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출판 서평 / 음악

혁신적 사유에 관한 세 가지 시각




조익현 / 서울대 강사

최근에 출간된 세 개의 저서가 있다. 「김순남」- 그 삶과 예술(노동은),「생각하는 음악」(음악학연구회),「테러리즘 음악평론의 시비」(김규현). 이 세 권의 저서를 보자면 첫 번째의 것은 작곡가에 관한 연구이며, 두 번째의 것은 음악학자들의 생각을 모아 놓은 것이고, 세 번째의 것은 음악평론에 관한 모음집이다. 외관상으로 이 세 저서들은 서로 다른 독립적인 분야에 관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면에 드리워진 의미는 하나의 공통된 생각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나」를 찾자는 것이며, 또한 「우리 모두의 것」을 찾자는 것이다.

1. 김순남

- 그 삶과 예술-

저자 노동은 교수는 민족음악론을 부르짖고 있는 음악학자이다. 이 책에서 그는 그토록 자신이 민족음악론을 주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민족음악의 선봉장으로 김순남을 내세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월북작곡가, 김순남, 천재 작곡가 김순남, 비운의 작곡가 김순남, 비로소 해금되어 그의 작품과 그의 삶이 우리에게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68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김순남에 관한 최초의 저서일 뿐아니라 한국 작곡가「론(論)」에 관하여 출간된 최초의 저서이다.

노동은 교수는 서문에서 자신이「김순남 환자」라고 고백하고 있다. 자신이 이렇게 된 이유는「그를 통하여 우리 음악과 삶이 어떻게 반성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지는 물론, 민족과 외세, 민주와 억압, 전통(傳統)과 신통(新統), 한반도 음악과 외래음악, 남북의 위상, 세계와의 대결과 협력, 불신과 화해, 지역과 세계 등의 관계들을 그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스스로 몸을 불태웠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전통음악계는 물론 음악을 다루는 모든 사람과 사회가 거울처럼 들여다보아야 할 이 땅의 사람이 바로「김순남」이라는 것이다.

저자 자신이 김순남 환자임을 자청하고 있듯이 이 책을 읽어보면 저자가 얼마나 김순남을 그리워하고 사모하고 있는지를 역력히 느낄 수 있다. 모두 5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비로소 쓰는 김순남 추도사」에서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면서 김순남의 일생을 요약 서술하므로써 그를 추모한다. 제2부「김순남 삶과 예술」은 연대기적으로 김순남의 삶을 추적하여 그의 예술가로서의 행적을 살펴보고 있다. 제3부「왜 김순남인가?」(김순남론) 음악권에서 개인 작가론을 처음 시도한 내용이다. 이 글에서는 김순남이 드러내고자 한 세계관과 이 세계관과 관련지어진 서양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세계관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그가 일관성 있게 몸부림친 구조가 작품을 통하여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를 규명하려 하고 있다. 제4부는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난 뒤 집필한「김순남 연보」이다. 제5부는「자료집」이다. 여기에는 김순남의 평론, 노래, 가곡집, 피아노 협주곡, 관현악과 합창곡, 바이올린 독주곡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김순남에 관한한 거의 모든 것을 수록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김순남(1917∼1983)은「대한민국」이나「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어느쪽에서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데올로기의 냉전시대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는 적이 되어 버렸던자가 바로 김순남이다. 물론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어버렸던 음악가들은 많다. 그럼에도 김순남을 두 체제 사이에서 희생된 안타까운 역사적인 음악인으로 보는 것은 그가 민족음악 수행에 있어서 커다란 궤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김순남의 삶은 민족음악수행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첫째 이유로 일본제국주의 음악 잔재를 청산하고 밖으로 냉전구조에 대하여 자주성 확립이었으며, 둘째로는 한반도 역사에서 오랫동안 민중들의 삶의 지혜로 합의 해온바 있는 민악과 그리고 향악을 되찾고, 이를 바탕으로 서양음악을 재통합함으로써 새로운 민족음악 양식을 창출하였으며, 끝으로는 이러한 두 가지를 바로 민족·민중 속에 자기 자신을 내던진 결과로서 끊임없이 반성-실천하였다는 점 등이 바로 그를 민족음악구현의 요체로 보고 있는 것이다.(p.155)

저자 자신이 김순남 환자임을 자청하면서 그를 찾아 헤맨 것은 바로 그 세 가지 과제가 오늘날 이땅의 변함없는 민족음악구현의 과제이기 때문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김순남은 동시대의 소련 작곡가인 하차투리만이 평가한대로 대단한 천재 작곡가였다. 그러나 이것이 저자가 그렇게 찾아 헤맨 이유는 아니다. 한국음악사회의 정체성을 밝히는 과정에서 나타난 필연적인 결과임을 그는 밝히고 있다.

노동은 교수는「우리들이 다루는 텍스트가 왜 서양 것만 의미화되고, 한번도 텍스트는 조건화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그는「음악의 정체」와 「음악」을 다루는「사람」, 그리고 「사람」이 얽혀진「사회」가 어떻게 분단 구조 속에서 움직일 수 없는 허위의식과 비민족 감수성만으로 팽배하게 자리잡고 있었는지를 문제삼고 있다. 그는 이 문제를 역사적 맥과 동시에 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에게 구세주처럼 나타난 자가 바로「김순남」이다.

노동은 교수는 미친듯이「김순남」을 모았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서 일본 유학지와 북한(범민족통일음악회 참가)을 방문하여 그가 살았던 곳에서 통한의 눈물을 뿌리기도 하였다. 한 인물을, 그것도 한민족 작곡가를 이만큼 추적하여 연구하고 있음을 볼 때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러나「환자적」시각이 주는 단점을 숨기지 않은 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김순남이 월북 후 당성비판에 걸려들어 창작활동이 금지된 후 10년만에 다시 재개될 때 자신의 창작태도, 작품 등을 자아비판하는 것에 관하여는 애정어린 목소리로「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갈등을 감추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으면서, 일제시대에 수절을 지켰다는 대부분의 음악인들(홍난파, 현제명, 이홍렬, 김원복)이 속해 있었던「조선음악협회」,「경성후생실내악단」,「대화악단」등을 일제의 황민화정책을 수행한 조직체로 규정하여 이 단체에 속해 있었던 음악인들을 모두 일제의 앞잡이들로 치부해 버리고 있다. 노동은 교수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리라.

김순남은 음악과 현실 사이에서 어느 한 쪽도 버릴 수 없었다. 이 둘을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한 것이다. 그는 이상에 치중하고 지교를 무시하는 예술가들을 배격하는 동시에 음악과 이념을 떠난 예술가들 또한 무시하였다. 이것이 그를 민족음악을 하게 하는 실천의 당위성을 갖게 하였다. 김순남의 삶과 예술이 오늘날 빛을 바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인 행위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들 삶에서 그것과 더불어 미학적인 충분한 고려를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이 책은 서양음악과 그들의 이론만을 따르기에 급급한 우리 음악계가 각성해야 한다는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2. 생각하는 음악

-음악학연구회

「생각하는 음악」은 음악학연구회(회장 이강숙)가 그간 출간해 온「음악학」의 제3집이다. 지금까지 음악학연구회가 발간한 두 권의 책은「음악학1」,「음악학2」로 출판되었는데, 유달리 제3집은「생각하는 음악」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생각」이란 구태여「철학적 사유함」이라는 것과 연결시키지 않더라도 인간이「그냥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목적의식을 갖고「참 자기」를 찾으려 할 때 필수적인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생각하는 음악」이란 음악학연구회가 추구하는 목표, 즉 진정한 음악은 무엇이며, 진실된 음악인은 누구인가를 찾고 있는 그들의 목표로 보여진다.

또한 이 제목은「음악회」이 어떤 학문인가를 나타내 주는 설명어라고 생각한다. 「음악학」이란 음악을 학문의 한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학문이란, 사유의 과정을 통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음악이라는 예술적 대상을 사유의 과정, 다시 말하면「생각함」의 과정을 통하여 그것들을 파헤치고 분석하고 다시 그것을 통합하는 것이 바로「음악학」일 것이다.

이 책은 음악학연구회원들의 논문을 모아 놓았다. 특별히「음악학 방법론에 대하여」란 특집을 첫 부분에 수록하였다. 「음악학 방법론 관련 개념에 대하여」(이강숙), 「음악학의 사명과 학문적 자세」(송방송), 「음악학의 전달과 수용의 과도기적 문제점」(김춘미), 「음악학과 음악사전」(홍정수), 「음악학적 작업속에서의 철학적 사유의 필요성」(박종문).

학문에 있어서 방법론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학문적 발전은 새로운 방법론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 올바른 방법론의 설정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할 수 있는 모체가 된다. 그래서 이들이 특집으로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리라.

이강숙 교수는 이 책의 논문「음악학 방법론 관련 개념에 대하여」에서 가장 「옳은 음악학 방법론은 가장 옳은 인간 속성에의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그냥 인간」과 「참인간」을 구분한다. 「참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끝없는 질문행위, 의심행위,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이 참으로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 끝없이 의심하는 행위, 이것을 그는「성찰」이라는 개념과 연결시킨다. 「참인간」이 되기 위하여 끝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은 「참음악학」을 만들기 위하여 음악에 관한 끊임없는 성찰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참인간」에 더 접근한 인간이「참음악학」에 더 접근할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그냥 인간」과 「참인간」은 앞의 내용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그냥 인간의 앎에서 참인간의 앎에로의 끝없는 추구만이 옳은 음악학 방법론을 낳는다고 말하고 있다.

송방송 교수는 「음악학의 사명과 학문적 자세」에서 오늘날 우리의 음악학적 상황은 이 분야가 인문과학의 한 갈래라는 것만을 의식하여 단지 지식의 나열에만 열중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학문적 현실을 생각하여 학문의 사명이 무엇이고, 학문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냉철하게 반성하고 있다. 광범위한 음악지식의 축적이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저절로 해결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며, 오히려 음악에 관한 기존 지식이 왜곡된 선입견을 조성하고,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학문적 풍토 설립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우리 음악학계 뿐아니라 학문을「한다는」학자들이 기존의 학문을 자주적 수의 여과작용이 없이 그 찬란함 아래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 송방송 교수는 오늘의 학문적 현실 아래서 기존 지식을 존중하고 있는 학풍의 정체를 심리적, 사회학적, 역사적 견지에서 비판하고 있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다. 세계의 음악 학계도 변화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음악학계에서 이미 이루어진 지식을 의심하여 그 근거를 따지고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면, 기존 음악의 인식지평에 변화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러한 인식의 변화를 바라지 않고 이미 알려진 음악 이해의 지평을 유지하려는 보수성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학문을 하기 때문에 기존 지식을 존중하는 학풍이 성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음악학계가 정체되지 않고 새로운 지식으로 보충되고는 있지만, 이것은 기존 지식의 확장만이 있을 뿐이지, 근본적인 새로운 변화를 가지고 오지 못하고 있다. 외국 어느 학자의 이론을 살펴보는, 그래서 사실 탐구에만 그치는 이러한 학문적 자세를 우리의 음악학계가 정체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송방송 교수는 들고 있다. 따라서 학문하는 자세를 먼저 반성해서 기존 지식에 매이지 말고,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을 통한「참음악학」을 이루자고 역설한다.

뒷부분에서는 6명의 논문을 실었다. 「민족음악 양식론의 성격과 구조」(이건용), 「민족음악으로서의 역사수행」(노동은), 「과학적 음악미학의 개념」-크나이프의 이론을 중심으로-(조명주), 「한글 음악통론의 역사와 현재」(조선우), 「예술가의 삶과 작품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심리적 통찰」-인간 베르디와 극작가로서의 베르디(노영해), 「분석의 방법: 건드릴 수 없는 것인가?」(박미경 옮김). 이들 논문들은 「참음악학」을 만들기 위한 강도 높은 그들의 새로운 목소리들이 분명하다.

3. 테러리즘 음악평론의 시비

-신 사고 음악평론

「능력이 없으면 차라리 자리를 비켜라」, 「전문합창단이 전문가답지 못하고 10년이 넘도록 아마추어 모습을 버리지 못하였으니 한심하다」「돌팔이 평론가」「감상문 같은 졸평」,「자기 논리에 빠져 허우적대는 소인배」.

이 책의 저자 김규현이 사용하는 비평어휘이다. 작곡가인 김규현은 ’80년대부터 음악평론계에 뛰어든 투사이다. 그를 투사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연주평을 보자면 시퍼런 칼날이 곳곳에 자국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수준이 떨어지는 연주자나 무능력한 음악단체들에게 충격적인 표현방법으로 매우 거칠게 비평을 하고 있다. 그들의 썩어져 있는 부위를 과감히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부분은 그가「음악저널」에 게재했던 연주비평을 모았으며, 두 번째 부분은「한국음악에 떠 있는 나쁜 기류에 대한 푸닥거리」라는 제목으로 한국 음악인들의 의식구조에 대한 몇 개의 평론을 담고 있다.

그의 글을 통해서 볼 때 김규현은 우리의 음악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로 인하여 심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먼저는 기존 비평가들이 할말을 하지 못하고 있음이요, 다음은 구태의연한 실력 없는 연주자들이다. 이러한 이유는 한국음악인들의 의식 구조에 커다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통탄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음악회 연주평을 보자면, 정말 연주자들에게 좋은 자기개발의 계기가 되는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이런 것은 드문 일이요, 거의가 칭찬 일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아름답게 장식하려고만 하고 있음을 볼 때 실로 많은 문제점이 있음은 사실이다.

여기에 반기를 든 자가 바로 김규현이다. 김규현의 평론이 비평적 원론을 따르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지기 전에 우선 충격적인 시도이며 기존의 체계에 저항하는 대단한 용기로 보여진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의 평을 보고 표현은 매우 거칠지만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기존의 음악평론계가 오늘날과 같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은 단지 평론가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것은 온 음악계와 음악인들이 그 문제의 심각성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평론가가 제대로 평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몇가지 문제가 있다. 그도 지적하고 있듯이 그 첫째는 평론가 자신이 음악에 대하여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사여구의 나열이나 음악 외적인 문제들만을 열거하기 바쁘다. 또한 글 몇줄 썼다고 금세 평론가가 되는 우리의 평론계도 문제가 있음은 사실이다. 두 번째는 평론가들이 약간의 질책 섞인 어조로 평을 하게 되면 소인배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연주자들이 평론가를 괴롭힌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진실에 몸사리는 비겁성」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비평가들이 자기 개발을 하지 않고, 구태의연한 적당주의에 빠져 있게 된다면 우리 음악계의 앞날은 그렇게 밝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규현의 충격적 비평은 우리에게 새로운 평론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고 할 수 있다.

김규현 평론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그가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김규현이 지적한 여러 문제, 즉 평론가의 진실 은폐성의 문제, 연주자들의 수준미달의 문제, 사대주의적 틀에서 깨어나지 못한 음악인들의 허구성, 연주단체의 무능력함 등에 대하여 대단히 공감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발견했을 때처럼 기쁨과 희열을 느끼지 못하고 시종일관 씁쓸함을 느끼게 하였다.

「실력없는 연주자들은 모두 보따리를 싸서 떠나라」는 그의 감정 섞인 논조는 당장 듣기에는 시원할지 몰라도 이 말 한마디로 그들이 그의 말을 듣고 떠날리는 만무하다. 이런 어조는 기득권에서 밀려난 자의 볼멘 소리로 밖에 들려지지 않을 수 있다.

평론의 기능이 썩은 부위를 파헤쳐 놓는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꿰매어 새살을 돋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올바른 평론은 비평을 위한 비평이 되지 말아야 한다. 비평은 밝은 내일을 있게 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김규현의 평론에서 이러한 점이 어느정도 가리워져 있음은 그가 한국음악계의 밝은 미래를 향하여 짊어지고자 하는 십자가를 더욱 무겁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어쨌든 그는 탈서구화를 부르짖고 있다. 또한 자아인식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느끼고 있는 음악인이다. 그리고 서구인의 가면을 벗고 한국인의 성숙된 참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한국음악계의 의식구조에 대 개혁이 일어나야 된다고 믿는 자 중의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