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

상업문화의 발전을 위한 고찰

-TV와 비디오 문화를 중심으로




저스틴 루이스(Justin Lewis)

(번역) 이재형 / 상명여대 강사, 번역문학가

문화산업

'문화산업' 조직의 장점은, 이미 우리 산업의 일부가 되어있는 대중문화의 형태로 시작된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문화산업의 목표는 예를 들면 다양성과 혁신을 촉진시키기 위해 공공투자와 규제를 병행하는 것이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연극처럼 점점 대중의 인기를 잃어가고 있는 오래된 문화 형태들을 다시 팔거나 변형시키는 데서 생기는 문제들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산업'의 분야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예술에 대한 자금지원이라는 문제를 복잡하게 따져야 하기도 하지만, 명확히 해야 할 많은 특징들도 포함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산업이란 정확히 무엇인가를 아는 일이다.

'예술'이라는 용어를 '문화'라는 용어로 대체할 경우 자금 지원 정책의 실행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유감스럽기는 하겠지만-넓은 활동무대가 열린다.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 채니(David Chaney)는 문화 형태로서의 백화점에 관한 글을 썼으며(「이론, 문화, 사회(Theory, Culture, Society)」1983.), 축구산업, 체조산업, 양조산업은 모두 말할 필요도 없이 영국 문화의 일부분이다. 마찬가지로 연극을 비롯한 전통적인 예술형태들 역시 문화산업으로 기술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는 훨씬 더 제한된 사업 범위와 연결되어져 왔다. 「바뀐 아미지(Altered image)」(GLEB, 출판 년도 미상), 「런던의 산업전략(The London Industrial Strategy)」(GLC, 1985), 그리고 매우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는 「토요일 저녁 혹은 일요일 아침(Saturday Night or Sunday Morning)」(G. Mulgan/J. Worpole, 1986)과 같은 출판물을 통해서 볼 때 대(大)런던 시의회와 대(大)런던 기업협회의 활동은 몇 가지 특별한 분야, 특히 출판, 방송, 영화, 비디오, 대중음악에 집중되어 왔다. 이로 인해 '문화산업'은 기술적 수단에 의해 대중들에게 분배되며, 상업적으로도 이익이 보장되며, 책과 영화, 비디오, 음반 같은 문화 상품들을 취급하는 문화 활동을 연상시켜 왔다.(「셰필드 시의회 보고서」 1988).

우리는 여기서, '문화산업'에서의 '문화'라는 용어가 매우 한정된 의미로 적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적용된 '문화'라는 용어는 예술의 정의와 다소 연관성이 있다. 예술은 <자아 의식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으로서 무엇인가의 '표현'인 어떤 '대상' 이나 '행위'를 생산해 낸다. 다시 말해서, 축구 경기장에 가는 것은 축구 경기 자체가 아니 어떤 것의 자아 의식적 표현이 아니며, 선술집에 간다는 것은 구체적인 대상이나 행위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이 정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영역은 출판이나 방송처럼 비허구적인 소재를 필요로 하는 문화산업의 영역이다. 예를 들어 TV 뉴스나 신문의 제작은 창조적 과정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들의 자의식이 '표현' 인지 아니면 단순히 세계를 '재현'하는 것인지 하는 문제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이러한 논쟁은 구체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1985년, 런던에 있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자금을 지원하려던 GLC의 시도는, 이 지역의 관계 당국이 합법적인 자금 지원 여부를 판단할 만한 기술이나 문화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GLC의 법률 관련 부서가 회의를 표명하는 바람에 계속 좌절되었다. 마찬가지로 영국 정부에서 방송에 책임이 있는 것은 예술부 장관이라기보다는 내무부 장관이다.

기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논쟁은 매우 상식적이다. 뉴스와 연속극은 약간 다른 코드를 사용하긴 하지만 두 가지 다 현실을 재현한다기보다는 현실 그 자체를 나타낸다. TV 뉴스의 경우, 뉴스 가치 및 '하나의 사건'을 뉴스거리로 바꾸는 편집 과정의 다양성은 뉴스 프로가 분명치 않은 사건들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의 재생산임을 증명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방송을 '예술'보다는 '문화'라는 범주에 속에 분류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문화부는 방송에 관한 철학적인 문제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그와 반대로, 최근에 영국 노동당은 예술과 미디어를 '동시에' 다룰 새도우(Shadow) 내각의 각료직을 마련함으로써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문화산업의 개념은 예술의 정의를 학장 시키는 데 있어서 유용하게 쓰여왔다. 문화산업에 대한 토의에서 연극 산업과 같은 '비기술적' 분야가 배제되는 것도 부분적으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대중적이며 기술적인 문화산업은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예술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그만큼 논쟁을 유발시킬 가능성도 높아서 쉽사리 주목받게 되어 있다. 문화산업은 연극 같은 제 산업을 쉽게 포함할 수 있지만, 그 반면 문화에 대한 논쟁이 과열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에서 무시되어왔던 게 사실이다.

예술 지원 단체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문화산업을 무시해 왔다. 지배적인 미학적 이데올로기는 문화산업이 '예술'로서 간주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그것이 예술적 '가치'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거나 전혀 기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 무시하는 것이다. 문화산업은 지나치게 대중적이라는 것이다. 높은 수준을 지닌 문화가 그들을 평가할 필요는 없다. 문화산업은 그것이 이미 자유 경쟁 체제에 의해 자립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보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무시당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자유 경쟁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버려졌던 문화와 예술의 가치, 그리고 공공 투자에 대한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텔레비전

텔레비전의 문화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TV는 우리의 여가 시간을 지배하고 있다. TV 수상기 보유 인구의 98%가 일주일에 평균 30시간 정도를 TV 시청에 할애하고 있다. TV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생활에서 그 어떤 형태의 문화적 생산물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텔레비전은 빠르고 폭넓게 확산되었다. BBC는 1936년 알렉산드라 궁전에서 세계 최초의 공영 텔레비전 사업을 시작하였다. 세계 도처로 확산되어 가던 TV는 3년 후 발발한 전쟁으로 인해 처음이자 유일한 실패를 맛봐야 했고, 방송은 즉시 중단되었다. 1946년 TV 사업이 재개되고 난 지 9개월 후, 시청자 수는 1만 5천명 미만이었고 5년 후 이 숫자는 그 40배인 십만 명에 달했고, 10년 후에는 그 백 배인 1백만 명으로 늘어났다. 60년대 중반에는 영국의 거의 모든 가정이 TV 수상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가장 보수적인 의미의 정의를 사용한다해도, 방송국에서는 '예술'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영국 하원 특별위원회에 따르면, 1981∼1982년의 경우, 방송이 '예술'을 다룬 시간은 영국예술진흥회가 '예술'을 다룬 시간의 거의 3배에 달했다는 것이다. 문화산업 분야에서의 문학이 명백히 보여주는 것처럼 방송을 고려하지 않는 예술이나 문화 전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영국이 꼭 이런 경우여서 실제적으로 방송에 대한 책임을 내무부가 맡고 있다. 대부분의 공공부문이 텔레비전에 관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지방의 텔레비전 및 필름 제작의 발전을 도와주고 구체화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영국 북동부 미디어 발전위원회」 같은 지방기관이라든가 EEC나 지방 정부에서 자금지원을 받는 기관들은 아직도 주도권을 쥔 국가조직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텔레비전에 대한 주요한 결정은-텔레비전의 법적 조직, 누가 방송을 하는가 등등-국가적인 혹은 국제적인 수준에서 취해진다.

영국 정부는 현재의 텔레비전의 형태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냈다. 공익법인과, 독립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보호를 받는-합법적인 경쟁 상대가 없기 때문에 최소한 당분간은 보호 하에 놓여 있다-회사에 합병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영국 방송의 내용과 지원을 결정하고, 예를 들자면 국내에서 제작된 많은 프로가 방송되도록 보장한다거나 4개의 주(主) 채널이 똑같은 시장을 두고 경쟁을 벌이지 않도록(미국의 3개 네트워크가 그렇듯이) 보장하는 규칙과 법령이 존재한다. 이 규칙과 법령에는 다수 원칙과 다양성과 혁신의 중요성과 같은 문화적이며 예술적 고려가 언제나 첨부되어 왔다. 비록 최근 들어 이러한 결정이 TV 프로보다는 정책 문제에 훨씬 더 정통한 부서인 내무부를 통해 이루어지기는 하고 있지만 말이다.

오늘날의 영국 텔레비전은 '공익사업으로서의 방송'과 '수입 좋은 상업주의'가 뒤범벅된 상태이다. TV에 '자유시장'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채널이 어떠 어떠한 프로를 일정하게 제작하도록 규정한 규칙들은 쉽게 적용될 수가 있다. 광고주들이 이동할 수 있는 텔레비전 광고 시간이-Ⅰ TV와 채널4-일정하게 제한되어 있어서 광고비는 항상 높게 책정되고 TV 회사들은 높은 수입을 보장받게 된다. 이들 TV 회사들은 규제를 받아 마땅하다. 이들 회사들은 당연히 지금보다 더 큰 규제를 받아야 히는 것이다. 각 채널이 받아들여야 하는(ⅠTV와 채널 4는 시청자 수를 늘려 광고주들을 끌어들이고 BBC는 시청료 수준을 정치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 경쟁정신-시청자들을 늘리기 위한 "싸움"-은 프로를 혁신시키겠다 거나 다양화시키겠다는 경향을 감소시킨다. 양 채널은, 예를 들자면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 것이라는 판단이 이미 서 있는 프로를 황금시간대에 방영함으로써 '안전 위주로' 나가려 할 것이다. BBC와 ⅠTV는 유사한 종류의 프로를 편성함으로써 시청자의 선택 폭을 줄이는 것이다.

오늘날의 텔레비전을 분석해 보면 그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케이블 TV와 위성방송이라는 유령들을 만나게 된다. 더 많은 채널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프로도 다양해지고 시청자들의 선택폭도 넓어지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자유경쟁 체제가 도입되면 정확히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쥬세페 리체리(Giuseppe Richeri)에 따르면, 여러 유럽 국가에서 텔레비전에 자유시장 원리를 도입한 결과 방송 시간이 '늘어난' 반면 한편으로는 '프로의 일반적인 동질화'가 야기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유럽 국가에서 관찰된 바에 따르면, 한 사람의 시청자가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여러 방속국에서 동시에 방영하는 프로들을(이 프로들을 네트워크 방송망이 보냈건 한 방송국이 단독으로 보냈건 간에) 시청할 수 있고, 이들 방송국들 전부 혹은 일부가 수입권을 광고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대, 방송국간의 경쟁은 시청자들의 숫자를 최대화하기 위해 프로 편성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생기는 여러 가지 결과들은 명백히 예측 가능한 것들이다….>

<특히 시청율이 높은 시간대에 방영되는 프로의 질은 대중적 기호와는 최소한으로만 맞아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정보를 제공해주고 교육적이며 문화적인 내용을 갖춘 프로들, 혹은 평균적인 취미를 벗어나는 프로들은 그보다 시청율이 낮은 시간대로 돌려진다.>

(P. Drummond /R. Paterson(eds), 「변화를 맞고 있는 텔레비전(Television in Transition」. 1985)

이 이탈리아인의 경험은 특히나 교훈적이다. 자유경쟁 체제의 도입은 불안정한 문화적 경제상태를 야기 시켰는데, 이 같은 경제상태 하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시청자들의 기호를 가장 잘 맞추는-TV계의 거물인 실비오 메를루스코니에 의해 구현된 -방송국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공영방송국(RAI)과 다른 민간 방송국들은 시청자들의 가장 평균적인 수준에 맞추는 방향으로 그들의 프로를 변화시켜 왔다.

유럽에서의 방송의 미래에 대한 「Logica Consultancy」의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까지 케이블 TV와 위성 TV는 중요한 프로 공급체로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이 보고서가 작성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공연방송업자연합(PSBS)」의 위치는 1995년 이후로는 상당히 불확실해질 것이다. 지상의 케이블 TV와 공중의 위성 TV 채널의 시청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서 모든 국영방송들은 시청율 감소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PSBS는 특히 시청료 수입이 감소될 위협에 처하게 될 것이다.>

(Anthony d'Abreu, 「방송(Broadcast)」, 1987년 8월 14일자)

아무런 규제 없이 영국의 케이블 TV와 TV 채널을 도입할 경우 각 채널의 프로들은 그 내용이 거의 비슷비슷해질 것이다. 또한 ⅠTV와 채널 4의 수입은 광고료의 인하에 따라 감소할 것이다. 이 양 방송은 프로의 제작비를 줄이고 프로의 질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며, '시청자 층이 넓지 않은' 프로는 비경제적이라는 이유로 편성에서 제외시키게 될 것이다. 이 같은 경쟁체제에 접어들 경우 BBC 1와 BBC 2는 그들 역시 프로의 다양화를 포기한 채 제작비가 적게 드는 프로를 주요 시간대에 편성하지 않는 한 시청료 징수를 정당화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방송 전략은 이 같은 우려를 시급히 재검토해야 할 뿐 아니라 방송될 수 있는 것과 방송 될 수 없는 것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긴급히 개발해낼 필요가 있다. 위성방송에 의해 이미 예고되는 있는 국제 방송시스템이 본격화될 경우 이 같은 필요는 더욱더 시급하고 복잡해질 것이다. 멀건(Mulgan)과 워폴(Worpole)은 이렇게 말한다.

<이 같은 갈등은 단순히 국가적 통제와 자유의 모순에서 생겨나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방송국은 여러 다양한 목소리를 방송하고 동시에 시청자는 참다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 주는 공공의 책임과 안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통제는 프로 공급자들 상호간의 넓은 범위와 소유권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토요일 밤 혹은 일요일(Saturday Night or Sunday Morning)」, 1986)

한편으로, 통제를 철폐할 경우에는 앨런 플레터(Alan Plater)가 생생하게 암시했던 것처럼 위험한 결과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통제를 철폐하게 되면… 케이블 TV가 온 나라를 점령하게 될 것이고, 골목길 모퉁이 모퉁이마다 위성 TV가 설치될 것이며, BBC에서 광고를 하게 될 것이고, 규칙과 규제라는 것은 모조리 사라지고, 국가에서 운영하든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든 모든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의 사업이 시장의 힘에 맡겨지게 될 것이다. 시장의 조절 능력을 믿는다면 그건 정말 훌륭한 철학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주사위 도박이나 다를 바 없다.>(B. Baker/ N. Harvey, 「대중을 위한 출판(Publishing for People)」, 1985)

멀건과 워폴의 주장에 따르면 영국의 문화정책은 신중한 규제 장치에 의해 텔레비전의 다양성과 영역을 넓혀야 하며, 폭넓은 범위의 프로를 제작할 수 있게끔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이 같은 체제 내에서'의 콤비 보조를 받지 않는 프로 제작의 확대 및 방송 제도 체제의 민주화에 대해 호의적이다. 이 같은 전략이 영국 TV들의 수입권에 대한 검토를 필요로 하는 건 당연하다. 다시 말하자면 「피콕 연구소」가 해내는 데 실패했던(「BBC의 재정문제에 관한 위원회의 보고서(Report of the Committee on the Financing og the BBC)」, 1986년 7호), 소비자 비용에 관한 여러 가지 신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고가 있기 때문에 시청들은 ⅠTV와 채널4를 무료로 볼 수 있다'라고 흔히들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에렌버그(Ehrenberg)나 바와이즈(Barwise) 같은 경제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 반대로 TV 광고를 내는 회사들은 상품 가격을 인상시킴으로써 광고비용을 소비자들에게 직접 떠맡긴다고 한다. TV 광고는 매우 방어적이어서 광고에 등장하는 상품의 시장 점유율을 증가시키기보다는 현 상태로 안정시키는 역할을 해준다. 그러므로 TV에 광고를 낸다고 해서 상품 가격이 인하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텔레비전과 시청자(Television and its Audience)」, 1984: A. Ehrenberg 「신사회(New Society)」, 1985년 2월 14일).

이 경제학자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ⅠTV는 BBC보다 더 많은 비용을 소비자에게 부담시키는데, 우리는 시청료를 통해서 보다는 슈퍼마켓에서 더 많은 소비자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청료만으로는 상승하는 TV 제작비용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시청료 인상 문제를 협상해야 될 경우에 정부가 BBC에 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시청료가 BBC의 정부로부터의 독립을 보장하는데 있어서 거의 아무런 역할도 못해낸다는 것을 암시한다.

완전한 형태의 자금 조달 방식은 있을 수 없겠지만, 일반과세를 통해 자금을 분담시킨다면 미래에 대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공공 보조금은 BBC 같은 법인만을 대상으로 할 필요는 없다. 광고 수입과 공공 수입이 합쳐진 수입은 어떤 기구 전체에 대해서보다는 어떤 '유형'의 프로들에 배분될 수 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형태가 다양성이나 혁신 같은 문화적 가치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그것이 신중한 통제를 받는 체제 내에서 상업적인 투자와 공공 투자 모두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기본 입장에서 볼 때, 변화되어야 할 부문은 상당히 넓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변화되어야 할 것은 어떤 특별한 방송기관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체계이다. 방송 기관들은 이 문화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의 방송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개입하는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시간은 흘러서 없어지는 것이다. 케이블 TV와 위성 TV의 배후에 숨어있는 상업적 영향력은 이 양 TV가 지금까지 허용되어 온 것보다 더 넓은 화면을 차지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 규제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어렵다. 영국에서 프로를 만들도록 위성 TV를 통해 방영하는 프로를 규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신중하게 규제 받고 있는 사영(私營)채널들을 스페인의 공영 방송시스템 속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필립페 곤잘레스 정부의 시도는 그린위치 지상 방송국에서 발사되는 '스페인'의 위성채널인 「캐널 10」에 의해 약화된 바 있었다. 소호(Soho)라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 회사에 대한 스페인 의회의 영향력은 매우 제한되어 있는 실정이다.

만일 이 같은 문제들이 유럽 국가들의 합의에 따라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서 말한 그 같은 전파 방해를 중지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의 조처를 취하는 게 필요할지 모른다. 이러한 조처에는 기계설비에 대한 무거운 과세, 혹은 위성채널 광고에 대한 여러 가지 제약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대중문화의 한 형태가 위기에 처해 있다.

비디오-문화적 잠재력

비디오카세트 레코더(VCR)는 평균 수준의 가구가 보유하는 문화기계 설비들 중의 한 품목으로 갑자기 부상한 경우다. VCR을 보유한 가구의 비율은 1981년도의 7%에서 1986년에는 51%로 급증하였다.(자료 출처: 영국 비디오그램 협회).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TV가 널리 보급되었던 반면 1980년대는 비디오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비디오의 잠재력은 엄청난 것이다. VHS 혹은 그보다 더 첨단인 비디오 같은 저가의 제품이 개발되었다는 사실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사실은 또한, 이론상으로는, 사람들이 다양한 범위에 걸친 소재의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현실은 약간 다르다. 상업문화의 담당자들은 새로 발견된 이 자유를 극히 제한된 방법으로 이용해왔다. 가장 의미 있는 발전은 영상 박물관(video library)의 배급망이 증가함으로써 VCR 보유자로 하여금 자신이 직접 원하는 비디오를 고르고 빌릴 수 있게끔 했다는 점에 있다. 이들 영상 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비디오들은 대체로 장편 영화로 제한되어 있다. 1986년도만 해도 장편 영화가 대출된 회수는 3억 5천만 번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같은 발전은 영화산업-특히 비디오 시장을 지배하는 RCA/콜롬비아나 워너브라더즈 같은 회사들을 가진 미국 영화 산업의 경우에는 의미심장한 것이다. 방송연구원(The Broadcasting Research Unit)의 추정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필름을 대출해서 비디오를 본 사람의 숫자는 영화관에 직접 가서 본 사람보다 거의 15배가 더 많았다. 영국 비디오그램협회는 판매되거나 대출된 비디오가 1986년도만 해도 4억 3천 5백만 파운드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그렇지만 VCR은 극히 단순한 용도에 주로 쓰이고 있는 형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VCR을 텔레비전의 '대체품'으로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사용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VCR 보유자들이 안 그러면 놓치게 될 TV 프로그램들을 녹화하기 위해서 VCR을 이용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예를 들면 D. Docherty, 「최근의 영화(The Last Picture Show)」, 1987 등을 참조할 것). 비디오는 텔레비전 시청자로 하여금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텔레비전 문화의 틀은 거의 빼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비디오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주었을 따름이다. 전략적인 공공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 같은 현상은 계속 지속될 전망이다.

케이블 TV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1983년도의 한 보고서에서 「쉐프필드 TV 그룹(Sheffield TV Group)」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케이블 TV의 경제적 상황과 상업적 제약 조건들은 그것을(케이블 TV를) 문화적 침체의 원인으로 만드는 반면 비디오에 대한 공공투자의 가능성은 진정한 문화적 가치를 가질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Cable and Community Programming」, 1983). 이 보고서는 VCR을 보유한 공공 집회장소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였다. 즉 청소년 센터, 사교클럽, 시민문화회관, 교육회관, 작업장 등은 최근 들어 VCR을 구입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바로 이런 장소에서 새롭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비디오 생산과 배급에 대한 공공 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비디오 분야에 대한 공공 투자는 조금씩 그리고 임시변통으로 몇몇 지역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래서 지방 관청이나 채널 4, 지방예술협회, BFI(영국 영화학회)가 투자한 '공공 보도를 받지 않는' 지역 비디오 그룹들은 불행하게도 그 수가 증가하기보다는 감소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공공 분야-주(主)방송 수단으로의 부상 가능성

1980년대 들어 공공기관으로부터 보도를 받는 워크숍들과(이중 일부는 워크숍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지급율을 허용하기 위해 특별히 제정된 ACTT 워크숍 계약에 의거해 운영되었다) 비디오 그룹의 숫자는 증가 추세에 있는데, 예를 들면 1986년과 1987년의 경우 런던에는 50개가 넘는 공비(公費) 보조 비디오 그룹들이 있었다.(N. Power/J. Sewis, 「Twenty Years on」, 1987) 그러나 이들 비디오 그룹들은 대부분은 사람들의 생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비디오 액티브 리포트(Video active Report)」(J. Dungry/J. Dovy, 1985)에 따르면, 공비 보조를 받지 않는 부문의 경우, 비디오 테이프 복사본의 평균 판매량의 겨우 연간 14편에 불과했으며, 판매된 비디오 테이프의 80퍼센트는 5편 이하가 복사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혁신적인 방송 매체는 본류(本流)의 가장자리에서 몸부림치며 애를 쓰고 있다. 어쩌면 본류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는지도 모르겠다 !>라고 멀간(Mulgan)과 워폴(Worpole)은 쓰고 있다.

비디오에 대해 이루어진 어느 정도의 공공 투자가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훈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디오의 문화적 가치 및 야기될지도 모르는 문제들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를 토대로 해서 더 큰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비디오에 대한 투자는 어떤 문화적 가치를 낳는가 ?>라는 질문을 다시 제기함으로써 그 같은 평가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비디오에 대한 공공투자의 일반적 목표는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는 않은 상태이다. 「1985년판 BFI 연감」은 공공 보조금을 받는 비디오 그룹들의 '독창적이면서도 흔히 혁신적인' 활동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공공보조를 받는 비디오는 활동 방식에 있어서나 그 성과에 있어서나 주요한 방송 수단의 대체물이라고 보는 지배적인 견해가 일부 반영되어 있다.

비디오에 대한 투자는 다양한 시청각 문화를 낳는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할 경우, 문화적 다양성과 혁신의 가치는 대중 생활의 문화적 맥락 속에 융합되기보다는 그 같은 가치 자체를 위해 추구된다는 문제점을 낳는다.

그렇게 되면 '공공 보조를 받지 않는 분야'나 '워크숍' 분야의 활동의 대부분은 기존 예술제도의 문화적 가치들에 더욱 접근하게 된다. 즉 그 같은 분야는 교육받는 중산층이 창조하고 감상하는 '대체' 문화라는 것이다. 결국 누가 채널 4에서 「위기 일발의 순간」이라는 프로(공공 보조를 받지 않는 프로덕션을 위한 프로)를 보는가 ? 현재 국내의 이곳 저곳에서 열리는 비디오 시사회의 대부분을 보러가는 것은 누구인가 ? 두 경우 다 똑같은 사람들로서, 현대 예술이나 연극을 비롯한 예술 세계의 다양한 즐거움을 즐길 수 있을 만큼의 문화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부당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범주의 시청자를 위해 작품을 생산하려는 의도가 자리잡고 있는 곳에서까지 많은 오류가 빚어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1) 채널4에서 방영된 얼마 안 되는 비디오 테이프들을 제외하면, 비디오 시청자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집에서 비디오를 관람하는 현재의 시청자들이 있고, 공공장소라든가 사회활동의 중심지 혹은 건물에서 비디오를 보든 잠재적 청중이 있다.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비디오 그룹과 워크숍들은 부차적일 뿐만 아니라 범위도 좁은 활동으로 만족하고 만다. 「비디오 액티브 리포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이 분야가 일반인의 가정으로 침투해서 거실 선반의 「파괴자 코난」과 「인류의 악」 사이에 존재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가정에 비치되어 잇는 VCR이 거의 대부분 기분 전환용으로 사용되는 반면, 출고되는 비이오 테이프의 대부분은 선동적이며 교육적이다. 이들 두 부류의 청중은 중복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매우 다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투자 부족이다. 그러나 비디오 그룹들이 모든 가능성을 전부 다 타진했다고 말할 수 없다. 비디오 그룹들이 배급과 소비의 주요한 형태들-주로 영상 도서관을 통한-내부에서 일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2) 이들 문제들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마케팅과 배급 전략의 부재이다. 잘 짜여지고 잘 조직된 마케팅 및 배급 계획과 함께 시작되지 않는, 새로운 형식의 문화 소비 형태를-이 경우에는 청소년 클럽이라든가 교육 기관이라든가 사회 센터 등지에서 비디오를 관람하는 -창조하려는 시도는 그 어떤 경우에도 실패로 끝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마케팅이나 배급 전략을 마련하기는커녕 거의 모든 단계에서 이 같은 전략의 중요성을 무시해 보리고 있는 실정이다. 몇 개 안 되는 배급회사들-앨버니(Albany)나 콩코드(Concord)같은-은 많은 비디오 테이프가 어떤 특정한 시청자층을 겨냥하지 않은 채 만들어진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시청자층을 분명히 정해야 되는 분야에서 그 시청자층의 필요조건과 관심사항이(비디오 테이프의 형태라든가 스타일이라든가 길이 등등) 대체로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층에 대한 조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비디오 그룹들은 마케팅 및 배급에 필요한 경비를 예산 편성에 포함시키는 일에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 배급회사들은 비디오 테이프의 소비량은 약간 증가시킬 수 있었지만, 비디오 테이프를 관람할 수 있는 시설들을 새로이 확보하려는 진지한 시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배급 회사들은 상업적인 이유 때문에 이미 비디오를 사용하고 있는 교육기관이나 공공단체에 집중적인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설립 가능성이 있는 비디오 관람 센터에 비디오의 '아이디어'를 팔아 보겠다는 배급 회사는 단 한 군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비디오 분야가 어떤 영향력을 갖는 데 실패해 왔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 운영하는 비디오 그룹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자금지원 기관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금 지원 기관들은 생산과 트레이닝 분야에 대해서만 자금을 지원했지 이런 분야의 일을 할 만한 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에 비디오 그룹들이 마케팅 및 배급 시스템이 갖추어진 여건에서 자금 지원을 받았더라면 이들의 작업은 틀림없이 더욱더 접근하기 쉽고, 더욱더 재미있고, 더욱 더 적절한 것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3) 비디오 그룹들은 흔히 지역 사회에 하나의 '자원'을 제공하기 위해서 자금을 지원 받기도 한다. '생산과정을 보여주는' 한편 그룹들로 하여금 중요한 문화적 형태를 통해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도록 하려는 것이 그 의도이다. 몇몇 지역 사회의 비디오 그룹들의 경우(레딩에 있는 「리얼 타임」 같은) 이 같은 의도는 교육 과정으로서 잘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자원 제공' 기능은 일반적으로는 이보다 더 야심적이다. '지역 사회 내부의' 그룹들은 그들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청자들을 위해서 비디오 테이프를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 일은 보통 순조롭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들 작업의 이 같은 측면을 검토해 본 「앨버니 비디오」는 그들이 자원을 제공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지만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을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a) 해보겠다고 자원하는 그룹의 대부분은 전통적으로 비디오 테이프 제작에서 제외되어 온 계층이라기보다는 중산층이었기 때문에 프로 제작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현저히 확대돼 있다고 볼 수가 없었다.

b) 그들이 제작한 테이프들은 누가 그 테이프들을 관람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계층이 흥미를 갖고 볼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관점 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시청자들을 확보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앨버니 비디오」는 이 같은 측면을 자기들의 작업에서 완전히 배제시켰다. 이 비디오 그룹은 스윈던에 있는 「미디어 아츠 랩」이 사용하는 방식을 수용하고 있는 중이다. 「앨버지 비디오」는 시설과 장비를 단순히 대여하기보다는 하나의 자원으로 취급하고 있어서, 소규모 공공 보조의 형태로 일반인들에게 시설 장비를 증여하고 있다. 증여의 우선권은 분명한 배급 전략을 갖추고 있는 개별 그룹에게 주어진다.

4) 공공 보조를 받는 이 분야의 활동에서 또 다른 주요 요소는 '트레이닝'이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비디오 제작기술을 습득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것이 '트레이닝'의 목표이다. 물론 '트레이닝'은 순전히 교육적인 차원에서 메시지를 전달한다거나 어떤 신뢰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일반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방향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트레이닝'은 대부분, 다소 모호하기는 하지만 더 큰 야심을 가진 목표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대체물'로서의 비디오 문화를 위해 작품을 생산하거나 앞서 말한 트레이닝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텔레비전 산업에서 일하도록 훈련받고 있는 실정이다.

공공투자 전략

비디오에 대한 공공투자가 실패하는 근본원인은 상업적인 비디오 문화와 공공분야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다. 이런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상업적인 문화산업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것이다. 상업적 문화산업에 대한 투자의 목표는 상업문화에 문화적 가치-이익을 남기기 위한 투자는 제공해줄 수 없는 그러한 가치-를 주입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런 목표가 어떻게 추구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가 이미 존재한다. 런던의 이스트 엔드에 있는 소규모 비디오 그룹인 「아일랜드 아트 비디오」는 인근 지역을 대상으로 잡지 형식의 비디오 프로를-「어느 개의 인생」 이라는-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있던 지역 비디오 프로덕션을 통합하였다. 이 비디오 그룹은 소액의 보조금을 받아서 이 지역의 비디오 대여점과 신문 잡지 판매대를 통해 앞서 말한 비디오 테이프를 배급할 수 있었는데, 이 비디오 테이프는 단독으로 혹은 제임스 본드 영화나 「스타워즈」 류의 테이프를 끼워서 대여되었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유통망을 이용함으로써 「어느 개의 인생」은 이 지역의 실제적인 시청자들의 손에 다다를 수가 있었다. 사우스웨일즈 주의 베일이라는 도시에 있는 「밸리」 같은 소수의 다른 비디오 그룹들도 이 같은 접근방식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비디오 제작과 광고에 대한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게 될 경우 그들은 더욱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효과적인 지역 배급망을 발전시킨 또 다른 비디오 그룹은 포트 글래스고우에 있는 「5HCV」이다. 「5HCV」는 임버클라이드에 있는 많은 「MSC」 배급망 중의 하나이다. 그들은 지역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과 원호주택 및 장기 거주 시설에 머무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서 2주일에 한 번씩 잡지 형식의 두 시간 짜리 비디오 테이프를 제작하고 있다. 이 테이프들은 지역주민과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다루고 있으며, 약 1천여 명의 고정적인 시청자들이 이 비디오 테이프를 관람하고 있다. 공공보조를 받지 않는 비슷한 종류의 비디오 그룹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이 「5HCV」는 시청자들이 요구하는데 따라 프로그램의 스타일을 변화시켜 왔다.

도오셋트 주의 버튼이라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시골의 작은 비디오 그룹인 「트릴리츠 비디오」는 매우 다른 경우를 보여주고 있다. 「트릴리츠 비디오」는 '시골 사람들을 위한 그리고 시골 사람들에 관한', 그리고 '시골 생활과 시골의 문제점들을 고찰'하는 비디오 테이프들을 만들고 있다. 그들은 전국의 시골에 배급망을 조직하기 시작하고 있다. 「마을 회관」이라는 적절한 제목이 붙어있는 25분 짜리 비디오 테이프는 마을회관을 어떻게 이용하고 관람하고 운영하고 설비할 수 있는지에 관한 충고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 테이프는 전국에 있는 촌락의 지방자치위원회를 겨냥하고 있으며, 이 지방자치위원회는 소규모의 행정조직에 정기적으로 테이프를 대여해 줄 계획이다. 이 같은 배급망을 통해 수천 명의 시골 사람들이 이 비디오 테이프를 시청할 수 있게 된다.

마케팅과 배급 분야의 중요성을 가장 일찍 깨달은 이 비디오 그룹들이 가장 볼만한 가치가 있는 비디오 테이프를 제작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트릴리츠 비디오」의 트래버 베일리는 "그런 비디오는 한층 더 재미가 있어서 시청자층을 확보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앨버니 비디오」는 '배급전략을 우선시 하는 비디오 제작 그룹'이 되어 있다. 그들은 비디오 배급 전략을 충실히 세워두고 있기 때문에 비디오 테이프 제작을 성공적으로 해 내오고 있는 것이다. 「앨버니 비디오」의 토니 도우먼트는 그냥 이렇게 말할 뿐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어떤 것이 시장성이 있으며 사람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영업분야를 최우선시 하는 것처럼 보인다. 살아남기 위해서 판매 수익을 올려야 할 필요가 있는 「트릴리츠 비디오」나 「앨버니 비디오」 같은 그룹들의 경우 이 같은 지적은 분명히 옳은 것이다. 「앨버니 비디오」,「5HCV」,「아일랜드 아트 비디오」 혹은 「트릴리츠 비디오」에 있어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무엇인가를 마들어 내기 위해서 신중하게 선정된 시청자층에게 마케팅 및 배급 전략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들 비디오 그룹의 활동은 대야의 물방울 하나에 비유될 수 있을 만큼 미미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하면 공공투자가 더 큰 풍랑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

비디오 전략에 있어서는 요체는 그것이 제작 자체보다는 배급을 우선시 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실은 기존의 비디오 대여점(가정용)을 통한 배급망 뿐만 아니라 비디오를 관람할 수 잇는 공공 장소들로 이루어지는 잠재적인 배급망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 두 배급망이 국가적인 수준에서보다는 각 지역적 수준에서 발전시키기가 더 수월한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 촉매로서 작용할 수 있는 많은 국가적 협정이나 결정도 역시 존재한다. 여기에서 영리를 노리는 배급자와의 계약, 혹은 적합한 비디오 프로덕션과 번화가에 자리잡은 비디오 대여점을 연결시킬 수 있는 공공차원의 마케팅 및 배급 서비스 시설의 신설이 포함될 수도 있다. 국영 영업소에서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가정용 비디오의 대여 방식이 어떻게 확대되고 계속될 수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복잡한 시장조사 계획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비디오를 시청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 관해 말하자면, 배급과 진열을 확대시키기 위한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여러 대리점이 있다. 텔레비전으로 방영되었던 축구 경기가 공중파를 타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 필름을 확대된 비디오 배급망을 통해 술집이나 클럽 등지에서 팔매하고자 했던, 1980년대 초반의 「텔레젝터」의 시도는 큰 주목을 끌었던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 양조장이라든가 국가에서 주최하는 연예 행사, 레저 사업체와의 협상을 통해 계약을 맺는 잠재된 능력도 강조되었다. 배급 전략의 통제를 받는 '공영' 사무소의 리스트는 엄청나게 많다.-건강, 교육, 레저, 예술, 그리고 사회사업 등 광대한 범위의 공공 영역이 이 공영 대리점의 영향력 하에 있다.

이들 단체와의 계약은 지방에서는 대부분 체결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의 공영 비디오 배급·마케팅 사무소가 설립되어야 한다. 배급과 마케팅을 맡는 공영 사무소의 설립은 단순히 비디오 제작의 한 과정이라기보다는 비디오에 대한 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새로운 공연 비디오 시청 사무소를 통해서 새로운 시청자들을 확보하는데 있어서 맨 처음으로 착수해야 될 단계는 포괄적 마케팅이다. 다양한 단체에게 비디오에 대한 생각을 판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교사들과 젊은 노동자들이 어떤 비디오 테이프를 사거나 빌리기 전에, 비디오를 정기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그들에게 팔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일은 비디오 제작 그룹과 공동으로 실행해야 하지만, 무슨 비디오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를 조언하고 어떤 시청자층을 겨냥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배급·마케팅 사무소가 할 일이다. 비디오 제작 그룹들로 하여금 그들이 겨냥하는 시청자층의 필요 사항을 이해하게끔 교육시키고 훈련시키는 일은 이 같은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비디오 그룹들을 위한 마케팅 가이드인, 최근에 만들어진 「오프 더 셀프(Off the Shelf)」(K. Arora/J. Lewis, 1987)는 이 같은 필요성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같은 배급·마케팅 제도가 확립되어 있을 때만이 비디오 그룹들은 혁신과 실험에 대한 자극을 받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공공투자에 힘입어 만들어지는 비디오 문화는 창조적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흥분시킬 만한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시각 문화에 대해 비디오가 갖는 장기적인 효과는 매우 드라마틱한 것이 될 수도 있다. 1985년, 「버밍햄 필름」과 「비디오 워크숍」은 텔포드에서 온, 실업 상태에 있는 젊은 노동자들과 함께 「지로」라는 제목의 비디오를 만들었다. 이 비디오는 너무도 생생하고 창조적이면서 '구경할 만 했기' 때문에 채널 4에서 방영되었고,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후로 이 비디오 그룹은 「데드 아니스트 소울 서처즈(DHSS)」을 결성,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계속해서 <젊은 노동자 계급의 관점에 따랄 생생하고 독창적인 프로를 만듦으로써 다른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해온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북동부의 「엠버 필름즈」는 그들의 본부가 있는 노스 쉴즈의 한 선술집에서 벌어지는 일을 소재로 연속극 시리즈를 만들어 왔다. 이 선술집은 이 시리즈의 소재를 제공해 줌으로써 세트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 같은 비디오 그룹들의 존재, 그리고 그들의 TV 화면으로의 진출은 예외가 아닌 관례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의 텔레비전과 비디오 문화가 배워야 할 교훈은 너무나 분명하다. 문화적 침체 혹은 문화적 활기, 이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