이다. 신관은 신에게 '삼가 내려 오셔서 축제의 성찬과 행사에 가담하소서'라는 축문을 읽고 혼령을 맞이한다. 가마는 젊은이들의 어깨에 메어져 군중들 사이로 나간다.

일본의 도시는 농촌 사회가 붕괴되면서 흘러 들어온 농민들을 그대로 포용하고 있다. 포용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 사회가 지닌 풍속을 비교적 잘 지키고 있다. 따라서 현재도 축제는 일본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고 있으며 일본적인 사고의 원형이 된다.

향토축제는 농경 문화의 영향 짙어

도시에서의 축제에 비해 농촌에서의 축제는 아직도 농경 문화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다. 조선조부터 교류가 많았던 오키나와는 현재 일본 소속이지만 원래는 유구왕국(盜球王國)으로 대륙 문화 그 가운데서도 한반도의 문화를 가장 많이 받아들인 곳이다.

요나바루(無那原)는 오키나와 본도(本島)의 동해안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이곳의 인구는 고작 1만 2천명, 옛날에는 어업이 성했으나 지금은 상업 도시이다. 이 작은 도시에서 2천명 이상이 동원되고 수만 명의 관람객이 모여드는 줄다리기 축제가 열리는데 이 축제가 시작된 것은 아득한 옛날부터이다.

그러니까 도시 전체 주민은 물론이고 멀리 크고 작은 섬의 주민까지 전부 몰려들어 이 축제를 즐기는 것이다. 이 축제에 사용되는 줄의 직경은 자그마치 2m이고 길이는 50∼60m나 된다.

당초 줄다리기 축제는 음력 6월 26일에 있었으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생활에 알맞도록 음력 6월 26일부터 처음 오는 일요일에 행사를 하고 있다. 문헌상으로는 상영왕(常永王) 때부터 줄다리가가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만약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4백년 전부터 오키니와에는 줄다리기 축제가 있었던 것이다.

줄다리기는 동쪽과 서쪽으로부터 수백 명의 남자들이 줄을 메고 현장까지 행진하는데서 시작된다. 맨 앞에는 고유한 의상으로 단장한 어린이들이 줄지어 가고 뒤를 이어 부녀자들이 역시 고유한 의상으로 성장한 채 춤을 추며 행진한다. 그 뒤로는 소녀들로 구성된 고적대가 뒤를 따르는 데 옛날에는 북만을 든 청년들이 전의(戰意)를 높이기 위해 북을 치며 춤도 추고 뛰기도 했다고 한다. 줄다리기는 동쪽이 숫줄이고 서쪽이 암줄로 되어 있으며, 동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음양의 성(性)을 상징하는 두 개의 숫줄과 암줄이 광장에 도착하면 숫줄고리를 암줄고리에 삽입시킨다. 이 부분에서는 우리나라의 입석줄다리기나 고싸움놀이와 거의 흡사하다.

숫줄이 암줄에 들어가려면 앙탈을 부리는 장면이나, 합해질 것 같으면 이리저리 피하는 암줄의 기교는 관람객들의 흥분을 더 해준다. 동서 양쪽의 남정내들은 2∼3m길이의 장대로 성기 부분을 받쳐 올려서 두 줄이 하나가 되도록 몇 번이나 시도를 한다. 이윽고 숫줄이 암줄의 구명 속으로 들어가면 서너 명이 들고 있던 길이 5m정도의 굵은 간두키봉(비녀목)을 꽂는다. 이렇게 해서 줄이 하나가 되면 두 편으로 나눠진 주민들은 '에이사' 소리를 내며 서로 잡아당긴다. 안으로 쌓였던 에너지가 발산되는 축제가 된다.

요나바루의 줄다리기는 철저하게 농경 민족의 민속을 닮고 있다. 어업을 주로 하면서 농경 민족의 민속이 이어지는 이유는 대륙 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줄은 꼭 벼를 벤 다음에 얻을 수 있는 짚이어야 하고 왼쪽으로 꼬아야 한다. 줄다리기 아침에는 배소(拜所)라고 불리는 네 군데의 신전에서 제사를 지낸다. 한국의 모든 민속놀이들이 동제를 지낸 후에 열리는 것처럼, 요나바루의 줄다리기 축제 역시 신전에 제사를 먼저 올린 후 열린다.

그러나 줄은 동서로 나누는데 동은 해안 숫줄을 상징하고 서쪽은 육지 암줄은 상징하는 등 육지의 민속과는 다른 면도 보인다. 또 줄을 메고 동네를 한바퀴 또는 풍습이 우리나라 줄다리기와 비슷하다.

요나바루 줄다리기는 지금은 관광이나 평범한 연중행사로 돼 있으나 원래는 주민들의 생사와 깊은 관계를 지닌 풍요제라고 할 수 있다. 동쪽으로부터 신을 모셔들여 농사가 잘 되도록 비는 줄다리기는 요나바루 주민들의 공동체적 정신의 집결이라 할 수 있다. 동쪽으로부터 신이 온다는 생각은 해가 뜨는 쪽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풀이된다.

이렇듯 일본은 축제의 나라이다. 고을마다 축제가 있다. 같은 형태의 축제가 여러 고을에서 행해지거나 고을에 따라 특유한 형태의 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950개 마을에서 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격렬한 삼바의 축제, 리오 카니발

프랑스의 감독 마르셀 카뮤가 제작한 「흑인 올페」는 희랍 신화 올페와 유리디스의 비극을, 카니발과 춤으로 출렁이는 리오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이다. 리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살고 있는 올페는 어느 날 의문의 남자를 피해 리오로 온 유리디스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마침 리오의 카니발이 시작되는 날이어서 올페와 유리디스는 밤새 삼바 춤을 춘다. 그러나 의문의 사나이에게 쫓긴 유리디스가 죽자, 올페는 그를 안고 절벽으로 떨어진다. 리오의 카니발을 희랍신화와 접목시킨 명작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축제라고 하면 우선 리오의 카니발을 생각할 만큼 결렬하고 인간의 혼을 빼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원래 카니발은 고대 그리이스인들의 축제였는데, 기원을 보면 옛 이교도의 풍연을 기원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어 발달한 것이다.

무대화한 바 없는 축제이면서 인간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잔치인 셈이다. 카니발을 앞둔 사람들, 그 가운데서도 처녀들은 신데렐라가 되는 꿈을 꾼다. 금속 장식의 번쩍이는 옷을 입고 팬티 모양의 탕가를 입은 여인들은 누구나 자기 몸을 탐내도록 최대한으로 속살을 내놓는다.

카니발에서만은 하녀나 그 밖의 더 낮은 일을 하는 여인들까지도 왕비 같은 옷차림으로 대로를 활보한다. 리오의 축제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 파벨라(빈민촌을 뜻하는 포르투갈 어)의 판자촌에서 사는 이들은 「에스콜라 디 삼바」(삼바 학교)라고 하는 카니발 조합을 만들어 대중문화를 창조해 간다.

삼바 스쿨은 단체정신으로 조직된 모임이다. 카니발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나면 3월이 되는데 이때쯤이면 다음 카니발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한 작전이 시작된다. 학교간의 경쟁은 반세기에 이를 정도로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승을 하면 상금과 트로피를 얻기 때문에 학교로서는 영광이다.

처음 꾸미는 일은 카니발 삼바에 주제를 살리도록 작곡을 하고, 학교에 소속된 작곡가들은 한달 동안 작곡을 해서 노래를 만들어 낸다. 무대장치 전문가들은 행렬을 어떻게 꾸밀까 생각하면서 꽃수레를 만들고 무용수들의 호흡을 맞춰 본다. 11월이 되면 스쿨들은 삼바곡을 결정하고 리허설을 통해 모금을 시작한다. 시민들은 리허설을 구경하면서 기부금을 보태 주는 데 돈을 많이 번 스쿨은 백만 달러 가까운 돈을 카니발에 써 버리기도 한다.

카니발은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의 토요일 정오에 시작된다. 밤 10시쯤 되면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되어 퍼레이드를 벌인다. 그 규모는 적을 때에는 10팀, 많을 때는 14개 팀이 참가해서 온통 세상을 축제로 들뜨게 한다.. 쏟아지는 꽃수레와 천둥 같은 북소리, 그리고 요염한 춤으로 사람들을 뇌살 시키는 여인들의 춤이 하늘과 땅을 메워 버린다. 각 스쿨의 참가 인원은 2천 5백 명 정도.

이들이 춤을 추기 위해 물고기처럼 뛰어 오르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한해 동안 리오의 카니발을 기다리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념을 떠난 민족의 축제

남미의 축제는 매우 흔하다. 1982년 7월 23일 멕시코시티를 방문했을 때였다. 마침 샌디에이고 축제가 열린 탓으로 북소리 딱총 소리가 요란하고 인디오의 현란한 춤이 눈부시었다. 카톨릭 성당 아래 마련된 축제는 멕시코에 기독교를 전해 준 성인을 위한 잔치였다.

아즈텍 왕조를 멸망시키고 혼혈 정책을 써서 메스티조라는 새로운 종족을 만들어 낸 스페인 침략자들 위한 축제인 셈이었다. 백인이 언젠가는 멕시코를 점령할 것이라는 케살쿠아스 신화를 그대로 믿던 아즈텍 왕조은 불과 7백 명의 스페인 군대에 의해 천년 사직을 잃어 버리고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해 버렸다.

위대했던 마야 문화나 아즈텍 문화는 단절되고 다만 서민 속에서 이어오는 춤을 요란하게 추던 인디오의 표정은 그저 즐겁기만 했다.

축제가 벌어지던 광장은 멕시코의 보속 종교의 제단이었던 피라미드가 서 있던 곳이었으나 스페인 군대에 의해 제단은 무너지고 그 위에 성당이 세워진 것이다. 고급문화는 지배층이 무너지면서 사라지고 서민들이 즐기던 춤만이 남은 셈이다.

일본, 남미의 축제는 널리 알려져 있다. 두 지역 외에도 스페인, 이탈리아, 아프리카 지역의 축제가 다채롭다. 역사가 있거나 특이한 생활 사이에 따라 축제는 형성되어 왔다. 이밖에 동남아시아, 유럽, 북미 지역 등에서도 축제는 펼쳐지기 마련이다.

어느 지역이나 근대화 바람에 밀려 퇴색돼 가는 양상을 보이다가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흩어져 가는 축제를 되살리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찾고, 결국 국가 이익, 지역 이익, 자기 이익 등 여러 면에서 좋은 결과를 주기 때문인 것 같다.

바야흐로 나라마다 이데올로기의 벽을 넘어 민족주의를 앞세운 국가 이익의 우선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더구나 민족 고유의 전통 문화는 지구촌이라는 표현에도 불구하고 더 완고하게 지켜지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전통 문화, 그 가운데서도 축제는 인민을 통치하는 수단으로도 절실했던 것 같다.

중국에서의 축제는 소수 민족일수록 더 즐기는 편이다. 소수 민족 보호정책이 비교적 잘 배려되고 있는 중국이긴 하지만 워낙 문화가 다른 민족들이 많아서 그들 문화에 대한 집착은 유달리 강한 편이다. 따라서 축제는 한민족을 이끌어 가는 에너지로서 여전히 의미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운남성은 대륙 문화와 동남아 문화가 서로 만나는 곳이어서 소수 민족이 가장 많이 사는 땅이다. 한족(漢族) 비롯해서 이족(彛族), 백족(白族), 합니족(哈尼族), 봉족(俸族), 장족(壯族), 묘족(苗族), 사족(四族), 요족(瑤族) 등 26여 개 종족이 살고 있다. 최근 윤광원 교수(대전대)가 조사한 「운남성의 축제」에 의하면 운남에는 체제를 떠난 전통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고 축제가 각 민족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력 6월 24일이면 화파절(花把節)이라 해서 백족과 이족은 이날을 즐긴다. <저녁이면 집집마다 문밖에 모닥불을 피우고 이것으로 횃불을 당겨 밭 사이에 꽂는 것>으로 시작된다. 청년들은 악기를 켜거나 불면서 행진을 하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면 춤을 추고 밤새껏 논다. 봉족들은 발수절(潑水節)이라 해서 4월이 되면 몸에다 서로 물을 뿌려 축복을 해준다. 이때쯤이면 더워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물을 뿌려 주는 것 같다.

요족은 오랜 역사를 지닌 민족답게 축제도 요란하다. 명절이면 조상신인 반호(槃瓠)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장고 춤을 춘다. 이 춤은 지금도 전승될 만큼 독특하고 예술적이다. 또 맹춘이 되면 도월(蹈月)을 하는데 이때 남자는 호쟁이를 불고 여자는 방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