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미술관조직, 학예원 역할

큐레이터쉽과 미술관조직




이인범 / 미술평론가

얼마전에 많은 아쉬움을 남긴채 이른 나이에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한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미술관 꿈을 꾼다.

“뛰어난 화가, 좋은 이론가가 나오려면 훌륭한 미술관이 많아야 한다. 뛰어난 미술가들의 그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미술관들이 많아야 그림공부를 할 수 있다. 도판으로 그림공부를 하는 것과 자기 눈으로 원화를 보며 그림공부를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체계적으로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주 미술관에 들러 오래 그림을 본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거짓화가, 거짓 이론가들이) 서툰 장난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좋은 미술관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것은 물론 꿈이다. 그러나 꿈꿀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고, 그럴 바에야 좋은 꿈을 꾸고 싶은 법이다.”

창경궁 안에서 시작된 박물관 문화 한세기

기울어져 가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1908년 창경궁 안에 만들었던 ‘이왕가박물관’부터 따지면 이제 이땅에 박물관 문화가 시작된지도 한 세기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박물관이 많든 적든 박물관 문화가 이땅에 우리의 생활속에 제대로 자리 잡았다고 말하기엔 적지 않게 회의가 인다. 그래서 이내 우리는 김현의 ‘좋은 미술관꿈’이 우리의 그렇지 않은 현실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사실 김현의 꿈은 현실을 희롱하기를 즐기는 소박한 문학인의 덧없는 상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과 꿈을 구별할 줄 알고 그 꿈마저 없을 때 우리의 현실은 얼마나 각박하고 천박한 것인가를 아는 자의 꿈이다.

단지 소장품의 형성과 보존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박물관의 역사는 문명의 발생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문명이란 인류가 유형 무형의 가치를 저장하고 집적시킨 결과 이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상 나름대로의 컬렉션의 방식을 갖지 못했던 독자적인 문화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르네상스문화 뒤에는 그것을 이룩한 사람들의 광적이다시피한 고대 그리고 로마 유산의 수집열이 있었고, 조선의 화단을 연 안견의 명품들을 조금만 살펴보면 안견의 천재성과 창의력을 촉발시킨 안평대군의 탁월한 소장품들이 그 배후에 놓여있음을 알게 된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 박물관, 미술관 문제가 넓게 관심을 모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지난해 말 마감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의 제정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돼서 일어난 일이다.

반성과 재검토 기획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아마도 우리나라 문화행정가로서는 최초로 박물관 미술관을 현실적인 삶 한 가운데 위치시키고자 했고, 그것이 우리의 문화적 삶을 고양시키는 빼놓을 수 없는 정책적 소재로 받아들인 인물이리라 생각되는 이어령씨가 문화부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1,000개의 박물관 미술관을 10년 안에 세울 것으로 기약하며 그 실현을 위해 제도적인 장치로 마련하여 제정한 것이 바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다. 그것이 실현 가능한 것이든 아니든 이 법의 제정과정에서 우리는 이 땅의 박물관 문화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반성하고 재검토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어쨌든 다행이다

매우 첨예한 그 문제들 중 하나가 곧 큐레이터 제도의 문제이다. 박물관 미술관을 이야기하면서 그 운영관리의 주체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의 경우 ‘좋은 미술관 설립에의 꿈’의 실현을 불투명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랄 수 있는 것이 큐레이터쉽 문제라는 점에서 이러한 논의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유익한 일일 것이다. 사실 좋은 큐레이터 없는 좋은 미술관은 상상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런 점에서 많은 관계자들이나 ‘한국미술의 큐레이터제’를 특집으로 다룬 ‘공간’지(제287호, 1991년 8월호)를 비롯한 주요 신문잡지들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큐레이터제도의 정착을 우리 미술문화가 풀지 않으면 안될 과제로 지적하여 왔다.

큐레이터 제도의 지적된 문제점 몇가지

우리의 큐레이터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문제는 역할과 기능수행을 위한 큐레이터의 전문성을 어떻게 확보해 낼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큐레이터의 활동을 담보해 낼 제도적 환경의 한계, 열악함과 그 개선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단순한 문제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미술관의 기능과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나 정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을 운영 관리하는 큐레이터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무엇인지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더욱 우리에겐 이에 적합한 교육과정과 이들의 교육을 담당하거나 선도할 계층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리고 전문인의 지식과 윤리의식을 제대로 대접하기엔 상업적 이기심과 관료적 권위의식이 지나치게 만연해 있는 것이 우리사회의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며, 그런점에서 큐레이터의 역할과 그들의 활동의 그릇이라 할 수 있는 미술관조직은 구조적으로 한계를 지닌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일면 일그러진 우리의 박물관 미술관 역사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일제식민통치 36년 동안 그들은 식민지통치의 한 기술적 방법으로서 박물관을 열고 각종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식민통치 5년의 치적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려는 의도에서 물산공진회를 열었는가 하면, 그후 이 공진회 당시의 미술관 건물을 총독부박물관으로 개관하여 관변학자들로 하여금 정치적인 의도가 짙게 깔린 식민지 고적조사사업을 벌였다.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근대미술문화의 셩격을 결정짓다시피 한 ‘조선 미술 전람회’(일명 ‘선전’)의 개최를 통해 일본은 소위 문화주의라는 미명 아래 문화적으로 포장한 자신들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이 전람회의 형식은 건국 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일명 ‘국전’)로 이어져 한 국가의 미적 기준을 획일화시켰고, 미술문화의 소통방식을 성격지워 왔다. 한동안 우리 ‘국립현대미술관’의 주요기능이 국전의 개최에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미술관사에서 매우 시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큐레이터의 역할과 기능수행의 한계

대체로 이러한 박물관 혹은 전시문화는 매우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성격을 띠게 마련이어서 애초에 반성적 의도나 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의 미적교감이나 소통을 배려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예술작품 자체도, 그것들을 보존시키고 해석하고 제대로 전시하여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소통을 유발시키는 것도 모두 부수적인 중요성을 가질 뿐이다. 그러한 상황에선 박물관 미술관은 권력이나 재력의 게시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없으며, 큐레이터는 자발성을 지닌 전문인이 아니라 그러한 기능수행의 소도구로 평가될 뿐이다.

큐레이터의 역할은 그 사회가 부여한 미술관의 역할이 어떤 것인가에서, 미술관의 역할은 그 사회의 구성체의 성격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사실 미술관의 문제나 큐레이터의 문제를 그 자체로만 바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서구의 발달된 미술관계 제도들을 그들의 독특한 근대화운동과 연관짓지 않고 생각하거나 우리의 미술관제도의 확립을 단지 그들 문화의 이식 정도로 여기는 것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일이다. 프랑스 혁명과정에서 열린 르브르박물관이 시민민주주의의 구현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19세기 민족국가 형성에 서구의 미술관제도가 한 역할은 어떤 것이었는가를 보면 그들에게 미술관 문화가 삶의 한 가운데를 점하고 있으며 정치, 경제, 사회 일반의 문제와 유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미술관들은 늘 새롭게 스스로를 정의해 왔고, 그럼으로써 그 사회의 진보적인 전망을 성취하는 하나의 창의적인 운동체로서 크게 기여해 왔다.

거듭되는 제도개혁에서 큐레이터 역할은 돋보인다

미술관 제도가 개혁을 거듭하는데 있어서 큐레이터들의 역할은 매우 돋보이는 것이었으며 전문적으로서의 큐레이터쉽 역시 그러한 가운에서 그 터를 잡았다. 19세기에 꽃 핀 미술 사회의 저변에는 미술관 큐레이터들의 자료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과 정리 작업이, 심한 유럽 콤플렉스에 빠져 있던 미국이 독자적인 미술문화를 구가하기 시작하여 새로운 미술의 주도권을 장악한 미국의 60, 70년대의 상황 배후엔 탁월한 큐레이터들의 열정과 고뇌가 있었다.

분명히 서구에서 큐레이터는 전문직종으로서, 사회학자 다니엘 벨(Daniel Bell)이 이야기하듯이 ‘지식사회’라고 일컬어지는 후기 산업 사회에서 의사결정에 필요한 전문적,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중요한 가치를 창출해 내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미술관은 어떤 것이고 큐레이터는 무엇인가?

지난 1984년 제정된 ‘박물관법’을 개정하여 다시 만든 우리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미술관”이라 함은 미술박물관으로 서화 조각 공예 건축 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존 전시하고 이들을 조사 연구하여 문화예술의 발전과 일반공중의 문화교육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실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는 현단계 우리 사회에서 합의되고 공인된 미술관의 정의이자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같은 법 제6조(등록 등)의 제1항에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을 설립운영하는 자는 그 설립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전문직원과 박물관자료 또는 미술관자료 및 시설을 갖추어 등록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전문직원이 미술관 등록의 필수적이 요소임을 밝혀 미술관문화에서 그 큐레이터쉽이 지니는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천명하고 있으며, 같은 조 제3항엔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전문직원 박물관자료 또는 미술관자료 및 시설에 관한 등록요건. 전문직원의 자격요건 및 양성에 관한 사항, 기타 등록 및 변경 등록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정하여 전문직원인 쿠레이터의 자격요건과 그 양성에 관한 사항이 대통령령으로 정해질 것을 규정하고 있다.

오는 5월에 공포될 대통령령에서 큐레이터의 자격 요건을 어떻게 정할까 하는 문제는 이제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전문직원이 지녀야 할 전문성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이 부족한 처지에 그것은 어려운 난문이다. 1985년에 제정공포된 ‘박물관 법 시행령’엔 큐레이터의 자격을 ‘교육법에 의한 대학에서 당해 박물관 자료의 관련 학과의 과정을 이수하고 졸업한 자 또는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 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의거해 보면 미술관의 경우 현재로는 실기를 중심으로 작가양성 위주로 설치된 미술대학들과 학부과정엔 없이 몇몇 대학원에만 설치된 미학미술사학과 출신들로 그 전문직원의 자격이 한정되는데 여기엔 몇 가지 숨길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 이번 5월까지 제정될 시행령에서 이러한 정의가 보다 진전된 논의 속에 이뤄져야 하리라 여겨진다.

5월의 시행령에서 논의돼야할 사항 몇가지

첫째는, 작품을 제작하는 일과 제작된 작품을 대상으로 다루는 일이 성격상 판이하다는 사실이다. 홍익대의 예술학과의 경우가 예외적인 경우이긴 하나 논리적이고 이론적인 접근 없이 수행하기 어려운 큐레이터 업무에 미대 졸업생들이 적격자일 수만은 없다. 일의 방법과 대상을 혼돈하여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되는 듯한 이러한 문제는 간단한 문제라고 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두 번째는, 제작된 작품을 이론적이고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현재의 미학 미술사학과가 대학 학부에 설치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2년이라는 짧은 석사과정 이수를 통해 전문성을 얻기 는 역시 어렵다는 점이다.

6년 이상의 과정 요구하는 큐레이터의 자질

실제로 오늘날 큐레이터들에게 요청되는 자질은 최소한 6년 이상의 전문적인 교과과정을 거치고 일정기간 현장경험을 지닌 정도 이상이다. 작품을 제대로 해석하고 좋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제대로 해석하고 좋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조사연구 선별해 내는 일, 그것을 보존 관리하고 전시, 교육, 발간 등을 통하여 소통시키는 일, 작품 관련 기록 및 자료관리, 작품 포장, 운송, 보험, 통관 등 실무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발휘해야 할 능력이 결코 짧은 시간에 얻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이러한 학문적 지식이나 경험만이 아니다. 정작 그들에게 빼 놓을 수 없는 자질은 미술계와 사회적 삶의 리얼리티에 접근하고자 하는 치열함과 공인된 미술문화의 관리자로서의 남다른 적극성이다.

사실 우리는 계몽적이고 합리적인 세계관에 입각한 근대적인 의미의 박물관제도가 채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세계관과 사물관에 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당혹감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큐레이터쉽 역시 고정된 틀에 가두어 둘 수는 없는 시대가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을 열려진 마음으로 새로운 세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문제를 찾아내고 질문을 던지는 방법’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러한 문제들도 결국은 전통적인 박물관연구들의 파라미터의 연장선상에서 제기되고 극복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한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이야말로 큐레이터에게 자발성과 창의성을 갖게 하는 기초적인 단서가 됨은 물론, 상업주의가 낳는 이기심과 관료주의가 배태시키는 권위주의의 늪에서 그들을 건져 낼 윤리의식을 확립시켜 줄 것이다.

현실의 개선 위한 근거 마련은 다행

우리의 열악한 현실에서 어쨌든 법 제6조에 우리의 조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전문직원의 자격조건 뿐이 아니라 더불어 큐레이터 양성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은 크게 다행스런 일이다. 역사적 유산이 많지 않은 미국의 미술관들이 ‘미국미술관협회’(AAM)를 구성하고 그 산하에 일찍이 큐레이터 트레이닝 코스를 두는 등 집요하게 전문 큐레이터의 양성에 집착한 후 매우 활동적인 미술관들을 이룩하여 미술문화를 풍요롭게 한 주역으로 부상했다든가, 일본의 문부성과 국립근대 미술관이 합동으로 큐레이터쉽의 정초를 위해 ’70년대에 실시한 과정이 일본의 오늘날의 미술관 문화융성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규정은 우리에겐 더 없이 다행스럽고 유용한 조항이 되리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