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리뷰 / 출판

주문생산으로 향하는 출판사들




강철주 / 출판평론가, 출판저널 편집부장

최근들어 몇몇 출판사에서 작가들과의 사전계약에 의해 이른바 ‘주문생산’을 시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가령, 사랑을 소재로 한다든가 성장기 체험을 담도록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출판사측에서 작가에게 일정한 소재나 주제를 제시하고, 작가는 그에 맞춰 작품을 써내고, 출판사는 다시 그 결과를 책으로 펴낸다는 것이다.

주문생산이란 말이 내포하는, 다소는 어색한 비문학적 느낌에 관대해질 수만 있다면, 최근의 이같은 경향은 일단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미 씌어진 원고를 책으로 펴내던 종래의 문학출판의 관행에 비해 이 주문생산은 독자의 요구와 작가의 상상력을 ‘주문’이란 형태 속에 중개한다는 점에서 출판사측의 의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제 출판사는 작가의 원고를 받아 책으로 만들어 주는 단순한 ‘제작대행’의 입장에 머물지 않고, 작품의 구상과 원고집필 단계에서부터 작가에게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까지 나아감으로써 명실상부한 ‘기획자’의 입장에 서게 됐다는 것이다.

출판사들이 이처럼 주문생산을 시도하게 된 데에는 물론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작품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등록자유화 이후 출판사 수가 급증하면서 작품의 수요가 크게 늘어난 데 반해 작품의 생산은 그에 못미침에 따라, 속된 말로 발벗고 나선 것이다. 특히 연륜이 짧은 신생출판사의 경우, 웬만한 작가들은 이미 기존의 다른 출판사들과 끈을 대고 있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좋은 작품 있으면 하나 주십시오’하는 것보다는 아예 ‘이러저러한 작품을 써 주십시오’하는 게 훨씬 나을 수밖에 없다. 이같은 사정은 지난 2∼3년 사이 우리 문학출판의 한 흐름을 형성했던 이른바 ‘테마소설선’‘테마시선’등이 일정한 한계에 봉착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앤솔로지 출판으로 돌파구 찾는 출판사들

눈에 띄는 새로운 작품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출판사들은 이미 발표됐거나 책으로 묶여졌던 여러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일정한 테마 아래 한데 모으는 앤솔로지 출판으로 돌파구를 찾게 됐는데, 예술가 소설선, 중산층 소설선, 키치 시선, 환경문제 시선 등이 그 좋은 보기가 된다. 이것 자체는 물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작품들을 끌어 모아 일관된 맥락 아래 재편집한다는 것이 결코 손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의의를 소홀히 할 수 없는 훌륭한 기획출판의 하나일 수 있다. 앤솔로지출판은 어떤 한 주제나 소재가 서로 다른 작가들에 의해 어떻게 달리 형성화되는가 하는, 다양한 문학적 변주를 조감해 볼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기획 자체의 지속적 추진이 어렵다는 점과 함께, 특히 저작권 문제가 까다롭게 제기된다는 난점이 있다.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의회의 지난해 저작권 침해 사례 보고에서도 선집출판이 일으킨 저작권 시비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 보이거니와, 어떤 면에서 선집류는 손쉽고 안이한 불법적 ‘짜집기 출판’으로 지금까지 악평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한때의 폭발적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동시적으로 볼 때 아마도 시집으론 가장 많이 팔렸고, 지금도 팔리고 있는〈영원한 사랑의 명시〉 따위가 그 좋은 예가 될 만하다.

물론 앞서 든 테마소설선, 테마시선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설사 출판사측에서 정상적인 제작권 협의절차를 밟으려고 해도 작가편에서 자신의 작품이 선집에 수록되기를 거부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 또, 독자편에서 보자면 이미 읽은 작품들이 포함돼 있어 무언가 손해본 듯한 생각이 드는 경우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선집출판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원래부터 새로운 작품을 구하기도 어렵고, 새롭지 않은 작품을 새롭게 재편집하는 작업도 한계에 부딪치면서, 출판사들이 그 타개책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 바로 주문생산이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본격적인 기획출판이라 할 수 있는 이 주문생산은, 지금까지 작가에만 의존하던 책(특히 원고)의 생산과정에 출판사의 기획의도가 적극적으로 투입되고, 그같은 기획의도를 집행하는 현실적인 역량의 발휘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한 단계 더 발전된 출판의 메카니즘일 수 있다.

주문생산을 시도하고 있는 출판사의 편집자들에게는, 그래서 잡지편집자적인 자질이 일정부분 요구된다.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그것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작가를 찾아내고 쓰게끔 설득하는 일이 그 중요한 몫이 된다.

그러나 문학에 관한 한, 이같은 주문생산제가 반드시 발전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견해도 충분히 설득력있다. 출판의 논리에 있어서는 분명히 바람직한 변화이지만, 문학의 논리로 따져볼 때 주문생산은 출판사의 주문이 작가의 창조적 상상력의 범위를 제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문생산의 기여는 번역도서의 출판으로

주민생산이 우리 출판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부분은 문학(창작)이 아니라 다른 쪽이다. 예컨대 번역도서 출판을 대표적으로 꼽을 만하다. 번역의 경우 그 텍스트의 선정이 대개 출판사 차원에서 이뤄져 왔기 때문에 주문생산이란 말이 오히려 새삼스럽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문생산의 장점이 훨씬 더 잘 발휘될 수 있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학문과 연구의 영역, 그리고 문학적이기는 해도 상상력에의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덜한 부분(현장의 의미가 중시된다든가 취재가 필수적인 것들)에서 주문생산의 의의와 효과는 극대화된다. 가령, ’70년대의 한국학도서 출판 붐은 출판계가 선도했다기 보다는 한국학계의 연구업적이 비축돼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주문생산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면 역으로 출판계의 필요에 의해 한국학계의 연구업적이 산출될 수 있다. 자연과학을 예로 들면, 흔히 ‘재미있는’‘알기 쉬운’등의 수식어를 동원한 일련의 대중적 과학계몽서들이 주문생산으로 성공한 좋은 보기라 하겠다.

주문생산은 비용이나 노력이 많이 드는 한편으로, 그 들인 공과 품 만큼의 결과를 대개는 정직하게 보장한다. 가만히 있어도 필자들이 들고 오는 원고를 보고 과연 출판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물론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획의 하나이지만, 처음부터 출판사가 나서서 필자들로 하여금 ‘쓰게 만드는’일이야말로 가장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출판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는 것이 된다.

출판은 문화를 보관하기도 하지만, 그것의 창조를 자극하고 선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