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

대중문화론의 전개 양상

-구미의 문화 산업론 유형화를 위한 시안적 시도




박기성 / 경북대 교수

Ⅰ. 서론

1.목적

배라클러프(Geoffrey Barrachough)의 지적처럼 19세기의 4/4 분기 동안에 공학기술혁명은 이루어졌고 이미 대량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산업혁명의 여파와 함께 20세기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1) 1870년대 이후 철강, 석유와 화학제품의 대량화 시대가 도래하고 오늘날과 같은 일상용품, 내연기관, 전화, 확성기, 축음기, 무선전신, 기계화 된 대중교통, 공기를 사용하는 타이어, 자전거, 타이프라이터, 값싼 대중신문, 합성섬유, 인견, 합성수지 등이 모두 이 시대에 출현하고 서양 사회의 대중생활은 크나큰 영향을 입게된다.2) 이러한 변혁적 여건들은 20세기 커뮤니케이션 체제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줄뿐 아니라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는 문화현상으로 나타난다.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제도 육성에 의한 개인의 참정권이 인정되는 사회로 정착하면서 사회제도의 변화, 분업화, 인구의 폭증, 사회구조의 다양화, 산업화 및 이로 인한 생활 수준의 향상, 균등한 교육기회의 부여, 문맹퇴치, 도시화, 도시집중화, 국제정보의 교류, 국제 정치질서의 변화에 따라 개발도상국가의 근대화 시도도 이 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문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산업사회로의 본격적인 발전은 사회의 양적 증대와 함께 문화의 표현과 수용에 새로운 변화의 질서를 초래하게 되었다. 문화가 생활방식이라는 인간적인 가치부여에 의한 과정이요 소산으로 인식되어온 시대와는 다르게 기계적 방법에 의존하여 대량생산과 대량 소비하는 체제로 전환되어 생산과 소비라는 경제구조를 갖추고 유통체제를 마련하게 되었다. 구미의 공통된 현상으로 일반적인 평가가 될 수 있지만 특히 미국에서는 자본주주의 자유시장 경쟁원리를 배경으로 매체의 경영과 제도적 존립을 허용함으로써 상업주의를 배경으로 한 매체 문화의 유통체제를 형성하게 되었다.3-1)

이러한 20세기의 문화현상에 대하여 비판은 다양하게 이루어지게 되고 대중문화의 차원에서, 또는 문화산업론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20세기 문화비판의 모태는 이미 니체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고 오스왈드 슈펭글러(Oswald Spengler)의 문화비판 시각 역시 분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3-2) 상당수의 보수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 언급한 바와 같은 산업사회의 문화가 일종의 문화 몰락을 가져온다는 판단을 내리기에는 너무나 적합한 비관적 속성을 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화비평 활동에 중에서도 이론적 체계화에 의한 비판을 시도한 대표적인 연구자들이 프랑크푸르트학파였다. 그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중문화의 현상에 대하여 사회 철학적 관점에 입각한 비판을 시도함으로써 대중문화의 비판을 체계화할 수 있었다. 영국의 리비스(F. R. Leavis)의 경우에도 생활수준의 차원에서 영화, 방송, 광고 등을 비판하고 인간의 수동성이나 소극성을 우려하고 있지만 프랑크푸르트학파만큼 체계화된 이론적 근거를 갖추지는 못하였다.4)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대중문화의 비판에 문화산업(Kultur Industry)이라는 개념을 활용하고 특히 미국의 대중문화 비판에 비평의 시각을 맞추고 비판이론(Critical Theoryie)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umer)와 아도르노(Theodor Adorno)가 '문화산업론(Cultural Industry)'을 직접 발표하고 30년이 지난 아도르노가 '문화산업론의 재고'(Cultural Industry Reconsidered)를 발표한다.5) 이외에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산업론의 골격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산업사회의 성숙과 함께 나타나는 대중문화 현상에 대하여 지금까지 있어온 문화 비판과는 다르게 60년대를 지나면서 새로운 문화산업론의 전개가 시작된다. 산업사회가 창조한 문화의 산업적 측면을 비판 한다기 보다는 대중매체가 표현하는 문화의 경제학적 측면을 중심으로 비평이 전개된다. 이러한 문화산업론은 60년대에는 토플러(Alvin Toffler)의 언급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70년대로부터 80년대로 이어지면서 UNESCO가 주축이 되어 문화산업이라는 개념 활용이 활발해진다.6) 그러나 이 개념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그것과는 전혀 골격이 다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본고는 현재 문화산업이라는 개념으로 전개하는 문화현상의 비평이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모호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구미의 문화산업론의 전개 동향을 유형화하여 정리하고 평가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본고는 주로 문헌 중심의 체계화와 논의가 이루어지는데 한계가 있다.

2. 문제의 제기

이상과 같은 점에 착안하여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한다.

1) 구미의 문화산업론과 대중문화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

2) 구미의 문화사업론은 어떻게 유형화 될 수 있는가 ?

3) 구미의 문화산업론에 나타난 문화 비평적 특성은 무엇인가 ?

Ⅱ. 구미 문화산업론의 전개유형

언급한 바와 같이 문화산업은 이미 모태를 역사적 현상으로 보아 대중문화 현상과 대비시켜 소급해 해석을 시도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본고에서는 특히 논의가 있어온 20세기의 현상을 중심으로 한정하고 이를 전(前)문화산업론,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산업론, 다원적 문화산업론으로 구분한다.

첫째, 전(前)문화산업론이라 함은 비록 연구자들이 문화산업이라는 개념을 만들지 않았지만 뒷날 문화산업론 전개에 관점의 근거를 제공해준 경우이다.

둘째,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산업론은 사회철학의 비판적 시각을 배경으로 문화의 몰락을 비판하는 관점을 말한다. 이들이 말하는 문화는 전(前)문화산업론의 경우처럼 순수문화(고급문화)를 주요 대상으로 한다.

셋째, 다원적 문화산업론이란 대중 매체의 문화 생산과 유통을 문화경제학적 측면에서 다루는 대중매체 연구자의 관점을 말한다.

Ⅲ. 제1기: 전(前)문화산업론

1. 구라파에서의 대중문화 비판

20세기의 문화에 대한 연구와 비판이 형성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본다면 두 가지 경향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칸트는 철학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비판이며 둘째는 마르크스주의의 문화비판이다. 칸트에서의 이성의 비판은 호르크하이머가 「이성의 종말」에서 지적한 것처럼 비판정신의 구축에 중요한 바탕이 된다. 마르크스의 문화비판은 1876년 「일상용품의 물질적 본질의 갖는 독성」을 발표하여 문화의 일상용품화(commodity)를 개탄한다.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물신화된 의식(fetishistic consciousness)은 마르크스적인 문화비판에 중요한 관점을 형성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인간이 창조하는 생산품은 일상용품의 입장에서 볼 때 꼭 같다. 마르크스는 이를 물신화된 성격(fetishistic character)으로 규정하며 일상용품의 형태로 생산되는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가 첨가된다고 본다.7) 일상용품의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물신화된 속성은 일상용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독특한 사회적 특성의 소산이다. 마르크스의 이러한 문화관은 루카치에 의하여 받아들여지게 되고 루카치는 1920년에 「신문화와 구문화」를 발표한다. 1920년대의 환경은 이미 구미의 산업화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문화의 기계화된 반복생산 및 물신화된 의식은 문화비판의 여건을 마련해준다. 1920년대라면 산업사회가 번창하고 이로 인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단계로 접어들기 때문에 마르크스적인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매체가 갖는 이데올로기적 속성 문제는 1920년대를 전후하면서 활발히 전개되다. 매체에 대한 논의는 (1) 문화의 일상용품화 (2) 문화의 기계생산제품화 (3) 매체가 생산하는 메시지의 심미적 차원 등에서 이루어진다. 이 시기의 활동은 직접 또는 간접으로 뒷날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중문화 비판이나 문화산업론 전개에 결정적인 선례를 마련해준다. 지적한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발표된 글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8)

1918. 레닌 :「우리 신문의 성격」

1920. 루카치 : 「구문화와 신문화」

1926. 트로츠키 :「라디오, 과학, 공학기술과 사회」

1928. 휠러링(Franz Hollering) :「사물을 바라보는 기계의 행복」

1930. 브레이트(Bertolt Brecht)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라디오 : 라디오의 기능에 관 한 일 고찰」

1931. 칼라토프 : 「문화혁명과 도서」

1933. 아른하임 : 「영화론」

1934. 아른하임 :「동사진론:Motion Picture」

1935. 아른하임 :「텔레비전 예측고」

1934∼35. 벤야민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품」,「사진의 작은 역사」,「생산자로서의 작자」

1938. 아른하임 :「토키 필름의 예술성」

1942. 징톤과 바이덴 필드(Derrick Sington and Arthur Weidenfeld) :「제2제국의 방송」

이중에서 루카치, 벤야민, 브레히트의 활동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연구활동에 선례가 되었을 뿐 아니라 벤야민의 기(aura)는 아도르노의 예술 비평을 정립하는데 기여한다. 본고에서는 루카치의 「구문화론과 신문화론」,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품」을 중심으로 한 예술비평 활동인 「복제기술적 문화생산론」, 브레히트의 「라디오 기능론」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2. 주요 연구자의 관점

1) 루카치(Georg Lucacs: 1885∼1971)의 「구문화와 신문화론」

헝가리의 유태계 출신 루카치는 1920년대에 「공산주의(Komminus)」 1호에 「구문화론과 신문화론(Alte and Neue Kultur)」을 발표한다. 루카치가 정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1918년부터 1930년대이고 마르크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게된 것은 1931년에 들어와서 비로서 가능했다고 한다.9) 1918년부터 1919년 사이에 정치이론서 「전술과 윤리학」을 집필하고 헝가리 공산당에 입당하여 문화운동에 참가하고 헝가리에 소비에트 공화국이 존속하는 동안 루카치는 교육 및 문화상으로 일했다. 1919년 8월 공화국이 붕괴되자 9월 빈으로 건너가 1920년부터 1921년까지 죄익계 잡지 「공산주의(Komminus)」의 편집장으로 일하게 된다.10) 「구문화와 신문화론」도 발표지를 배려한다면 이 시기에 집필된 것으로 판단되고 아직도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학습하는 초기 단계에 씌어진 글로 추정된다. 루카치나 그람시 등은 인간의 존재와 자연간 및 의식과 대상간에 매개적인 것(the mediating)을 실천으로 보는 마르크스적인 주제를 배경을 한 문화비판을 시도하게 되는데 문화적 마르크스주의 (Cultural Marxism) 이론을 제공하게 된다.11)

루카치는 문화를 <일상생활 영위와 연관시켜 볼 때 없어도 될 가능성과 가치 있는 생산품의 조화로 구성되어진 것>으로 정의한다.12) 루카치는 자본주의 이전의 지배계급이 갖던 문화를 구문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용품으로 전락한 문화를 신문화로 규정한다. 루카치가 언급한 내용의 골격을 보면 모든 문화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가치 있는 생산과 재능이 조화를 이루게 되지만 자본주의하에서는 문화는 경제의 지배를 받게 되고 사회는 거대한 시장화였으며 문화는 자연성을 잃고 일상용품으로 전락되고 가능성은 상실되었다는 것이다.13) 문화를 생산자와 생산품의 관계로 보면 문화의 생산이란 통일되고 독자적인 과정이 있어야 하며 이러한 과정의 조건은 프로듀서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좌우된다.14) 프롤레타리아의 세대에는 예술정신이 전체의 산업을 지배했으나 자본주의 사회에는 노동이 분화되고 생산과정을 분업화함으로써 자립성이 상실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루카치는 문화생산은 기계적 생산(machine production) 때문이며 이로 인하여 비인간적 관계가 이루어졌다고 지적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입장을 답습한다.15) 문화의 기계생산은 형식과 자질에서 시장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유행의 지배를 받게 된다.16) 루카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문화가 혁명적이어서 부정적 생산이라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부르주아는 권력을 얻기 위해 투쟁하면서 개인의 자유라는 이데올로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지적한다.17) 그리스나 르네상스 시대는 이데올로기와 생산 질서가 조화를 이루어 문화의 위대성이 존재하고 사회의 토양에 맞추어 발전할 수 있었다.

루카치의 문화비평관에서 찾아볼 수 잇는 점은 (1) 자본주의 사회를 문화소비 시장으로 (2) 사회 생활을 경제적 교환관계로 보며 (3) 문화는 일상용품화하고 (4) 기계생산이 문화의 가치를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루카치는 대중의 계층에 대해 인정하거나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구문화는 인간이 창조하는 문화의 존립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면서 신문화는 구문화가 구축해온 자율적 질서가 파괴된 채 문화의 기계적 반복생산이 이루어지며 일상용품화 하게 되었다고 본다.

2)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의 복제기술적 문화생산론

벤야민은 1892년 독일에서 출생하고 1913년 이래로 파리에 여러 차례 방문하였으며 1930년부터 프랑크푸르트 연구소 지원금을 받아 연구활동을 한다. 나치가 집권하면서 1933년 벤야민은 대부분의 다른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연구자가 망명길에 올랐듯이 히틀러의 압박에 못 이겨 파리로 망명한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1939년 가을에 벤야민은 불란서 정부에 의해 독일 수용소에 감금되고 스페인을 통해 미국으로 망명하려다 스페인 관헌에 의해 입국이 저지되자 1940년 이태리로 탈출하던 중 자살한다. 프랑크푸르트 연구소 연구원은 아니지만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집필한 원고를 프랑크푸르트 연구소의 연구지 「사회문제연구」에 싣게 되었고 원고가 수정 게재됨으로써 논란이 있기도 했다,.

벤야민의 문화비판을 이루는 골격은 1935년에 간행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사진의 작은 역사」,「생산자로의 작가」 등의 논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중에서도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은 벤야민의 유물론적 예술 이론의 핵심을 이루는 기(aura)의 개념과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관계를 규명한 중요한 논문이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과 「수집가와 역사가로의 푹스」는 벤야민이 회고한 것처럼 「일정한 예술형식」, 특히 영화를 「사회적 발전과정 속에서의 예술의 기능변화」라는 조형예술의 사회학적 관점에 입각한 시론이다.18) 여기서 예술의 기능이란 예술의 정치화를 말하며 예술의 정신화, 미학화와는 정반대 되는 구호이다.19)

벤야민의 견해에 따르면 예술작품의 모방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시대에 따라 양상은 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술복제 방법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본다. 석판인쇄가 한 번 전환기를 가져왔고 그 이후에 수십 년이 지나지 않아 사진술을 바탕으로 한 영상복제 기술이 개발되고 이로 인하여 수공으로 하는 복제 업무를 감소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제 예술품 속에는 일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예술작품이 누리는 유일무이한 현존성, 즉 일회적 현존성이 결핍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현존성을 벤야민은 기(aura)라고 규정한다.20) 예술품의 복제생산 가능 시대에 나타나는 특성은 바로 예술의 위축이며 복제된 것은 전통의 영역에서 이탈되며 대량생산이 이루어짐에 따라 일회적 산물은 대량제조 된 산물로 대체된다. 이때 수용자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복제된 제품을 대면하고 현재화한다. 기계적 조건에 따라 좌우되고 인간은 기계에 봉사하고 적응하며 생산은 인간이 가진 가능성이나 노동자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예술작품의 유일무이성은 전통과의 상관관계에 깊게 뿌리 박혀 있으며 전통이란 살아있고 변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는 종교의식에서 참모습을 드러내지만 사진의 출현은 새로운 위기를 조장시켰으며 예술작품의 복제 가능성은 예술작품이 종교적 의식 속에 기생하던 삶의 형식을 벗어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종교의식적인 것에 근거를 두던 예술의 사회적 기증의 자리에 또 다른 하나의 실천, 즉 정치에 근거를 둔 예술의 기능이 창조되었으며 의식 가치(Kuetwert)에 역점을 두던 시대에서 전시 가치(Ausstellungswert)가 강조되는 시대로 바뀌었다고 본다.21) 벤야민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사진과 영화를 들고 있다.

그러나 벤야민은 기술복제가 가능함에 따라 예술에 대한 대중의 태도가 변화하여 반동적인 태도는 진보적인 것으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한다.22) 피카소에 향하던 반동적 태도에서 채플린의 영화에서는 진보적 반동으로 바뀐다고 보았다. 진보적 반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전문가의 안내로 직접적이며 친근한 시각적 정서적 향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며 이러한 향유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벤야민의 예술 이론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인 기는 일종의 신비스러운 개념이다. 벤야민의 의의는 첫째는 벤야민의 지적 발전을 처음부터 지켜보았고 유대교 연구에 세계적인 석학인 숄렘(Gershom Scholmem) 교수의 견해를 차용하면 신비주의적 요소를 가장 강하게 지니는 유대교의 카발라(Kabbala)적인 관점에서 벤야민을 평가하면서 「유대정신의 가장 감동적인 증언의 하나」라고 지적하고 잇는 것이다.23) 둘째는 벤야민의 기의 개념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학연구와 특히 아도르노의 문화비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셋째는 벤야민의 양과 질의 개념이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입각한 해석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24) 넷째는 마르크스적 관점을 가지면서도 수용의 측면에서 보다면 예술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진보성을 내포한다고 본 점이다.

3)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 라디오 기능론

브레히트는 극작가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루카치, 벤야민과 함께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브레히트는 벤야민과의 관계에서 깊은 학문적 교분을 가지기까지 하였다. 여기에 소개하는 브레히트의 에세이는 1930년에 집필되고 그의 전집 제18권에 수록되어 1967년 간행된 내용을 정리해본 것이다.25) 1930년대의 독일의 방송은 1933년을 지나면서 방송위원화기 조직되고 라디오 수신기 제조업자에게 철저한 통제를 가하는 한편 나치의 점령으로 방송의 교육적 기능이 강조되고 있는 시기의 방송이었다.26) 괴벨스(Gebbels)가 1933년 선전부(The Propaganda Ministry)를 창설하고 직접적인 통제를 실시한다. 이러한 세대에 브레히트가 제기한 라디오의 커뮤니케이션적 측면의 기능론은 가장 오래된 고전적 기능론으로 평가될 수 있다.

브레히트의 첫째 관점은 라디오의 출현이 기술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사회의 수준과는 맞지 않게 개발되었다고 평가한다.27) 그래서 공중이 라디오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라디오가 공중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라디오의 실상을 보면 소재가 사회적 욕구를 바탕으로 한 생산수단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이 소재를 기다린 결과를 가져왔다. 모든 일을 모든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됨으로써 대용물(substitute)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28) 극장도 오페라도 카페 음악도 모두 대신해서 맡게 되었다.

둘째는 라디오가 출현하면서부터 발표하고 모든 것을 전파할 수 있게 됨으로써 모든 기존 제도를 모방할 수 있게 된 점이다.29) 그 결과 혼돈과 풍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라디오가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분배하는 일방향성 수단이 되고 있는데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이상은 양방향이 되어야 할 것으로 브레히트는 주장한다.

셋째는 라디오의 긍정적인 잠재력으로 평가될 수 있는 점인데 분배 체제에서 커뮤니케이 체제로 바꾸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30) 공공 커뮤니케이션의 체제로서 라디오는 잠재성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전달하는 기능을 극복하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넷째는 라디오가 예술적 표현매체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31) 브레히트는 코러스나 자신이 전공하는 서사극을 라디오에 응용함으로써 효용성을 높일 수 있으리라고 강조한다.

이상에서 본다면 브레히트가 라디오를 커뮤니케이션 체제 차원에서 내린 기능의 평가는 활용의 방법을 개선할 때 공중에서 긍정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린 점이다.

Ⅳ. 제2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산업론

1. 사회 철학적 관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이 정치적, 경제적 변수와 관련시킨 문화비판을 시도하는 것처럼 문화산업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미국의 1940년대 문화 현상을 문화산업으로 규정하고 비판론을 제기한 배경으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감안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접근 방법론에 있어서 구미 중심의 경험적 접근방법(empirical method)에서 탈피하여 비판이론에 바탕을 둔 방법을 활용하고 있는 점,32) 둘째는 독일의 히틀러 지배하에서 전체주의적 강압을 탈피하여 미국에 가서 생활하면서 미국의 대중문화를 직접 경험할 기회를 가졌다는 점,33) 셋째는 프랑크푸르트학파 학자들이 마르크스주의에서 탈피하려 하면서도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특히 문화의 생산과 수용면에서 인간의 이성적 측면을 잠식시키며 제한시킨다고 판단한 점,34) 넷째는 철학에 바탕을 둔 문화의 예술적 측면을 중심으로 문화비판을 시도하고자 의도하고 있었던 점35) 등을 들 수 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문화산업이라는 개념을 대중문화 비판에 적용할 때 그 저의는 단순히 문화의 산업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호르크하이머나 아도르노가 문화산업을 통하여 비판한 기본 골격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이상적인 문화란 계몽에 의한 이성을 실현하는 사회적 행위의 결과와 향유로 규정하고 있다. 문화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을 가한 대중문화는 산업주의를 바탕으로 한 기계적 반복생산의 창조행위 때문에 진정으로 문화가 유지해야 할 심미성이 파괴 위축되고 이를 수용하는 대중은 표준화·규격화·상업화된 공급받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본 문화란 이성의 작용에 바탕을 둔 인간의 고유한 활동으로 본다. 그러나 그들이 강조하는 범주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의지적 활동으로 포괄성을 띠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정수성을 바탕으로 한 심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문화산업론」을 전개하면서 이들이 주요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영역은 매체의 제도, 속성, 유형, 또는 커뮤니케이션의 과정보다는 메시지가 갖는 속성과 소비의 단계를 강조한다.36) 영화, 라디오, 만화, 재즈, 텔레비전 등이 주요 대상이 되면서 메시지의 심미성의 평가에 역점을 둔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와 아도르노(Theodor Adorno)가 발표한 「계몽의 변증법(Dialectic of Enlightenment)」 중에 「문화산업: 대중 기만으로서의 계몽(Culturai Industry: Enlightenment as Mass Deception)」은 문화산업론을 전개하는 결정적인 에세이가 된다. 「문화산업론」 전개에 방법론적 뒷받침이 되고, 경험주의를 논박하는 주요 에세이로는 「계몽의 개념」,「과학의 위기에 대한 메모」,「전통이론과 비판이론」이 있고 대중문화의 예술성을 언급한 에세이로는 「예술과 대중문화」가 있다.37)

2차 세계 대전 동안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다수 학자들은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어야 했기 때문에 미국의 경험주의를 실제로 체험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아도르노는 라자스펠드(Paul Lazasfeld)와 함께 미국의 라디오 연구소에서 직접 라디오와 텔레비전 연구에 참여하고 「텔레비전과 대중문화의 유형」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로웬탈(Leo Lowental)은 미국에서의 연구 경험을 토대로 1961년에는 「문학, 민중문화와 사회」를 출간하였다.38) 로웬탈은 대중문화와 민중문화를 구분하여 해석을 시도하였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실천운동이 60년대 말을 전후하여 한계점을 가져왔던 것처럼 「문화산업론」의 전개 역시 시대적 변혁을 수용하는 이론으로 구축되지 못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본격적인 연구 활동은 1930년 7월 호르크하이머가 사회연구소(Instituts für Sozialfoschung)의 소장으로 취임하고 일어나는 일련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마틴 제이(Martin Jay)의 언급처럼 호르크하이머가 표방한 사회연구소의 운영 방향은 1931년에 취임연설문인 「사회철학의 현실적 상황과 사회과학 연구소의 과제」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며 선임자의 접근 방법과의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39) 즉 경제나 역사 연구에 치중하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이 연구소의 연구활동에 중요한 영역이 되며 이러한 경향은 1932년 마르쿠제가 1928년에 아도르노가 연구원으로 들어오면서 더욱 강화된다.40)

호르크하이머가 소장을 맡기 전에 사회연구소는 그린베르크(Carl Grünberg)가 맡아왔고 주요관심사는 마르크스주의를 배경으로 한 경제활동 연구이었다. 사회연구소는 독일 문부성의 칙령에 따라 1923년 2월에 설립을 보게 되었다. 루카치(Lucacs), 코르쉬(Korsch), 폴로크(Pollock), 비트포겔(Wittfogel) 등의 저명한 학자가 참여하고 급진적 사회주의 사상의 탐구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독일에서의 사회주의적 혁명의 실패가 가져다준 특정 시대적 성격은 마르크스주의의 재평가 필요성을 필연적으로 제공해 주었다. 그 결과는 결국 마르크스주의를 이탈하여 사회, 문화비판을 시도하려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이러한 활동은 1930년대 이후의 연구소 활동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연구소의 주요 연구 활동은 소장인 호르크하이머를 비롯한 아도르노, 마르쿠제 등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벤야민은 연구원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과 같은 학문적 노력을 투자하며 아도르노의 문화비판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1940년대를 맞이하면서 유태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들 학자들은 독일의 나치즘 치하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해외로 망명하게 된다. 소련 등 볼셰비키 마르크스주의가 지닌 기만적 광신성을 파헤치고 유물사관의 경직성을 집요하게 공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치즘에 대하여 타협할 줄 모르는 학문적 저항을 하게 된 것이다.41)

벤야민은 독일점령하의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망명하려다가 게슈타포에게 붙잡히게 되어 47세의 나이로 자결하게 되나 다행히 미국으로 망명한 학자들은 대중사회의 문화현상을 직접 체험할 중요한 계기를 갖게 되었고, 아도르노나 로웬탈(Leo Lowental)은 대중문화 연구활동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은 문화비판을 시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주었고 「문화산업론」의 전개는 부르주아 산업사회의 대중문화를 비판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전체주의적 사회 현상이 인간의 존엄과 정의를 말살시키고 야만화 시킨다는 점에 입각하여 공산주의를 비판하게 되지만 미국에서의 대중문화 현상이 자본주의 방식에 입각한 나머지 인간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문화에 비판을 가하게 된다.

2. 문화산업론에서의 대중문화 비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중문화 비판은 호르크하이머가 1947년에 발표한 논문뿐 아니라 1967년에 아도르노가 발표한 「문화산업론 재고」 등의 에세이를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예술과 대중문화」에서 호르크하이머는 20세기 산업사회의 문화가 공학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환경 속에서 기계화하고 이로 인하여 예술의 기계화가 범세계화 하는 경향을 띠며 문화산업에 의하여 조작되고, 함축성은 파괴되었으며 참된 예술과는 무관해진 상태를 이루었다고 지적한다. 에세이 형식으로 된 「문화산업론」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비판 활동 중에서도 대중문화를 비판한 가장 핵심이 되는 글이라 할 수 있는데, 다루고 있는 중요영역은 문화산업의 영역과 문화의 관계, 문화가 갖는 자립적 요소의 파괴, 문화와 상업주의, 문화산업으로 인한 비극의 사멸, 문화와 의식이 상실된 개인, 문화의 일상용품화, 문화산업론으로서의 광고 등이다. 문화산업론에서 전개한 주요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문화산업의 영역

대중문화는 모든 영역을 동일한 형식으로 꾸며가고 상업주의적 독점이 이루어지며, 이로 인하여 문화가 가져온 예술성을 탈피하고 폭력이 공인되고 공공연해진다. 기업은 이데올로기화하고 쓰레기와 같은 문화를 생산하면서 이를 정당화하려는데, 이러한 양상의 생산을 산업이라 한다. 영화, 라디오, 만화, 재즈뿐만 아니라 텔레비전도 문화산업이 된다.

(2) 문화의 순수성 파괴

문화산업에서는 문화의 민주화를 전제하고 수용자의 욕구를 감안한 문화생산을 시도한다는 공학 기술적 타당성을 주장하나, 표준화, 대량생산, 반복생산의 방법에서 탈피할 수 없다. 문화산업은 칸트가 말하는 순수이성을 바탕으로 한 직관에 의한 은밀한 메카이즘이 작용하는 사회 경험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소비자는 선택권이 철저하게 제한된다. 사회 힘에 억압되어 불합리하게 되고 상업성을 띤 사회기관에 의해 불가피한 힘이 작용한다. 대중을 위한 예술의 영역은 파괴되고 대중예술(,mass art)로 전락하며 제작팀이 갖는 집합적인 의식에 의하여 창조되고 메시지의 외형으로 보기에는 변화가 있으나, 실제로 내용으로 볼 때는 변화가 없다.

(3) 문화산업의 상업주의

문화산업이 존립하는 기본취지는 자유주의에 바탕을 두지만 산업사회에서는 문화가 경제적인 독점에 지배를 받게 되고 그 결과로 문화생산이 기업형태를 띠게 되고 오락산업으로 전락한다. 자유경쟁 체제하에서 영화, 라디오, 재즈, 잡지 등은 기계적인 반복생산을 경쟁적으로 연속 시도하며 대중문화의 주종을 이루게 된다. 문화산업은 오래 전에도 있었으나 산업사회에 들어와서 오류 된 형식(false formula)으로 통합되고 반복성을 띤다. 오락산업으로서 공중을 대상으로 한 대량생산 시설을 갖춘다. 결국 문화산업이란 예술작품이 갖는 심미성, 소박성을 외설적인 것이나 천박스러운 것으로, 사랑을 로맨스로 격하시키고 상업적 거래양식을 띠며 성적인 속성이 내재된다. 문화의 기계적인 재생산이 개인의 우상을 지배하고 예술이 주는 진정한 의미에서는 순수한 즐거움을 시장유통에 의하여 차단 당하고 스타들의 출현을 보게 된다. 문화산업이 대중 기반이 되는 이유는 오락을 제공하여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산업에 유관한 사업적 배려를 허용함으로써 진부한 이데올로기적 타성에 빠지게 하여 참된 희열을 파괴시켜 놓는데 있다. 문화산업은 감각적 쾌락을 고양시키고 인간을 타락시킨다. 영화, 사진, 라디오, 레코드 등의 실태에서 볼 때, 문화는 오락에 용해되어 문화 본연의 자제가 박탈되고 일종의 지식화(intellectualization)가 도모된다.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이상과 같이 문화비판을 시도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어떠한 사상이 영향을 줄 수 있었던가를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첫째는 경험주의적 접근방법을 탈피하여 비판적 접근방법을 적용한 점, 둘째는 문화를 보는 안목이 거시적이며 순환론적 역사관을 피력한 슈펭글러의 관점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 셋째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적 방법을 인간의 개인 심리 현상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 넷째는 니체의 허무주의가 저변에 흐르고 있다는 점, 다섯째는 벤야민의 예술비평의 관점을 대중문화 평가에 주요 준거로 삼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보기로는 미국의 경험주의적 접근 방법에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였음에 틀림없다. 경험주의 학파는 개량적인 경험주의, 기능주의, 실증주의에 입각하고 있는 반면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맥락에서 비판적 접근을 시도하였다.42)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실증주의가 (1) 인간의 존재를 보는 관점에서는 기계론적 인식론에 빠져있고 (2) 세계를 경험된 현상으로 판단하려는 나머지 본질과 외관을 구분하지 않고 있으며 (3) 실증주의에는 사실과 가치 사이에 절대적인 구분이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인간의 관심과 지식을 구분한다고 지적한다.43) 호르크하이머는 처음부터 비판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44) 이러한 사상적 근거를 배경으로 말미암아 마르크스주의에서 극복하려는 연구가들에게는 부르주아적 산업주의가 야기하는 문화의 현상이 쉽게 비판의 대상으로 될 수 있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표면적으로 슈펭글러의 역사적 숙명론을 부정한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특히 슈펭글러에 대해 놀라울 만큼 정확한 이해가 있었고 슈펭글러의 정신의 모든 저작 속에 스며있다.45) 아도르노가 슈펭글러에 대해 이해한 영역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아도르노는 슈펭글러가 유럽의 투쟁에 정치적 결정이었던 시이저주의(caesarism)의 대두를 통찰한 데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둘째, 그는 도시 거주자의 원자화와 방랑화, 그리고 20세기의 원형적인 도시형태에 대한 슈펭글러의 관점을 찬양하였다. 셋째, 그는 위기 상황에서의 계몽주의적 성격에 대한 슈펭글러의 이해를 찬양하였다. 넷째, 그는 전쟁의 미래에 관한 슈펭글러의 견해에 동의했으며, 다가올 전쟁의 보편성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군사적 구조에 대한 그의 통찰을 예찬했다. 다섯째, 아도르노는 슈팽글러가 새로운 정당의 출현을 예측한 것을 찬양했는 데 그 새로운 정당은 일군의 멤버들로 구성되었다기 보다는 숭배의식으로 충만 된 추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섯째 그는 동적인 문화의 쇠퇴와 정적인 문화의 성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슈펭글러의 생각간에 몇 가지 유사점들을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아마 가장 주요한 것이 되겠지만 그는 서양의 문화와 정치생활에서 새로운 야만이 성장하고 있다는 슈펭글러의 관점에 설득력이 있음을 확인했다.46)

아도르노는 예술, 음악, 철학과 같은 고급문화에 의존하는 입장을 따르면서도 지배(domination)의 관점에서 문화를 보려는 의도는 슈펭글러와 동일하며 문화는 불가피하게 소멸하고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관계는 변증법적 대립관계에 있다는 것이다.47)

아도르노는 「문화산업론」에서 대중과 대중문화의 수용관계를 개인의 차원에서 규명하면서 그 심리적 현상은 프로이드의 설명 방법에 착안하고 있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상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대중문화의 수용에 있어서 대중이 추구하는 비극은 사멸하고 영리에 바탕을 둔 기계 생산적인 대용품이 범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끝으로 대중문화 비평에는 벤야민의 관점을 답습하고 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와 문화의 예술성을 인정하는 기본 전제는 벤야민의 지적하는 예술의 기(aura)이다. 예술작품은 고유한 기를 가지고 있으나 기계복제 시대를 맞으면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게 되고 개인의 수용 상황에 따라 현재화함으로써 예술작품의 존립위치를 손상시킨다고 주장한다.48) 이러한 벤야민의 예술관은 대중문화의 기계적 연속생산과 수용자의 저급한 욕구에 호소하는 예술사회학적 현상을 설명해 주는 논리를 제공해준다.

다음은 「문화산업론」의 전개 실태를 평가해 보기로 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산업론」이 학문적으로 어떻게 기여했으며, 반면에 대중문화론 전개에 있어서 가져다준 제한점은 무엇인가를 규명해 보겠다. 학문 연구에 기여한 점과 제한점으로 구분하고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기여한 점으로 첫째는 대중매체가 대량반복 생산하는 문화를 예술적 측면에서 평가하려 하는 점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기본 전제처럼 문화의 창조가 계몽에 의한 의식의 활동으로 본다면 공학 기술적 수단에 의존하는 대량생산과 소비는 이러한 기를 축소 또는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둘째는, 프랑크푸르트학파가 경험적인 방법론 즉 전통이론의 약점을 극복하려 했고, 비판이론을 이에 상응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본 것이다. 문화산업론 역시 비판이론의 방법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점은 새로운 시도라 하겠다.

셋째는, 메시지의 생산과 소비를 사회경제 체제와 연관시켜 설명하려고 한 점이다. 대량생산과 대중에 의한 소비를 경제 체제와 연결시키고, 부르주아적인 자유경제 체제가 오히려 대중의 문화 민주주의를 제한할 뿐 아니라 일종의 기만을 꾀한 다는 것이다.

넷째는 문화생산과 공학기술의 관계를 규정한 점이다.

다섯째는 수용이론의 효시가 될 수 있는 점이다. 독일의 수용이론은 문화의 수용이라는 점에서 1960년대에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하는데 문화산업론은 대중의 문화수용을 프로이드의 심리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

기여한 점 못지 않게 문화산업론을 비롯한 대중문화의 비판은 전개의 맥락에서 볼 때, 제한점을 갖게 되는데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는, 체계적인 방법론을 정립하지 못한 점이다. 비판이론의 기본 배경이 되는 개념의 규정, 관계의 설정, 사회적 맥락의 규정에는 미흡한 나머지 에세이 형태로 남아있게 된다.

둘째는, 문화의 수용 측면에서 전개하는 방법은 수긍이 가나, 수용자가 사회적 맥락에서 갖는 계층의 상대성을 감안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하여 대중이라는 개념 자체가 선명하지 못하다.

셋째는, 매체의 속성보다는 메시지의 내용상 어떤 측면의 특성만을 문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매체의 유형에 따른 표현 체계적 특성이 평가되지 않고 있다. 즉, 문화의 예술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넷째는, 미국의 대중문화와 정체적 현상을 주요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 전파와 변형 또는 확산에 의한 국제화 등을 구체적으로 배려하지 않고 있다.

Ⅴ 제3기: 다원적 문화산업론

1. 매체문화의 변혁

구미의 매체문화 발전과정을 보면 3단계로 변천을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산업사회의 도래까지는 그들이 고유하게 가져왔던 전통매체에 의존하여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산업 사회화와 자유주의적 의식 숙성으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매체가 필요했고 대중매체가 그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산업사회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대중매체의 개방은 필요한 것이지만 미국식의 자유방임적 경영 체제가 유발하는 문제점 때문에 비판의 시각은 모아졌다. 그러나 산업사회와 대중매체를 결부시킨 아무런 이상적인 해결책은 모색되지 못한 채 60년대에 이르는 선진국의 산업사회 성숙은 새로운 논의의 방향을 제시하게 되었다.

60년대 이후의 공업선진국 산업현상에 대하여 학자들의 예측적인 연구는 매체의 위상을 새롭게 해야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공업선진국의 산업구조가 3찬 산업으로 비중이 높아지면서 사회는 질적인 변혁이 올 것으로 예측한다. 부존자원에 의존하던 시대에서 미래의 부존자원 고갈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고 여기에 정보(information)는 주요자원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정보의 수집, 처리, 가공, 유통에 새로운 매체의 이용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개발 필요성은 새롭게 전개된다. 여기에 기존의 대중매체의 새로운 매체의 개발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고 뉴 미디어(new media)의 잠재성이 평가된다. 미래 사회에서 대중매체뿐 아니라 신 매체는 필수적인 생활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매체 개발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다른 하나의 조건은 공학 기술적 변혁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미세전자기술에 변혁이 이루어지면서 이는 매체의 개발에 기여할 수 있었고 특히 신 매체의 개발에 결정적인 기술원리로 제공되게 된다.49)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70년대에 접어들게 되면서 후기산업사회로 명명되던 사회의 설명관점이 점차로 정보화 사회로 바뀌게 된다. 미래학자들이나 사회학자, 대중매체 학자들에 의하여 정보화 사회의 가설은 성립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매체는 새로운 위상의 정립이 필요하게 되고 지금까지 있어온 문화산업론이나 대중문화론의 전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2. 문화산업론 전개의 특성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중문화 비판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동안에 문화의 기능론에 입각한 대중문화 비평이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50)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6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중매체의 대량 보급과 함께 범람하는 대중문화의 현상에 대하여 대중문화의 논쟁은 비판적으로 전개된다. 맥도날드(Dwight McDonald), 로젠버그(Bernard Rosenberg), 반덴하그(Ernest Van dene Haag) 등 다수의 학자에 의하여 대중문화의 소비양상이 대한 비판이 가해진다.

그러나 60년대를 지나면서 공업선진국의 산업 양산이 후기산업사회의 징후가 나타나고 이에 따른 학자들의 시각도 바뀌면서 오히려 매체 문화의 경제적 측면에서 존립의 타당성을 찾는 방향으로 연구의 관점은 전환을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모색이 가능하게 된 동기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산업론」도, 구조기능주의에 입각한 대중문화 비판도 급변하는 문화현상에 부합하는 논리로 더 이상 설득력을 얻지 못한 때문이라 볼 수 있다. 70년대에 접어 들면서 선진공업국에 예측되기 시작하는 정보화 사회는 매체의 사회적 존립의 타당성을 오히려 인정해주려는 경향으로 될 수밖에 없고 여기에 문화산업론도 대중문화론도 적합하지는 못하다. 양자 모두의 공통된 관점은 대중매체가 문화를 상품화 소모품화 하는 주범으로 비판되는 요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에 접어들면서 나타나게 되는 문화산업론을 필자가 다원적 문화산업론으로 규정하게 되는 이유는 연구에 참여하게 된 모든 학자들이 「문화산업론」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자에 따라 개념을 다르게 하여 정의하고 관점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들의 실태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기로 한다.

토플러는 「문화소비자론」에서 문화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으로 구분하는데 전자는 문화산업의 형태를 이루며 신문, 도서, 잡지, 방송, 레코드 산업, 오페라 등에서 나타난다고 본다.52)

50년대와 60년대의 산업 사회적 여건 속에서 새롭게 전개되는 문화산업론의 양상을 마뗄라르(Armand Mattleart)와 피엠므(Peane Piemme)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53)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제시한 것은 연극 공연에 있어서 일종의 막간극에 지나지 않았다. 문화산업이라는 개념은 그후 모렝(Guy Morin)에 의하여 증폭되고 이태리 학자들에 의하여 수정되고 일부 제3세계 학자들이 인수하게 되면서 급속도로 진부해져갔다.>

이외에도 이들은 매클러프(Fritz Machlup)가 전개한 지식산업론(Knowledge Industry)의 개념도 이러한 개념의 범주임을 지적한다.54) 엔젠스베르그(Hans Engensberger)는 의식산업론(Consciousness Industry)을 전개하면서 매체 커뮤니케이션에서 방송 산업의 활용을 등한시하고 있는 점을 비판하고 나섰다.55)

오늘날 문화산업론의 전개에 전환점을 마련해준 동기는 70년대의 유네스코 활동이라 할 수 있다.56) 유네스코는 개발도상국가들이 선진국의 발전모델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인식하게 되는 외래문화에서 긍정적 측면을 고양시키고자 하였고 이를 문화산업론에서 착안하게 되었다. 문화의 생산과 유통 및 관계를 문화경제학적 타당성을 배경으로 찾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공업선진국의 문화를 개발도상국에 저렴한 가격으로 이식시켜 소비하게 하는 데에는 기여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내포하고 있으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개발도상국가를 문화소비 시장화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은 비판받아야 할 소지이고 이 점은 앞으로 더욱 규명되어야 할 영역이다.

문화산업론은 정보화사회론과 함께 다양하게 전개되기 시작하는데 멕아나니(Emile McAnany)의 「미국 문화산업 연구와 국제 문화산업 연구」, 유웬(Stuart Ewen)의 「의식산업 연구」, 규백(Thomas Guback)과 베리스(Tapio Varis)의 「국제 문화산업 연구」, 타크만(Guye Tuchman)의 「의식 산업론」 등도 매체문화의 경제적 측면을 관점으로 하고 있다.

Ⅵ 결론

본고는 20세기에 본격적으로 전개된 문화비평의 현상 중에서도 대중문화론 전개에서 문화산업론이 차지하는 위치를 규명해 보는 동시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 문화산업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문화화 할 것이며 연구자의 주장은 어떠한 특성을 내포하고 있는가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아울러 문화산업이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 차용되어 활용되면서 관념적인 선호 성향에 맞추어 적용할 것이 아니라 보다 신중한 검토와 함께 차용해야 할 것이라는 점도 문화산업론의 논의 결과에서 간접적으로 암시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구미의 문화현상과 문화비평의 경향을 대비시켜 볼 때 문화산업이라는 개념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연구에서 정착하지만 이미 20세기의 초기에서부터 문화비판의 여건을 조성되었고 그러한 환경이 문화산업론을 전개하는데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비판에서는 대중문화의 비판이 문화산업론으로 등장하지만 60년대를 지나면서 문화산업론을 문화경제학적 기반 위에서 타당성을 모색하고 반드시 대중문화로만은 규정할 수 없는 매체문화 현상에까지 범위는 확대되고 다원화된다. 의식산업, 지식산업, 문화산업 등 연구자에 따라 개념도 다양해진다.

구미의 문화산업론은 필자의 문화산업 분류에 따른 시안적 시도이기는 하지만 전(前) 문화산업론, 문화산업론, 다원적 문화산업론으로 3단계 구분을 시도한다. 이러한 문화산업론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문화 비평적 특성은 전(前)문화산업론이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산업론에서 문화의 정수성이 몰락되는데 대한 비판의 시각이 강하지만 다원적 문화산업론에서는 비판적 시각이 있는 반면에 인류학적 문화 개념 정의에 입각한 긍정론의 전개로 학자에 따라서는 시도되고 있다. 앞으로의 문화산업론 전개는 매체문화의 발전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이나 무엇을 문화산업으로 볼 것인가 하는, 대상에 따른 개념의 조작적 정의 노력이 보다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1) 김봉호 역(지오프리 베라클러프), 「현대사의 성격」, 서울, 삼성문화재단, 삼성문화문고 92권, 1977, PP. 41∼63.

(2) 상게도서

(3-1) 양승태 역(로버트 월프), 「자유주의의 빈곤」, 서울, 종로서적, 1983, P. 13.

(3-2) Patrick Brantlinger, Bread and Circuses, Ithaca and London, Cornell University Press, 1983, PP. 222∼225.

Georffet Friedman, The political Philosophy of Frankfurt school, London, Cornell University Press, 1981, PP. 79∼86.

(4) F. R. Leavis, Mass Civilization and Monority Culture, Cambridge, The Minority Press, 1930, PP. 8∼12.

(5) Max Horkheimer & Theodor Adorno, Dialectic of Enlightenment, New York, The Seabury Press, 1969(original 1944 by Social Studies Association).

Theodor Adorno, "The Cultural Industry Reconsidered" in Stephen Bronner & Dogulas Kellner (ed), Critical Theory and Society: A Reader, New York, Routledge, 1989, PP. 128∼135.

(6) Alvin Toffler, The Culture Consumers, New York, St. Martin's Press, 1964, PP. 145∼156.

UNESSCO, Cultural Industry: A challenge for the Future of Culture, France, 1982.

(7) Karl Marx, "The Mystery of The fetishistic Character of Commodities", in Armand Mattelart & Seth Siegelaub, Communication and Class Struggle, New York, International General, 1979,PP. 80∼86

(8) Armand Mattelart & Seth Siegelaub, Communication and Class Struggle, New York, International General, Vol. 1.

(9) Georg Lucacs, Marxism and Human Liberation, New York, Dell Publishing Co., Inc., 1979, PP. 3∼19

(10) lbid

(11) Richard Weiner, Cultural Marxism and Political Sociology, Bevery Hills, Sage Publication, 1981, P. 17.

(12) Georg Lucacs, op. cit. P. 4.

(13) libid PP. 3∼6

(14) libid PP. 6∼7

(15) libid P. 7.

(16) libid P. 8.

(17) libid P. 9,

(18) 유종호 역, 「문학예술과 사회현황」, 서울, 민음사, 1979.

(19) 상게도서

(20) Walter Benjamin,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in illumination, N. Y. Schocken Books, 1969.

(21) libid

(22) libid

(23) 박성완 역,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서울, 민음사, 1983. P. 359.

(24) Walter Benjamin, op. cit.

(25) Bertolt Brecht, "Radio Theories" in Gesammelte Werke 18, Frankfurt, 1967.

(26) Dorrick Sington & Athur Weodenfeld, Broadcasting in the Third Reich, UK. 1942, PP. 272∼273.

(27) Bertolt Brecht,, op. cit.

(28) libid

(29) libid

(30) libid

(31) libid

(32) International communication Association, Ferment in the Field, in Journal of Communication, 1983 Summer, Vol. 33, No.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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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Wayne Tower, "Lazarsfeld and Adorno in United States of America: A case Study in Theoretical Orientations", in Brent Ruben(ed.), Communication Yearbook, New Brunswick, Transaction Books, Vol. 1. 1977, PP. 13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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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Max Horkheimer & Theodor Adorno, op. cit.

(36) lbid

Leo Lowental, Literature, Popular Culture and Society, Englewood Cliffs, Prentice Hall Inc., 1967.

(37) Max Horkheimer & Theodor Adorno, op. c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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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Leo Lowental, Literature, Popular Culture and Society, Englewood Cliffs, Prentice Hall Inc., 1967.

(39) Martin Jay, op. cit.

(40) 진덕규 역(톰 보트모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비판이론」, 서울, 학문과 사상사, 1984.

(41) 신일철 편, 「프랑크푸르트학파」, 서울, 청람출판사, 1982.

(42) Everett Rogers, op., cit, PP. 223∼225.

(43) 진덕규 역, 전게도서.

(44) Max Horkheimer, "The End of Reason" in Andrew Arato & Eike Gebhart, The Essential Frankfurt school Reader, New York, The Continuum Publishing Company, 1982, P. 27.

(45) 송휘철 역(조지 프리드만),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상적 연원》, 서울, 탐구당, 1987.

(46) 상게도서

(47) Patrick Brantlinger, op. cit., P. 227.

(48) 유종호 역(발터 벤야민), 전게도서

(49) Tom Forester(ed), Microelectronics Revolution, Oxford, Basil Backwell Publisher, 1980.

(50) 졸저, 「문화커뮤니케이션과 대중문화」, 서울, 평민사, 1983, PP. 136∼160.

(51) 상게도서

(52) Alvin Toffler, op. cit.

(53) UNESCO, op. cit., P. 54.

(54) lbid

(55) lbid

(56) UNESCO, op. cit.

(57) Emile McAnany, "Cultural Industry in International Perspective: Convergence or conflict ?", in Brenda Dervin & Melvin Voingt, Progress in Communication Science, Norwood, Ablex Publishing Corporation, 1986, PP.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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