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과 도덕성
김미도 / 연극평론가·고려대강사
연극에서 저작권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그것은 또 어떻게 보호되어야 하는가? 최근 연극계 내부에서 몇가지의 저작권 논쟁이 잇따라 터지면서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요청되고 있다.
첫 번째 사례는 작년 8월에「민중극단」(대표 정진수)이 어린이 뮤지컬〈신데렐라〉의 음악을 무단 도용했다는 이유로 벌금 50만원 처벌을 받은 것이다.〈신데렐라〉의 음악을 만든 심성훈씨에 의하면〈민중극단〉은 84년 작곡 당시에만 작품료를 지급했을 뿐, 그 이후 수차의 재공연시에 사용료는 커녕 사전 동의조차 구하기 않았다고 한다. 정진수 대표 역시 이러한 사실들을 대부분 인정하고 벌금을 물기는 했으나 음악에 대한 저작권이 무시되어온 연극계의 오랜 ‘관행’을 내세워 억울한 뜻을 비쳤다.
사실 그동안 연극에서 특별한 음악을 사용하는 경우 극단측은 작곡자에게 처음으로 곡을 받을 때에만 작곡료를 지불하고 그 다음 재공연부터는 별 의식없이 음악을 마음대로 사용해왔다. 여기에는 연극인들 사이에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때문도 있지만 극단의 영세한 살림 형편상 매번 음악사용료를 지급할 수 없는 딱한 사정이 있다. 이는 비단 음악 뿐 아니라 연출, 안무, 무대의 문제도 비슷하다.
두 번째 사례는 작년 11월에「민중극단」이 뮤지컬〈아가씨와 건달들〉의 번역대본 문제로 극단「광장」의 문석봉 대표를 고발한 사건이다.〈아가씨와 건달들〉을 공동으로 번역한 김명렬, 정진수씨에 따르면 극단「광장」측이 번역대본을 사전 허락없이 사용해왔다는 것이다.〈아가씨와 건달들〉은 최근에「민중」「광장」「대중」이 각기 경쟁적으로 공연을 해온 작품이다.
번역극의 비중이 아직도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우리 연극계에서 번역대본의 무단 사용은 음악의 경우보다 더욱 비일비재하다. 우리 작가의 창작희곡도 작가의 동의없이 마구 공연하는 마당에 하물며 외국작가의 번역대본인 경우에야 함부로 취급되기 일부이다. 이는 일단 우리 연극계에서 번역자를 새로운 언어의 창조자로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말을 옮기는 기능인쯤으로 여기는 잘못된 풍조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번역자들 역시 재공연시에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또, 작품이 히트하여 다른 극단들에서 공연을 하게 되더라도 번역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사례는 90년 연말에 극단「대중」(대표 조민)이 공연했던 뮤지컬〈캣츠〉의 스태프진과 주연급 배우들이 따로「판 뮤지컬 컴퍼니」라는 새 극단을 조직하여 작년 연말에 공연을 가진 것이다. 이에 분개한 극단 「대중」은 새로운 멤버들로 2월중에 또 다른〈켓츠〉를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기까지는 아마 공연수익의 분배과정 등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도 극단「대중」의 저작권이 침해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후 사정이야 어쨌든「대중」은 초연 당시에 5억5천만 원 이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했던 장본인이다.〈캣츠〉에 참여한 번역자, 연출자, 작곡자, 안무자, 배우들 모두가 제각기 저작권을 내세울 권리도 있지만 「대중」역시 초연 극단으로서의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다.
〈캣츠〉의 경우는 한국연극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이어서 이 정도의 주목을 끌고 있지만 사실 한 극단에서 성공한 작품을 다른 극단에서 마음대로 가져다 공연하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그리고 보면 연극에서 저작권 문제란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다.
연극계에서 저작권 문제가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된 것은 1987년 이후의 일이다. 우리나라가 UCC(세계저작권조약)에 가입함에 따라 1987년 10월 이후에 나온 외국의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서는 원작자에게 희곡의 번역 및 공연에 대한 허락을 받아야만 하게 되었다. 이러한 저작권법의 시행은 번역극의 비중이 높은 우리 연극무대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거나‘불소급보호원칙’에 따라 87년 10월 이전의 해묵은 작품들이 주로 무대에 오르리라는 우려를 낳았었다. 그러나 저작권법이 발효된 지 5년째를 맞고 있는 지금까지는 번역극 공연이 그다지 수그러든 것 같지도 않고 외국인 작가와의 사이에 심각한 저작권 시비가 벌어진 적도 없었다. 이처럼 저작권법이 한국연극에 미칠 영향은 처음에 국제 저작권을 중심으로 논의되었으나 이는 자연스럽게 국내 저작권의 문제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그것은 심각한 법정문제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창작극 공연에서 저작권 침해가 가장 심한 것은 아무래도 희곡의 경우이다. 초연 때에는 대개 극단과 작가가 상호협의를 통하여 적정선에서 협의를 보지만 재공연부터는 저작권이 무시되기 일쑤이다. 더구나 지방극단과 아마추어 극단, 수많은 학교 극단 등에서는 사전 동의 조차 구하지 않고 작품을 제멋대로 사용한다.
또, 희곡을 무단 사용할 뿐만 아니라 저작권 침해를 고의적으로 은폐하기 위해 작가의 이름이나 제목을 슬쩍 바꾸는가 하면 작품의 구성과 편집을 일부 변경하기도 하다. 작가가 우연히 이를 알게 되어 연습 혹은 공연중지를 요청해도 막무가내라고 한다.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하는 경우에는 소설원작자의 동의 없이 희곡화하거나, 동의는 얻었지만 공연내용이 원작소설의 의도와 너무 어긋나 원작자와 마찰을 빚는 사례들이 있다.
연출상의 저작권 침해도 상당하다. 특히 서울에서 성공한 작품을 지방극단이 공연할 경우 원래의 연출을 거의 그대로 베끼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극단 측에서 재공연시에 새로운 연출자를 내세우면서도 연출 내용은 전연출자의 것과 유사한 경우도 있다.
배우 역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다. 연기자는 자신의 실연을 녹음 녹화할 권리, 사진으로 촬영하거나 방송할 권리가 있다. 바꿔 말해서 연기자의 사전 허락없는 실연의 녹음, 녹화, 사진촬영 또는 방송은 위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연극의 경우 실연자가 제각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 곤란하므로(모노드라마의 경우를 제외하고) 법적으로 실연자들이 선출한 대표나 극단 대표, 또는 연출자가 권리를 행사하도록 요구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배우의 저작권 문제는 아직까지도 가장 인식이 희박한 부분이어서 피해를 입은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동안 연극계에서는 이처럼 무수한 저작권상의 피해를 입으면서도 저작권에 대한 무의식과 무지로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않았다. 아니, 저작권에 대한 의식이 투철했다 해도 극단의 빠듯한 경제규모를 빤히 아는 실정에서 야박하게 권리를 챙길 수가 없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도 연극시장이 좁아 대학로에만 나가면 오다가도 마주치는 사이에 법정으로까지 문제를 끌고 가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고소를 한 피해자가 심정적으로는 가해자로 몰릴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제 연극의 저작권 문제는 더 이상 얼렁뚱땅 넘어갈 단계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 우리 연극이 그만큼 전문화, 상업화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가, 번역자, 연출가, 배우, 작곡가, 안무자에 대한 정중한 예우와 정당한 대우가 하루빨리 정착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창작자들이 가난한 연극실정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무리한 대가를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공연 전에 사전 동의를 구하는 예의가 필요하고 나아가 약소하나마(극단으로서는 성의껏 최대한) 사례를 표해야 한다. 저작권이란 냉엄한 법적 조항이기 이전에 예술인들 사이에 필요한 ‘도덕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작가와 작품을 존경하는 마음가짐, 연출 연기 음악 안무 무대미술의 예술적 창조성을 존중하는 자세, 타인이나 타극단의 예술행위를 인정하고 보호해주는 태도는 연극인으로서의 기본 도덕인 것이다. 무대화될 작품이나 그 작품을 가꾸고 일구는 사람들을 소홀히 취급하고서야 훌륭한 공연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 또, 한 극단에서 공연한 작품을 흥행성이 보장된다 하여 다른 극단이 제멋대로 공연하는 부도덕한 상혼도 근절되어야 한다. 남의 상품을 제멋대로 가져다 포장만 조금 달리해 파는 행위는 조금 심하게 말해 ‘도둑 심보’에 다름 아니다. 저작권자의 인격권과 재산권에 대한 침해는 곧 예술자체의 도의성과 진실성을 훼손시키는 것이다.
최근의 몇가지 불미스러운 사태를 통해 저작권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었지만 이를 전화위복시켜 연극계의 도덕성과 신뢰를 회복하는 유익한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은 곧 예술가들 사이의 상호존중, 상호이해, 상호협조의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