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춤교육 체제부터 수술해야
김채현 / 무용평론가, 서원대 교수
춤교육이 수술돼야 한다는 견해들은 일찍이 무용계의 공론으로 굳어져온 상태다. 유아 율동 교육과 조기 예술 교육 측면뿐만 아니라 초중고교 및 대학에서의 춤교육에 이르기까지 논자에 따라 부분적 손질 아니면 전면적 개혁 등등 다양한 대안이 더러 제시된바 있다. 근자에만 해도 1987년도에 한국 무용평론가회가 춤교육 제도상의 문제점을 정식 세미나 주제로 채택한 바 있고 이보다 더 지속적으로 그리고 포괄적으로 대한무용학회는 1988년도부터 3년동안 해마다 춤교육 제도상의 문제를 비롯 춤교육 내용상의 문제도 대상으로 심포지움을 열기도 했다. 춤계에서 하나의 주제를 두고 이렇게 거듭 토론회를 여는 사례가 드문 편임을 고려할 때 춤교육의 제반 문제점이 춤계의 현안으로서 차지하는 비중을 쉽게 짐작하게 한다. 춤이 활성화되고 주목받을수록 이에 정비례하여 춤이 춤계의 테두리를 벗어나 그 전모가 객관적으로 밝혀질 가능성과 또 그래야 하는 당위성은 높아진다. 오해 없길 바라지만, 무용인들이 생산한 춤이라는 재화를 무용인들만이 소비하는 관행은 지난 수년간 춤의 활성화로 말미암아 사실상 해체되었다. 즉 춤이 무용인들만의 자산이 아니라 어쨌든 우리 사회의 공적재화로서 사회 성원들이 공유하는 재화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지도 몇 해가 흘렀다. 이처럼 춤 유통 구조가 변하면서 춤의 호소력이나 대중성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인 춤의 예술적 완성도가 미흡하다는 매우 근본적인 폐단이 근자에 들어 더욱 자주 지적되고 있다. 이에 비추어 춤 활성화가 춤계 전체를 고무하는 바 크다 해도 역설적으로 무용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측면도 있다 하겠다.
그런데 최근에 이를수록 춤교육의 문제점이 거론되는 빈도가 높은 것도 따지고 보면 시대 흐름의 반영일 것이다. '80년대의 문제 의식이 이전 시대와 같을 수 없고 '90년대 문제 의식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미 컴퓨터로 상징되는 최첨단 기기가 에워싸는 시대의 춤교육은 구두 전수에 의존하던 시대의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80년대가 춤의 존재를 되찾는데 의미를 둔 시대였다면 '90년대는 춤이 사회로, 대중으로 파고드는 시대로 설정되고 있다. 다시 '90년대는 춤이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인 자기 모색 내지 자기 향상을 기해야 하는 시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최우선 순위로 거론된 춤교육 문제라 해도 이런 시대적 의미 속에서는 다시 독특하게 제기되고 있다.
「춤의 해」동안 춤계의 모든 현안이 해결되리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춤의 해」는 이전의 현안들을 추려서 재검토하고 그 해결을 위한 머릿돌을 쌓는 해로 이해되어야 할 듯 싶다. 이런 관점에서 그동안 많이 거론되어 다소 해묵은 듯한 느낌이 있는 춤교육의 문제점을 다시 상기해보되 대학 춤교육의 문제점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어 부분적으로 간과되었거나 또는「춤의 해」동안 실질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몇 가지를 지적하는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 왜냐하면 대학의 무용(학)과 춤교육은 비교적 대학 자체의 노력으로도 개선될 여지가 크고 또 전체 춤교육의 향방은 대학 춤교육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춤교육의 문제점은 작품의 완성도에 있다
아마도 춤의 예술적 완성도가 미흡하다는 사실 속에 우리 춤의 모든 현안이 집약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춤교육의 문제점도 궁극적으로는 여기에 귀착될 것이다. 거꾸로 말해 춤교육의 문제점이 곧 춤 작품의 문제점으로 현실화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춤교육의 문제가 교육적 차원의 문제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춤계에서 춤교육은 춤의 사활이 걸린 중대사라 할 것이며, 춤계의 기대를 모으는「춤의 해」를 맞아 춤교육의 문제점이 새삼 부각된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춤교육의 의의에 비해 그 문제점은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 일단 춤교육에 몸담은 이들이 반성할 대목이다. 흔히 춤교육의 최대 현안으로 지금까지「중고교 교과 과정에서의 춤교과의 부활 및 독립」이 거론되어 왔었는데, 이전이나 지금이나 그 실현 가능성은 밝지 않다. 그것은 중고교 교과 과정에서 춤교과를 정식 교과로 채택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제도적 해결과 연관된 터에 무용인들의 자력으로 충족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춤에 대한 사회적 인식, 춤의 교육적 효능, 춤교육의 철학적 논거, 교육부의 정책 결정 과정, 그리고 교과 과정 개편주기에 따른 지연의 불가피성 등등의 현실적 제약이 춤교과의 신설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춤교육은 교육개편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춤교과 신설이 중대한 과제여서 춤계에서는 그 신설에 대비하는 태세를 취하고 있음에도 이런 외적 제약 때문에 해결 전망이 밝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춤교과 신설에 국한되는 문제점일 뿐 춤교육 전반에 걸친 문제점은 아니다. 그럼에도 춤교과 신설 과제와 춤교육의 전반적인 개선을 동일시하거나 춤교과 신설로 춤교육의 제반 문제점이 해결될 것으로 전망하는 논리적 오류도 춤계에서 없지 않아 보이는데, 춤계에서 춤교육을 손질해야 할 책임을 종종 춤계, 외부로 미루는 경향을 드러내는 것도 이과 같은 오류에서 기인한 듯하다. 따라서 춤 발전을 위한 교육 개선이 중고교 춤교과 신설에 의해서만 달성되리라는 인식부터 사려깊게 재고되어야 할 것이고, '80년대에 춤계가 거의 전적으로 교과독립에 매달려 왔던 춤교육 현안에 대한 관점이 '90년대 들어 대폭 확장되어야 할 필요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춤교육의 현안과 관련 여러 차례의 토론회에 참여하고 기고도 한바 있는 필자는 위에서 거론된「체육교과의 일부로 종속된 중등 춤교육의 부실과 부조리성」이외에 정상적 춤교육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1)사회적 몰이해 2)사회적 몰이해에 안주한 결과로서 춤교육 정책의 부실 3)춤교육 담당자(특히 중등 춤교사)의 비적격성 4)춤교과서의 부재 5)유능한 아동춤교사 양성기관 및 지도 지침 부재 6)무용학 학사·석사·박사 자격의 제도적 불인정 7)각 대학 무용(학)과의 모호한 성격을 든 바 있다(「예술과 비평」'90년 가을호, 졸고 참고).
물론 해마다 전국 대학에서 배출되는 1천여 명의 춤 전문 인력이 대부분 사장되고 중고교 교과 과정에서부터 춤에 대한 건전한 심성을 키울 계기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리고 「춤의 해」를 맞아 국민적 관심을 배경으로 중고교 춤교과 신설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가 유일한 문제인 듯싶게 전적으로 매달림으로써 다른 문제를 소홀히 하거나 전적으로 간과할 우려도 없지 않고 실제로 춤계가 자력으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문제들에는 사실상 거의 손을 대지 않는 현상도 그에 못지 않게 우려할 일이다. 따라서「춤의 해」에 해야 할 일은 오히려 그동안 잊혀졌거나 손대지 않은 현안을 다시 추슬러 보는 일이 아닐까 한다.
가령 춤계의 적극적인 노력이 미흡해서 방치된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1990년도까지만 해도 무용학사란 학위 명칭은 법규상 인정되지 않았으나 1991년도부터 무용학사 명칭이 정식 인정되게 되었다. 이를 춤계에서는 이전까지 무용(학)과 출신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체육학사란 명칭이 부여되었던 현실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무용학 석사나 무용학 박사까지 인정되어야 하고 대학원 무용(학)과 박사과정도 개설되어야 한다는 것이 춤계의 입장이긴 하지만, 어쨌든 무용학사 명칭 획득은 그동안 무용계가 노력한 결과임에 분명하다.
취약한 토대 위에서 전기(轉機) 마련한 춤의 해
흔히들 우리 무용학의 토대는 약하다고 지적한다. 필자의 생각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춤의 해」가 우리 무용학의 진흥을 위해 어떤 전기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도 여느 무용인들과 마찬가지로 간절하다. 무용학의 토대가 취약하다는 말의 의미는 현실적으로 무용학에 전념하는 학자가 얼마 되지 않고 무용학의 기본 자료도 적으며 무용학의 방법론도 잘 개발되지 않았으며 대학의 춤교과 커리큘럼도 대학이 위상에 비해 처진다는 식으로 여러 측면에서의 부정적 사실로 해석된다. 중고교에서 춤교과가 독립되지 않아 중고교 춤교과서나 입문서도 개발되지 않았을 개연성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에 무용학과가 개설된 지 올해로 28년째이고 전국 대학에 근 30군데에 무용(학)과가 설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대학의 무용(학)과에서 통용될만한 이론서라고 선뜻 지칭될 자료가 희소한 사실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이 분분에 대해 뼈져린 성찰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현재 각 대학에 설치된 무용(학)과의 불투명한 성격을 해소하는 일이 보다 시급한 과제로 부각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간 누누이 언급되고 토론되었다시피 대학의 무용(학)과는 우선 그 명칭이 무용과 혹은 무용학과로 이분화 되어 있되 실제로는 무용과든 무용학과든 동일한 커리큘럼을 유지하고 있으며, 또한 한국무용/현대무용/발제전공이라는 실기 위주의 전공 구분법을 취하고 있되 실제로는 실기인뿐만 아니라 창작자와 이론가 및 교육자를 골고루 양성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어서 아무래도 학과의 성격이 불투명한 문제임을 안고 있다. 누구나 인정하듯 춤교육의 최고 지침과 방안은 대학에서 제공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대학무용(학)과의 성격 정립은 전체 춤교육의 내실과 중대한 함수 관계에 있다.
아마 과문의 탓인지 모르겠으나 학과 자체 내의 커리큘럼 조정이나 전공재분류 등의 작업은 학과 자체의 판단으로 해결될 여지가 매우 큰 줄로 안다. 다시말해 각 대학 무용(학)과 자체의 위상은 스스로 정립해 나가야 할 부분이라 생각되므로「춤의 해」를 계기로 이에 관한 논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특히 무용(학)과의 전공 재분류와 관련해 필자가 생각하는 대안은 궁극적으로 춤실기인(무용수), 춤창작자 및 춤무대공학인, 춤이론가 및 교육자를 따로 양성할 수 있는 학과들이 독립적으로 설치되는 단과대학으로서의 무용대학 설립이다. 그러나 무용대학의 설립만이 유일한 대안은 아닌 것이고 현재의 무용(학)과 들에서 모집 인원수 조정과 전공 과정 조정 작업을 통해서도 상당하게 개선될 것으로 믿어진다.
한사람이 두 직능 겸하는 춤계, 분화 바라는 목소리 높다
더욱이 춤교육자와 춤예술가의 직능이 미분화되어 한 사람이 이 두 직능을 겸하는 사례는 춤계에서 드물지 않다. 이런 현상이 조성되게 된 데에는 그만한 역사적 사정이 있었다. 그러나 근자에 들어 이들 직능의 분화를 바라는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는 추세와 사회적으로 제반 직능이 더욱 분화되는 추세를 참고로 하면 무용(학)과 전공 재분류 작업은 지금부터 실시한다 해도 전문가를 양성하기에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춤의 예술적 완성도가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은 이 두 직능이 분화되어야 한다는 지적과 무관한 것일까, 텔레비전과 비디오가 오락·예술·정보 어느 측면에서도 득세하기만 하는 시대 여건 속에서 영상이미지를 대하는 대중들의 안목은 드높아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영상 이미지의 시대에 춤이 사회적으로 살아 남으려면 대중들의 그렇게 높여진 안목을 상회해야 한다는 결론이 서며, 춤의 예술적 완성도 높이기는 춤의 생존 전략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무용인의 직능분화, 이 말은 오늘날 춤이 처한 어떤 위기 상황마저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
우리 주변의 중고교 미술 및 음악교육이 부실하거나 실기에 치우쳐 있음은 지난 수십년 동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설령 중고교 춤교육이 이뤄진다 해도 교육을 해보아야 알겠으나 아무래도 실기에 치우칠 가능성은 매우 농후할 듯하다. 아직 중고교 춤교육이 실시되지 않은 터라 더 이상의 추측은 금물이겠으나, 아무튼 무용(학)과의 현실은 실기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한 폐단은 이미 춤교육자와 춤예술인의 직능 미분화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의 시정을 위해 학부무용(학)과의 전공 재분류에 못지 않게 고려되어야 할 점은 대학원 무용(학)과의 내실화로 보인다.
여태 대학원 춤교육의 문제점은 부각되지 않았다. 그것은 (무용)학과가 설치된 모든 대학에 대학원 과정이 설치되지는 않아서 보편적인 문제점으로 느껴지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신중하게 생각해 보면 대학 춤교육 담당자는 거의 모두가 대학원 무용(학)과에서 배출되므로 어떤 점에선 대학원 과정이 전체 춤교육을 좌우한다고도 이야기될 것이다. 그런데 대학원 과정에서는 무엇보다 커리큘럼의 개편 작업이 서행되어야 할 것이다. 일테면 대학원의 교과 요목 가운데 형식적으로나마 학부의 교과 요목과 동일한 것내지 유사한 것이 더러 눈에 띄므로 대학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상위의 학문적 지향점을 발견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설령 대학원의 교과 요목이 잘 갖춰졌어도 수학자가 대학원 과정을 이수할 능력이 없다면 명색만 대학원 교과 요목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대학원의 교과 요목을 재정비하고 논문 지도를 보다 내실있게 진행함으로써 대학원 진학 목표를 충실히 유도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학부 과정에서 이루지 못한 실기와 이론의 전공 분화가 대학원 과정에서도 이뤄지지 않음으로 해서 마침내 춤이론가의 양성작업이 춤교육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빚고 있다. 이렇게 보면 교육자와 예술인의 직능 분화가 강조된다고 해서 곧장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도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 대학원의 역할은 재조명 될 필요가 있는데, 적어도 대학원은 춤교육자에 필요한 자질을 양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굳혀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과 같은 현안 해결을 위해 우선 대학과 대학원 무용(학)과의 교육 영역을 몇 몇 분야로 세분하여 그들 간의 관계를 검토해보는 것도 한 방법일 듯 싶다. 대학 춤교육의 영역은 대체로 무용개론·무용사·무용미학 등의 순수이론 분야, 무용예술학·무용비평론·작품론·창작론·교육방법론·동작학 등의 안무 및 교육분야, 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민속무용 등의 순수실기 분야로 나눠진다. 순수이론 분야는 이론이 강조되고 순수실기 분야는 실기가 강조되면서 안무 및 교육분야는 그 중간 영역이랄 수 있다. 이들 분야를 기준으로 대학 및 대학원의 전공 영역을 재분류할 수 있겠고 각 대학 무용(학)과마다 특성을 살린다는 취지에서 부분적으로 강조할 영역이 나올 것이다. 아마 이렇게 되면 각 대학 무용(학)과 마다 고유한 교육 방법론도 개발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자세한 것은 한국무용평론가회 발간「무용저널」제 6호의 졸고 참조)
이 방면의 논의가 본궤도에 오르지 않은 상황이므로 이제부터 시작이라 보는데,「춤의 해」운영위 내에 설치된 학술출판분과위에서도 이런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와 아울러 연구 과제 사업으로 추진해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지난 30년간 대학 춤교육의 교과과정이 나름대로 재편되어 왔겠으나 달라진 시대 추세 속에서 그래도 무용학계에서 축적된 결과를 모아 새삼 교과 과정을 과학화하는 전기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벌써 시작된「춤의 해」1년 동안으로는 우선 시일 면에서도 짧다는 느낌이며, 따라서 대학 및 대학원 춤교과 모델개발과 확충을 위한 연구 사업에 착수하는 일부터「춤의 해」동안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