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대학무용 무엇이 문제인가Ⅰ
이병옥 / 무용평론가, 대한체육과학대 교수
무용계의 현대사는 대학무용의 주도로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만큼 무용계에서 대학무용이 차지하는 역할비중이 높았다는 것이지만 상대적으로 순수무용가들의 무용이 저조했다는 말도 된다.
여기서 말하는「대학무용」이란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들이 자기 무용학과 학생제자나 졸업생을 중심으로 무용작품 활동을 해온 교수들의 무용을 뜻하며 「순수무용」이란 오로지 무용만을 업으로 삼고 문하생들과 함께 펼쳐온 무용계 활동과 공연무대를 지켜온 무용가들의 무용을 대비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우리나라 대학에 무용학과가 '60년대에 이화여대에 개설되면서 점차 확산되어 7,80년대에 이르러 전국 30여 개(전문대 포함)대학에 무용학과가 생겨나 가히 무용학과 전성시대를 이루게 되었다.
춤추는 무용가들이 모여 막강한 대학교수로 군림하다
그리하여 춤께나 추는 무용가들은 대거 대학교수로 영입되어 안정된 직장과 권위있는 교수직에 무수한 제자들을 거느린 무용가로 군림(?)하게 되어 맘먹으면 언제든지 무용수들을 동원하고 공연비용을 연출할 수 있는 막강한 공연파워를 지닌 무용계의 실력자들로 부상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무대만을 지켜온 순수무용가들은 대학무용에 빼앗겨버린 열악한 춤조직력과 빈약한 춤환경으로 개인적인 명분만 남아있거나, 무용연구소 등의 경영으로 대학무용쪽으로 유입되어가는 입시 무용생들의 뒷바라지로 명맥만을 유지해 오고 있는 실정이 태반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실정을 잘 알고 있는 무용학과 졸업생들의 최대 소망이 대학교수가 되는 일이며 그 다음이 국·시립무용단원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 두 가지의 등용문은 극히 제한된 좁은 문이라는 사실로 일년에 1,000명도 넘게 배출되는 대학출신 무용인재들이 모두 좌절 내지는 다른 길을 찾아나서는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우리의 현실은 무용인으로서 대학교수가 최대 소망의 자리임에는 틀림없지만 앞으로는 판도가 달라질 전망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문화예술이 선진화된 국가의 예를 들면 무용교수와 무용예술가는 역할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 지위나 존경의 대상이 대학교수 쪽보다는 예술가 쪽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 예술계의 미래를 예견해두는 본보기가 아닌가 싶다.
한편 무용계의 기대를 모아온 직업무용단의 현황은 국·시립무용단, 그리고 국악원무용단,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 무용단들은 그래도 높은 지원으로 비중 있는 무대와 국가를 대변하는 무용예술을 펼쳐 오고 있다. 그러나 그에 반해 각 지방의 시·도립무용단은 몇 개 지역에 겨우 설립되어 빈약한 지방재정지원으로 어렵게 꾸려 나가고 있다.
결국 7,80년대의 무용계는 무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부족과 정부지원의 빈약에서도 자구적인 노력으로, 대학무용이 그나마 무용계에 공헌한 바 크다고 보는 긍정적인 면으로써 대학교육과 무용공연계를 넘나들면서 양면을 충족하기 위한 교수이자 무용가들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바이나, 이것은 정상적인 무용계 구조는 아니며 과도기적 공로로 보아야 하며 언제까지나 이런 불합리한 무용계 구조가 지속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적 모순과 대학무용의 병폐가 점차 누적되고 심화되어 급기야는 지난해 입시부정사건과 같은 일이 폭발하여 무용계 전반에 걸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는 사태로 번졌다.
이것은 단순한 입시부정 사건으로만 축소해석 해서도 안 되는 대학무용 전반적인 문제 그리고 대학무용의 누적되어온 관행에서 비롯된 총체적 폭발로 해석해야할 일이다.
그러니까 사건이 노출된 일개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대학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제2, 제3의 또다른 사건을 예방할 수 있으며 대학무용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머지않은 21C에는 대학은 대학으로써의 명분을 찾아 본분을 다하는 무용교육이 이뤄질 것이고 무용공연계는 순수무용인들에게 돌려주어 정상적인 공연예술이 뿌리내려 세계적인 무용스타도 탄생되고 세계적인 무용단이 국제적으로 한국무용의 위상을 드높일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대학무용의 누적되어온 문제가 무엇이며 어떻게 위상을 새롭게 정립해 나갈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누적된 문제점을 깨닫고 대학무용이 나아가야할 점
첫째는, 대학무용 교수의 본분은 무용교육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있지 공연활동에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닫고 대학 교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교수이며 무용가라는 두 가지 역할은 과거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오늘날에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형상으로 두 가지를 다 잃는 무리수가 되고 있다. 그러니까 '교수는 교단에서, 무용가는 무대에서' 인생을 불태우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대학무용교육도 잘 되고 무용계 공연예술도 정상궤도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실례를 들어 일년에도 몇 차례씩 공연무대에 올라서는 무용교수들의 대학수업은 실제로 한학기에 서너 번밖에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대학무용의 그릇된 현실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단면이다.
공연활동이 많은 유명교수일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이런 교수 밑에서 배워온 제자들은 도대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으며 얼마만큼 대학인다운 지성과 학사무용인으로서의 인격과 무용가로서의 소양을 쌓았겠는가 반문하고 싶다.
이제는 양단간의 택일로 인생을 무대공연에 걸어야겠다는 분은 교수직을 과감히 박차고 나와 무용무대를 지키는 용기있는 무용가가 되거나 아니면 조용히 자기가 몸담은 대학으로 돌아가 연구실을 지키며 무용학을 연마하고 전공 춤세계를 분석 정리하고 무용지도법을 연구하여 수업을 통하여 자기의 춤이상을 수립해 나갈 때 훌륭한 제자들이 양성되며 이들이 다음세대의 무용계를 이끌어 갈 인재들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대학당국에서도 실기교수들의 연구실적 요구사항에서 학문연구의 점수 비중을 높이고 실기발표를 통한 점수비중을 낮추어 무용공연으로 연구실적을 땜질하려는 풍토는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지금까지 대학무용의 목표가 실기중심의 무용수 양성이었으나 이것이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점이다. 미시적으로 대학무용 실기가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거시적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단편적인 예로써 대학입시 당시의 실기능력을 4학년 졸업 때까지 지키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바꾸어 말하면 입학 당시보다 실기 면에서 퇴보한 학생이 많다는 것이며 향상된 학생들의 대부분이 대학수업으로 이뤄진 것이 개인레슨으로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대학은 교양과목을 비롯하여 전공이론 등의 과목으로 실기나 전시공간 비중이 극히 적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1학기 당 16주 수업도 오리엔테이션, 축제, 중간·기말고사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1년에 절반이 여름방학, 겨울방학으로 휴강상태가 되는 것이 실기연마의 심각한 문제이다. 신체예술인 무용이 부단한 춤 연습을 하지 않고서는 높은 기량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인간의 성장 발달 면에서 본 예능교육은 아동기부터 이뤄져야 하며 청소년기에 신체기능의 최고치를 기록할 수 있다.
쉬운 예로 올림픽경기에서 무용과 관계 깊은 체조, 리듬체조 등의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예술적 신체기능은 모두가 10대의 청소년기의 선수들이다. 무용수 교육도 마찬가지로 청소년기인 중고교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교육될 때만이 가능하다. 바꾸어 말하면 대학에서의 실기교육은 때늦은 지진아교육에 불과하다.
특히 발레의 경우는 더더욱 조기교육을 요하는데 대학에서의 발레교육은 이미 지난 노년기 교육이나 다름없다. 그러니까 발레계에서는 더욱더‘발레스쿨’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무용수 교육을 담당해왔던 대학무용은 인간의 성장 발달 면으로 볼 때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이나 특수예능교육기관에서 담당해야 할 때가 오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