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무용

무용의 대중화



문애령 / 무용평론가

한국의 무용계는 짧은 무용역사에 비해 엄청난 속도로 많은 관객을 확보했다는 결론에서부터 무용의 대중화를 위한 방안의 실마리를 풀어가야 할 것 같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무용이 대학에서 교육되어졌다는 점, 그리고 무용가 개인들의 집념과 열정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즉, 기방의 춤이나 놀이판의 춤 등과 같이 춤 자체를 터부시했던 시대적 배경으로는 춤이 대학에서 교육되어진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위상을 달리 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대학 무용과를 토대로 이루어진 여러 무용가들의 개인적인 활동은 무용공연의 폭발적인 증가와 아울러 관객의 증가를 초래했다.

이러한 현상은 시대적 상황에 적절히 대처한, 무용의 대중화를 위한 최선의 판단에 기인한 결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음악회나 연극, 영화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적지않은 무용공연과 관객을 확보하게 된 오늘의 무용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관객을 확보한 오늘에도 무용의 대중화가 무용계의 커다란 관심사가 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발레가 옛서양의 귀족예술이니 오늘날에 맞게 대중화해야 한다는 것도 모든 무용을 탈춤처럼 대중이 참여하는 예술로 만들자는 것도 아닐 것이다.

존재하지 않고 인식될 뿐이라는 대중, 즉 다양한 각도에서 분류한 사회의 여러 계층에 속해 있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무용을 만들어 학연에 이끌려서 이동하는 관객이 아닌 대중 속에서 뽑아낸 폭넓은 무용관객을 확보하고자 하는 바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무용은 안무가의 경험이나 직관이 무용 예술적 매체를 통해 나타나고 그와 비슷한 체험을 가진 관객의 향수가 존재할 때만이 공연예술로서의 가치가 인정된다. 즉 다른 공연예술과 마찬가지로 관객이 무용공연을 형성하는 세 가지 요소(무대·연기자·관객)에 포함되어 있는 만큼 폭넓은 관객층을 얻고자 하는 것은 모든 안무가의 바램이자 무용공연의 존재 이유가 된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것이 곧 '미'라는 말이 있듯이 무용공연을 통한 관객과의 교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무용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것이다.

어느 사회나 특정계층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술현상이 있고 계층예술, 엘리트예술, 대중예술 등으로 구분되는 것은 사실이나 무용의 대중화의 의미가 무용이 대중예술화 되어야 한다는 의미와는 관계없는, 사회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예술로서 자리잡기 위한 대중화로 이해되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무용의 대중화 방안은 첫째, 무용의 제도적 육성, 즉 제작자나 극장측, 평론가의 보호와 둘째, 새로운 작품을 유도하는 관객의 기호가 안무가의 창작활성화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 무용공연의 제도적 육성책

한 국가의 경제력과 예술의 부흥이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기도 하지만 무용의 경우는 보다 특별한 보호를 받아왔다.

초창기의 무용공연이 대부분 스펙타클한, 수십 명의 무용가, 제작진이 투여되는 대규모의 것이었고 이를 개인의 경제력으로는 감당하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발레단의 감독이었던 디아길레프가 발레 제작을 전담하고 흥행에 성공한 것도 그 전에 얻어진 러시아 황실발레단의 명성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관객층 덕분이었음을 상기한다면 무용의 대중화는 우선 대중에게 보여질 기회와 무용에 대한 친밀감을 확보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문화적 전통이 없었던 미국에서 최고의 발레를 볼 수 있는 오늘이 있기까지의 역사를 보면서 재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러시아 발레단이 해체되고 미국으로 간 죠지 발란쉰은 국립발레 학교와 발레단 설립에 관여했고 뉴욕시립발레단을 탄생시켰다. 이는 정책적으로 이루어진 무용진흥책의 단명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이십여 년의 차이를 두고 국립발레단이 생겨났고 국립무용단, 서울시립, 인천시립, 광주시립, 부산시립 등 적지 않은 단체가 있음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연례행사화된 며칠간의 공연횟수에도 관객의 흥미를 끌 무엇을 담고 있지 못한 공연에도 있다.

공연기간은 우리의 경우 길어야 4∼15일 정도인데 외국의 무용공연기간이 적어도 2주에서 한달 이상씩인데 비한다면 궁색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라면 또다시 관객동원이 등장하게 되는데 외국무용단의 초청공연이 성황을 누리는 이유를 단지 문화적 사대주의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도 생각해볼 문제다. 제작진, 극장측의 소극적인 자세, 다시 말해 홍보활동이나 구체적인 관객 동원책에 미진함은 없는지 초·중·고등학생들이 단체관람하는 영화를 한번쯤 무용으로 대신할 수는 없는지 등을 생각해 본다.

공연 내용면에서 보자면, 죠오지 발란쉰의 한 대담 중에서 미국발레단의 대중화를 이룩하게 된 해답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정통하거나 대단한 것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본적조차 없다. 내가 시도하는 것은 엔터테인먼트다. 나는 이태리 스타일 발레를 선호하는데 그 의도 중에는 관객이 돈을 지불한 만큼 그들을 환대해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있다.”

우리는 이 말을 상업주의에 치우친, 작가정신이 결여된 무책임한 발언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공연예술은 무언가 볼거리, 들을 거리, 느낄 거리를 우선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사실 볼거리가 없는 무용공연장은 참담한 곳이기 때문이다.

발란쉰의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동감할 사실이지만 그의 작품이 결코 여흥거리로 치부될 수는 없다. 신고전주의 발레를 정착시킨 그의 작품에는 화려한 테크닉과 더불어 음악에 의한, 신화에 의한 뛰어난 해석력이나 감각이 들어 있다.

볼거리를 제공하는 공연예술의 본분위에 안무가의 무용미학이 첨가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용 공연장이 서투른 철학 강의실이 되는, 그래서 안무가도 관객도 갈피를 못잡고 흘러가는 일회용 소모품이 종종 생산되는 우리의 풍토는 관객의 대중화를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내가 이룩하려고 하는 일은 당신이 보게끔 만드는 것이다'라는 그리피드의 선언에 동감하는 제작진들이 등장할 때 무용의 대중화는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외형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적극적인 행정력이 필요하다.

2. 자유경쟁과 전문화의 필요성

던컨, 세인트데니스, 그라함 등의 명성과 함께 등장한 모던댄스로부터 무용공연은 스펙타클의 차원에서 개인의 내면세계를 다루는 경향으로 흘러왔고 이는 무용가 개인의 단체가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의 현대무용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스스로 개척하는 수많은 무용전문가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모리스 베자르나 피나 바우쉬처럼 행정적 후원아래 개인의 명성을 이룩한 경우는 금상첨화일 것이나 매년 주어지는 예술지원금이나 유명극장에 초청단체로 선정되기를 기다리며 버티는 신념에 찬 전문가들이 그들이다.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신념만큼이나 확고한 주관이 담긴 작품들은 세계무용계의 경향을 좌우하게 하는 초석이 되기도 한다.

우리 무용계에 안무가가 없다든가 양적인 증가에 비해 질적인 향상이 미비하다는 비판의 소리를 듣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우리 무용계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전문가가 양성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국·시립단체 혹은 종교단체 등을 제외하고 무용공연을 주된 직업으로 삼고 일년에 몇 개월 이상씩을 공연해야만 할 필요성이 있는 무용인이 얼마나 되는가? 무용 공연자에게 당신은 직업 안무가입니까? 혹은 직업무용가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현 상황에서는 개인 무용단체의 90% 이상은 아니라고 대답 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들을 아마추어라고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수십 년씩 무용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니 아마추어도 아닐 것이고 공연을 통해 얻어지는 출연료가 없으니 프로페셔날도 아닌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특히 개인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심지어는 해외초청공연의 엄청난 비용까지 개인이 부담하는 것으로 되었다. 공연은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행사가 되었고 직업은 대학교수나 강사, 학원장 등등을 따로 갖고 있다. 무용공연의 배경이 이런 식으로 지속된다면 공연장소와 횟수의 기록에 연연하는 나르시시즘 이외의 어떤 기대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부와 명성과 권력은 분리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향유하는 무용인의 숫자가 많을수록 무용의 전문화는 어렵게 되고 진정한 무용전문가들은 외로워진다. 무용창작과 공연이 직업인 사람들, 대중을 상대로 한 자유경쟁, 그로 인한 창작지원금 수혜, 혹은 극장의 기획공연 참가, 이런 식의 자연스럽고 순리에 맞는 구조가 시급하다.

3. 평론가의 올바른 개입

특별한 예술작품의 묘사, 해석, 그리고 그 가치 평가를 다루는 것이 평론이라면, 무용의 대중화를 위한 평론가의 위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데오필르 고티에가 마리 타그리오니외 파니 엘스러를 비교하는 평을 써서 낭만발레의 전성기를 더욱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 그것이고 존 마틴의 평론에 힘입어 미국의 현대무용이 급성장한 것이 그것이다. 그런가하면, '60년대 중반 빌리지보이스에 실린 질 존스턴의 평론은 포스트 모던댄스의 탄생과 성장을 보게 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춤 테크닉에 따른 장르 구분이 확실한 우리 무용계의 현실에서 창작무용, 즉 진정한 현대무용 작품의 탄생과 수용은 혼란상태에 머물러 있다. 전통무용은 그 역사적 배경이나 춤 테크닉, 형식면의 진·위에 기준을 둔 평론이 나와야 할 것이고 고전발레 또한 같은 기준 위에 놓아야 할 것이다.

창작무용의 경우 앙드레 레벵송처럼 안무가가 추구하는 궁극적 의미를 밝혀내는데 주력할 수도 있고 에드원 덴비처럼 동작·느낌·움직임의 이미지를 묘사하는 작품위주의 방법도 있다. 그래서 이사도라 던컨의 '새로운 아름다움'은 고대 그리스가 아닌 영국의 프리 라파엘리트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새로운 학설이 나오는 것이고 발란쉰의 작품 특성이 곧 비평의 기준이 된 후자의 예리한 관찰력을 보게 되는 것이다.

평론가는 무용의 양육을 위한 제2의 지도자이자 책임자이기도 하다. 때로는 작품의 설명이나 안무가의 소개도 해야겠지만, 그 작가 혹은 작품이 지니는 특성을 역사적·형식적·주관적 기준에 따라 설명함으로써 대중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그들의 흥미와 관심을 유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무용계에 관여하는 평론가는 무용계의 구조적 모순, 즉 비전문가들의 넘치는 연구발표회를 제한하고 전문가들의 작품, 평가할 기준의 설정이 가능하고 그 기준에 따른 가치가 인정되는 작품을 선별해야 할 책임도 있다. 의욕만으로 이루어지는 연구실습용 공연이 그럴듯한 평가 가치가 있는 것으로 오도될 때 대중은 무용을 무시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신선한 충격을 준 어떤 작품이 잘못된 기준설정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평론가는 무용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대중에게 전달되도록 해야한다. 맹목적 사랑 혹은 계산된 사랑이 아닌 이성적이고 절제된 사랑이 평론가의 자격기준이 될 것이다.

4. 무용공연의 주체로서의 대중

무용작품을 다룰 때 안무가·무용가·작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당연한 과제인 것처럼 그 작품의 향수자인 관객의 역할은 때때로 무용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공연예술의 기능을 오락, 카타르시스, 고발, 취미고양으로 본다면, 그 대상은 곧 관객이며 그들은 한 사회의 문화적 영향력아래 있는 대중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문화적 욕구는 미적·정신적·감정적·도덕적 위기를 거치며 변화하는 것이며 이러한 감각적 변화를 앞지르거나 혹은 이에 뒤떨어질 경우 예술작품은 대중화의 길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대중은 인식되는 중압감만큼이나 수용폭이 넓은 것도 사실이다. 고전발레가 이백년 이상 지속될 수 있는 것도, 한국 전통무용이 그 아름다움을 새롭게 인정받는 것도, 신표현주의 무용이 열광적인 호응을 얻는 것도, 결국은 대중의 다양한 기호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무용인 경우,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한다는 시도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중은 과거에 대한 호기심과 향수, 형식과 정서를 우선적으로 찾게 된다. 과거의 무용은 오늘날에 비해 깔끔하게 정리된 안정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전통무용이 형식적이고 진부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가식적인 몸짓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관객층이 있다면 무용은 그들의 욕구-미적·정신적·감정적·도덕적-에 맞는 새로운 형태로 변화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형태의 무용도 어느 날엔가는 또다른 새로운 욕구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 공연예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대중의 감각과 일치하는 안무가는 그 시대 최고의 예술가일 것이다. 니진스키의 「목신의 오후」,「봄의 제전」이 실패한 것은 대중의 감각을 적어도 몇십년 앞지른 때문이었고(그의 작품은 오늘날 많은 관객을 매료시킨다) 포킨은 시대에 적절한 감각을 수용했던 동시대의 인물이다. 창작이란 명목아래 전통발레의 틀에 맞춘 안무가 지속되는 오늘날의 일부 현상은 분명 니진스키의 경우와는 반대가 될 것이며 피나 바우쉬는 오늘의 감각과 일치하는 안무가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백조의 날개보다는 사실적인 감정묘사가 들어있는 작품을 좋아한 영국의 관객층은 안토니 튜더의 새로운 발레 창작을 유도했고, 전통발레와 시덥지 않은 창작발레에 식상해 있던 유럽의 젊은 관객층은 피나 바우쉬의 실험에 지속적인 용기를 제공하는 대중이기도 하다.

한국무용계의 대중은 누구인가?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공연예술의 기능 중 하나인 오락성을 기억한다면, 발라쉰의 발언 중 엔터테인먼트가 강조되었음을 기억한다면, 연극은 재미있는데 무용은 그렇지 않다는 어린애의 한마디가 대단한 진리일 수 있고 무용의 대중화가 어려운 이유일 수 있다.

사회고발도, 취미고양도, 카타르시스도 공연예술이 지니는 오락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는 제 몫을 하기 어렵다. 모든 무용이 희극화 되어야 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대중의 감각을 파악하고 그들의 감정을 의도대로 요리할 줄 아는 안무가의 작품은 대중의 흥미를 끌게 되고 오락성 있는 작품이 된다. 연극도 재미있지만 무용도 재미있다는 대중의 평가를 받게 될 때 진정한 무용의 대중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5. 위험한 대중의 기호

사회학적 입장에서 본 예술은 '사회적 결속의 도구', '사회에 의해 규격화된 유희'등으로 간주된다. 예술을 평가하는 작업에서 작품이 탄생된 시간과 공간을 중요시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창작자와 감상자의 취향은 같은 사회적 배경 아래서 더욱 밀착되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용감하게 투쟁하다 죽어간 노예를 소재로 한「스파르타커스」는 미국에서보다는 공산국가에서 각광받는 작품이다. 그들의 소재는 주로 부패한 귀족사회를 무너뜨린 혁명과 그 위대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사회적 배경이 예술창작과 향수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중을 탄생시키는 사회적 배경에는 이념 외에도 국가적 기호와 자긍심이 포함되는데 우리의 경우 충효사상, 권선징악의 내용이 선호되고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인 경향이 짙은 편이다.

모든 작품의 내용이 곧 작가의 도덕성이라는 표피적인 관측에 머물러 있는 안무가와 관객의 이해도는 진일보해야 할 과제이고 '한국적인 것'에 얽매여 창작의 자유를 구속받는 일도, 서양무용마저도, 한국적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사라져야 한다. 소재 선택에서 한국적 정서를 다룰 수는 있으나 지나치게 강요될 때는 우스꽝스러운 변형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념이 강요될 때처럼 특정요인이 강요된다는 것은 범세계적 범주에서 볼 때, 미래의 관객을 주체로 볼 때, 진정한 대중화가 어려운 것이다. 민족주의적 예술은 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한국적인 것'을 다루는 것이 최선은 아님을 알고 대중의 기호를 바르게 이끌어 가는 것도 예술가의 역할일 것이다.

무용의 대중화는 이미 주어진 행정적 뒷받침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전문화를 추구하고, 올바른 평가기준을 설정하고, 대중의 기호를 파악하는 위에 여러 관점에서 지적될 수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대중의 기호를 선도해 나가는 데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