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리뷰 / 미술

‘한국 근대미술 명품전’을 중심으로




유재길 / 미술평론가, 홍익대교수

'92년 신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관심을 끄는 미술전시로는 호암미술관 기획의 「한국근대미술 명품전」(1992.1.11∼3.8)이 있다. 호암미술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면서 소장품 중 한국근대미술의 60년사를 정리하는 의욕적인 기획이며 훌륭한 전시라고 생각한다. 우리 근대미술관 하나없는 빈약함 속에서 이와 같은 많은 소장품과 뛰어난 미술사적 가치를 가진 작품들을 사설미술관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전시된 작품의 작가들로는 한국화에 허백련을 비롯하여 김은호, 이용우, 이상범, 노수현, 변관식, 박노수, 김기창, 박래현, 이응노, 천경자 등이며, 서양화에 이종우와 최초의 여류화가인 나혜석, 오지호, 김인승, 구본용, 백남순, 이인성, 도상봉, 이대원, 이중섭, 박상옥, 박수근, 김환기, 윤중식, 남관, 권옥연, 유영국 등 우리의 초기 근현대 작가를 총망라한다. 조각에 역시 최초의 근대조각가인 권진규를 비롯 윤효중, 김정숙, 김경승, 김종영, 김세종, 최종태, 엄태정, 박석원 등이다. 본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이들 작가의 대표적 작품들로 조선조 이후 1960년대 말까지의 한국 근대미술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본 전시는 한국화, 양화, 조각 세부분으로 구성하여 1910년대부터 ’60년대까지 한국근대미술의 형성과 전개를 보여준다. 전시품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은 한국화에 있어서 허백련의 「계산청하(溪山疓夏)(1924)」와 서양화 부분에는 유화인 이종우의 「부친조상(1920)」조각으로는 윤효중의 목각「물동이를 인 여인(1940)」이 있다. 미술관 소장작품들의 연대가 약간씩 떨어지나 명품전에 출품된 초기작품 대부분이 분실되어 이나마 수집, 보관된 것에 만족해야 할 입장이다.

한국화 전시는 전통적인 관념 산수화를 버리고,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산야를 소재로 소박하게 표현하여 뛰어난 개성적 표현과 한국적 서정의 그림을 완성시킨 청전 이상범의 사계 풍경화와 이에 반해 수목의 기품을 살려나가는 흑백대조의 호쾌한 대륙적 미감으로 이상향과 같은 전통적 관념산수에 자신의 독특한 화풍을 펼치는 허백련, 노수현 등의 산수화가 주목된다. 또한 ‘50년대 이후 현대적 화풍으로 추상화의 분위기와 심상의 표현, 강렬한 색채추구 등으로 혁신적인 한국화의 새로운 틀을 만든 김기창, 이응노, 천경자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양화는 다른 부문보다 더 많은 작가와 대표적인 작품들로 기획전시된다. 1930년대와 40년대의 가장 대표적인 사실화풍의 서양화로 이인성의 「가을 어느날(1934)」,「해당화(1941)」를 비롯하여 그 이후 ’50년대와 ’60년대의 국전시대 가장 대표적 수상작품들을 본다. 사실화풍과 인상주의적인 기법의 색감으로 시작된 우리의 근대회화는 해방이후 그대로 이어짐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이에 반하는 당시 무명의 몇몇 이단적 성격의 작가들 작품이 현재에는 더욱 더 유명하게 되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본 전시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감성을 적나라하게 즉흥적으로 나타내려는 표현주의 성격의 구본웅 작품이나 비극적 생애와 힘있는 개성적 표현으로 이미 신화화된 이중섭의「가족(1950)」,「황소(1953)」등을 비롯하여, 가장 토속적이며 한국의 정취를 회강암 같은 마티에르와 독특환 선으로 그린 박수근의 작품등은 비록 작은 그림들이지만 감상자의 마음에 깊은 미적 인상을 남긴다.

또한 1950년대와 ’6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태동기 작품들로 반추상적인 작품들과 소위 앙포르멜이라고 하는 서구 ’50년대의 추상미술을 도입하는 대표적 작가들의 작품을 본다. 남관, 유영국, 이세득, 권옥연, 정상화 등의 ’60년대 작품은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태동을 알리는 것으로 순수한 색과 비형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나서는 것들이다. 일반관객은 그들의 작품에서 구체적인 형상과 이야기를 읽을 수는 없지만, 이같은 추상화를 통하여 이제 그림이란 사실적인 묘사만이 아니라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상태를 자유로운 구성과 흔적들의 심미적 조형성 탐구라는 것에 점차 동의하게 된다.

한국 근대조각 부문은 매우 빈약하다고 볼 수 있다. 호암미술관의 노력부족이 아니라 우리 근대조각의 역사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수적으로 부족한 작가와 보관의 어려움으로 남아있는 작품의 수는 매우 적다. 근대조각의 효시인 권진규의 대표적 테라코타 작품「지원의 얼굴(1967)」을 다시 볼 수 있으며, 윤효중을 비롯 김경승, 김세중, 김정숙, 최종태 등의 초기 작품인 ’60년대 조각들을 감상하게 된다.

대부분 인체의 변형에서 출발한 한국의 근대조각은 점차 주제의 다양성으로 나무와 석고, 돌, 흙에서 벗어나 철과 브론즈, 대리석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60년대 중반이후 앙포르멜(비정형)추상화의 등장과 같이 추상조각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진다. 철 용접의 추상조각가인 김종영의 초기작품과 현재에도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엄태정의 기하학적 추상조각과 박석원의 비정형의 아름다운 초기 추상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이들의 작품은 동적인 힘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강한 느낌의 볼륨 구성으로 비례와 균형의 미를 생각하게 한다. 구체적 형상을 깍고 붙여나가기보다 균형이나 덩어리 그 자체의 아름다운 면을 찾아나선다. 이들의 실험적 조각들은 인간의 감성적 흔적들을 추상화하여 자신의 세계를 탐구하는 한국 모더니즘 조각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와같은 우리 근대조각의 흐름을 보고 수적으로나 독창적 조형실험의 부족에 따른 전개에 많은 아쉬움을 느낀다. 한국 현대조각은 우리 고유의 불상조각과 같은 오랜 전통의 연장이나 활발한 근대조각을 바탕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 서구 모더니즘 조각의 영향으로 독자적인 자기세계를 찾아나가는 독창적 작가나 작품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인체를 바탕으로 한 조형적 아름다움 추구는 마치 눈요기만을 충족시키는 외형성에 치중하고 추상조각들은 국적불명이 된 패턴화가 자주 보여진다.

금년들어 2월 전시 중 한국현대조각회 주관인 「DOUBLE SPACE」(미술회관, 1992. 2. 14∼19)그룹전이나 박헌열 조각전(갤러리 현대, ‘92. 2. 12∼21), 조각가 이홍수 개인전(금호미술관, ’92. 2. 7∼15)’, 설치미술의 성격을 보여준 안원찬 개인전(소나무갤러리, ‘92. 2. 14∼19)’, 최승호(청남미술관, ‘92. 2. 12∼18) 등을 보면서 우리 현대조각의 특성과 허실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