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1

우리 생활속의 차(茶) 문화




박성주 / 르뽀라이터

한동안 우리는 민족의 얼이 담긴 고유의 문화생활을 잊고 지내왔다.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삶만을 지향해온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여유를 되찾은 이즈음에는 터무니없는 이기주의가 사회곳곳에 만연되어 정신의 황폐함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들어 전통을 되찾자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끝을 향해 내달아가는 듯한 삶의 위기의식이 마음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차문화는 우리 선조의 생활모습이 가장 깊게 담겨 있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원래 스님들이 좌선하는 중에 졸음을 쫓기 위해서 즐겨 마시기 시작했다는 차는, 선과 연결되어 망아(忘我)의 경지를 수행하는 도로 발전하기까지 이른다. 그러나 가야국의 김수로왕이 꿈에 계시를 받고 김해 별진포로 나가서 차나 무씨를 예물로 받았다는 것 외에 그 행위에 대한 기록이 없는 우리나라에는 딱히 정해진 다도가 없다. 그래서 각 지방이나 개인마다 까다롭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 고유의 차생활이 명맥을 잇기가 힘들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고사를 들여다보면 적어도 고려시대까지는 차가 얼마나 보편화되어 있는지 알 수가 있다. 거리에는 일반 백성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다점(茶店)이 있었고, 차가 상품으로 이용이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의 기호품이 되었다. 나라에는 다방(茶房)이 있어 차와 관련된 일을 맡아보았고, 부유한 계층의 집에는 다정(茶亭)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연등회나 가을에 열리는 팔관회 때에는 차를 올리는 의식이 끼어 있었다.

차 재배에 적합한 산지들

차의 산지에 대한 기록은〈세종실록지리지〉,〈신중동국여지승람〉,〈임원십육지〉등에 나와 있다. 여기에 보면 특히 작설차가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특산물로서 토공 대상품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나무를 재배할 수 있는 조건으로는 연간 강우량이 1,500밀리리터 이상이 되는 곳으로 특히 봄철에 비가 많이 오는 곳이어야 한다. 안개가 자주 끼는 하천 연안이나 산지가 적합한데 연평균 기온이 13도 이상이 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다원 면적은 1985년 농수산부 자료에 의하면 449헥타르에 이른다. 주로 보성, 강진, 제주도, 화개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재배를 하고 있는데, 그 외에 사찰에서도 차를 만들어 마신다. 송광사 경내의 향나무림 속에서 자라는 차나무는 죽로차라 하여 송광사 스님들이 즐겨 마시며, 다솔사 뒤에 있는 야생 차나무밭도 스님들이 직접 만들어 마신다.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널리 알려진 초의선사는「동다송(東茶頌)」에서 '중국 육안(陸安)의 차는 맛으로 월등하고 몽정산(夢頂山)의 차는 약효가 높은데 우리나라의 차는 그 두 가지를 겸비하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그만큼 차는 우리 몸에 이로운 것이다. 차는 차나무의 어린잎이나 눈을 원료로 한 기호음료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녹차, 유럽에서는 홍차, 중국에서는 오룡차를 많이 마시는데, 만드는 법에 따라 불발효차(녹차), 발효차(홍차), 부분발효차(烏龍茶)로 나눈다. 녹차는 먼저 잎을 가열시킨 다음 만든 것이고, 홍차는 가열하지 않고 발효시켜서 만든 것이다. 오룡차는 약 70% 정도만 발효시켜 만든 것이다.

카페인과 타닌, 비타민C가 주성분인 이러한 차는 각기 독특한 맛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효능이 있기도 하다.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일시에 흥분상태를 일으키는 것이지만 녹차의 카페인에는 테아닌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서서히 흥분작용을 일으켜 몸에 무리가 없다. 또한 심장의 운동을 활발하게 하고, 몸 속에 노폐물이나 유독성분을 배출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타닌은 인체에 흡수되는 유해금속을 침전시켜 배출하고, 단백질과 결합하여 병원균을 죽게 하고,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여 지혈이 된다. 또한 독충에 물려 열이 나고 부어 오를 때 차 우린 물을 수건에 적셔 습포를 해 주면 열이 내리고 부기가 가시는 소염효과도 가지고 있다. 비타민C는 고혈압, 동맥경화, 괴혈병, 각기병을 예방하고, 알콜이나 니코틴을 해독하고, 스트레스와 당뇨병을 예방하는 데에 효과가 있다.

이러한 우리차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그 보급에 힘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약 15명으로 구성된 '다우회'는 끊어져가는 우리문화의 맥을 잇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펼치고 있다. 문화의 실종 80년이 오늘날 도덕성의 실추를 가져왔다고 말하는 회장 정한태씨는 아무리 훌륭한 문화유산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생활 속에 접목시켜 우리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도덕성의 회복은 어렵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들이 제일먼저 펼친 사업은 매주 화요일에 무료로 다례교실을 여는 것이었다. 이 다례교실을 운영하기 위하여 그 방면에 조예가 깊은 분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서적을 돌려가며 읽고 나서 나름대로의 '생활차'라는 이름을 붙여 강습을 하고 있다.

다례교실은 말 그대로 차를 대접하고 마시는 데에 예를 갖추는 정도의 생활차이다. 무엇보다도 바쁜 현대인들이 부담을 가지지 않고 쉽게 차문화에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차를 고르는 법과 차를 마시는 법 등을 가르치고 있는 '다우회' 회원들은 우선 차의 종류를 녹차나 홍차, 오룡차 등 만드는 법에 따라 구분하지 않고, 차잎을 딴 시기인 우전, 세작, 중작으로 나누고 있다.

다우회가 복원하려는 차의 문화

우전은 양력 4월 20일 경의 곡우 때에 첫비를 맞기 전에 딴 차잎으로 그 향과 맛이 여리고 은은하다. 세작은 곡우부터 양력 5월 5일 경의 입하 사이에 딴 차잎이고, 중작은 입하에서부터 양력 8월 20일 경의 처서 사이에 딴 차잎으로 맛과 향이 진하여 외국인들이 즐겨먹고 있다.

고혈압과 동맥경화를 예방하고, 알콜을 해독하고, 식욕을 증진시키는 등 의학적으로 분석된 효과가 많은 차는 잠을 쫓아내고 피로를 풀어주기도 한다. 잎차보다는 분말차가 더 좋다. 친구들끼리의 모임이나 혹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다례교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차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점들 때문이라고 정한태씨는 말한다. 이밖에도 '다우회' 회원들은 사랑방문화를 재현하는 노력도 함께 하고 있다. 우리의 선조인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생활하셨던 안방과 사랑방의 문화를 생활 속에 다시 재현하므로서 잃어버렸던 우리의 문화를 복원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취지이다.

그래서 약 100여 명의 작가들을 섭외하여 다예랑에 1천여 점의 작품들을 전시, 판매하고 있는데 도자기를 비롯하여 다도구, 민화, 목공예, 족자, 탈, 서화 등 생활에 효율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실용품부터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구상, 개발하여 일반 사람들이 언제나 와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활동하기 시작한 지가 1년여 정도밖에 안되지만 그동안 벌인 행사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작년 1월과 4월에는 역시 다예랑에서 다도구 전시회를 가졌다. 전국의 차와 차도구를 기획, 전시한 이 행사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직 낯설게 느껴지는 다도구를 한눈에 보여줌으로서 옛것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또 6월에는 설봉 스님 도자기 전시를 했고, 8월과 10월에는 국화달빛 차회를 각각 부산과 서울에서 가지기도 했다.

회장 정한태 씨는 차에는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고 말한다. 만 권의 책을 독파 하고자 할 때 피로와 갈증을 풀어주고, 세상살이의 어려움에 울분을 달래주며, 사람과 마주할 때 정을 나누게 하고, 몸속의 독기를 없애고, 숙취를 달래어 풀어주는 것이 그것이다. 한 잔의 차속에 녹아 있는 이러한 의미들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데에 그 맥이 닿아 있다.

엄청난 사회구조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소외시키지 않고 삶의 본향을 지향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때이다. '다우회' 회원들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차문화를 되찾는 데에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