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특집

정치·사회극의 울타리를 넘어서

최근 창작극의 흐름




한상철 / 연극평론가

한국 연극은 신극 초창기이래 계속 격변하는 정치·사회 상황이 빚어내는 많은 문제들에 휘말려 그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을 감수해야만 했었다, 그 같은 운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98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계속되어 오다가 87년을 전후로 하여 절정에 달한 듯 했다. 같은 해 6·29 정치 민주화 선언이 발표됨과 동시에 연극은 공윤의 사전심의 형태로 자행된 정치적 검열의 구속을 스스로 박차고 억눌려 왔던 표현의 자유를 구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사전심의 제도가 정식으로 무력화된 88년 초까지 연극은 온통 구악을 폭로하고 비판하고 풍자하는 일에만 열중하였으며 연극 예술의 자체 성장 발전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무엇을 보다 강력하고 자극적으로 표현하느냐는 일종의 소재주의를 연극의 존재 이유로 삼고 있는 듯 했다. 88년 후반부터 이 같은 경향은 차츰 수그러들기 시작하였다. 88 올림픽은 스포츠 행사와 함께 문화 행사에 역점을 두었고 특히 외국의 유수한 극단들의 뛰어난 공연들이 극계의 풍향을 돌려놓은 계기가 되고 자극이 되었다.

이 글은 부제처럼 '최근 창작극의 흐름'을 분석한다. 그 흐름은 89년을 기점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창작극의 동향이며 공연된 창작극만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희곡으로서도 공연으로서도 화제가 되고 문제가 될만한 작품들만을 선택적으로 검토하였다.

우리의 창작극은 여전히 정치 사회적 성향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적 관심이 사회적 관심으로 확대 전이되고 있으며 나아가 차츰 정치·사회 문제로부터 벗어나려는 기운이 움트고 있다.

우선 정치극은 폭로 풍자의 단순 공격적 자세에서 정치적 현상과 그 충격을 복합적 분석으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두드러졌다. 89년의 대표적인 정치극들인 극단 미추의 박조열 작 「오장군의 발톱」, 연희단 거리패의 이윤택 작 「시민K」, 연우의 이상우 작 「늙은 도둑 이야기」, 목화의 오태석 작 「비닐하우스」, 민중의 이강백 작 「칠산리」, 실험의 정복근 작 「실비명」들은 그 제재도 각기 다른 뿐만 아니라 극작 연출 방법이 서로 판이하고 작가들의 현실 인식이 매우 개성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오장군의 발톱」은 군대로 대표되는 조직사회에 의해 천진하고 순박한 시골청년(오 장군)이 희생되는 과정을 다루었다. 사실적 정공법이 아니라 동화의 세계처럼 상징적 은유법을 썼기 때문에 단순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충격을 더욱 강하게 줄 수 있었다. 자신이 주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힘의 조직과 집단에 의해 전혀 비이성적 비인간적으로 조작될 수 있는가를 선명하게 예시해주고 있다. 그로 인한 한 행복한 가정의 비극은 소와 사람이 서로 말을 하는 그런 본래의 자연의 질서를 파괴한 것으로 상징화된다.

「시민K」는 중립적인 입장의 한 지식인 '신문기자'가 어떻게 언론 통폐합 과정에서 변신을 하게 되고 결국 은 권력집단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되는가를 그렸다. 이 극의 작의는 <암흑시대의 탄압 구조를 폭로, 고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요령 좋게 살아 남았거나 그 시대를 직·간접으로 떠받쳐주기도 한 지식인에 대한 기억을 재생시키려는데 있다>고 박조열은 지적하였는데, 6·29 이전의 침묵하든 다수의 지식인을 초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여타의 정치극과 다른 지적 탐색을 해 보였다.

「늙은 도둑 이야기」는 권력형 치부계층을 도둑의 눈으로 해부함으로써 전혀 다른 종류의 풍자와 유머를 끌어냈다. 가택을 침입한 좀도둑이 그들이 가져갈 만한 물건을 찾지 못하고 대신 권총을 발견하자 집주인을 간첩으로 경찰에 신고한다는 착상이 기발하다. 좀도둑 정도의 서민의 눈에는 치부한 고관이 간첩으로밖에는 보이는 않는다던가 따라서 자신들의 신분 노출의 위험을 미처 생각지도 않고 경찰에 신고하는 그들의 반공 애국 행위는 역설적으로 날카로운 풍자의 맛을 던지고 있다.

「비닐하우스」는 비상시에 대비, 채혈을 위한 집단수용소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수용소의 획일화 통제화 된 생활이 무엇을 상징하는가 명확할 뿐만 아니라 중금속에 중독 된 소년의 침입으로 벌어진 소동에서 우리는 심각한 공해 문제까지 일깨우게 된다. 한편 그 소년에 대한 재소자들의 이기적 회피적인 반응, 또한 단신 월남하여 아내를 찾고 있는 이산가족에 대한 냉담한 태도 등을 통해 오늘의 현대인의 의식구조를 통렬히 매도하고 있다. 이처럼 이 극은 오늘의 정치 사회 문제를 삼중의 프리즘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칠산리」는 과거라면 거론할 수도 없던 빨치산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의 한 실례로서 제기하고 있다. 빨치산이 버리고 간 아이들을 데려다 키워주었던 어머니의 묘를 이장하라는 주민들의 요구 때문에, 흩어져 살다 성인이 되어 다시 모인 자식들이 주민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자기들 상황에 의견이 대립되지만 옛날 자기들을 보호하고 키워준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화해를 도모한다.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그 어머니가 보여주었던 포용력으로 해소해야 된다는 주장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실비명」은 운동권 문제를 당사자에게 아니라 그들의 부모에게 조준을 해서 살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시각을 달리 한다. 그 부모들은 동일한 피해자들이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가 됨으로써 공권력의 폐해가 인간사회를 황폐화시키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상과 같이 80년대 말의 정치극은 공권력의 잔인성이든, 권력형 치부계층 문제이든, 이데올로기 갈등이든, 남북분단이든 우리들의 현대 정치사의 제반 문제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제기하는 방식에서 있어서도 종래에 볼 수 없던 여러 가지의 표현방식을 쓰고 있다. 대체로 리얼리즘의 양식은 기피되고 대신 다양한 양식들이 동원되고 있다. 「오장군의 발톱」에서 동화적이며 고도로 단순화된 스타일과 약간 도식화된 행동을 「시민K」에서 인물들의 유형화(각 계층을 대표하는)와 개인의 성격이 거세된 논리의 꼭두각시화(잘 실현되지는 못했지만)와 아울러 고문과 심문 장면의 표현주의적 처리가 눈길을 끈다. 「늙은 도둑」과 「칠산리」는 우리의 열린 마당극적 공간 처리를 하였으며 후자에서는 탈과 춤 노래가 활용되고 있다. 「비닐하우스」는 현대적인 세련된 무대 장치에 규격화된 동작과 과장된 자연주의적인 양식이 결합되어 있고, 「실비명」에서는 운동권 자식을 가진 두 어머니의 현실적 차원과 그들의 의식 속에 명멸하는 과거 자식들의 행동의 비현실적 차원이 병열을 이루며 극이 진행된다.

90년 91년에는 정치극의 추세가 현저하게 쇠퇴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질적 수준에서도 전 해에 비해 훨씬 못 미친다. 다만 「봉숭아 꽃 물」은 비전향자의 자식이 아버지로 해서 겪은 고초와 나이 들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감동 있게 표현한 일인극인데 최인형의 연기가 이러한 이색적인 체험을 더욱 짙게 해주었다. 김숙원의 원작 소설을 이상우가 각색 연출한 공연이었다.

90년의 수작으로 꼽히는 맥토의 박구홍 작 「시민 조갑출」은 소시민 조갑출이 아무 죄도 없이 우연하게 공권력에 혐의를 받아 시달림을 당하게 되고 회사와 주변으로부터 소외되어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정신분열증을 앓게 된다. 그 같은 증세는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한 친구를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몰아넣게 된 죄책감 때문에 더욱 심해졌는데 급기야는 '내 귀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다'는 환각에 사로잡히기까지 한다. 현실에 대한 표현방법이 엄청난 시각 차이로 인해 완전히 곡해되고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오늘의 현실을 비판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표현할 권리의 회복을 역설한다.

91년의 정치극은 더욱 초라해져 수작을 전혀 얻지 못하였다. 다만 현길언의 소설 「사제와 제물」을 각색한 동명의 연극은 노사분규 현장을 배경으로 하는데 "지도자는 타인의 희생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사제의 주장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신이국기」,「언제나 어디서나」에 이어 3번 째로 「서울 연극제」(91)에 「당신들의 방울」로 참가한 최인석의 창작극은 마지막 작품에서 전작들과 전혀 다른 소극으로 방향을 돌려 고부군수의 가렴주구를 극단적으로 희화해 아비까지 팔아먹게 되는 설정을 했지만 공감을 얻지 못하였다. 그의 행동이 보통 인간의 행동 패턴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89년의 이후 창작극계는 정치극보다 사회극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89년의 이문구 소설 각색으로 5·16 이후 농촌 경제의 파탄을 그린 「암소」를 위시하여 90년 김광림의 「그 여자 이순례」가 화제작이 되었고 강월도의 「뻔데기전」도 오늘의 한국 사회의 치부를 잘 묘사하였다. 「그 여자 이순례」는 6·25때 남하하여 남쪽 여자와 정을 통한 인민군이 북송을 거부하고 몇 십 년간 그때 그 여인을 찾아다니던 끝에 드디어 만났지만 보험금을 남긴 채 자살하는 순애와 오늘날 아내 있는 남자를 사랑하다 결국 헤어지는 부박하고 이악한 사랑을 대비 시켰는데 영상 매체를 동원하고 브라인드 창문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등 새로운 공연기법을 개척함으로써 해서 신선감을 주었다.

「뻔데기전」은 몇 십 년간 미국에서 살다 돌아온 재미교포의 눈을 통해 오늘의 한국 사회상을 조감하고 있다. 그것은 전통적인 미덕을 잃은 채 공허하게 방황하고 있으며 쌍소리와 술과 여자한테 밖에는 탐닉할 길을 찾지 목하고 있는 혼이 없는 사회였다. 뻔데기를 사먹던 옛 동창들의 우정은 겉치레일 뿐이고 70년대 미친 듯이 뛰던 한국의 장년은 이제 술이 만취해 운전하다가 즉사하는 무모함까지 감행한다.

윤조병은 「아버지의 침묵」으로 다시 주목을 끌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빈부의 문제, 운동권의 아픔, 그리고 한 지식인이 국토건설대에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끝내 실어증에 걸리게 된 상황을 복잡하게 엮어갔다. 산동네 주민들의 총체적인 생활상을 통해 오늘 한국 사회가 직면한 어려움을 표출코자 한 작품이다. 작가는 부정적인 사회이지만 막심 고리키의 「밤주막」에 등장하는 르까와 같은 인물을 등장시켜 기대와 희망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한다.

금년에는 박완서의 소설을 각색하여 산울림이 공연한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가 단연 화제작이 되었다. 전통적인 남아 선호 사상을 주제로 한 이 연극은 여성 연극의 붐을 조성하였으며 그 선호 사상이 더욱 더 심해 가는 현 한국사회의 허점을 공격하였다.

이재현의 「사파리의 흉상」, 박제홍의 「화분이 잇는 집」, 이근삼의 「막차 탄 동기동창」은 각각 한국 사회의 위선, 빈부 격차와 노사 갈등, 노인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모두가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워진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덧붙여야 될 일은 부정한 축재와 빈부 격차의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는 한편 이 문제를 천박하고 속되게 다루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김상열의 「우리는 나발을 불었다」가 대표적인 예이다. 범죄와 관련이 있는 자가 시장바닥에서 행상을 하는 젊은이를 꾀어 한 밑천 잡을 욕심으로 부잣집에 침입시키는 사건과 금괴인줄 알았는데 실은 마약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도덕적 윤리적인 의식의 부재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관객에게 보여 주고 있다. 장바닥의 요란한 호객 행위가 그대로 무대 위에 오르고 도둑질이 조금도 거리낄 것 없다는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이런 연극의 등장은 그것이 실제 사실이라 하더라도 모든 종류의 관객이 다 모이는 극장에서 공연하는데는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고 생각된다.

이상하게도 이제는 농어촌을 배경으로 하는 연극이 별로 없다. 다만 줄기차게 농촌과 어촌을 관심권에서 놓지 않고 있는 두 작가가 두 편의 희곡을 발표했다. 이반의 「아버지 바다」와 노경식의 「한가위 밝은 달아」가 그것이다. 전자는 늘 같은 고장인 속초의 부둣가를 무대로 하지만 이번에는 분단의 주제가 아니라 노사 갈등과 예나 다름없는 바다와의 친영성이다. 선주에 의한 선원들의 임금 착취가 사건의 중심이 되고 그런 갈등을 이유로 배 타기를 거절하는 선원들에게 선장은 우선 배를 타야되고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자기가 해야할 본분을 먼저 수행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바다는 항상 그런 교훈을 준다고 역설한다. 한편 플롯의 한 갈래로 부하를 이끌고 휴전선을 넘은 죄로 형무소에 갔다가 석방되어 고향을 찾아 동창생들을 만난 형철은 자기를 감시하는 외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분단 극복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본분임을 깨닫고 맞서 싸울 것을 결심한다.

노사 갈등과 분단 문제를 아버지의 무덤인 바다의 의미와 연결시킨 이 극은 자연주의 양식으로는 드물게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자연주의 극이든 비사실주의극이든 그 양식과 내용이 합치될 때 훌륭한 작품이 탄생된다는 구체적인 예가 이 작품이다. 「달아 달아」 역시 운동권 아들을 둠으로써 농촌 현실을 혁파할 수 있는 정신적 힘을 얻은 농민을 통해 농촌문제에 사회성을 도입시켰다. 그의 전작의 속편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극은 일제 때 만주로 도망갔던 딸이 모국 방문 기회를 얻어 돌아왔다는 사실과 딸이 보기에 농촌의 어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는 기본 전제하에 쓰여진 것이다. 운동권을 의식 각성의 촉매제로 보았다는 점에서 사회성이 강하다.

이상의 정치 사회극 외에 주목할만한 일은 예술 혼을 주제로 한 희곡의 출연이다. 배봉기의 「혼종」과 이명원의 「사로잡힌 영혼」이 그것인데 전자는 에밀레종과 장인 정신을, 후자는 장승업의 구도를 극화하였다. 특히 후자는 희곡보다 연출(김아라)의 창조적인 기여가 주목되었다. 영화 스크린을 대담하게 활용했고 인물들을 퇴장시키지 않고 여러 역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다음으로 전통적 유산을 현대적으로 개혁한 작품으로 오태석의 「백구야 껑충 나지 마라」와 「심청이는 왜 인당수에 두 번 몸을 던졌는가」, 그리고 이윤택의 「오구-죽음의 의식」이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백구」는 취발이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역점을 재현토록 하면서 궁극적으로 변리의 아픔을 되새겼는데 무대의 시각적 스펙터클이 괄목할 만 했다. 심청전을 모태로 한 「심청이」는 심청이 부귀영화를 거부하고 용왕을 따라 서울에 올라와서 오늘의 서울의 삶을 목격하는데 그 처절함과 참상이 극에 달해 결국 다시 자기를 두 번째로 희생시켜 살아 있는 사람의 눈을 뜨도록 기원한다. 결말은 원작과 달리 부정적이고 재생의 약속이 없다. 근년의 연극으로 현실을 그처럼 강력하고 힘있게 반영한 연극은 없었다. 연극의 사회적 발언의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였다.

「오구」는 우리의 전통적인 굿과 장례의식을 산자의 입장에서 해체하여 그 희극성과 인위성을 밝혔다. 전통 의식의 한 패러디라 하겠으며 그것은 후기 모더니즘의 증후로 볼 수 있겠다. 오태석의 「운산각」과 부분적으로 이강백의 「물거품」에서도 그같은 증후를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이제 한국 연극도 리얼리즘에서 반사실주의로 다시 그것으로부터 이탈하려는 기운이 일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김용옥의 「시간의 그림자」는 한 발 더 포스트모더니즘에 다가 선 감이 있었다.

한국사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노경식의 「번제의 시간」과 김의경의 「길 떠나는 가족」이 있다. 이들은 과거 사극의 틀을 깨고 주인공들(김사익과 이중섭)의 심리적 성격 구축에 주안점을 두고 않고 다분히 그들의 연극적 역할과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비록 두 작품 다 짜임새는 부족하였지만 무대 위에 선 극중인물로서의 부조는 성공적이었다. 문학적인 세밀한 묘사에 인물이 성격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대의 시,·공간 속에서의 위치가 더 중요해 진 듯 한다.

뮤지컬은 더욱 더 인기가 높아간다. 그러나 흥행에 성공하는 작품은 번역극이고 창작 뮤지컬은 거의 없다. 금년 연극제 참가작인 「칼르멘 시타」 역시 오리지널 창극작이라고는 할 수 없다.

끝으로 종교극이 모처럼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만희 작 민예의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는 전직 미술 교수가 불자가 되어 불상 제작의 염력(念力)을 구하지만 결국 죽음을 통해 그것을 얻는다. 불교의 진리와 삶의 고뇌를 매우 평이하게 연결시킨 것이 성공의 원인이었다. 이상 종교열에 떠 잇는 한국 사회에서 아주 적절한 제재를 얻어 종교와 세속적 삶에 다같이 빛을 던져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서 사회적 폭력인 성폭행이 등장하고 있는 점이다. 교수는 아내가 폭행을 당하자 괴로움을 잊기 위해 불가에 귀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불상 제작에 전념하려 하지만 속세의 번뇌를 끝내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 상황과 사회 형편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제 창작극이 할 일은 그 같은 변화를 쫓을 일보다 현실의 냉철한 판단과 좀 더 근원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다. 예술이 현실의 종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