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1.2월 문화행사
임동확 / 무등일보 기자, 시인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광주·전남의 새해 새아침도 신춘문예로 열린다. 강압의 시대에 대한 가시적 보상 차원인가, 아니면 참된 언로(言路)의 개방인가. 어느덧 광주지역에서만도 순수 일간지가 네 개나 발행되고 있다. 별다른 변별성도 없이 말이다.
여하튼 올해도 시·소설·동화·문학평론 분야에서 열 명이 넘는 신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소위 중앙에서 알아주든 말든 여전히 시대적 징후를 〈눈치〉채고 예단하기 위한 눈물겨운 몸부림이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최근 몇 년간에 이 지역 신인들은 중앙 일간지에선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다. 올 S신문사 신춘문예에 소설이 하나 겨우 당선된 정도다. 물론 신춘문예가 절대적 등단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뜻있는 사람들은 이 신인 부재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다. '80년 오월이 가한 정서적 충격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라디오의 여성살롱 등에 신변잡기나 생활체험 수기를 투고하는 주부들조차 거의 없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광주·전남 권의 예술계는 이른바 사양길에 접어들었는가. 아니다. 그건 단연 아니다. 말 이전, 혹은 말 이후에 대한 깊은 침묵은 오히려 새로운 말의 탄생을 취한 진통기간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미성숙아로 조사(早死)하기보다는 그런대로 건강한 말의 아이를 낳기 위한 시련기쯤으로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그 기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도 잠시. '92년 새해 벽두부터 이곳 화가들은 초가집이 원형대로 남아 있는 영광 효동마을과 지리산, 고창 선운사 등으로 야외스케치를 다녀왔다. 이강하 씨를 중심으로 하는 「남맥회」는 계 수련회겸 '20세기 미술의 변화'라는 주제로 오귀스트 로댕의〈지옥문〉에서 1982년 네벧슨의 〈여명의 그림자〉까지 슬라이드로 감상, 토론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에 뒤질세라 중견화가인 오승윤, 오건탁, 박상섭, 양창렬 화백 등과 노의웅, 박환웅 중심의「청동회」, 그리고 「목우회」회원들이 일말의 지역적 의기소침을 행동으로 불식시키려는 듯 일제히 화구를 챙겨매고 눈덮인 신년의 산하를 누볐던 것이다.
현대적 감각으로 호평받는 신작들
그뿐인가. '노의웅, 최영훈 2인전'이 1월 16일부터 26일까지 남봉미술관에서 그동안 작업해온 신작들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한국 화가 양계남 교수(조선대)의 산수화전도 주목을 받은 전시회였다. 그동안 사군자 등 전통 산수화에 탐닉했던 그녀는 백제 무열왕릉에서 출토된 초화형(草花形) 금관장식의 형태를 이용, 제3의 이미지를 창출해 보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전통 수묵화 영역이 점차 좁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구태의연한 문인화적, 사군자적 세계를 대담하게 탈피하고 현대적 감각의 화면을 펼쳤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한 전시회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두터운 보수적 화단 풍토와 소위 제도권의 혜택에서 거의 소외되어 오다시피 한 '광주 미술인 공동체전'이 1월 25일부터 30일까지 인재미술관에서 펼쳐졌다. 조진호, 김경주, 이사범, 박문종 등 40여명이 참여한 이번 전시회에선 예술성과 이념성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이 두드러졌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이 지역의 새로운 미술 전통을 세워갈 세대들로 구분되기도 한다. 특히 1월10일부터 2월 10일까지 충장로 소재의 캠브리지 화랑에서 열린 '최종섭전'은 지병인 당뇨병에도 불구, 전통 한지에다 창살무늬를 그려 넣은〈코리아 환타지〉40여 점을 선보여 뜨거운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밖에도 뮤지컬 '피터팬'이 10일부터 12일까지 문예회관에서 두 차례 열렸으며, 역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31일부터 2월 1일까지 문예회관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2월에 열릴 미술계 행사로 주목할만한 것은,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알려진 화가 '황영성의 파리전'과 '제1회 오지호 미술상' 시상식이다. 전자의 경우 2백년 전통의 베르넴 쥰 화랑에서 2월중에 열리는데 불란서의 유명 미술평론가 로제 부요의 기획으로 초대전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후자는 한국 근대회화의 개척자이자 광주화단의 대부인 故 오지호 선생의 위업을 기린 상으로, 광주시가 후원하고 광주일보사가 주관하는데 제1회 수상자는 이화여대와 서울대 미대를 거쳐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을 지낸 류경채 화백이 첫 수상자로 결정됐다.
지역 미술상으론 파격적인 2천만원의 상금을 책정했는데, 2월 29일부터 3월 8일까지 수상자의 작품과 더불어 50인 초대작가전이 남봉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에 있다. 이외에도 2월 7일부터 '빛고을 신문 창간기념전', 8일부터 '황토회전', '육인회전', 14일부터 '제15기 의재 허백련 추모전', 나병옥의 '도예전', 17일부터 전남대의 '그리세전', 20일부터 '귀고회 서예전', '무구회전', 21일부터 '강일진 서양화전' 그리고 25일부터 '광주민 미련전', '용곡서예원 서예전','전원미술학원 동문전' 등이 열릴 예정으로 있다.
예비문인의 산실인 시화전도 뜻밖에 4건이나 기획되어 있는데 6일부터 '전남 학생문학동인회 시화전'이, 14일부터 故 조지훈 시인의 문학세계를 지향하는 '지훈문학동인회 시화전'이, 24일부턴 '여울목 시화전'이, 그리고 28일부터는 '청보리 시화전'이 열릴 예정으로 있어 주목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