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

시애틀 「한국문학 번역회의」 참관기




김종길 / 고려대 교수·시인

지난 8월 15∼16 이틀에 걸쳐 시애틀에서 열린 「한국문학 번역회의」는 한국에서 거주한 바 있고 한국문학을 연구하고 번역하는 쌤 쏠버그 및 브루스 풀튼씨가 워싱턴 대학 한국학 프로그램과 아시아어문과 공동주최로 기획하고 조직한 행사였다.

회의 예산은 2만 불을 지원한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현재의 한국무역인 클럽, 교포실업가 김난진 박사 및 이화여대 동창회의 찬조로 충당된 것이었다. 예산규모에 비해서는 한국에서 간 15명을 포함하여 미국 각지에서 모인 20여명과 영국에서 온 홍명희 여사(박경리의「토지」 1부의 영역자)까지 도합 40명에 가까운 인원이 참가한, 회의 규모로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참가에 필요한 항공료와 회의기간 중의 식사대 일부를 참가자들 자신이 부담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근 40명의 공식 참가자 외에도 현지에 거주하는 교포와 미국인, 그리고 마침 그곳에 들른 국내 학자들의 참석으로 개회식과 뒤이은 첫 회의와 리셉션 및 만찬 같은 때에는 100명 내외가 모여 성황을 이루기도 하였다. 현지에서 발간되는 「한국일보」와 「중앙일보」는 회의 기간 중은 물론 그 전부터 이번 회의에 관해 대서특필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비록 회의장이나 만찬장에 나오지는 못했더라도 시애틀 지구에 거주한 2만여 교포들 중에는 회의에 관심을 가지고 모국의 문화에 대한 긍지를 느꼈을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음에 또 이러한 기회가 있다면 회의에 곁들여 현지 교포와 관심 있는 외국인들을 위해 우리말과 영어 양국어로 시 낭독회류를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개회식은 초청된 참가자들의 숙소인 호텔 회의실에서 있었고 첫날 회의와 리셉션 및 만찬도 같은 호텔에서 있었다. 8월 15일 9시부터 열린 개회식에서는 주최측을 대표하여 워싱턴 대학 한국학 프로그램에서 가르치는 클라크 쏘렌센 박사의 개회사에 이어 시애틀 주재 한국 총영사인 고창수 박사의 환영사가 있었다. 쏘렌센 박사는 한국의 농촌사회를 연구하기 위해 강원도에서 일년간 체재한 바 있는 인류학자요 고 총영사는 성균관대학에서 엘리엇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 자신 시인이요 시 번역가이기도 하여 환영사를 하면서 그는 「한국 시 번역에 관하여」라는 자작 영시 한편을 낭독하기도 하였다.

첫 회의는 10시 30분부터 개회식이 열린 호텔 회의실에서 필자의 사회로 진행되었는데 주제는 '현대문학'이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발표자가 발표를 하게 되어 있어 한 사람이 10분을 넘기지 않게 된 것은 발표자나 사회자에게 상당한 부담이었다. 첫 회의의 첫 발표자는 서울대학 국문과의 권영민 교수로, 컴퓨터로 처리된 우리 현대문학 작품의 통계적인 수치를 이야기 해 흥미로웠다. 두 번째 발표는 하와이 대학 박사과정에서 한국 문학을 연구하는 폴 라쎌씨였는데 현존 한국 문학사들을 비교하였고 스토니 브룩 뉴욕주립대학에서 한국어 문학을 가르치는 최익환 교수는 '전작시'(장편 설화시)의 어법을 현대 문학이론에 비추어 검토하였다.

그리고 끝으로 연세대학 정현기 교수의 김승옥의 소설에 관한 발표가 있었고 질의토론에서는 최 교수가 사용한 '전작시'라는 용어가 문제되었고 조동일 교수의 「한국문학사」(5권)의 축약판이 영·불 양국어로 준비중이라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둘째 회의는 '현대시 번역' 워크숍으로 같은 날 오후 1시 30분부터 같은 장소에서 필자와 쏠버그씨의 공동사회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로 마이크 앞에 선 연세대학 영문과의 이성일 교수는 시 번역에 있어서의 리듬의 이식을 강조하였고 리버 사이드 캘리포니아대학 한국 문학 교수인 고원 박사는 김수영의 「눈」의 영역 두 가지를 비교하였으며, 달라스의 남부감리교대학의 에드워드 포이트러스 교수는 원문에의 충실을 역설하였다.

네 번째로 발표한 고창수 박사는 번역의 어려움을 피력하였고 숙명여대 독문과의 김주연 교수는 시의 독일어 역의 경우를 예로 들었으며 고려대학 국문과의 최동호 교수는 번역에 있어서의 원시의 해석의 문제점을 예시하였다. 발표에 뒤이은 질의 토론에서는 특히 마침 그곳에 들렀던 숙명여대 영문과의 이상란 교수가 왜 발표자들은 새 번역의 기술적인 문제에만 치중하고 사상이나 문화적 배경은 다루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해 필자가 발표자들을 대신해서 답변을 했다.

회의 첫날 오후 3시 30분부터는 미국대학 대학원에서 한국 문학 전공학생들의 한국 문학 번역 콘테스트가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풀튼씨 사회로 진행된 이 행사에서는 응모자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의 유니스 백양, 브리검 영대학의 스코트 에빈순군 내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의 앤 최양 및 남가주대학의 진 코프먼 부인(교포)이 차례로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에 이어 시상이 있었다. 재일 교포 작가의 일어 작품의 영역(코프먼 부인)이 우수작으로 뽑힌 것은 다소 뜻밖이었으나 한국계 미국인인 젊은이들이 모국의 문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한국계가 아닌 젊은 미국인 가운데도 그러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대견스러웠다.

오후 6시 열린 리셉션과 뷔페식 만찬에서는 여석기 한국 문화예술진흥원장의 기조연설이 있었는데 여 원장은 문예진흥원의 한국 문학 번역사업의 내용과 그것과 관련된 진흥원의 방침과 희망사항을 이야기하였다.

둘째 날 회의는 유니언 호수가의 워싱턴 대학 「호반 행사 센터」에서 오전 8시 30분부터 열렸다. 여석기 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첫 회의는 「전근대문학의 번역」이라는 워크숍이었는데 첫 번째 발표는 필자의 한시 번역에 관한 것이었고, 두 번째 발표자인 산호세 주립대학 영문과의 김기청 교수는 국한문학 고전, 특히 이규보 문학의 번역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세 번째 발표를 한 브리검 영대학의 마크 피터슨 교수는 자신이 학생들과 한국 문학 작품을 다룬 경험을 소개하였으며 끝으로 싼타 바바라 캘리포니아 대학의 민속음악 강사인 정성숙 여사는 국악의 특성을 발표, 시간의 제한도 무시한 채 열정적으로 갈파하였다.

10시 30분에 시작되어 브리검 영대학의 마이클 앨런 박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의 둘째 회의는 「현대소설 번역」 워크숍이었다. 거기서는 고려대학교 영문과의 서지문 교수가 이문열의 소설을 번역하면서 겪은 유교적 배경을 가진 말들의 번역의 어려움을 이야기했고 서울에 사는 수잔 크라우더 여사는 자기의 번역을 표절이라고 고소를 당한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한편 성심여대 영문과의 전경자 교수는 소설 번역에 대한 사적인 견해를, 그리고 서강 대학 영문과의 이태동 교수는 미국 유학 시절의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했다. 시애틀 거주 한국계 미국인 폴 신 박사가 제공한 한식 도시락을 회의장 베란다에서 맛있게 든 다음 오후 1시 30분부터 워싱턴 대학의 스코트 버네트 박사의 사회로 열린 이날의 셋째 회의도 「현대소설 번역」 워크숍의 계속이었다.

한림 대학 영문과의 장왕록 교수, 영국에서 온 홍명희 여사, 달라스에서 부군과 함께 참석한 포이트러스 부인, 안양에서 살고 있는 줄리 피커링 여사, 그리고 풀튼씨가 각각 한국 현대소설을 번역했을 때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포이트러스 부인이 번역가의 비평가적 자질을 강조하기에 질의 토론 시간에 필자는 그것에 찬의를 표하면서 상징적인 번역가의 자질에 관한 소견을 개진했다.

이날 오후 3시 30분에 시작된 마지막 회의는 「번역물의 출판 및 판매」에 관한 워크숍이었다. 풀튼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 워크숍에서는 웨슬리연대학에서 중국어 문학을 가르치는 엘렌 위트모 박사 표르드 출판사의 스티브 머리씨, 단국 대학 영문과에서 가르치는 있는 프랭크 테데스코씨 및 워싱턴 대학 출판부의 줄리타 타아비 여사의 발표가 있었다. 질의 토론에서는 포이트러스 박사가 번역물의 무단전재에 대한 가능한 조치에 관한 질문이 있어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회의가 끝난 이날 오후의 리셉션과 만찬은 한국총영사 공관에서 열렸는데, 회의 참가자 이외에도 각계 각층의 현지 교포들과 관심을 가지고 이번 회의를 정신적으로 후원한 미국인 인사 등 108명 내외의 내빈으로 성황을 이루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번 시애틀에서의 회의는 넉넉하지 못한 예산으로 많은 인원을 초청한 의욕적인 기획이었다. 그 결과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발표를 하게 하여 발표시간도 각각 10분 정도에 불과했고 발표문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한국 문학 번역의 기운을 미국 내에서 조성하기 위한 시험적인 모임을 가진다는 것이 주최측의 의도였던 것 같다. 그런 뜻에서 이번 회의는 나름대로 다채롭고 충실한 것이었고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지 교포들로 하여금 모국 문화에 대한 긍지를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된 것도 이번 회의의 성과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