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리뷰 / 문학

신서정의 시인들




정효구 / 문학평론가, 충북대 교수

시가 서정성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980년대 후반에는 서정성의 부활이라는 문제가 시단의 중요한 관심사로 새삼 대두하더니, 마침내 1990년대로 오면서부터는 서정 혹은 서정성이라는 말 앞에 「신(新)」이라는 접두사가 붙어「신서정」혹은「신서정성」의 문제가 시단의 화제거리로 떠오르게 되었다.

말하자면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부터 시단의 논자들은 1990년대 우리 시단의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서정성이 과연 새로운 서정성인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부여하기 시작하였고 그렇다면 이른바 신서정의 개념 규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함께 논의를 벌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주로 1990년대 젊은 시인들에 의하여 자기 세대만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결부되어 나타난 이「신서정」의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신(新)」이라는 접두사의 역사적인 쓰임새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우리 문학사 속에서 「신소설」이니「신체시」니「신민족주의」니 하는 용어들을 만날 수 있으며, 문학이론이나 문학사조를 가리키는 말들로서「신고전주의」니「신비평」이니「신심리주의」니 하는 용어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용어들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들의 문학적 경향이나 그 특성이 역사적으로 이전의 그것과 구별된다는 점을 뚜렷하게 강조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어니와, 1990년대에 들어와 우리 시단에 젊은 시인들에 의하여 부상하기 시작한 「신서정」이라는 말도 이런 측면에서 그 쓰임새와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1990년대의 우리 시단에 나타난「신서정」은 과연 이 용어가 말해주는 것처럼 새로운 서정인 것인가, 그리고 만약 그것을 새로운 서정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면 어떤 측면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신서정과 서정성은 본질적으로는 구별되지 않아

서정성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정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성질이다. 그러므로 서정성의 세계는 서정양식의 특성을 탁월하게 밝혀낸 에밀슈타이거의 말처럼 가슴으로 느끼거나 회감할 수 있는 영역이며 목적성을 초월한 주관적 교감의 영역이다. 이와 같은 서정성은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이나 인간의 삶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따라서 1990년대 우리 시단의 신서정이라는 것도 사실은 본질적 측면에서 볼 때 이전의 서정성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90년대 우리 시단의 서정성은 지난 1980년대와의 관련선에서 이해할 때 새롭다는느낌 혹은 신선하다는 느낌을 가져다 준다. 사실 1980년대의 우리시는 서사성을 강하게 띠었다. 다시 말하자면 산문성의 압력에 시가 본래적으로 지녀야 할 시성이 엄청나게 위축된 것이었다. 따라서 외형적으로는「시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외쳐대었지만, 실제적으로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시성이 제 본래의 모습과 기능을 상실당한 시대가 1980년대였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부터 우리시는 서서히 거칠은 서사성과 산문성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시 본래의 시성과 서정성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1990년대의 서정성과 시성은 찾아야 할 것을 되찾은 것에 불과하지만, 워낙 지난 연대의 시가 오랫동안 서사성과 산문성에 지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면 상당히 신선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함께 생각해볼 사항이 하나 남아 있다. 그것은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 주로 민중시인들에 의하여 서정성에 대한 관심이 잠시나마 고조되었다는 사실인데, 1980년대의 이러한 관심이 1990년대의 그것과 다른점은 1980년대의 그 움직임이 서정성 그 자체를 지향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서사성이 강한 내용을 부드럽게 완화시키기 위한 수단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예들을 우리는 민중시 진영의 대표적 시인들인 송기원, 하종오, 김지하, 곽재구 등에게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시의 서정성 그 자체를 지향하는 1990년대 젊은 시인들의 서정성은 또한 새롭다는 느낌을 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지난 연대의 우리시는 험난한 역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가 진정 할 수 있는 기능 이상의 것을 하려는 야심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되고, 그 야심에 의하여 엄청나게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비틀대며 고통스러운 발걸음을 옮겨놓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 말을 단순화시키면 지난 연대의 우리시는 시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증 중, 이른바 유용성과 심리성 그리고 실천성을 되살리는데 가장 큰 비중을 두었던 것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언어 또한 실천을 위한 도구적 성격을 강하게 띠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로 오면서부터 우리시는 무용의 즐거움 내지는 무상의 기쁨을 강조하게 되었던 것이고, 그런 까닭에 1990년대의 서정시인들은 언어와 존재의 본래적인 목적성을 충실하게 되살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태도와 인식의 전환을 의미하거니와 여기서 우리는 탁월한 상상력 이론가인 가스통 바슐라르의 명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바슐라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필요성 때문에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라 즐거움의 순간을 만끽하다보니까 아이를 낳게 된 것처럼, 인간은 유용성을 즐거움 앞에 놓지 않는다.」

바슐라르의 이 말이 시사하는 바와 같은 맥락에서, 1990년대의 젊은 시인들의 시에 나타난 서정은 순수하게 그 자체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무용지용의 즐거움을 추구한 1990년대의 시가 유용성을 추구한 이전의 시들보다 그 자질 면에서 반드시 우수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여기서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상상력의 방향 내지는 창작의 기본태도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이다.

신서정의 본모습을 구현하는 장석남과 박용하의 시들

1990년대의 우리 시단에서 방금 언급한 신서정의 본모습을 백퍼센트 구현하고 있는 시인으로는 누구보다도 먼저 시집「세떼들에게로의 망명」을 낸 장석남과 시집 「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른다」의 박용하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상상력의 즐거움 혹은 이미지의 즐거움을 최대한으로 구가한 시인이며, 특히 이 두 시인 모두에게서 드러나는 불의 역동적 상상력은 그 깊이와 울림이 상당하다. 말하자면 이 두 시인은 자신들이 구사하는 불의 역동적 상상력 앞으로 독자들을 강하게 끌어들이고 있는 것인데, 독자들은 그들이 보여주는 그 상상력의 세계와 깊은 교감의 순간을 마련할 때 무상의 즐거움에 흠뻑 빠질 수가 있다. 다만 이 두 시인에게서 드러나는 차이점이란, 장석남의 상상력이 곱고 섬세한 결로 이루어져 이른바 존재의 속살을 고요하게 드러낸다면, 박용하의 상상력은 훨씬 굵고 거칠며 활기가 넘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근본적으로 그들의 시에서 추구하는 것은, 「유용한 몸짓 때문에 즐거운 몸짓이 감춰지거나 억압되어서는 안된다」는 바슐라르적 명제이며, 서정시 본래의 명제이다.

이들과 더불어 주목할 만한 신서정의 시인이며 동시에 1990년대의 서정시적 특성을 보다 확고하게 다져주는 시인으로는, 이 달에 시집「황금연못」을 출간한 장옥관, 시집「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의 이진명, 시집「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의 손진은 등이 있다.「한 낮에 나무들 입 비비는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이진명의 차분한 상상력, 산 속에서 황금연못을 만나고 그 연못의 꿈을 읽어내는 장옥관, 숲 속에서 솟아오르려는 힘과 누르려는 힘을 함께 보면서 그 두 힘에 의한 설레임의 파장을 그려내는 손진은 등이 다 신서정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1990년대의 시적 변화를 지켜보며 그들이 펼쳐보이는 상상력의 세계에 동참하는 일은 즐겁고 의미가 깊다. 언제까지 이런 상상력과 인식의 방향이 우리 시단에서 그 효력을 가질지는 알 수 없으나, 1990년대의 우리 시단은 점점 더 서정의 본질에 충실해지며 내면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