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

총체 예술과 리얼리티의 회복




윤진섭 / 미술평론가



이른바 "TOTAL ART"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로는 '총체예술'이라고 번역되는 이 말은 금세기에 들어 나타난 예술상의 일련의 변화를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피상적으로 파악해 보자면, 예술이 분화되기 이전의 상태, 곧 원시종합예술의 그것처럼 시, 음악, 미술, 연극 등 예술의 제 장르가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이 새로운 형식의 예술 형태는 아직 실험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듯한 인상이 짙다. 그도 그럴 것이 서구 예술사를 예술의 자율성 구축이란 선조적(線條的) 관점에서 파악할 때, 자율성이 붕괴되고 생활과의 혼융을 기하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금세기 초엽 이래의 예술적 징후를 '모더니티'하의 미적 이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미적 이념의 창출로 볼 수 있겠느냐 하는 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요즈음 유행하는 말을 빌면, 20세기 이전의 예술상의 패턴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패러다임의 변경(paradigm shift)'이 창출된 것이냐 하는 질문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하나의 미적 이념과 여기서 비롯된 예술의 형식은 곧 그와 같은 것들을 창출된 거시야 하는 질문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하나의 미적 이념과 여기서 비롯된 예술의 형식은 곧 그와 같은 것들을 창출시킨 세계관의 반영태라고 할 때, 과연 총체예술로 풀이되는 오늘날의 토탈 아트가 새로운 미적 이념과 예술형식으로서의 새로운 세계관의 반영태일 수 있겠느냐 하는 질문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은 가정이 성립될 수 있다. 즉 모더니티와 그것의 미적 이념으로서의 모더니즘을 기점으로 '모던 이전(premodern)'과 포스트모더니티의 미적 이념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 갖는 상호관계에 대한 고찰이다.

제의(祭儀)에 기반을 둔 원시종합예술이 계절의 순환과 탄생과 죽음으로 대변되는 자연 현상의 관찰에서 비롯된 시간관의 반영이듯이, 과정을 결과보다 중요시하는 퍼포먼스나 해프닝, 이벤트, 또는 제의성이 짙은 리빙 디어터, 잔혹극, 가난한 연극(Poor Theatre) 등 일련의 실험극은 분명 '시간을 추상적이거나 선조적(linear)인 것이 아니라 둥글고 전체적인 것'으로 파악한 포스트모더니티(post modernity)의 시간관이 반영돼 있다. 즉 모더니티가 르네상스이래 출현을 본 근대 문학과 근대 철학의 발흥, 기계수단에 의한 인쇄술의 발달, 지리상의 발견과 원근법의 발명에 입각한 합리주의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했을 때, 그와 같은 당대의 현실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모더니즘은 예술은 자율성에 입각하여 주관과 객관의 분리라는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예술형식에서 확연히 두드러지는 현상은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사고 그 자체이다.

금세기 초엽 세계 제1차 대전을 전후하여 나타났던 다다(Dada)나 미래파의 연행(performance) 양상에는 분명 원시종합예술의 특징이랄 수 있다. 또한 현대 예술의 각 장르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일상성의 도입 현상은 예술과 생활의 혼융을 꾀함으로써 예술과 삶과의 분리라는 제도화에 반발하고 있다. 즉 모더니즘을 사이에 두고 모던 이전(pre-modern)과 모던 이후(post-modern)가 일종의 공모관계를 취하면서 역사의 진행은 선조적(linear)인 진행이 아니라 순환적인 진행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성립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총체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 한때 국내의 문화·예술계, 그 중에서도 특히 연극을 비롯한 공연예술 분야에서 논의가 분분하기도 했던 이 용어가 다시 문제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러 기회를 통해서 제기된바 있는 소위 '총체예술'의 개념과 정의는 이른바 '종합예술'의 그것들과 혼란을 가져오면서 논란을 더욱 가중시킨 감도 없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 여러 형태로 제기되었던 이와 관련된 논의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데 있지 않나 생각된다. 즉 '총체예술'이란 종래까지 엄격히 지켜지던 예술의 제 장르들이 한자리에서 결합되되 각 장르의 고유한 요소와 속성을 견지하느냐 아니면 상실하고 한데 어우러지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멀리 보자면 리하르트 바그너의 종합예술 작업에 그 연원을 두고 있는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유도하고자하는 오늘날의 토탈 아트는 분명 각 장르의 고유한 속성을 상실하고 결합되는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총체예술은 작품의 전체적인 효과를 위하여 어느 한 장르가 주가 되고 여타의 장르적 속성은 거기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각 장르가 각기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전혀 색다른 미적 체험을 유발하는 것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극명한 한 예를 우리는 1952년 블랙마운틴 칼리지에서 있었던 한 이벤트 작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52년 여름 불랙마운틴 칼리지 구내식당에서 벌어졌던 획기적인 이벤트는 각 예술 장르 상호간의 간격이 허물어지면서도 무용, 시, 연극, 음악 등 각기의 독립된 예술이 독자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하나의 장(field)에서 만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어 냈다. 홀의 중앙에 네 방향으로 뻗은 통로를 내고 거기에 삼각형 모양의 관객들이 앉을 수 있는 객석을 설치하였다. 이벤트가 시작되자 케이지는 검은 정장을 한 채 강연을 한다면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고, 올슨(Charles Olsen)과 리챠즈(R. C. Richards)는 사닥다리 위에서 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라우센버그는 레코드를 틀었고, 튜도어(David Tudor)는 피아노를 연주하였으며 커닝햄은 다른 무용수들과 즉흥적인 무용을 시도하였다. 이 모든 것들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지니지 않고 무질서하게 동시 병발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처럼 파편화 된 상황의 조립에 대하여 당시 동양의 선(禪)사상에 심취해 있던 존 케이지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선(禪)에는 좋다거나 나쁘다는 그런 것이 없다. 또한 추하다거나 아름다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예술을 삶과 구분해서는 안 되며, 삶 속에는 오직 행위만이 있을 뿐이다. 우연한 사건으로 가득 차고 다양하며, 무질서하고, 단지 순간적인 아름다움만이 존재할 뿐인 모든 삶을 사랑하자."

현대 예술의 특징으로 거론될 수 잇는 미와 추의 범주적 혼돈, 일상적 삶과 예술의 혼융, 우연성의 개입, 작위성의 배제, 관객참여, 미적 지각에서의 거리감의 상실 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 같은 형태의 이벤트는 그 기원을 소급해 올라가 보면 다다(Dada)와 미래파의 연행(演行: performance)에 그 연원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취리히와 뉴욕, 베를린, 하노버, 콜로뉴, 파리 등지에서 산발적으로 전개되었던 다다 운동에 대해 여기서는 지면관계상 상세한 내용을 설명할 수 없거니와, 어쨌든 반미학과 반예술의 기치를 높이든 미래파와 다다는 무질서와 소음, 즉흥적인 도발을 통하여 새로운 예술의 형태를 그려보고자 했던 것이다. <다다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술은 마취 당해 쓰러져 있다. 예술(ART)-뜻도 모르면서 지껄이는 앵무새의 말-은 다다로 대체되었다>, <예술은 한 차례의 수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예술은 소변기를 대하듯 겸연쩍게 고무된 허세요, 화실에서 탄생한 히스테리다>라고 1918년의 다다 선언서에 기록돼 있듯이, 기존 예술의 부정을 통하여 새로운 예술의 탄생을 희구해마지 않았던 다다이스트들의 염원은 희미하게나마 휴고 발의 총체예술(Gesamtkunstwert)에 관한 사고 속에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발은 다음과 같은 쓰고 있다. <조소와 비웃음에도 흔들리는 법 없이 칸딘스키는 아주 새로운 행로만 걸어야 하는 예술 형식의 실험작업을 계속하였다. 말, 색채, 음향 등은 모두 그의 작품에서 보기 드문 조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개별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들의 융합에 도달하는 일이다… 1914년 3월에 내가 새로운 연극 연출을 연구하고 있었을 적에, 나는 일상적인 편견을 뛰어넘는 실험적인 연극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신하였다. 유럽에서는 지금 새로운 방식의 그림, 음악, 시가 만들어지고 있다. 예술들의 융합뿐만 아니라, 모든 혁신적인 생각들의 융합이 일어나야 한다. 일상적인 것과 궁핍스러운 것을 집어삼키게끔 색채, 말, 음향을 우리의 무의식에서 끌어내어 소생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한스 리히터, 「다다-예술과 반(反)예술」, 김채현 역, 미진사, PP. 62∼63)

이와 같은 예술상의 또는 미학적인 실천은 곧 고대희랍 이래 서구의 예술을 지탱시켜온 가상(假像)과 리얼리티의 유비를 뛰어넘어 현실과 예술의 벌어진 간격을 메우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것은 곧 예술과 현실 사이에 엄격히 드리워져 있던 울타리를 허무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일상적인 변기를 전시장에 제시한 마르셀 뒤샹의 도발적인 제스처나 입체파 작가들에 의한 콜라주 기법의 도입, 자신의 아파트에 일상적인 사물들을 조합해나가는 가운데 나날이 증식되는 설치 작업을 구축해 나갔던 쿠르트 쉬비터스의 「자라나는 기둥(Merz Bau)」 등은 바로 가상과 리얼리티의 간격을 최대한으로 일치시키고자 했던 노력들이었다. 그와 같은 시도는 기존 예술의 절대조건이었던 환영(illusion)의 미학을 배격하고 일찍이 플라톤이 웅변했던 '시인 추방론'을 옹호한다.

어쨌거나 다다이스트들의 작업에서 나타났던 일상과 예술의 혼융, 우연성, 관객참여, 작위성의 배제와 같은 특징들은 금세기 중엽의 해프닝(Happening)에 새로운 양상을 띠고 나타나게 된다. 마이클 커비(Michael Kirby)에 의해 "모체(matrix)가 없이 진해되는 연행을 포함하여 다양한 비논리적 요소들의 고의적인 일종의 연주형태"로 정의된 해프닝은 일종의 생활들의 콜라주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후반 앨런 카프로(Allan Kapraw)에 의해 최초로 시도되고 이어서 로버트 휘트먼, 레드 그룸즈, 짐 다인, 클리스 올덴버그에까지 파급되었던 해프닝은 대중소비사회에 걸맞은 예술상의 실천이었다. 그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될 수 있는 하찮은 물건들-빈 우유깡통, 옷가지, 비닐, 셀로판지, 낡은 침대 등-을 사용함으로써 대사회적인 논평을 가하고자 했다. 또한 앨런 카프로를 비롯한 해프너들은 축음기를 튼다든지, 샤워, 감자요리 등과 같은 일상적인 행위를 관객들로 하여금 직접 실연하게 함으로써 창작과 감상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했다.

해프닝에서 나타났던, 일상적 삶의 의미를 예술의 맥락에서 재해석하고자 했던 시도는 결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촌평을 가하고자 한 비판의식의 발로인 바, 이와 같은 시도는 폭 너른 지평을 열어갈 때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사회적 주석과 같은 모양새를 갖추고 나타나게 된다. 현대사회가 지닌 괴리감, 소외, 공동체적 의식의 상실을 애도하고 보다 윤택하며 풍요로운 공동체의 권립을 희구하고자 한 다양한 시도들이 예술의 힘을 빌어 60년대와 70년대를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양한 예술운동과 미학적 실천을 통해 마치 고대사회에서의 샤만처럼 공동체적 삶의 치유를 자임하고 나선 일단의 예술가 집단 내지는 개인들의 다양한 매체와 특유의 방법론을 통해 강력한 대사회적 발언의 포문을 열게된다. 연극에 제의적 요소를 도입한 앙토넹 아르토나 '가난한 연극'을 주창한 예르세이 그로토프스키, 리빙 디어터의 산파역인 주디스 말리아와 쥴리앙 벡크, 플럭서스(Fluxus)의 일원들과 요셉 보이스, 그리고 게릴라 아트 그룹을 비롯한 일단의 행동주의적 미술가들과 환경 예술론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공히 예술에 있어서 주된 관습으로 치부되어온 가상(illusion)을 리얼리티 자체로 치환시키고 사회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가운데, 공동체적 사회의 건립을 시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이 가져온 예술상의 성과는 곧 예술 영역의 확장이었다.



구미를 중심으로 금세기동안 나타났던 이상과 같은 예술상의 유파와 운동들은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전 지구촌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파급되었다. 비록 내용상의 변별성을 지녔더라도 유사한 방법론과 형식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전개되었던 '실험'과 '전위'라는 이름의 각종 예술운동들 또한 이들로부터의 영향 관계를 전연 배제 할 수는 없다. 그만큼 우리의 전위적 예술운동은 서구의 그것에 이론적 젖줄을 대고 자생력을 키워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해프닝으로 기록되고 잇는 1967년의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이나 토탈 아트를 표방한 최초의 예술가 그룹이랄 수 있는 「제4집단」의 결성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무'동인과 '신'전동인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과 음악, 미술, 연극, 영화, 의상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예술인들이 참여한 「제4집단」은 서구적 감수성과 방법론에 편향되었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당시 해프닝을 주도한 사람중의 하나인 전찬승의 다음과 같은 발언 속에서 비교적 명료하게 확인된다. 그는 "빛, 소리, 시간, 공간, 그리고 행위 등을 포함시키는 사건으로서, 특히 인체를 주된 오브제로 사용하여 표출시키는 일들이 60년대 말의 내가 시작한 초기작업으로서의 경향"이라고 밝힘으로써 자신의 작업이 환경 예술의 논리적 확장으로서의 해프닝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자면 이들 해프너들이 벌렸던 일련의 해프닝과 「제4집단」이 행했던 간헐적인 문화 테러적인 집단 시위는 군사 정권으로 대변되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대중사회의 초기단계에 진입하기 시작한 경제, 사회적 현실에 나름대로의 비판적 주석을 가하고자 한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

70년대에는 일상성의 도입과 관념화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시기는 문화·예술적인 상황에서 살펴볼 때 이원화 현상이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한데, 문학과 연극 분야에서의 민중성, 민족성의 제기와 함께 제의의 현대적 해석을 통한 마당 굿 및 전통적인 놀이형식들이 강력히 대두되는가 하면, 반면에 조형예술 분야에서는 유달리 사회, 정치적 현실에 침묵하는 분열 현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73년 명동화랑에서 있었던 이강소의 「화랑내의 술집」은 일상성의 표출과 함께 관객 참여가 두드러진 예술 형태로 기록된다. 일종의 우발적인 효과를 노린 이 작업은 해프닝에 그 이론적 토대를 빌어오고 있으면서도 60년대의 '학사주점'으로 대변되는, 우리사회 특유의 정감 어린 분위기를 창출함으로써 이미 깊숙이 진행되기 시작한 산업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

7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난 이벤트작업은 '관련화'와 '논리화'라는 명제 속에 집약되어 나타난다. 이건용, 성능경, 김용민, 장석원 등 일군의 화가들이 주도했던 이벤트는 그것이 지닌 관념성으로 인해 오히려 관객과의 괴리감을 조성했다는 비판의 여지도 잇지만, 예술 행위를 차분히 검토해 봄으로써 행위 자체에 명증성을 부여했다는 긍정성도 지닌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가열되기 시작한 정치적 질곡은 예술가들을 더 이상의 폐쇄된 틀 속에 가두어 두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화가, 조각가, 연극인, 문학인 등 일군의 예술가들은 과감히 현장, 곧 숨막히는 사회 현실 속으로 뛰어들었으며, 예술과 매체의 힘을 빌어 사회와 정치적 현실을 개조해 나가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사회적 맥락 속으로 파고들어 노쇠한 조직을 되살림으로써 저항력을 높이고자 한 이 같은 시도는 만화와 목판화, 걸개그림, 출판, 홍보매체, 벽화, 대안적 미술교육, 기타 다양한 토론의 형태로 나타났다. 또한 음악, 무용, 문학, 미술, 연극, 테크놀로지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형식이 절충된 양태로 모습을 드러낸 다종다기한 퍼포먼스는 정치적인 발언으로부터 생태적인 관심, 자의식의 분출, 여권주의적 시각을 지닌 것에 이르기까지 80년대에서 오늘에 이르는 시공간을 채워 넣는 내용물이 되고 있다.



총체예술의 정확한 개념과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데에는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의문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그것에 관한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대체관례일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관측이 조심스럽게 시도되고 있기도 하다.(예컨대 포스트모던 문화와 퍼포먼스의 상호 관계를 밝히고자 한 위스콘신 대학 소재 20세기 연구 센터의 다양한 지적 노력 따위)

분명한 사실은 총체예술이 고정된 예술상의 관례(convention)가 아니요. 아직 조심스럽게 시도되고 있는 하나의 유동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제까지 오랜 시간을 거쳐 제도화되어 온 예술 장르의 고착이나 관례화에 저항하며 생성된 새로운 세계관에 대비한 '대체적 관례(Alternative convention)'일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은 조용히 흐르며 변모해 나가는 하나의 유동체에 불과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