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미술관 진흥법의 제문제
이중한 / 서울신문 논설위원
1991년 11월 30일자로 발효된「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이상하게도 우리에게서 그 의의보다는 문제점이 더 많은 법이라는 이미지부터 만든 것 같다. 이는 실상 우리의 습관적 관례이기도 하다. 어떤 일에서나 의미를 찾아 칭찬하기보다는 어딘가 꼬집어낼 것이 없는가 만을 더 잘 들여다보는 시각이 훨씬 인기를 얻고 있다는 세속이 있는 것이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하 박물관법으로 표기)도 이 세속에 걸렸던 셈이다.
그래서 박물관 신설이 얼마나 쉬워졌으며 또 실질적으로 조장될 수 있게 되었는가를 논의하려는 태도는 아직도 없다. 보다 더 잘 신설시킬 수 있는 방안들이 투여되었어야 마땅하다는 언급 같은 것은 더욱 없다. 여기에 언급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처럼 태부족 상태에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앞으로의 세계적 흐름 속에 문화적으로 결정적 빈곤의 상징이 되리라는 사실까지 전제로 한다면, 문제점 지적의 관점 자체가 한 차원 더 높아져야할 당위마저 있는 때이다.
여하간 이 글은 박물관법의 해설을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점의 정리를 위해서 쓰여지는 것이므로 우선 그동안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돌아보고 그 다음으로 실제로 관심을 가져야 할 항목들을 제시해 보려 한다.
변칙 재산증식 수단에 세금징수 규정 마련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포괄적 문제는 쉽게 한마디로 말해서 부유층의 변칙 재산증식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이 지적 때문에 문화부는 법의 개정과정에서 전시-보관의 용도 이외의 자료인출에 대해 유예된 세금을 징수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지적의 전제에는, 선용이든 악용이든 박물관 같은 규모의 시설과 그 시설에 비치되는 내용물들이 여하간 사회화된다는 사실을 먼저 중요시했어야 했다.
어느 시대에서나 상당한 가치와 값의 문화적 유물들이 보통 개인이거나 사회적 명분에 합당한 공공 기능만으로 수집되거나 보존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해외에 반출된 문화유산들, 그리고 유산들이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서 누구에게나 경매되기는 하지만 가장 고가의 응찰자에게 팔려진다는 사실만 상기해보자. 이 경우 이 유물들을 되찾아 오는 길은 국고의 능력이기보다는 재정적 여유가 충분한 부유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예에 있어서 나는 더 과격한 견해도 갖고 있다. 즉 소더비경매 현상속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선 그것들을 사오기보다는 그대로 외국인들 손에 놓아두고 단지 그 값을 올리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물론 다 사올 수 있으면 더욱 좋지만 말이다). 세계경매에서 결정되는 값은 곧 우리 문화재들의 가치를 의미한다. 그러니 그저 예술적 가치만이 아니라 물질적 가치로서도 높아져야만 한다는 것은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부유층에 관한 수집의 공개화 유도
이 작업을 진행시킬 수 있는 기반 역시 부유층이 좀더 공개적으로 자신의 수집을 공개화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부유층 재산증식수단이라는 일도양단식 비난은 합당한 것이 아니다. 비록 그렇다 해도 먼저 의미가 있는 것은 이를 혼자 안방에서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같이 보게 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또 지적되고 있는 것이 농지에도 건립이 가능할 수 있고 이로써 또 하나의 특혜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이다. 물론 법에는 타법률과의 관계조항에서 농지의 보존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나 토지구획정리사업법들에 박물관법이 우선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악용할 소지가 있다 하더라도 오늘날 사회적 공감대를 뛰어넘는 일은 쉽지 않다. 농지나 또는 그린벨트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지금 유야무야 지내는 상태가 아니다. 적어도 그린벨트는 청소년체육시설마저도 지금 여론에 막혀 있다. 이 세론을 법의 주관부인 문화부가 단지 악용만을 위해서 쓰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얼마쯤 과도한 논의일 수 있다.
보다 세목적인 문제들도 있다. 가장 구체적인 것이 미술관 명칭의 사용이다. 법은 명칭의 사용금지 조항에서 등록된 박물관이 미술관이 아닌 경우 이 용어를 쓸 수 없게 하고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미술관의 경우에 그동안 미술관이라는 명칭을 가졌던 이들이 화랑이라는 용어로 바꿔야 한다는 불편을 겪게 된 것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미술관이라는 개념은 실상 정리가 좀 돼야 한다. 누구나 일상적인 용어사용이나 그 의미 수용에 있어서 미술관과 화랑은 다르다. 미술관이라는 개념은 화랑은 아니다. 이는 보다 비영리적 개념으로 이미 그 말이 성립돼 있다. 따라서 미술관을 대체할 더 높은 개념의 용어가 생성되지 않는 한 박물관법이 미술관의 용어 사용을 제한적으로 하는 것은 굳이 잘못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 문제는 화랑이라는 용어 쪽에서 더 쉬운 용어를 찾아내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미술관 설립을 꿈꿔온 개인이나 단체들의 준비작업에 배려가 없다는 지적도 나와 있다. 미술관 설립준비에 몇 년씩 걸리는데 이를 단지 등록요건에 맞는 등록시점만으로 구분한다면 준비과정이 묵살되는 것 아니냐하는 시비가 있다. 그 대안에「가등록제」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 논의는 고려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준비과정을 어떻게 구분하고, 확인할 수 있는 기준들은 무엇인가까지 법이 규정해 낼 수 있는지는 어려운 문제이다. 이 지적은 결국 가등록의 범위와 선별기준을 같이 내놓아야만 하는 과제이다. 만일 이 조항이 마련돼도 이 역시 오해의 가능성은 생길 수 있다. 짓다 그만두거나, 짓고서 변경할 소지는 역시 앞서 논의된 악용의 소지를 같이 하는 문제이다.
삶의 표현의 모든 것이 박물관이 자료돼야
박물관, 미술관의 자문위원격으로 명시된 ‘문화재위원회’가 실질적으로 고미술전문가들로만 현재 구성되어 있지 않느냐하는 지적은 논의해 볼만하다. 형식상 문화재위원회는 박물관 분과를 갖고 있다. 따라서 법의 조문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국립박물관을 비롯하여 기존 박물관의 전시마저도 고고학적 유물의 학문적 선택이라는 맹점은 이미 지적되어 온 바이다. 이는 현재 우리가 박물관에게 요구하고 있는 방향과는 상당히 다르다. 현재의 삶을 표현하는 모든 자료가 박물관 자료일 수 있어야 사회교육·문화교육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는 상식적 원칙에도 현재의 결과는 부적절한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이 지적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 인적구성의 문제이다. 따라서 법조문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논의를 시작하다가 문화부 스스로 유보 또는 조정한 항목에 세제상의 문제가 있다. 소득세, 양도세, 증여세 등의 면제들의 문제는 결국 각 해당 법들에 의해 조정되도록 되었으나, 실은 세제상의 특혜도 좀 더 적극적 태도로 접근해 보는 것이 옳았던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 박물관, 미술관을 증설해야 한다는 요구와 그 인식은 개개인 자산을 제한적으로 구분해 보자는 것 이상의 상당한 시급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실질적 박물관, 미술관 기능을 사회화할 수 있다는 보장만 분명히 한다면 그 첫단계의 일정한 특혜는 상호교환 조건으로 살수도 있다는 발상법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이러한 쟁점들보다 더 유심히 보아야할 항목들은 오히려 다음과 같은 것들일 수 있다.
첫째, 법에 표현돼 있듯이 문화교육 기능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핵심이라면 이 기능에 대한 규정이 보다 분명했어야 했다. 하지만 법은「문화 교육에 이바지해야 하며」「대가가 설립목적에 비추어 높다고 인정될 때 시정할 수 있으며」「박물관, 미술관은 문화원·도서관들과 협력을 해야 한다」라고만 규정했다. 이 정도로서도 의미규정은 된 것 같지만 실질적 효율을 얻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교육적 프로그램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인적·물적 구성을 명시해야 이 요구는 가능해진다. 그러나 법 6조 등록 제3항 전문직원이라는 용어마저도 교육적 관점에서 보면 부족한 것이다.
실질적 프로그램 위한 큐레이터 제도의 명시 필요
실질적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큐레이터 제도가 분명히 명시되어야 하고 큐레이터가 필요하다고 본다면 전문 직원이란 합당한 용어가 아니다. 이는 역시 우리말로는 학예직과 전문직으로 구분되는 것이 옳고 이때 전문직은 사진·조명·장식 등 기술적 작업분야들의 전문가를 의미하는 것이 돼야 한다.
그리고 학예직의 자격규정과 그 양성까지도 법으로 표시해 두는 것이 도움을 준다. 전문과정을 거친 학위소유자의 학예직도 물론 있어야 겠으나 수요에 쫓아가려면 이 학위소유자들로는 실제로 어림이 없다. 따라서 유럽박물관들은 학예원보제도를 갖고 있다. 영국, 프랑스들이 1986년 학예원신성을 위한 법개정을 한 바 있는데, 18개월 코스의 훈련을 통해 준학예직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또는 특설 과정을 학력과 관계없이 3년 정도 거치게 하기도 하고, 10년간 근무하면 10년 경력만으로 자격을 주기도 하는 것이 바로 교육프로그램에 필요한 요원을 양성하는 방법이다. 법은 그러나 현재 이 관점들을 전혀 표현하고 있지 않다.
둘째, 박물관 개념도 제한돼 있다. 문화교육과 그 사회화를 목표로 한다면 박물관이란 영역에서 국립공원이나 동물원 또는 수족관까지도 포함되어야 합당한 것이 된다. 이 거점들에서도 물론 학예직과 전문직을 가져야 하고, 이 거점들이 더 문화교육을 잘할 수 있어야 효율적인 사회화가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국립공원은 지금 식물학과 한명 연관돼 있지 않다. 환경오염이라는 현실에서 보면 더욱 국립공원이나 수족관들이 피부에 와 닿는 생태교육을 할 수가 있다. 이 역시 이 법에서 포괄해야할 책임이다.
셋째, 이 법이 법의 명칭대로 진흥법이라고 한다면 보다 기초적인 진흥의지도 더 분명히 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오늘의 박물관, 미술관들은 「생명 있는 전시의 기술」을 더 중요한 과제로 본다. 이 목표는 1925년 뮌헨 과학박물관에서 일찍부터 표방됐다.
변화와 과제 깨우는 관심 안의 박물관들
박물관 형식의 다변화라는 과제도 있다. 1881년에 시작된 오픈 뮤지엄은 스웨덴 스당셍 야외박물관으로부터 덴마크 프리렌트박물관, 노르웨이 민속박물관, 핀란드 세우라박물관들로 발전했다. 그리고 또 한줄기는 지역적 관심으로서의 박물관들이다. 이런 다양한 형식들의 박물관들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좀더 자세한 법의 규정들이, 비록 오늘의 현실에서 가능하진 않다 하더라도 조문상 표기는 되었어야 옳았을 것이다. 이는 결코 과도한 주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 법은 결국 스스로 박물관, 미술관이라도 만들겠다는 자원자가 단지 개관을 할 때까지의 과정을 쉽게 하는데 머무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의 활성화를 위한 여러 지원이나 보조의 구조는 전혀 고려돼 있지 않다. 이렇게 되므로 어느 개인이 자신의 자산을 사회적으로 더 잘 보존하는 선에서 멈추게 할 수도 있다. 이렇다 하더라도 물론 집안에 넣어두는 것보다는 발전이다. 그러나 사회로 나오게 했으면 더 효용성 있게 하는 것이 좋다. 보존 처리의 과학적 기술이나, 유물 모조품 제작이나 복원들에 대한 연구 및 자문 기능들도 이 법에서 보다 관심을 가졌으면 더 모범적인 법이 되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 법안은 충분히 의견이 교환되지 않은 채 제정되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법이란 쉽게 만들어지지 않고, 또 쉽게 자주 개정되지도 않는다. 이 법 시행령마저 아직 마련되지 않았으므로 언제 또 개정하자는 말을 하기도 적절치 않다.
실질적 논의로 시작하는 개정작업의 속도
그러나 이왕 내친 길이라면 빠르게 개정작업을 시작하는 것도 결코 흠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쟁점을 찾아 지적하려는 시각보다 무엇이 개선되고 보완되어야 하느냐를 실질적으로 논의하느냐에 있다.
이를 위해 박물관협회나 미술관협회의 기능들이 또 실질기능이 있는 조직이 돼야 한다. 법에 협회의 설립이 규정으로 나와는 있으나, 이 협회의 기능이 현존하는 자생적 능력만으로 선진국들의 협회기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협회기능의 활성화를 위한 조항들도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명문화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또다른 맹점에는 법의 제정이나 정책결정 과정에서, 주제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전문가들과만 제한적으로 자문을 받는다는 관행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문화영역에서 학문적으로 독립이 가능한 영역은 사라진지 오래다. 박물관, 미술관 영역이야말로 포괄적 프로그램 구성전문가들이나, 또는 과학기술자거나, 예술행정가들의 관여가 필수적이다. 이들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그 시각은 깊이 용해가 돼야 한다. 이 법의 빈 공간은 바로 이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지 않았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