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3」을 달래는 문화예술의 바람
허영선 / 제민일보 문화부 기자
「4월 제주」는 이 시대에 무슨 의미인가. 4월이 돌아오면 제주문화 예술계에도 유채꽃 물결만한 더운 바람이 굽이친다. 제주의 4월은 「4.3」과 함께 상처를 달래는 해원굿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현대사 최대의 비극인「4.3」은 「사건」인지「항쟁」인지 명확한 대명사를 부여받지도 못한 시점에서 40여년간 묻혀졌고, 현기영의 소설「순이 삼촌」이 입을 열기 시작한 '7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쉬쉬하면서 들추어졌기 때문이다.
역사의 기록을 가장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게 하는 장르는 무엇인가. 이고장 문화예술인들에게 시대를 사는 책무를 한번쯤 던지고, 스스로 갈등을 겪게끔 만드는 최대의 소재를 들라면「4.3」을 말한다.
문학화 작업을 시작으로 조금씩「4월 제주」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사실이나, 대중공연예술로서「4.3」이 무대화된 예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올 4월「4·3」44주기 기념공연으로 올려지는 무대극에 대한 관심과 5월 민족극 한마당 참가작품으로 펼쳐질 「4·3」마당극에 대한 관심이 시선을 끌게 한다.
4월 6, 7, 8일 사흘간 제주도문예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려지는 제주작가 장일홍 원작의 '붉은 섬’과 비슷한 시기에 올려지게 될 놀이패「한라산」의 「4월굿 꽃돌림」이 그 화제작이다.
장일홍 원작의「붉은 섬」과 한라산의「4월 꽃놀림」
제주도내 연극인들이 연합으로 처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과 이 연극에 참여하는 모든 배우들이 공개 오디션을 거쳐 뽑혔다는 점, 희곡작품이 지난해 대한민국 문학상 희곡부문 신인상 당선작으로 국내 초연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연극「붉은 섬」에 대한 관심은 쏠린다.
무대극으로는 처음 소개가 된「4.3」극「붉은 섬」은 우선 도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4·3 세대들에 남아있는 상처와 미체험 세대들의 아픈 역사를 들춰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연출가 김효중의 기본 시각을 바탕으로 한다.
도민이라면 미묘하게 공유해야할 부분이 있지 않겠느냐.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휴머니티의 차원에서 그것들을 부각시키는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연출가는 좌·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리얼리즘으로 접근, 기록극 형식으로는 서사 양식을 띠면서 관객들이 보면서 스스로 느끼게끔 하는데 신경을 썼다고 한다.
방대한 역사여서 2시간 30분은 소요돼야 할 이 극은 1시간 30분으로 압축돼서 올려진다. 한 형제는 산으로 올라가고, 한 형제는 경찰이 되어 적의 관계에서 싸움을 벌이게 되는 한 가족사의 비극을 통해 작은 것을 전체적인 것으로 조명했다.
사실 이번 무대는 5월 이곳에서 열리게 될 전국 연극제의 참가작으로 마련되는 것이어서 관제행사라는 점에서는 표현의 제약 같은 것도 우려할 수 있겠으나 4·3의 본질에 접근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게 하는데 실험을 쏟았다.
연출가는 남의 얘기가 아니고 우리 얘기를 스스로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중압감이 들지만, 작품이 올라서면 관객들의 반응이 있을 것이고, 그러한 느낌들을 듣기 위해 공연 후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민중시각에서 조명될 놀이패 한라산의 마당극은「4월굿 꽃놀림」. 매번 장소적 제약을 받으면서도 지속적으로 마당극을 시도,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한라산」은 올해도 그럴듯한 장소 하나 빌리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민족극 한마당에 참가할 작품이고 해서 연습에 열을 올렸다.
어느 해보다 깊은 울림을 던질 작품을 내놓겠다는 의욕을 갖고 회원들의 단합으로 엮어지는 이「4월굿 꽃놀림」은 '48년의 북촌리 대학살과 '64년「아이고 사건」을 다룬 것으로 모두 네 마당으로 구성됐다.
첫 째마당은 '47년부터 '48년까지 4·3전의 공간으로 4월 직전 할망의 입산과 그로 인한 끈끈한 공동체, 북촌마을의 정황이 그려진다.
'48년부터 '49년까지의 시점을 그린 둘째마당은 '48년 12월 18일 북촌대학살의 모습을 통해 4·3의 진상을 드러내며, 할망을 검거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또 입산활동을 하던 활동가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 내려오다 잠복중인 경찰에서 검거된다.
「아이고 사건」을 다룬 셋째마당에서는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북촌대학살에 대한 신문을 하려다 경찰의 탄압으로 좌절되는 상황이 표현된다.
넷째마당은 현재를 시점으로 공연후 경찰에 의한 공연탄압과 관에 의한 4·3 왜곡작업을 묘사, 4·3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작품을 위해 현장답사 등 실증적 기록의 밑받침을 하는데 노력한「한라산」은 매일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하루 4시간씩의 연습으로 4·3의 진실찾기 작업에 열을 쏟고 있다.
4·3의 항쟁계승과 현재화라는 쪽에 초점을 맞춰 4·3에 대한 문화적 접근을 하고 있는데 당시 희생자들의 원혼을 위로하고 진상규명의 하나로 그동안 「4월굿 한라산」('89년),「백조일손('90)」,「헛묘-시신도 어선 헛것이라」('91)를 연이어 마당극화 시켜 왔다.
이러한 4·3의 극화작업 외에 미술계에서도 역사를 찾는 의미있는 일련의 작업들이 속속 성과를 보이고 있다.
제주 세종미술관에 전시되는 4.3 관련 전시회들
4월 1일부터 일주일간 제주세종미술관에서는 제주의 그림패인「ꟁ鿑코지」가「4월미술제」를 열어 4·3관련 그림을 형상화한 전시회가 있게 된다.
또 4월 21일부터 27일까지는 제주출신 서양화가 강요배 씨가 4·3비극을 역사화, 기록화의 선상에서 작업한 그림 50여 점이 제주 세종미술관에서 전시된다.
제주전에 앞서 서울 학고제화랑에서 4·3에 맞춰 전시하게 될 작품들로 일찍부터 대중의 주목을 받아온 작가의 작품들이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역사기록화로는 최초인 이 작품들은 펜화, 콘테화, 목탄화, 아크릴화, 유화 등 다양한 장르로 시도한 50점이 나온다.
이미 '80년대 말부터 작가가 준비해온 이들 그림은 1백호가 넘는 대작의 유화, 아크릴화 작품부터 세밀함의 필치가 드러나는 제주의 4·3항쟁의 형상화됐다.
모두 6부로 구성된 이번 작품들은 4·3전사인「삼별초 항쟁」,「잠녀항쟁」 등 6점과 「기아참상-공출」「점령군-LST진주」 등 7점이 '45년 상황을, 「가뭄」 등 3점이 '46년 상황을, 「민중을 향한 발포」「대검거 선풍」「입산」 등 13점이 '47년 상황을, 「식량을 나르다」「봉황」「기습」 등 13점이 '48년을, 「학살 1,2,3」「하산민」「동백꽃 지다」 등 8점이 '49년의 구성으로 그려졌다.
주로 민중수난사 쪽으로 시각을 맞춘 이번 작품들은 4·3 해원굿의 의식처럼 눈물나도록 아름답게, 따스한 감동을 일으키게 한다는 것이 이를 감상한 이들의 느낌이다.
4월 제주의 이러한 역사적 비극성을 문화예술로의 새로운 해석으로 대중화 해가는 열의가 5월의 제주에서 열리는 제10회 전국연극제를 따뜻한 인정축제로 이끌 것같다.
5월 20일부터 6월 4일까지 보름간 열리게 될 이번 연극제는 전국 14개 시도에서 9백 80여 명이 참가할 것으로 제주 연극협회는 보고 있다.
도지원 7천만원 한국문예진흥원 지원 3천만원이 투입되는 이 연극제는 전야제가 20일 오후 7시로, 심사위원 연극관계자 등 참석한 가운데 문예회관 전시실에서 열리게 된다.
이어서 축하공연으로 국립극장의 협조아래 선정된 작품이 이날 8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베풀어진다.
연극제 기간중 문예회관 놀이마당에서는 향토민속마당이 펼쳐진다. 단칠머리당굿 보존회의 영감놀이, 연물놀이 등이 흥을 돋운다.
이번 연극제 기간중에는 ‘시군의 날’을 지정, 관내의 대표적 향토민속예술공연을 비롯 관내 토산품, 특산품등 선물증정과 연극제 기간중 자발적 국민참여를 유도할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접연극을 위해 자매결연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음악
제주시립합창단이 창단 후 첫 상임지휘 체제를 구축, 제주출신 작곡가 강문칠 씨(41)를 영입, 새로운 변모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 '85년 창단후 14회의 정기연주회를 통해 시민들의 평가를 받아온 시립합창단은 그동안 세 차례나 객원지휘자를 바꾸는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상임지휘자 강문칠은 계명대와 동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 한국 작곡가협회, 한국음악학회 회원, 한국합창연합회 제주도지회 부회장을 맡고 있고, 교향시「탐라의 향기(’86)」를 발표하는 등 개인발표회 3회, 1백여 곡의 작곡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음악협회 제주도지부는 지난 3월 20일 ’92 정기총회를 갖고 새 지부장에 현재 제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인 이선문 씨(제주대 교수)를 추대하고, 강문칠(제주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 이상철(오현고 음악교사)씨를 부지부장으로 선임했다.
이밖에 4월의 뜸한 음악회 속에서 제주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주인 세계정상급 피아니스트 한가야 피아노독주회가 4월 4일 도문예회관대극장에서 열린다.
서독 프라이부르크 국립음악원대학을 졸업하고 전 독일 음악콩쿠르 수상, 주네브 국제음악콩쿠르 2회 수상 등의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무용
인도네시아 발리국에서 열리는「발리예술제」에 제주도 국립예술단이 파견, 제주의 독특한 춤사위를 선보이게 된다.
도립민속예술단 44명과 행정요원 및 홍보요원 등 모두 55명으로 구성, 오는 6월10일 출국 8일간 머무르면서 발리민속과 접하게 된다.
작년 한라문화제에 참가했던 발리예술단과의 상호교류협정 이행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 발리예술제에서 도립예술단은 제주도 무형문화재인 영감놀이를 비롯「비바리의 하루」「바다의 메아리」「입춘굿놀이」「연물놀이」 등을 공연하다.
제주도는 발리예술제 공연작품 시연을 오는 6월초 도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가질 예정이다.
이밖에 제주에는 문학, 영화, 음악, 미술, 연극 등 전문 비평이 부재하고 있는 현실을 깨뜨리기 위해 젊은 지역문화 운동인들이 중심이 돼 가칭「문예비평연구회」를 결성, 낙후된 비평문화를 활성화시키자는 새바람도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