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화」의 타당성과 방법론에 관하여
일 시 : 1992. 4. 14 오후 4시 30분
장 소 : 문예진흥원 문화발전연구소 회의실
참 석 자 :
한명희 / 사회, 서울시립대 교수
권오성 / 한양대 교수
황준연 / 서울대 교수
한: 바쁘신데 이렇게 자리에 참석하여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기탄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오늘 사회를 맡게 되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해보았는데요. 물론 주관적인 이야기의 범위입니다. 여러분들은 여기에 얽매이지 마시고 자유롭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제가 준비한 몇 가지 커다란 이야기의 항목을 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오늘의 주제가 국악의 대중화인 만큼 대중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을 정리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이 왜 등장하게 되었느냐 하는 배경을 짚어보는 일도 필요한데, 이것을 두 번째로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대중화란 말이 합당하냐는 문제 제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과연 국악의 대중화란 말이 성립될 수 있는지 원초적인 회의를 갖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대중화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함께 점검하고 넘어가야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도는 사회에서 대중화, 대중화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쪽으로 경도 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타당성을 검토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두 번째로는 그러한 말이 논리적으로 타당성이 있건 없건 국악의 대중화가 요청되는 시대 상황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국악의 대중화의 방법론에는 무엇이 있겠느냐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중화로 가는 이상적인 길이랄까 바람직한 길에 대한 논의가 되겠습니다. 물론 방법론이라는 말을 써서 조금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기에서 말하는 방법론이란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접근해 가는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방법론입니다. 따라서 국악의 대중화가 결국 무엇을 지향하느냐는 좌표 설정도 한번 이야기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섯 개 항목으로 집약을 시켜 봤는데 이것 외에도 필요한 것이나 짚고 넘어가야 되겠다는 이야기가 있으면 첨삭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권 선생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지요.
권: 대중화라고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21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앞으로 몇 년간의 얘기가 되지 않겠느냐, 즉 한시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조금 더 내다보면 결국 2000년대에는 패턴이 바뀌어서 1900년대의 대중사회나 대중문화라는 것은 이미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중화란 말은 앞으로 한 8년 남은 기간 동안 유효 적절한 말이 될 것입니다.
부연하자면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게 아니라 집에서 업무를 보고, 도서관이나 학교가 필요 없어지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일을 처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중화란 아주 낡은 사고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토의는 미래지향적인 입장에 서서 이야기 돼야 할 것입니다.
한: 방금 권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바와 같이 그래서 대중화란 말이 다시 거론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이 말이 가지고 있는 함축적인 의미 때문인데요, 구체적인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그러면 황 선생님께서도 말씀을 해 주시지요.
황: 두 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안에 포함이 되는 얘기겠습니다만 저는 무엇보다도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늘날 입시 위주의 교육과 서양의 사조에 편향된 교과 과정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대중화와 교육의 관련성에 대한 이야기도 했으면 합니다.
한: 그 문제는 대중화의 방법론이라는 사항에 포함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선생님들께서 해 주신 말씀들이 제가 앞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뼈대가 되는 얘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먼저 대중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대중화란 말속에 종적인 개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할 때 상층구조에서 하층구조로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부정적인 면에서 말한다면 하향 편중화란 현상도 포함이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횡적인 면에서 본다면 소수 그룹에서 다중화 그룹으로의 확산이 됩니다. 창작자나 전문가들의 범위에서 벗어나서 일반인들에게까지 보급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질적인 면에서 본다면 국악의 전문화를 보편화시킨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자기들끼리 전문적인 언어로 주고받는 예술행위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환치시키는 작업이 대중화일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고답적인 것이 실용적이고 일상적인 측면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국지성이라고 할까요, 소수 그룹 내지는 한정된 카테고리에 있는 국악의 기회를 널리 범주 밖으로 확산시키는 원심적인 개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들끼리 소량 생산해서 유통하는 문화형태, 예술행위, 이런 것이 빈번하게 쓰여지고 있는 대중화의 이면에 포괄되어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에서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조금 전에 권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지금까지 제가 말한 것은 현재적인 입장에서 말해 본 것이고, 통시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한시성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시다시피 지금의 우리시대의 상황에서만이 적절한 것이지 앞으로 대중이 분해되는 사회구조가 생겨서 문화구조도 바뀌게 되면 대중화란 말 자체가 무의미하게 될 테니까요. 이밖에 대중화에 대한 이견이나 좋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 주십시오.
권: 원론적인 대중화의 정의는 아주 잘 정리를 해주신 것 같습니다. 다만 지금 현재 우리사회의 종적 개념은 이미 종래의 상층 구조와 기층 구조가 무너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대중사회로 이어졌기 때문에 지금 현재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중산층에서 어떻게 전통음악을 이식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더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적어도 1900년대 이전에는 그 나름대로 전통음악이 확산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여러 가지 외부요인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이것을 되돌리자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황: 대중화란 말만 떼놓고 보면 지금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가지 의미에서 널리 확산하는 것으로 단명하게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국악의 대중화라고 했을 때에는 다시 정의를 내려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국악이라는 것이 다같이 공감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지 않고, 어떤 국악을 국악이라고 해야 하느냐는 문제까지 포함해서 생각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유행가 같은 국악을 국악이라고 해서 그걸 대중화시켜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전통음악을, 어떤 사람은 그 중에서도 특히 판소리만 국악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악에 대해서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생각하는데 거기다가 대중화란 말까지 붙였을 때는 제자리걸음이 될 우려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한: 지금 황 선생님께서 제기해 주신 문제는 국악의 대중화라고 할 때에는 일반적인 대중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걸맞지 않다는 것인데요, 우리가 국악을 장르별로 어떤 국악을 대중화 시키냐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면 끝이 안날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또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제가 다섯 가지로 정리하면서 생각했던 국악은 우리가 흔히 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소수 전문가들끼리 주고받는 어떤 편협한 범위를 벗어나서 대중적으로 생활되고 일상화되어 대다수가 공감하는 음악권을 형성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권: 아까도 잠깐 말했습니다만 1900년대 이전에는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약 80퍼센트의 농어촌 사람들이 자기의 생활과 직결시켜서 일을 할 때나 생산할 때 매개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외래 문화가 들어와서 그 전통이 무너졌는데 그것을 다시 찾자는 의미로서의 대중화냐, 그렇지 않으면 조선조의 궁중이라는 국한된 지역에서 보통 농어민들은 모르던 음악을 대중화시키자는 것이냐 하는 것으로 크게 나누어질 수 있을 겁니다. 조선조의 궁중음악은 일제시대와 그 후의 100년간 알려졌는데 아직도 일반인들에게는 생활 속에서 수용이 안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앞에서 제가 종적 개념으로 상층 구조와 하층 구조로 파악해 보았던 것은 위상 자체가 위에 있다 밑에 있다가 아니라 이를테면 피라밋형의 문화 구조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모든 문화·예술 현상이라는 것이 위로 올라갈수록 전문성이 두드러지게 되는데 이러한 고답적인 것을 하향 편중화시켜서 다중화하는 작업이 쉽게 생각해서 국악의 대중화일 것입니다. 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제가 앞에서 말했던 여러 가지 질적·양적·종적·횡적 변형이 저절로 종합되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황: 음악 이외에 다른 예술 장르를 보면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진 경우가 드뭅니다. 그런데 유독 음악만이 대중 음악이라고 하면서 널리 쓰여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국악의 대중화란 말이 생겨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 생각하면 국악의 대중화는 국악의 대중음악화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말에 대해서 자꾸 언급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상이 이미 일반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저도 황 선생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국악의 대중화하면 벌써 그 저의가 국악을 좀 쉽게 할 수 없느냐 하는 말로 얘기되는 것일 텐데요, 이미 대중 음악이라는 말을 써왔고, 익혀 왔기 때문에 질적으로 저하된다는 선입견이 듭니다. 저는 바로 이 자리가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국악이 보편화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이미 일반인들이 써 오던 말은 어쩔 수가 없고 다만 그 의미만은 생활 속에 파고 들어가는 것으로 인식시켜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권: 제 생각에는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황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연관시켜, 이를테면 고려자기라든지 국보 1호인 남대문이라든지 고구려 고분 등을 전 국민에게 보여주고 새롭게 인식시켜서 우리나라의 옛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것 말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을 대중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음악에서는 있는 그대로를 보편화시키는 전자와 같은 사례와는 다릅니다. 그런데 유독 음악만은 기존의 음악을 버리든지 아니면 개조해서 무슨 경음악 스타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를 들어 고려자기를 아크릴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고려자기의 대중화라고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은 고려자기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유형적인 것은 안 된다고 말하면서 무형적인 것은 변형하는 것이 대중화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진정한 대중화란 과연 문화 자체의 변형이냐, 아니면 그것은 그대로 놓고 시대에 따라 생겨났던 음악 문화를 시대사조와 아울러 같이 이해하고 생활화할 수 있는 것이냐, 이 두 가지가 대중화가 실질적으로 부딪치는 쟁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대중화에 대한 이야기를 꽤 길게 했는데요, 이제 대중화에 대해서 잠정적으로 접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정리해 보면 우리가 국악을 대중화시키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대중화라고 할 때 음악 자체도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 즉, 음악 자체의 모습도 대중화를 위해서 변형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굳이 음악을 변형시키지 않더라도 방송 매체나 광고를 이용해서 홍보를 잘 한다면 일반인들에게 설명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나올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의 사회 구조는 국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국악이 생소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일반인들에게 이 생소한 국악을 보다 쉽게 어필하기 위해서 조금씩 바꿀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한편으로 나올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것이 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고려자기의 재료를 바꾸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자기는 재료를 바꾸면 본질 자체가 왜곡되는 것이지만 음악은 다를 수도 있거든요. 각 예술 장르가 가지는 특성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권: 서양에서는 베토벤의 음악을 경음악단이 연주했다고 해서 베토벤 음악이 대중화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운동을 벌이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사고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이 국악을 현대화시켜야 한다, 대중화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현상의 저변에 깔린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전통 문화와 현대 문화가 자연스럽게 전승되지 못한 데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간의 혼동된 역사 문화적 요소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생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배경을 잘 이해해야 될 것입니다. 보편적인 의미로 소수가 다수화되고 상층 구조에서 하층 구조로 옮긴다는 일반론으로는 설명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황: 결국 대중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 같은데요, 굳이 이 자리에서 정의를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만 의견이 잘 모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권: 그것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대중화의 사상적 배경이나 사회적인 배경을 무시한 채 그저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대중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본래적인 의미에서 대중화에 대한 논의가 길어지고, 또 이러한 좌담회 자리가 연거푸 마련되는 것은 대중화가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대중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또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얘기도 될 수 있을 겁니다.
한: 제가 파악하기로는 국악의 대중화라는 말은 국악의 대중음악화가 아니고, 그것보다 더 넓은 의미의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뜻에서 생겨난 말인 것 같습니다. 즉 국악의 대중화란 국악을 생활화시키자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지금 항간에서 하는 것을 보면 대중음악화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일 텐데요, 그것은 부정적인 측면이고 또 반면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겁니다.
황: 제 생각에는 서양음악에서 대중음악과 고전음악이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국악의 대중화하면 제일 먼저 받는 인상이 대중음악처럼 흘러가는 경향, 이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실지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묵시적으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국악의 대중화라고 말하면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말에서 오는 왜곡된 의미에 대해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문제는 문예진흥원이나 문화부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짜내어 일반인들에게 국악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겁니다. 그것이 민족문화 창달이 되는 것이고 더 크게는 세계음악사의 주류를 이룰 수 있게 하는 한 전기를 마련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국악이 그동안 너무 대중들에게 소외되어 있고, 안방 차지를 못하고, 지역말단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제는 내 체질에 맞는 우리의 음악을 만들 때가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 대중화의 허실이라고 할까요, 대중화라는 슬로건 밑에서 지금까지 있어 왔던 음악계가 하고 있는 실상에는 무엇이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권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지요.
권: 매스컴에서 국악의 대중화라고 들고 나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대중화된 것이 1970년대 후반부터 나온 사물놀이입니다. 사물놀이는 대중화라는 표방은 하지 않았지만 대중들에게 굉장히 확산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노동현장이나 대학생들의 모임에서 오히려 풍물이나 농악보다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논의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데도 실질적으로 전통적인 양식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대중화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약간의 즉흥성이 들어간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대중들에게 흡수될 수 있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어느 단체에서 국악 가요를 하자고 해서 국악기를 반주로 대중가요 가수가 대중가요를 부르더라구요. 이런 것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반성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물놀이처럼 대중화라고 표방하지 않아도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침투할 수 있는 긍정적인 방향을 모색해야 될 것입니다.
황: 이제는 소수에서 다수적인 측면보다는 음악 자체의 질적인 내용이 대중에 영합하는 형태로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선 음을 서양음악식으로 딱딱 나누어 가지고 쓰는 그런 악법을 많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디사이저에 가야금과 대금을 섞어서 연주함으로써 서양음악이 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이도록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조금 과장이 되겠지만 자극 언어를 버림으로써 남의 음악에 길들여진 대중들에게 영합을 하는 것인데요, 지금까지 이루어진 커다란 경향 중에 제일 심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국악가요 문제라면 저는 황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에서 조금 각도를 바꾸어 이야기하겠습니다. 일부에서는 전자 악기를 사용하여 새로운 음색을 추구하는 것이 국악의 변질이다. 전통음악의 오용이라고 해서 비난의 소리도 높은데 그 얘기도 맞습니다.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문화 현상이라는 것이 꼭 절대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대전제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의식적으로 황 선생님 말씀의 반대적인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만 그러한 음악행위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가지로 볼 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상황이라고 하는 것이 국악과 서양음악이 만나 제3의 변형을 꾀해야 될 때입니다. 대충 20세기 후반인 1950년대부터 서양음악이 밀려 들어왔는데 그때부터 시작된 갈등이 심화되어 지금까지도 극복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탈출구를 향한 몸부림일 것입니다. 물론 모든 음악이 실험적으로 용인되면 안되겠지만 지금 같아서는 그러한 실험성이 있는 시도도 마이너스보다는 플러스의 작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사도 보면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음악으로 넘어오면서 그렇게 갈등이 심했다고 합니다. 르네상스 전통을 지키려고 하는 수구적인 그룹과 바로크 스타일을 창시한 사람들 두 주류가 공존하고 있었으니까요. 실험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채찍을 하는 것은 좋지만 그 행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권: 저도 한 선생님 의견에 동감입니다. 대중화라는 것은 획일적으로 요게 대중화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류를 이루는 경향의 방향을 점검하는 일이 중요할 텐데요, 모든 실험적인 측면을 부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 대중화를 향한 노력이니까요. 대중화의 방향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황: 지금까지 소위 말해서 대중화라고 하는 것에 해당되는 행위들에 대한 얘기가 더 나누어져야 할 것 같은데요, 아까 권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사물놀이는 좋은 예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밖에도 슬기둥과 같은 단체들, 그리고 민요가수와 송창식씨가 국악 관현악단과 함께 했던 무대 같은 것들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슬기둥과 같은 단체는 살짝 변질된 것이긴 하지만 18세기 조선 후기에 있었던 악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또한 국악 작곡가들의 국악 동요나 서울시립 국악관현악단, 부산시립 국악관현악단이 아예 유행가 가수를 초빙해서 음악회를 여는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권: 지금 황 선생님께서 드신 예가 결국 대중화하는 방법에 있어서 이를테면 현재의 대중의 취향에 맞게 하려는 것입니다. 인구의 비율로 볼 때 상식적으로 이삼십대가 많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에게 전통적인 것이 먹혀들지 않기 때문에 이런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이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하여 생활화될 수 있는 것은 전통적인 것에서 자연스럽게 요즘 감각이 따르는 사물놀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되는, 말하자면 인위적으로 이상한 형태가 되는 것이 더 많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국민학교부터 초중고등학교의 서양문화 위주의 교육을 보면 국악기도 평균율 음정을 쓰면 쉽고 국악기에 맞게 미분율 음악을 가르치면 어렵다는 생각들이 국악을 변질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하나, 우리는 항상 수직적으로 사고를 해서 가야금과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할 때도 왜 오케스트라가 가야금에 맞출 생각은 하지 않고 항상 가야금이 오케스트라에 맞추어 연주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문제는 대중 음악뿐만 아니라 예술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음악 어법으로 고치자는 것도 보면 전부 서양음악 어법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확산하는 것이 대중화가 아닙니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이러한 것이 확산되는 것이 대중화로 오해되고 있는 것입니다.
문화의 다양성의 측면은 막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을 막기 위해서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음악 어법을 살리면서도 현대 감각에 맞는 우리 음악의 대중화가 바람직할 것입니다.
황: 예. 결국 그릇과 내용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바이올린은 서양의 그릇인데 그것을 가지고 산조를 연주하는 것은 서양의 그릇에 우리 음식을 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대중화 작업을 보면 거꾸로 우리의 그릇에 서양의 음식을 담으려고 합니다. 권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가야금이 서양의 오케스트라에 수용되어 버리는 경향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입니다. 가야금으로 찬송가를 연주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바이올린으로 산조를 연주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우리 현실입니다. 바이올린으로 산조를 연주하게 되면 그것은 아쟁산조와는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하는 또 하나의 산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릇만 가지고 우리의 것이다라고 판단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조금 극단적인 예이긴 했지만 진정한 대중화가 무엇이냐를 놓고 볼 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저같은 경우에는 평소에 그런 것까지도 수용하는 입장입니다. 심지어는 평균율로 쓰면 어떠냐 누가 봐도 그것이 한국적이면 되는 것이지, 하는데요, 예를 들면 서양에서는 똑같은 악기를 씁니다. 그런데도 독일적인 뉘앙스가 다르고 프랑스적 냄새가 다릅니다. 똑같은 피아노곡이라도 각 민족마다의 특색이 다른 것입니다. 말을 바꾸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양음악의 장조 단조 음계를 썼든 국악의 오음계를 썼든 그것이 정말 골똘히 잉태한 작품이고 가슴의 앙금이 안 지워져서 생긴 음악이라면 우리의 입김이 서리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입김들이 축적되면 그것이 바로 개성이요, 민족성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행위를 우리 것에 너무 외래적인 요소를 개입시키면 안 되겠지요. 문제는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가면서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행위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황: 또 한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국악의 대중음악회라고 해도 저는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그런 것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팝송보다 더 유행했으면 좋겠고, 또 중간에 이상하게 흘러 들어온 뽕짝보다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국악기를 가지고 대중음악을 연주할 때에도 전통어법을 탈색해 가지고 음계 하나만 가지고, 혹은 음색 하나만 가지고 서양음악의 음정을 내는 방법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는 게 문제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뽕짝을 추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단발적이고 일회적인 것을 대중들이 많이 듣다보면 국악이란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진정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국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지금까지 요즘의 음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행위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 나열해 보았습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예술적 음악의 질적 저하와 대중화라는 구실 아래 올바른 전통이 왜곡되는 것, 그리고 무책임한 실험적인 행위로 인한 예술사의 오도 등을 들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 자체는 실험적이라는 이름 하에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아예 무풍지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도 자꾸 시도되어서 교정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축적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다만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점들을 잘 감안해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환영하고 나설 수는 없겠지만요.
권: 문화의 다양성에서 용인되는 그런 사례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될 일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현실적으로 국악을 생활화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텔레비전 방송입니다. 그런데 연속사극 같은 것을 보면 의상이나 건물은 다 우리 것인데 음악만은 서양음악입니다. 시엠송에도 어쩌다가 판소리가 나오면 국악 망친다고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것은 방송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것을 생활화시키겠다는 중차대한 사명감이 없어서일 것입니다. 국악을 하는 사람들이 얘기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그분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한: 그러한 현상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지적해 주는 것도 좋을 겁니다. 그러나 방향제시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를 들면 지금 중국이나 소련의 작곡가들, 특히 소련에는 유명한 작곡가들이 많은데 그분들이 생활이 어려우니까 그렇게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작품을 의뢰할 수가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한테 우리의 음악을 주고 편곡을 자유자재로 한번 해 달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국악의 질적 변형을 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다음에 합동 연주회를 갖는다면 대다수의 국민들도 호기심이 생겨나서 호응을 하게 될 것입니다. 기회가 닿으면 언젠가 해 보고 싶은 시도입니다. 또 하나 정부차원에서 국악인들에게 보조를 해서 새로운 작품을 쓰게 하는 것도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권: 저도 한 선생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그렇게 내적 체험이 다른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음악을 편곡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너무 흑백 논리적이어서 우리의 것을 고치면 옛날 것을 아주 없애 버리는 것으로 생각을 해요. 외국은 안 그렇거든요. 아주 쉬운 예로 가까운 중국은 옛날부터 있는 곡을 개량된 악기로 편곡을 합니다. 그런데도 그 곡명 그대로 쓰고 있거든요. 이론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그게 어떻게 그 음악이냐 할 수 있겠지만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전통적인 것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현대화에 맞게 다듬은 작품은 별로 없습니다. 이러한 시도도 해서 초중고등학교 교육에 맞게 고쳐서 제시하면 그러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자라나서 원곡을 대했을 때, 아, 바로 이것이 우리 음악의 멋이구나 생각할 수 있거든요. 효과적인 대중화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황: 끝으로 제가 한 말씀만 드리고 싶은데요, 우리나라에 있는 작곡가나 연주가들은 너무 한 가지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작곡자가 새로운 악기를 만들어내서 작곡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고, 연주가가 작곡을 해 보는 것도 좋을 텐데 활동의 폭이 좁거든요. 그러한 의미에서 저는 황병기 선생님께서 하시고 있는 일련의 작업들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 지금까지 긴 시간 좋은 이야기들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이 순간에도 지금까지 말했던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이 한 지류가 되어 흘러가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국악계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태도와 활동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본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