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오케의 문제점과 가능성
이장직 / 음악평론가
최근 ‘노래방’ 혹은 ‘노래마당’ ‘노래자판기’라는 신종 음악산업이 보급되고 있다. 방음시설과 32인조 밴드가 녹음한 반주 테이프를 갖춰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새로운 가라오케 시스템이다. 손님은 동전이나 카드를 미리 구입하여 노래를 부르기 전에 500원짜리 동전을 투입구에 넣는다. 1000여 곡이 넘는 노래 제목이 가득 적혀 있는 목록을 보고 노래의 고유번호를 입력시키면, 화면에 가사가 나타나며 반주음악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나면 노래의 실력을 평가한 점수가 전광판에 나오고, 가령 80점 이상의 평가를 받으면 무료로 한 곡 더 부를 수 있는 보너스도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혼자서 노래를 부르는 이 신종 음악산업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젊은 층과 직장인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고 한다. 완전자동 컴퓨터화되어 종업원이 필요없으며 남녀 노소 모두가 고객이 될 수 있어서 불황이 없으며 24시간 영업이 가능하며, 특별한 허가없이 신고만으로 영업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가라오케 박스 또는 룸 가라오케는 기하급수적으로 보급될 전망이다. 동전을 넣고 음악을 듣는다는 면에서 서부개척 시대의 미국에서 볼 수 있었던 주크박스(juke box)를 연상하게 하는 이 노래자판기는 단순히 음악을 듣기만 하는 주크박스와는 달리 고객이 노래를 부르고, 기계가 그 노래를 감지하여 노래의 실력을 평가해 주는 시스템이다. 말하자면 기계와 사람간의 말없는 대화가 오고가는 셈이다. 기계는 음악을 반주해 주는 악단이자 노래를 들어주는 청중이며 숫자로나마 노래를 평가하는 평론가의 역할까지 맡고 있다.
폭넓은 레퍼터리의 노래반주 음악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노래반주 음악은 흘러간 트로트 가요는 물론이고 최신가요에서 가곡, 심지어는 복음성가, 민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터리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에는 현재 이러한 가라오케박스가 약5만 개소로 추산되고 있으며 종래의 가라오케 시스템에 대한 수요도 줄지 않고 있어서 매년 약 15만 개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이제는 일반 가정에서도 ‘홈 가라오케’ 혹은 ‘비디오케’가 보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일본 가정의 20퍼센트가 이 시스템을 갖추어 놓고 있다. 일본이 만든 음악상품 중 워크맨이 음악을 듣기 위한 것이라면, 가라오케는 노래를 부르기 위한 하이테크 음악상품이다. 1989년부터는 워크맨과 가라오케를 결합한 형태인 ‘하이-가라’(High-Kara)가 시판중이다.
1970년대초 일본 고베 지방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가라오케는 원래 직업가수가 밴드가 없는 곳에 공연을 가거나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추어 협주곡을 연습해야 하는 독주자들을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현재 일본의 엥까 외에도 팝송이나 국내가요를 최고의 음질과 세련된 편곡으로 녹음하여 한국, 미국, 영국, 호주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말하자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팔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일본에서의 가라오케 역사를 살펴보자
1970 : 가수들의 공연을 위해 가라오케가 사용된다.
1970 : 주크박스를 변형시킨 기계가 출현하다.
1972 : 오리지널 반주음악을 담은 8-트랙 가라오케 머신이 개발되다.
1973 : 가라오케 전문회사인 다이치코쇼가 설립되다.
1974 : 음반회사인 테이치쿠에서 아마추어 가수를 위한 음반을 제작하다.
1978 : 가정용 가라오케 시스템이 시판되다.
1980 : 두 개의 데크(컴펙트 카셋트와 8-트랙 카셋트)를 갖춘 가라오케 시스템이 개발되다.
1982 : 비디오 디스크 가라오케와 CD 가라오케가 개발되다.
1986 : 가라오케 박스가 보급되다.
1988 : LD/CD겸용 가라오케 플레이어가 파이오니어에서 개발되다.
1989 : 영국, 스코틀랜드, 호주, 미국 등지에 가라오케 상륙하다. 워크맨 타입의 가라오케인 ‘하이-가라’가 시판되다.
가라오케가 4, 50대 중년층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어 온 것은, 이들 세대가 일제 강점기와 6·25사변의 격동기를 겪어오면서 초등학교에서 기초적인 음악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터에 악보를 보고 부르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새로운 노래를 배워 이를 감정 표현의 수단으로 삼는 데에는 어려움이 뒤따랐던 것이다. 적어도 5, 6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은 악보를 보고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자라났다. 가라오케의 장점은 노래 가사만 있으면 얼마든지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음치이든 아니든 간에 노래의 수준에 대해서는 불문에 붙인다는 점이다.
여러 명이 집단적으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고 듣고, 음주문화와 연계되어 있던 가라오케가 ‘밤의 문화’라면 이 ‘음악방’은 ‘낮과 밤이 따로 없는 문화’이다. 음주문화와는 상관없다는 점 때문에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청소년과 여성으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노래를 스트레스 해소, 의사소통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컴팩트 디스크 그래픽(CDG)은 LD, 즉 레이저 디스크에 비해 가격이 3분의 1내지 4분의 1에 불과하여 일반가정에서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또한 레이저디스크에 비해 컴팩트 디스크 그래픽은 풍부한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어 높은 효용성을 보여준다. 국내에서 시판중인 CD 그래픽 플레이어는 AM-FM, 더블 카셋트에 일반 CD의 사용도 가능하며 리모콘으로 작동이 가능하다. 또한 TV에 연결하여 일반 가정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최초 개발된 가라오케의 이름은 ‘멜로디오케’
음성능력과 합성능력을 갖춘 하드웨어 ‘옥소리’를 이용하여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된 컴퓨터 가라오케 소프트웨어의 이름은 ‘멜로디오케’이다. 지난 3월 하순부터 시판되기 시작한 이 멜로디오케는 배경화면에 가사와 악보가 나타나며 디스크 없이 컴퓨터를 통해 비디오 오케스트라를 즐길 수 있는 소프트웨어이다. 현재 시중의 가라오케는 CDG, 즉 컴팩트 디스크 그래픽을 이용한 것으로, 디스크를 일일이 찾아야 하며 악보가 화면에 나타나지 않고, 노래부르는 사람에 따라 빠르기의 조정이 불가능한 반면에, 멜로디오케는 화면에 악보가 나오며, 노래하는 도중에라도 빠르기나 조(調: Key)를 바꿀 수 있으며 컴퓨터 키보드 몇 개만 두드리면 선곡과정이 끝난다. 현재는 교육용으로 국민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음악교과서에 수록된 곡만 저장되어 있는데, 앞으로는 가정용은 물론 업소용으로도 활용될 전망이다. 아직 일본에서도 컴퓨터 가라오케가 실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라오케의 본고장인 일본을 앞지르는 소프트웨어로 평가받고 있다. 컴퓨터 가라오케는 앞으로 가정은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교육용으로 충분히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까지 가라오케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은 우선 과소비와 퇴폐적 음주문화와 결부되어 있었으며, 가라오케 시스템이 일본에서 들어왔고 여기서 불려지는 노래들이 대부분 일본 엥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그래서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뽕짝 가요들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물론 가라오케가 음주문화와 일본문화로부터 벗어난 다음에도 일본에서 만든 소형 오디오 워크맨처럼 아무런 저항감없이 보급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미지수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