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예 / 이탈리아

문화의 세대교체 - 영화와 문학




김운찬 / 효성여대 교수, 이탈리아 문학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부각되고 있다. 그들은 문화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이전 세대의 한계들을 인식하면서 참신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현상은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이탈리아의 정신세계를 이끌어 왔던 세대들이 늙고 힘없는 모습으로 점차 무대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앞으로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젊은 세대의 그러한 노력은 끊임없는 실험정신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최소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으리라.

〈영화〉

이탈리아의 영화계에는 지금 3,40대의 젊은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지나간 이탈리아 영화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활동은 가브리엘레 살바토레스(G. Salvatores) 감독의 작품『지중해(Mediterraneo)』가 '92년도 오스카상 후보(최우수 외국영화상)에 오름으로써 표면화되었다.

사실 이탈리아의 영화예술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네오레알리스모 영화들이 국내외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네오레알리스모 운동은 전쟁과 억압적인 파시즘의 치하에서 풀려난 이탈리아인들이 과거의 전통적이고 상투적인 문화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문제 제기와 함께 새로운 문화를 모색하고 창출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그것은 문화 전반에 걸친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면서 '50년대와 '60년대의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탈리아'를 세상에 알린 의욕적인 예술의 영화들

그러한 움직임 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문학과 영화 분야였는데, 특히 영화는 다른 예술 분야들을 제치고 이탈리아라는 이름을 온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그당시 패전국이었던 이탈리아는 전쟁의 잔해 속에서 가난과 결핍에 허덕이고 있을 무렵이었다. 얼핏보기에는 그런 상황에서 문화와 예술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으리라. 그렇지만 그러한 와중에서도 네오레알리스모 영화는 의욕적이고 창조적인 감독들의 노력에 힘입어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예술이란 단지 풍요로움과 여유속에서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궁핍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건강하고 진정한 예술의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당시의 대표적인 네오레알리스모 영화들로는, 데 시카(V. De Sica)의 「구두닦이(Sciusciá)」와「자전거 도둑」, 비스콘티(L. Visconti)의「떨리는 대지」, 로셀리니(R. Rosellini)의「로마, 열린 도시」, 펠리니(F. Fellini)의「길(La Strada)」,「달콤한 인생」, 파솔리니(P. P. Pasolini)의「걸인(Accattone)」등 우리의 귀에 낯설지 않은 작품들을 들 수 있다.

그러한 작품들은 독창적인 상상력과 창조성으로 영화, 그러니까 시각적 이미지를 통한 인류의 보편적 언어를 높은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걸작들로 평가되고 있다. 그들 네오레알리스모 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은, 네오레알리스모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일상적이고 소박한 현실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였다는 점이다. 물론 네오레알리스모는 대체적으로 좌파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문화운동이었기 때문에, 논쟁적인 사회적 참여와 현실 고발의 성격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탈리아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에게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이야기였으며, 따라서 그러한 영화의 이야기들은 바로 관객들, 평범한 일상인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이야기와 현실적인 삶, 즉 예술과 삶이 하나의 총체를 이룸으로써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예술성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전성기를 누리던 이탈리아의 영화는 '70∼'80년대를 거치면서 여러가지 면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뒤처지게 되었다. 물론 이탈리아의 영화산업이 완전히 사양길에 접어든 것은 아니다. 네오레알리스모 영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펠리니를 비롯하여 리시(M. Risi), 타비아니(Taviani) 형제 등의 역량 있는 감독들이 아직도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베르톨룻치(Bertolucci) 감독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화「마지막 황제」로 오스카상을 휩쓸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영화가 주도적인 입장에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예술세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새로이 변화된 상황에 걸맞는 좋은 작품들로써 보편적인 커다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비평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탈리아의 영화는 더 이상의 발전을 하지 못하였는가? 일부에서는 그 요인을 이탈리아의 경제 성장에서 찾기도 한다. 말하자면 '50∼'60년대의 급속한 경제 성장의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늑하고 평온한 삶을 영위하면서, 오히려 건강하고 절실한 문화적 욕구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역시 그러한 분위기에서 보편적인 예술성보다는 개별적인 취향, 즉 환상적이고 기괴하고 자극적인 경향으로 흐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술성, 내면요소 강조한 펠리니의 작품

그 대표적인 예를 펠리니의 최근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최근 작품들은 예술성만을 추구한 나머지 지나치게 환상적이고 내면적인 요소들을 강조하고 있다. 그 결과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난해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바로 이탈리아의 영화가 외국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현재 이탈리아의 영화계는 지극히 혼란하고 어지러우며 나태한 상태에 빠져 있다고 혹평하고 있다. 전쟁 직후의 가난하고 비참한 상태에서 오히려 더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하였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젊은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그러한 무사안일적인 경향들을 탈피하고, 새로운 하나의 전환기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앞서 말한 살바토레스 이외에도 현재 주목을 받고 있는 피치오니(G. Piccioni), 벤베누티(A. Benvenuti), 키에사(G. Chiesa), 그리말디(A. Grimaldi) 등등의 활동적인 감독들은 대부분 3, 40대의 젊은 나이이다. 또한 1990년에 「시네마 천국」을 내놓아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토르나토레(G. Tornatore) 감독 역시 같은 세대에 속한다. 그들은 대부분 이전의 지나치게 과장적인 내면 중심적 폐쇄성을 배격하고 있다.

앞서 말한「지중해」는 2차 세계대전 중에 그리스의 어느 조그마한 섬에서 길을 잃은 한 무리의 이탈리아 병사들의 이야기이다. 병사들은 섬안에서 아주 평온한 나날들을 보내는 동안에 바깥 세상에서는 이미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사실도 모르고 그저 바닷가에서,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외부 세상의 모든 번민을 잊어버리고 전쟁이라는 비극적 현실에서 벗어나 지극히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는 생활을 하는 병사들의 모습은 다분히 현실도피적이라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그러한 스토리의 저변에는 힘겨운 조국 이탈리아로부터의 도피가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그러한〈도피〉의 테마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두드러진 심리적 특징들 중의 하나로서 요즈음의 영화들에서 즐겨 표현하는 테마이다. 동시에 그것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개인주의적이고 내면 중심적인 영화와 대비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젊은 영화인들의 작품에서는 개인적인 속박과 집단적 현실의 위기의식을 동시에 표출하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도식적으로 보자면 과거의 건강한 리얼리즘으로의 복귀를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카랍바(C. Carabba)와 같은 비평가는 그러한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경향들에서 네오레알리스모와 유사한 맥락을 지적하면서, 새진실주의(Neoverismo)라는 용어를 조심스럽게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한 경향이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형성할지 앞으로 두고 보아야겠지만, 젊은 영화인들의 끊임없는 실험정신에 기대를 걸어볼 수는 있으리라.

〈문학〉

오늘날의 이탈리아 문학계에서는 소위 대표적인 작가들은 누구인가 손으로 꼽아보기가 무척 힘들다. 그것은 현재 이탈리아 문학의 흐름이 너무나도 다양한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그러한 배경에는 얼마전까지 주목을 받아오던 유명한 작가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모라비아, 칼비노, 샤샤, 진즈부르크, 모란테 등등 각광을 받던 작가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사망하면서 그들의 뒤를 이어 문단을 이끌어갈 사람들이 아직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물론 '80년대에 들어오면서「장미의 이름」과「푸코의 진자」를 발표하여 전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움베르토 에코 같은 뛰어난 작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에코는 전문적인 작가라기보다는 오히려 문학이론가이며 기호학자로서 이미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그의 문학작품(소설)은 바로 그 두 편에 불과하다. 꼭 작품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그 두 편만으로 이탈리아의 문학 전반에 대해 말하는 것도 역시 무리라고 할 수 있다.

판매부수에 기대 못미치는 스트레가상 수상 작품들

대표적인 작가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은, 최근에 들어와 이탈리아의 최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스트레가(Strega) 상을 수상한 작품들이 판매부수에 있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오히려 예전에 명성을 떨쳤던 작고한 작가의 작품들이 오늘날에도 꾸준하게 읽히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이, 요즈음에 수많은 작가들이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고는 있지만, 지속적인 호응을 얻는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동시에 젊은 신예 작가들의 의욕적인 활동이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있다.

예를 들어, 1989년에 라라 카르델라(Lara Cardella)라는 19세의 여자 대학생이 발표한 소설「나는 바지를 원했다(Volevo I pantaloni) 」는 몬다도리(Mondadori) 문학상을 받으면서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그 소설을 토대로 한 영화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19세의 소녀가 전통적이고 보수적이고 폐쇄된 시칠리아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성장하는 과정에 겪는 고통과 번민을 신선한 필치로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다. 자서전적인 성격이 강하게 배인 이 소설은 보수적인 시칠리아 가족 생활의 모순적인 단면을 폭로함으로써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또한 1991년에는 이탈리아의 최대 일간지「코리에레 델라 세라」의 뉴욕 특파원으로 있는 37세의 지안니 리오타(Gianni Riotta)가 소설집「계절의 변화(Cambio distagione)」를 출간하였는데, 움베르토 에코, 시칠리아노, 콜롬보 등을 비롯한 유명한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거기에 실린 여섯편의 단편소설들은 모두 전통적인 소설의 기법을 유지하면서도 참신한 소재와 기법을 유지하면서도 참신한 소재와 효과적인 문체를 갖추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또한 작가 자신은 부정하지만 추리소설적인 스토리 구성이 탄탄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신예 작가들의 작품들에서 으례이 드러나는 자서전적인 요소들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이 하나의 신선한 특징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자서전적인 이야기를 배제한 반면, 작가의 관심은 주로 최근에 일어난 세계의 커다란 사건들에 쏠려 있고, 바로 거기에서 주요 테마를 이끌어냄으로써 현대의 뜨거운 문제들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신문기자로서 현실을 좀더 넓은 시각에서 하나의 열려진 실체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믹, 유머 담긴 문학이 이탈리아 문학 현실 나타낸다

젊은 작가들의 그러한 활동과 함께, 오늘날의 이탈리아 문학의 다양하고 어지러운 난맥상을 반영하듯이, 요즈음에는 코믹하고 유머가 담긴 가벼운 내용의 책들이 인기를 얻으며 많이 팔리고 있다. 1991년도에 이탈리아의 최대 출판사인 에이나우디사에서 지노(Gino)와 미켈레(Michele)의「개미들은 그 자그마한 몸집으로도 끌고 간다」라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저자와 출판 담당자들마저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 책은 우디 알렌, 다리오 포 등을 비롯한 전세계의 유명한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말들, 일종의 개그를 모아놓은 것이다. 예기치 않은 대성공을 거둔 두 작가는 그 후속편으로 현재「개미들 2, 복수」를 준비중인데 같은 에이나우디 출판사에서 곧 간행될 예정이다.

그와는 약간 성격이 상이하지만, 텔레비전의 유명한 희극배우였던 코바타(G. Covatta)가 쓴「욥의 이야기」(롱가네시 출판사)는 1991년도 말에 이미 17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이 책은 성서의「마카베오 상」에 나오는 이야기를 현대적 감각에 알맞게 패러디한 것으로서, 바로 구약성서 안으로의 우스꽝스러운 여행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원래 작가는 그 책을 자신의 고향인 나폴리의 방언으로 발표하였는데, 인기를 얻으면서 카텔라(P. Catella)에 의해 표준 이탈리아어로 번역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런 코믹한 내용의 작품들은 주로 텔레비전의 희극이나 연극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무대 위의 행위예술로 공연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코바타의 경우처럼 희극배우들이 자신들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작가로 변신하기도 한다.

어쨌든 코믹한 내용의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이탈리아 문학의 실상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독자들의 가벼운 취향을 탓하기에 앞서 보편적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작품들을 제시하지 못하는 작가들의 반성도 필요할 것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러한 이탈리아 문학의 침체의 원인을 이전 세대의 잘못으로 돌리기도 한다. 1990년에 소설「키메라(La Chimera)」로 스트레가 상을 수상하였던 바살리(G. Vassalle)는 그 책임을 전적으로 〈'63그룹〉에서 찾고 있다. 〈'63그룹〉이란 전후 이탈리아 문단의 네오레알리스모 경향의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해 아방가르드적 실험정신을 표방하는 일단의 작가, 예술가, 이론가들이 1963년에 팔레르모에서 결성한 모임이었다. 독일의〈'47 그룹〉에서 이름을 따온 그들의 활동은 전형적인 이탈리아의 아방가르드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들은 20세기 초엽의 소위 역사적 아방가르드 운동(미래주의)과 구별하기 위해 네오아방가르드(Neoavanguardia)라는 용어로 지칭되고 있다. 그 중심적인 구성원은 에코, 굴리엘미, 발레스트리니, 상귀넷티, 망가넬리 등 대부분 현재 이탈리아의 여러 분야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탁월한 작가와 문학이론가 들이었다. 그런데 바살리의 평가에 의하면, 그들〈'63그룹〉의 구성원들은 예술의 진보에 대해서 수많은 논의를 하면서도 실질적인 작품활동을 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좌파적 정치활동에 빠짐으로써 이탈리아 문학의 빈곤화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예전의 미래주의가 파시즘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듯이, 네오아방가르드의 활동은 1968년도의 격렬했던 학생시위 이후 결성된 극좌 테러 집단인 ‘붉은 여단’의 현상을 준비하는 단계에 불과했다는 혹평이다.

엔초시칠리아노의 비평집에서 ‘63그룹의 비화 소개

또한 비평가이자 소설가인 엔초시칠리아노는 최근에 자신의 비평집「소설의 운명」을 출간하면서 서문에서〈'63그룹〉에 얽힌 비화를 소개하였다. 그 당시 펠트리넬리 출판사에서 소설 출판을 담당하고 있던 소설가 밧사니(G. Bassani)의 서랍을 누군가가 몰래 억지로 열어제쳤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거기에 얽힌 사건은 하나의 문학적 ‘범죄’, 또는 전쟁의 잿더미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소설계에 대해 가해진 야만적인 폭력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 사건의 분명한 동기와 결과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탈리아의 소설은 암흑의 세계로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칠리아노의 그러한 주장은 〈'63그룹〉에 대한 논쟁에 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63그룹〉에 대한 이러한 논쟁이나 비난의 타당성 여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옳든 그르든 그러한 문제 제기의 저변에서 끊임없이 주장되는 것은, 네오아방가르드 집단이 형성된 이후에 실질적으로 훌륭한 문학작품들을 많이 탄생시키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사실〈'63그룹〉은 작가들의 창작보다는 문학예술의 방향에 대한 이론적인 논의의 성격을 더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바로 이것이 네오아방가르드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라고 제시할 수 있는 작품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그 이전의 네오레알리스모 문학론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이론가였던 빗토리니의 소설「시칠리아에서의 대화」를 최고의 예술성을 갖춘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작품의 빈곤만을 지적하여 그들의 활동이 전혀 무의미했었다고 무조건 비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63그룹〉에 관한 논쟁은 오늘날의 이탈리아 문학이 처한 상황의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는 있다. 물론 그것이 2천년대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세대의 문학인들에게 하나의 긍정적인 자극이 될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