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 정선

정선아리랑에 나타난 여성




정태모 / 시인, 벗지문학 동인회장

우리나라의 두메가 강원도라고 하면 강원도의 두메는 정선과 평창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정선에는 지하자원의 개발로 산업철도가 부설되었고, 평창은 영동고속도로가 뚫림으로 하여 정선과 평창도 옛날처럼 아주 외진 곳만은 아니다.

아무튼 두메가 많은 이 고장 평창과 정선, 이곳은 다른 고장에 비하여 예로부터 여성의 기질이 온유하면서도 강직하다. 그중에서도 정선은 예로부터 여성들의 물색이 곱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달롱 알처럼 예쁜 두메 아가씨는 이 고장 특유의 악센트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한결 귀염성이 있어 자못 향수적이다.

강원도 사람들의 기질이 암하노불(岩下老佛)의 순민적인 기질이라면 정선 평창지방의 여성 기질은 강원도 여성의 전형적인 표본이며, 나아가서는 한국 여성의 대표적인 기질의 소유자일 것이다.

경기민요의 한 곁가지로 발단된 정선아리랑은 그 가사면으로 보아 우리의 전통적인 정한과 해학이 담겨 있는 정한어린 가사를 애조띤 가락에 담아 구슬프게 노래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정선아리랑은 그 가사나 가락이 이 고장 여성의 기질을 담고 있으므로 필자는 여기서 여성적인 면의 가사를 골라 이야기 하고자 한다.

가지복두리 싹싹 도려서

종드라미 담고

아판산 바라보니는

임 생각 나네.

맑은 물이 흘러가는 골짜기 산기슭에 시누대밭머리에서 곱다라한 이 고장 처녀들이 두서너 명씩 짝을 지어 바구니를 끼고 산나물을 뜯는 모습은 정서적이다.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죽이

남의 맛만 같으면

고것만 뜯어먹어도

봄 살아나지.

한치 뒷산은 평창과 정선의 인접한 산이다. 산나물을 뜯어서 연명을 하던 옛날 어느 흉년이 든 해 봄에 블리워졌으리라고 생각되는 정선아리랑 가사의 한절 이다.

정선아리랑의 가락은 감상적이며 애조를 띤게 다분히 여성적이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몸꼴을 내기 위하여 생각나무(이곳에서는 동백나무라고 함)열매를 따다가 기름을 짜서 머리에 바르고 곱게 빗어 넘긴 머리태, 이런 자랑스러운 머리카락 모습에 반한 총각들은 혼자서 은근히 짝사랑을 하다가 기어이 노골적으로 사랑을 호소해 온다.

비록 지게목발을 두들기면서 어러리 가락을 흥얼거리며 다니는 총각들이지만 어찌 사랑에까지 인색하겠는가?

정선읍내 일백오십 호

모두 잠들여놓고

꽁지 갈보 옆에 끼고서

성마령 넘자.

문학예술면으로 삭막한 이 고장에 유일한 소설가였던 이효석의「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보다 또 다른 여성상을 그린 민요이다.

군청소재지가 겨우 150호밖에 되지 않던 옛날-읍내라기보다는 백여 호 대촌의 한 마을에 불과하다.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 기질이면서도 짓궂은 총각녀석의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이끄는 유혹에 견디다 못해 억지로 끌려나간 아가씨-그들의 깊은 관계는 당사자들끼리만의 비밀의 화합이지만 그러나 이런 일의 비밀이란 탄로 나기가 쉬운 일이며 한번 탄로가 났다하면 읍내라고는 하지만 좁은 바닥이라 온 마을에 파다하게 소문이 나도는 법-그래서 총각녀석은 만부득이 모두가 깊이 잠든 야밤중을 틈타서 처녀를 데리고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일 게다.

오늘 갈른지 내일 갈른지

정수정망 없는데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왜 심어 놓았오.

산진 거북이 돌진 가재라는 속담이 있긴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끝없이 발전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 고장 여인네도 산 높고 골이 깊은 두메에서 태어났지만 이런 욕망을 갖는 것은 매일반이다.

어쩌면 좋은 시체서방님을 모셨으면 하는 희망과 아울러 그런 서방을 따라서 더 넓은 대지로 나아가 살고 싶은 심정이리라.

매행기재 말랑이

자물쇠 형국인지

한번만 넘어가시면

넘어올줄 몰라요

이 고장에 대표될 만한 여인상으로는 유명한 율곡의 어머니이신 신사임당이 사시던 곳(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 판관대)이며 이씨조선을 배탄한 태조(이성계)의 고조모이신 목조왕비가 나신 곳이다.

물색이 곱기 때문에 청심대(평창군 진부면 마평리)의 전설이 깃든 곳-대체로 이 고장 여성들은 온유한 듯하면서도 그렇지만도 아니하고 섬약한 듯하면서도 강한 기질이다.

청옥산이 무너져서

평지되기는 쉬워도

임께 바치는 깊은 정이야

변할 수가 있나?

사랑하는 남편의 운명을 지켜보다가 그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다못해 수혈을 위하여 손가락을 자른 옛날 열녀들이 많이 났던 고장이며, 농가에 유일한 동산인 농우소를 훔쳐가는 도둑의 뒤를 고함을 지르며 10리 먼 길을 쫓다가 도둑이 던지는 칼에 쪽진 머리채를 끊기운 이 고장 여인의 일화 등은 어찌 섬약한 아녀자의 일이라고만 말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여인들끼리 퍽 단합이 되며 가정의 우애, 형제간의 우애를 우선 생각하면서 이를 미덕으로 삼는다.

곤드레만드레 쓰러진 골로

우리네 삼동네 보나물 가세.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제주도 여성들의 노동력이다. 그러나 이 고장 여성들도 제주 여성들 못지 않게 부지런하기로 유명하다.

시어머니 죽어서

안방 넓어 좋더니

보리방아 물 묻쳐놓으니

시어머니 생각난다.

좀 불순한 언사같지만 일이 하도 밀리니 하는 말이겠지? 일이 밀리기야 어찌 보리방아 찧는 일 뿐이랴? 낮에는 들일을 거들어야 하고 밤이면 디딜방아로 보리를 찧어야 되고하니 그 얼마나 힘겨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부녀자들의 일이 어찌 그뿐이랴? 식구들이 입는 그 옷매무새를 가꾸는 데는 정말로 힘겨운 일일 게다. 옷폭을 하나하나 뜯어서 빨아 가지고 풀을 먹여 다듬어서 다시 원상으로 꿰매는 작업은 시간적으로도 용납이 안될 텐데 옛 여인들은 어떻게 이 일들을 해냈는지 모를 일이다.

이 고장 여인들이 하던 하루 일과를 대강 모두어보면 식구들의 식사제공, 방아찧기, 들일 거들기, 식구들의 옷 세탁, 길쌈하기, 시부모 섬기기와 가족 돌보기, 남편 시중들기 등등해서 밤에도 잠잘 사이가 없었단다.

영, 평, 정 삼읍에

딸 주지 마라

삼베질삼 보리방아에

잔더위 먹는다.

영평정 삼읍은 영월, 평창, 정선의 읍소재지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세 읍의 읍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고장 영월과 평창과 정선군 전체를 가르키는 말일 것이다.

사실이야 어찌 삼베질삼과 보리방아 찧는 문제에 한하랴? 이는 분명히 이 고장 여인들의 노동량을 모두어 말했으리라. 그러므로 그 얼마나 힘겨우면 이 고장에 딸을 시집 보내지 말라고까지 했겠는가.

아무튼 이 고장 여인들의 인내력은 대단한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참고 넘기는 그 장한 미덕 말이다.

이상으로 몇 편의 정선아리랑의 가사를 놓고 이 고장 여인들의 모습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야기해 보았다.

일이 힘겹다든가 어떤 어려운 일에 봉착하면 그들은 자기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애조띤 이 고장 아라리 가락에 실어 부르면서 그 힘겹고 고된 마음을 달랬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