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제 미술·입체·설치 작업의 확산
이준 / 미술평론가
비단 어제오늘의 현상만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캔버스에 붓으로 그리는 전통적인 방법에 떠나 일상적인 사물들이나 대중매체, 산업사회의 오브제를 이용한 입체, 설치작업이 두드러진 강세를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잇다. 8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한 이러한 추세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세계 미술의 일반적 흐름과 발맞추어 최근에는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듯 하다. 주변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잡다한 사물들, 예컨대 널빤지라든가 천, 아크릴로부터 신문, 잡지, 사진 등의 대중매체, 그리고 낡은 기계부품이나 버려진 깡통 등 이상적인 소재들이나 산업사회의 오브제를 작가의 의도에 맞게 재구성하여 결합하고 전시환경에 적합하도록 설치하는 이러한 작업들은 일종의 유행처럼 요즈음 전시장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비평계 일각에선 이러한 작업들이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여 전통적인 회화, 조각의 고정관념을 파기하고 오브제를 통해 이 시대 문호, 사회 상황을 은유적 메시지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을 전망해주는 계기가 되고 있고, 한편으론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디딤대가 되고 있는 것으로 주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가 보기에도 이러한 현상은 모더니즘의 폐쇄적 조형관을 벗어나서 일단 표현영역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고 시대적 추세에 따라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오브제 미술, 입체, 설치작업이 지닌 양면성, 말하자면 그것의 긍정적, 건설적인 측면과 함께 부정적인 요소 또한 적지 않게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려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은 듯 싶다. 따라서 필자는 이 자리를 빌어 최근 유행되고 있는 오브제 미술, 입체, 설치작업의 의미와 그 나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를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 보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그 동안 모더니즘이라는 관행에 얽매여 제한된 형식과 방법, 매체와 장르의 순수성을 고수하면서 다양한 표현매체의 가능성과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소홀히 생각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화의 경우 지·필·묵이라는 제한된 재료와 기법에 의한 전통의 문제에 속박되어 늘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오지 못했으며 서양화나 조각의 경우에는 모더니즘의 엄격한 규율에 얽매여 스스로 형식주의적 방법의 고정된 틀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미술을 미술 자체의 내적인 문제로만 한정하여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볼 때, 한국화든 서양화든 조각이든 각 장르에 구분 없이 기존의 전통적인 관습과 규범의 틀을 깨고 새로운 매체와 표현형식의 개발을 위한 방법적 모색이 두드러지고 있는 최근의 현상은 일단은 표현영역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양화의 경우 이 같은 현상은 기존의 모더니즘의 논리적 한계가 평면성에 기인했다고 풀이된 때문인지 평면의 문제를 탈피하여 매체를 이용한 콜라주라든가 일상적인 사물, 오브제의 결합, 다양한 구조물의 입체·설치작업이 나타나고 있고, 한국화의 경우에는 기존의 수묵화 일변도로부터 벗어나 채색 사용이 두드러지고 있는가 하면 아크릴이나 유채, 콜라주 기법, 패널이나 벽화장식 등 재료사용의 개방성이 무엇보다도 두드러져 보인다.
그런가 하면 조각의 경우에도 회화나 조각의 범주가 혼합되듯 조각에 채색이 결합되는 양상을 보인다던가 브론즈나 석조, 목조 등 기존의 소조나 조각 방식 이외에 산업사회, 기계문명의 오브제를 이용한 용접·절단·결합의 직조방식, 그리고 전시장 전체를 작품 공간으로 활용하는 설치작업이 날로 확산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분명 기법이나 장르에 의해 의식의 차별성을 두고 각 장르마다 순수하고 제한된 형식을 고집해 왔던 모더니즘적인 조형관의 와해를 말해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와 함께 나타나는 탈평면화, 탈캔버스화, 탈장르화는 오브제 미술·입체·설치작업으로 확산되어 그 동안 순수주의 미학 내지는 추상주의에 대응하는 방법론으로 현실에 대한 강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의를 끌고 있다.
특히 대중매체라든가, 산업사회의 오브제, 테크놀로지의 이용 등은 현대미술의 표현영역을 확장하는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와 환경이 요구하는 대로 일상과 사회의 여러 부면을 드러내고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또한 정보화 사회, 후기산업사회의 소통방식으로서 전자매체를 이용한 비디오 설치작업이라든가 홀로그래피 작업과도 같이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과학기술과 예술의 결합 또한 앞으로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마치 시류에 따른 동화현상처럼 많은 작가들이 캔버스에 붓으로 그리는 전통적인 방법을 포기하고 평면작업 자체를 퇴화되어 버린 형식으로 간주한다거나 단순한 싫증에 의한 탈출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사실 화가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중의 하나는 타블로라는 평면적이 형식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것은 역사 이래로 화가의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대결의 장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타블로에 대한 고민이 미처 해결되지도 못한 채 입체라든가 설치 작업에 경도 되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많은 화가들이 붓을 놓고 손쉽게 주변의 것을 차용해서 조합하고 연출하는 방법에서 일종의 아카데미즘이 실종되는 인상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아카데미즘이란 구태의연한 뜻에서의 그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화가들의 최소한의 정신적 노력이랄까 고뇌 같은 것이 지나치게 주변의 사물들, 오브제나 사진매체 등에 의탁되어 이로 인해 현대미술에 있어서 기본적인 형식이 무시되고 육화의 고통이라든가 땀흘림의 소중함이 점차 상실되고, 기발하고 아이디어에 의한 작품들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대학을 갓 졸업한 작가 지망생들이라든가 젊은 작가들에게 두드러져 보이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들은 오브제를 선택한 명확한 문제의식이라든가 입체, 설치작업에 대한 필연적인 당위성이 없이 표현에 대한 의욕만이 앞선 채 어설픈 입체·설치작업으로 쉽게 그룹전, 개인전을 치르기도 한다. 이런 경우 지나치게 실험 위주로 경도된다든가 스케일 위주로 나아감으로써 형식의 완결성도 부족하고 아이디어에 의존하여 작업자체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와 같이 이러한 실험적 경향이 제도적으로 상설·기획 전시될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에서는 작품 자체가 전시 후 폐품이 될 가능성도 농후한 것이다.
단순히 모더니즘의 무미건조함에 대한 반발로서 형식상의 새로운 요구나 매체의 확장, 오브제 미술·입체·설치미술로의 확산이 곧 새로운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극복을 의미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에 추세에 표현영역을 확장한다는 전향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가들이 표현언어의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선명한 문제의식을 보여주지 못한 채 형식상의 다양성만을 꾀하지 않았던가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말하자면 오브제나 혼합 매체적 수단이 현실인식의 확대를 위한 필연적인 요구에서 나왔다고 보기에는 지극히 애매하고 추상적인 접근으로 끝난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는 점이다. 이점이 우리나라 오브제 미술·입체·설치작업에 나타난 취약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날의 현대미술은 우리 주변에서 흔한 사물·물건 등도 예술가의 재기와 통찰력에 의해서 얼마든지 훌륭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폭넓게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나 작가 주변의 모든 사물·물건은 예술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함께 예술을 사물과 동일시한다거나 일상화의 도구로 폄하하는 경우라든가 여기에서 엿보이는 현대인의 의지할 데 없는 물신숭배적인 요소는 항시 경계해야 할 요소로 남아 있다고 하겠다.
다양한 혼합매체의 사용, 입체·설치미술의 경향성과 이로 인한 탈장르화 현상은 앞으로도 가속화되리라고 본다,. 또한 이 같은 추세는 현대미술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다다와 초현실주의 작가들이나 누보레알리즘, 팝아트 작가들에게서도 흔히 발견되기도 한다. 최근의 입체·설치미술의 추세는 이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그러한 미술사에 나타난 양식의 중복성, 재탕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통과 우리의 사회, 문화를 반영하려는 측면에서 문화적 주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