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일본근대문학관」과 요코하마의「가나가와(神奈川) 근대문학관」
권영민 / 문학평론가·서울대 교수
우리나라에 없는 문학박물관
우리나라에는 문학박물관이 없다. 이름 있는 문필가의 생애와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관도 변변한 것이 없다. 반만년의 역사를 내세우고 유구한 문화전통을 내세우면서도 문화 유적을 제대로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에는 소홀하다. 물론 지난 70년대에 전국 각지에 유명한 장수·무인들의 사당이 세워져 호국의 정신을 기리고자 한 일도 있고, 그 틈에 강릉의 오죽헌도 안동의 도산서원도 상당 부분 보수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문필가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을 만든 적도 없고, 유명한 문인의 유택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복원한 경우는 없다. 조선시대의 서원이나 가공 등이 일부 보존되고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 함께 있어야 할 당시의 생활용품들이 온전히 남아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개화 이후의 신문화운동과 연관되는 장소의 보존은 더욱 형편이 없다. 일제시대를 거치고, 6·25 전쟁을 겪으면서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데다가 근대화의 개발 바람에 밀려 헐리고 뜯긴 겨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생가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도 모르는 시인, 유품 하나 제대로 보관되어 있지 않은 소설가가 한두 사람이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찬탄하여 마지않는 것은 그네들이 지니고 있는 자기네 문화에 대한 애착과 정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셰익스피어도 없고, 괴테도 없고, 보들레르도 없고, 나다니엘 호오돈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위대한 문인의 존재 그 자체보다도 더 부러운 것은, 이들 문인의 존재를 자랑스러워하고 아끼는 그 나라 사람들의 높은 문화 의식이다. 그 나라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기네 문화를 누리면서 산다.
일본의 경우에도 자국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하다. 일본이 자기네 문화를 상품화하여 전세계 보급하고 있다는 말도 간혹 듣지만, 문화를 보존하고 사랑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일본인들의 노력은 본받을 만하다. 도쿄에 있는 일본 근대문학관과 요코하마의 가나가와(神奈川) 근대문학관은 일본인들의 자기 문학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어떠한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예가 된다.
도쿄의 「일본근대문학관」
동경(東京)대학 교양학부 건물과 잇달아 있는 자그마한 도심의 공원 구장공원(駒場公園) 안에는 일본민예관, 동경도(東京都) 근대문학박물관과 함께 일본근대문학관이 자리잡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 일본근대문학관은 문학연구자라면 누구나 한번 둘러볼 필요가 있는 장소이다. 일본 근대문학의 모든 중요 자료를 조사·수집·정리·보관·전시하고 있는 일본근대문학관의 조직과 운영은 참으로 부러울 정도다. 특히 우리나라는 근대문학 관계자료가 어느 것도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못한 형편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네의 입장이 부끄럽기조차 하다.
일본은 명치(明治) 이후 100여 년이 넘는 근대문학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일본 근대문학관이 설립되기 전만 하더라도, 근대문학의 자료를 제대로 보존하거나 정리하지 못하여 대부분의 문학관계 자료가 여러 곳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관동대지진이라든지 사회 정치적인 규제, 제2차 세계대전 등을 거치면서 자료의 산실이 적지 않았다. 지금의 우리나라 형편과 비슷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경제 발전과 함께 일본 문화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폭넓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일본 근대문학 관계자료의 수집과 정리의 필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문학 방면의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뜻 있는 문화계 인사들이 앞장서서 근대문학 관계자료 정리 작업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며, 고견순(高見順), 윤등정(尹藤整), 소전절진(小田切進) 등의 문화계 인사들이 앞장서서 「근대문학관 설립준비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1963년 4월 「제단법인 일본근대문학관」을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다.
일본근대문학관은 1964년 11월에 일본 국회도서관 지부 상야(上野)도서관의 일부를 빌어 '일본근대문학관 문고'를 개설하면서 도서관 업무를 개시하였다. 그리고 1965년 8월 현재의 동경(東京) 목흑정(目黑町) 구장공원(駒場公園) 안에 건물 건설 공사를 개시하여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67년 4월 본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일본근대문학관이 보관 개관에 이르기까지 힘을 기울인 일은 물론 자료의 수집과 정리 작업이 었다. 자료 수집에 가장 커다란 도움을 준 것은 수많은 문학관계 도서를 출판한 유서 깊은 출판사들이었다. 암파서점(岩波書店), 강담사(講談社), 하출서방(河出書房), 광문사(光文社), 삼성당(三省堂), 신호사(新潮社), 평범사(平凡社) 등의 유명한 출판사가 4만여 권의 도서와 잡지를 기증하였고, 여러 신문사도 자료 수집에 적극 협조하였다. 그 결과 개인 소장 자료나 유명 문인의 장서 유품 등의 수집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길천영치(吉川英治)의 장서라든가 유도무랑(有島武郞)의 유고 등이 속속 기증되어 일본 근대문학관계 자료의 수집 정리 작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었다.
「일본근대문학관」의 문학 자료들과 이용 시설
일본근대문학관은 그 설립 목적 자체가 명치시대 이후의 일본 근대문학 관계 자료일체를 수집 정리한다는데 있었기 때문에, 자료수집 과정이 자연스럽게 그와 같은 취지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근대문학 또는 현대문학 관계 자료를 중심으로 예술전반, 인문사회과학 연구분야의 관련자료가 모두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도서, 잡지, 신문 등의 일반 자료는 물론이고 문학관계 원고, 서간, 필묵, 일기, 노트, 유품 등의 특수 자료까지 포함하여 일본근대문학관이 보관하고 있는 자료는 모두 90만점이 넘는다. 이들 자료는 대부분이 저자 또는 저자의 유족이 무상으로 기증하였고, 출판사에서 기증한 것도 상당수가 있다.
일본근대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중요자료 가운데에는 문인의 경우 다천용지개(茶川龍之介), 석천탁목(石川瞨木) 등의 개인문고가 있고 근대 문학 연구가인 길전정일(吉田精一), 도변일부(渡邊一夫) 등의 개인문고도 있다. 적목항평(赤木桁平) 콜렉션, 마전구지조(麻田駒之助) 콜렉션 등 유명한 개인 소장 도서자료도 적지 않다. 특수자료로 눈을 끄는 것은 다천상(茶川賞), 직목상(直木賞) 수장작의 원고와 수많은 문필가들의 유품들이다. 특히 일본에서 간행된 문학예술 관계 잡지 및 동인지는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비평가 백철 선생이 일본 유학시절에 일본 시인들과 함께 가담하였던 백조성오(白鳥省吾) 주재의 시동인지「지상낙원(地上樂園)」을 이곳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었다.
일본근대문학관이 운영지침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자료의 보존 제일주의 원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소장 자료는 매우 엄격하게 정리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미정리된 특수자료 이외의 모든 자료는 항상 일반에게 공개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훼손되기 쉬운 자료나 귀중 도서는 원본을 보관하고 그 대신에 영인본을 자체 제작하여 일반 열람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복사나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도서관이 귀중 도서의 열람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료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자료에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예산상 문제가 있고 힘이 든다 하더라도 열람자들을 위해 영인본을 별도로 제작 비치해야만 자료의 보존도 가능하고 연구자들의 요구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일본근대문학관의 자료 보관정리 가운데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작업은 근대문학 관계자료의 복각판 간행작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료의 원본을 구해보기 힘든 근대문학 관계 자료 가운데 「창조」,「조선문단」,「문장」,「인문평론」 등의 중요 잡지의 영인본이 간행되어 연구자들에게도 보급된 적이 있지만, 대부분이 영세한 출판업자들에 의해 졸속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인본의 제작 상태가 좋지 않고, 중간에 빠졌거나 자료를 찾지 못한 결본을 채워 넣지 않아 제대로 완간본을 내지 못한 예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일본 근대문학관은 「문예시대(文藝時代)」,「문예전선(文藝戰線)」,「문학계(文學界)」,「プロタリア文學」,「근대문학」 등 중요 잡지의 경우 원본의 상태와 거의 비견할 상태로 복각본은 제작하고 결호를 보충한 후 완결본을 만들어 이것을 일반 열람용으로 사용하고 있고 몇몇 잡지는 마이크로 필름으로 제작되어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복각본의 그것을 필요로 하는 연구자나 연구기관에 널리 보급하기 때문에, 그 판매 수익이 근대문학관의 운영에도 큰 도움을 준다. 일본근대문학관이 자랑하고 잇는 자체 사업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자료의 복각판 제작인데, 특히 일본 근대문학사상 중요한 작품들의 초판본 원본을 원형대로 재현해낸 일본근대문학관편 「명저 초판 복각판 전집」 등은 복각본에 대해 신뢰를 최대한으로 확보할 수 있게 해준 대표적인 작업으로 손꼽힌다.
도쿄의 일본근대문학관은 이용자들을 위한 몇가지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시홀은 주로 중요문화자료의 전시회를 개최하는 공개홀인데, 근대문학관의 연간 전시계획에 따라 각종 문학 관계자료를 전시한다. 1963년 일본근대문학관의 창립기념 「근대문학사전(近代文學史展)」은 일본 근대문학사와 실증적인 자료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유명한 전시회였고, 1982년 창립 20주년 기념의 「근대문학전」도 역시 문학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전시회로 성대하게 개최된 바 있다. 이 전시홀과는 별도로 만들어진 특별 전시실로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로 유명한 '천단강성(川端康成) 기념실'이 있다. 매년 4∼5월과 10∼11월 사이에 일반인에게 유료 개방되는 기념실에는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문학적 생애를 조감해 볼 수 있는 작품 원고와 많은 유품 자료가 함께 보존 전시되어 있다. 일본근대문학관은 내년 1992년 개관 30주년을 맞아, 그 기념행사의 하나로 가칭 「천단강성(川端康成)전-사후 20년」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 행사는 동경전(東京展)만이 아니라 대판(大阪), 경도(京都), 희로(姬路), 강산(岡山), 김택(金澤) 등지를 순회하는 특별전으로 많은 관심을 벌써부터 모으고 있다.
일본근대문학관은 일반 이용자들의 편의를 돌보기 위해 좌석 80석의 일반열람실과 6개의 연구실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일반열람실은 18세 이상의 신분증을 지참한 사람은 입관 수속을 한 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연구실은 개인별로 활용이 가능하며 일당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일본근대문학관에서는 매년 여름 「하계 문학교실」을 요미우리 신문사의 후원으로 개최하고 있다. 금년으로 제28회가 되는 이 교양 프로는 문학을 중심으로 짜여지는데, 대개가 저명한 문인들이 강사로 등장한다. 이미 연례 행사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매년 교사 학생 그리고 일반인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봄가을의 「문예강좌」도 문학 애호가들에게는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공개강좌인데, 저명한 문인이나 문학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행사에 참여하거나 문학관의 자료를 자주 이용하는 일반인들이 일본근대문학관 일반 회원은 연각 5천 엔의 회비를 납부한다. 회원에게는 모든 시설의 사용에 할인 혜택을 주고 있다.
일본 근대문학관은 운영은 재단법인 일본근대문학관 이사회와 평의원회의 결의에 따라 그 방향이 결정된다. 이사회나 평의원회의 임원은 모두 명예직으로 아무런 보수 없이 문학관의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문학관에서 실제적인 업무를 담당하며 보수를 받고 있는 직원은 14명이다. 연간 1억 8천만 엔의 운영 경비를 필요로 하는 일본근대문학관은 설립 당시 각계의 후원금으로 설립 비용을 충당하였으나, 현재는 자체의 수익금과 기부금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대국인 일본에서도 일본근대문학관은 상당한 경영압박을 받고 있다. 근대문학관의 최대 수입원은 근대문학관 자체의 출판사업 소득이다. 귀중 자료의 복각본 제작, 일본 최대의 「일본근대문학대사전」(전6권)의 발간 등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그러나 근래에는 새로운 자료의 복각본 제작이 거의 중단 상태에 있고 그 보급도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 없지 않다. 일정하지 않은 기부금이나 회원들의 회비, 열람료, 복사료 등의 수익으로 연간 1억 8천만 엔 정도의 소요예산을 메우기에 힘들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 몇 년 동안의 통계에 의하면 연간 이용자는 6천여 명 정도로 하루 평균 20여 명이 자료를 찾거나 열람한 것으로 통계가 잡혀있다
요코하마에 있는 「가나가와(神奈川) 근대문학관」
1982년에 개관한 요코하마의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은 도쿄 일본근대문학관의 자매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설립 배경이나 운영방식이 서로 전혀 다르다.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은 도쿄의 일본근대문학관이 지향해온 순수문학 중심의 문학 자료센터와는 다르게 오히려 대중성을 지향하는 전시관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그리고, 문학관의 모든 운영경비를 현(縣)에서 부담하고 있다.
도쿄 일본근대문학관이 사실기관으로서 경영상의 어려움 때문에 더 이상 자료를 보존 정리하기 힘들고 그 규모도 확장할 만한 경제력이 없다는 점은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의 설립을 추진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물론 도쿄 근교의 가나가와가(神奈川) 이른바 예향으로서 일본의 유명 문인들이 출생하였고, 주로 문필활동을 했던 곳이라는 점이 또 다른 설립 동기를 제공하였다고 할 수도 있다. 천단강성(川端康成)이 생애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지냈고, 일본근대문학사의 중요 인물인 도기등촌(島崎藤村)이라든지 곡기윤일랑(谷崎潤一郞) 등도 모두 가나가와와 관계가 깊은 사람들이다. 가나가와(神奈川) 문학진흥회에서는 이러한 문학인들의 자료를 폭넓게 수집·정리하고 일본 근대문학관계 자료를 한데 모아 보존·정리·열람 할 수 있도록 설립 가나가와(神奈川) 근대문학관을 개설하게 된 것이다.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이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 것은 요코하마 항구를 내려다보는 언덕의 공원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문학관 건물과 그 최신식의 내부 시설이다. 지하 3층 지상 2층의 근대문학관은 연건평 5,400 평방미터나 되는 대규모 건축으로 지진을 대비한 특수설계와 화재 방지시설 등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자료수장관은 55만점을 수장할 수 있는 전동식 서가를 완비하고 있으며, 특수자료의 보존을 위한 자료실은 별도의 목조서가와 보존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근대문학관은 넓은 원형의 전시실이 인상적이다. 전시자료는 유명 문인들의 자필 원고와 서간, 그리고 유물이 주종을 이룬다. 영상자료관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어서 문학 관계자료의 입체적인 관람이 가능하다.
이곳 근대문학관에서 설치되어 있는 특별 자료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개인 기념실이다. 근대문학관의 설립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진 미기일웅(尾崎一雄) 저서와 소장도서, 그리고 젓 유품 등을 생존시의 모습대로 비치하여 진열해 놓고 있다 원형의 탁자 위에 펜과 필통이 놓여있고 한두 권의 책이 펼쳐 있다. 미기일웅(尾崎一雄)씨의 사진 한 장이 바로 그 탁자 위에서도 자신의 방을 지키고 있다. 이 개인 기념실 옆에는 몇 개의 빈방들이 마련되어 있다. 앞으로 만들어질 개인 기념실에 대비한 것이라고 한다.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의 일년 예산을 대략 3억 엔 가량이다. 모든 예산은 현에서 조달한다. 그러므로 문학관 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전시회나 강연회 등의 행사에 예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 대문에 오히려 이곳 근대문학관의 행사를 관공서 연례행사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이 많아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자료기증 문제만 해도, 유족이나 친지들이 돈을 받고 관공서에 자료를 넘기는 것처럼 생각하고는 선뜻 응하지 않아서, 좋은 시설에도 불구하고 귀중한 자료를 모아 정리하는 데에 힘을 들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은 일체의 운영을 사설단체인 재단법인 가나가와 문학진흥회에 일임하고 있다. 유명 문학인과 문학 관계 인사로 구성된 문학진흥회가 근대문학관의 모든 운영을 책임지고 있으며 전시회, 강연회, 특별전시, 자료수집 등의 모든 업무를 문학진흥회의 결의를 거쳐 시행하고 있다. 금년도 여름의 전시는 지난 7월 20일부터 8월 25일까지 「도시의 외침, 물의 속삭임-천기(川崎)와 문학」이라는 표제를 내걸고 「가나가와 문학산보전(神奈川文學散步展)」을 개최한 바 있다. 문인들의 필묵과 화가들의 그림, 그리고 문학작품 원고 등을 곁들인 이 같은 테마전은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이 연중 계획에 따라 개최하는 전시회로서, 한두 달 정도의 기간을 두고 새로운 전시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학과 인접의 예술이 한자리에 모이고 인간의 삶이 그 속에서 함께 어울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이들 전시회를 통해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인 전시회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번 가을에는 「근대문학 100년과 가나가와」이라는 테마 아래 「현대적인 표현을 찾아」라는 전시회가 8월 31일부터 10월 13일까지 개최되었다. 개천용지개(芥川龍之介)가 자살하기 직전의 그렸다는 그림, 천단강성(川端康成)이 제목을 달지 못하고 써놓은 소설의 초고 원고 등 귀중한 문학자료들이 이들의 가나가와 시대의 삶을 말해주는 징표로 전시될 예정이다.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은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근대문학관 「友の會」를 두고 있다. 신분이 확실한 성인은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으며, 연간 1천 엔의 회비를 납부하면 된다. 회원은 근대문학관의 문학강좌 수강료의 할인 혜택을 받으며, 각종 전시회에 무료로 초대되고, 근대문학관이 발행하는 관보를 무료로 받아보게 된다. 개관 이후 이 회에 입회한 회원은 1천백 명 정도가 되었는데, 앞으로 더욱 회원이 확대될 것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일본 각지에는 도쿄 일본근대문학관이나 요코하마의 가나가와 근대문학관과 유사한 문학관이 많이 있다. 물론 그 규모에 있어서는 앞의 두 곳을 능가하는 곳이 없지만 그 설립 목적이나 운영방식은 유사하다. 일본 문학의 전통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정신을 이어나간다는 것에는 모두가 일치된 의견을 갖고 있다.
일본근대문학관이나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을 돌아보면서 가장 인상깊게 느낀 것은 자료수집과 정리에 대한 일본인들의 철저성이다. 문학 관계자료를 완벽하게 수집 정리한다는 곳은 물질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문학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없어서는 안 된다. 자기 문학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이 같은 문학관의 설립과 운영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전문적인 문학관이 없고, 그러한 역할을 어느 정도 대행할 만한 기관도 없다. 근래에 지방에 생긴 기념관이라는 곳을 가보면 유리관에 진열된 엉성한 전시품이 겨우 그 체면을 유지할 뿐이다. 국립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 같은 최대의 도서관도 해방 이전의 신문이나 자료를 제대로 구비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대학의 도서관에도 일제 시대의 문학관계 잡지를 제대로 호수를 채워놓고 있는 곳이 없다. 낙질이 된 것이나 결호가 있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예산이 없고 손이 모자라 그런 자료를 보충해 놓을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일제 시대의 자료는 그 보관 상태도 허술하여 훼손이 심하기 때문에, 아예 일반 열람을 대부분 금지하고 있다. 일반 열람을 위한 영인본이나 마이크로 필름제작 등은 거의 계획된 적도 없다, 이런 형편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가장 애를 먹는다. 하나의 자료를 찾아보기 위해 여러 도서관을 헤매야하고 숱한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동경대학의 신문연구소 자료실처럼 국내에서 간행된 모든 신문을 한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료실이 하나만이라도 있었으면 한다. 일본 근대문학관과 같은 자료관도 하나만 있다면 문학연구가 훨씬 깊이를 더할 것이고, 문학에 대한 대중을 관심도 더욱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근대문학관의 운영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사회 각층의 끊임없는 후원이다. 기업인들이 매년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고, 여러 신문사가 근대문학관의 행사를 적극 지원한다. 문학인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열리는 문학행사에는 적극 참여하고 보수를 바라지도 않는다. 일본의 유명 출판사들이 자기네가 간행한 문학관계 도서를 기증하기도 하다. 이러한 문화적 풍토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기대하기 힘들다. 생색을 내기 어려운 문학을 위해 기업인이 기부금을 낼 리가 없고, 자기네 신문사의 영업과 관계없는 행사에 신문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출판사가 그리 쉽게 도서를 기증하려 하겠는가.
일본근대문학관이나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은 언제나 문학의 세계속에 자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곳에는 명치 이후 100년의 일본 근대문학 자료가 모두 보존되어 잇지만, 그 모든 자료를 문학을 사랑하는 대중 독자들에게 공개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귀중한 자료라 하더라도 그것은 유리관 속의 보물처럼 취급되지 않는다. 대중 독자와 함께 숨쉬고 그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활용되고 있다. 그것에 보전되어 공개되는 자료들을 통하여, 그 자료들의 주인공인 지난 시대의 문인들이 다시 살아나고 널리 음미되는 것이다.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의 경우에는 가나가와현 주변 지역과 관련이 있는 문인들 예컨대, 하목수석(夏目漱石), 태제치(太宰治), 천단강성(川端康成), 길천영(吉川英) 자료를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그 유품도 모두 정리하여 새로운 자료를 소개하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런 행사는 지역 문화의 전통을 심어주고 그것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근대문학관의 역할 중에서 문학 연구자들을 위한 자료 서비스는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필자는 몇 차례나 서신을 통하여 일본근대문학관의 자료 복사를 신청한 적이 있고, 그때마다 아주 신속하고 친절하게 자료를 제공받은 적이 있다. 심지어 자기네 문학관에 제대로 비치되지 않은 자료에 대해서는 그 소장처를 상세하게 안내하여 주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서비스는 미국의 유명 대학 도서관에서나 받을 수 있었던 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근래 우리나라에도 성격은 좀 다르지만 삼성출판사에서 출판박물관을 개설하였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자료를 수집 정리한다는 것이 힘든 일이긴 하지만 더욱 특성 있는 박물관으로 커나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문학박물관의 설립준비도 진행되고 있거니와, 그 시설이나 운영 방식은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를 참조해야 할 것이다. 단 하나의 문학박물관이라도 제대로 갖추어진 그리고 제대로 운영되는 박물관이 되었으면 한다.
(도쿄 일본근대문학관의 염곡장웅(染谷長雄) 구장, 부견영자(富哥瓔子) 선생과 요코하마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의 청수절남(淸水節男) 이사, 창 화남(倉 和男) 국장의 도움에 감사드린다. 명치(明治)대학의 중산화자(中山和子) 교수, 오황선(吳皇禪)씨의 안내에 고마움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