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리뷰 / 연극

상반기의 연극

-활발한 공연활동, 수작없는 극계-




한상철 / 연극평론가, 한림대 교수

'92년 상반기 동안 한국연극계는 작년「연극의 해」에 조성된 연극 붐을 유지해 가는 듯 활발한 공연활동을 계속하였다. 재정지원이나 사회적 관심, 연극인의 각오 등 모든 면에서 작년과 판이한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극계는 조금도 열기를 식히지 않고 왕성하게 연극을 제작하고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상반기 극계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6월 한달간에 걸쳐 진행될「사랑의 연극잔치」로서 아마 그 절정을 이루게 될 것이다.

공연활동이 이처럼 활성화하고 있는 이유는 수많은 극단들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공연제작을 강행해야 되겠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극단의 생명은 물론 공연활동을 통해서 존속되고 활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오늘의 연극인들은 공연 그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고 그 성패에 대한 조심성을 과거보다는 훨씬 덜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력이 오래된 극단과는 반대로 무수한 새로 탄생한 극단일수록 공연에 대한 모험심은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들은 주로 젊은층의 연극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바로 이들의 연극에 대한 의식의 현저한 변화가 공연의 모험심을 초래하는 결과가 되는 것 같다.

무애인으로서의 빠른 출세욕, 연극을 진지한 예술로서보다는 오락이나 즐거운 쇼로 간주하려는 경향, 대중적이며 부담없는 재미를 즐기려는 관객이 증가하고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점에서라면 자신이 있다는 태도, 과거의 권위나 가치가 붕괴되는 이 몰권위 몰가치 시대의 자유분방 내지 자유방임 풍조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려는 성향 등이 그러한 의식의 변화라 할 것이다. 힘든 노력과 참을성 있는 인내를 거부하려는 젊은 세대의 특질도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공연은 끊이지 않고 많아지고 있지만 진정으로 감동적인 작품은 희소해가는 역설적인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등 4편의 장기공연 작품들

금년 상반기 연극에서 가장 화제가 될만한 현상은 4편의 연극이 장기공연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몇 개월은 더 계속될 전망이라는 사실이다. 과거에도 장기공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어느 특정 작품의 경우였고 이번처럼 4편이 동시에 장기공연체제로 진입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4편은 3월 20일 막을 올린 산울림소극장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아놀드 웨스커 작, 임영웅 연출), 4월 4일부터 시작한 실험극장의「신의 아그네스」(존 필미어 작, 윤호진 연출), 4월 18일 롯데월드 예술극장에서 개막한 「돈키호테」(데일 워서만 각색, 이상춘 연출), 그리고 창작극으로는 보기 드물게 롱런을 하고 있는(1월 1일부터) 대학로 극장의 「불좀 꺼주세요」(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이다.

이상의 작품들은 우선 제작이 충실하고 관객의 흥미를 유발시킬만한 요소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자기 극장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작년의 화제작「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의 작가, 연출가가 다시 손을 잡고 내놓은 「불좀 꺼주세요」는 현대인의 이중심리를 분석하여 그들의 부부 또는 남녀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한국인의 애정관계가 위기에 처한 세태를 반영하듯 성인 관객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연극적으로는 이중심리를 다루기 위한 인격의 분열이라는 고전적인 기법을 쓴 것이 새로움을 주고 있는 모양이지만 실은 그 의도나 목적에 예리함이나 깊이가 있고 통찰력은 부족한 편이고 오히려 관객은 과거 사랑하던 남녀의 재결합이라는 플롯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일인 다역을 능란하게 처리하는 조역의 연기에 매료되고 있으며 마지막 장면에서 옷을 벗고 동침하는 순간 「불좀 꺼주세요」하는 대사의 선정성이 관객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창작극의 단명을 장기공연 자체가 화제가 된다는 기획의 아이디어로 극복하여 처음으로 창작극을 장기공연에 성공시킨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신의 아그네스」는 이미 '83년 초연 때 화제를 일으켰던 작품이고 윤석화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히트작인데 이번에는 박정자, 손숙 두 사람의 중견 여배우와 아그네스역으로는 인기 탤런트 신애라와 대학 연극과 재학생인 신인 정수영을 더블캐스트하여 경연을 시킴으로써 화제를 모으고 있다.

초연 때는 윤석화의 매력과 연기력을 극의 초점으로 삼았다면 이번에는 수녀원장 박정자와 범정 의사 손숙의 대결을 통해 현대에 있어서의 종교문제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어 원작에 보다 진지한 접근을 시도하였다.

아그네스로 스타가 된 윤석화는「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더욱 더 스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였다. 모노드라마인 이 극은 주인공이 가수출신이기 때문에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윤석화의 노래솜씨는 이 극을 충분히 볼거리 있는 공연으로 만들어주고 있을뿐만 아니라 중하층민의 생활감각을 표출해 내는데 적역을 얻은 감이었다.

이상의 3개 공연은 비록 관객의 호응을 얻을만한 요소들이 있고 배우들이 호연을 하고 있지만 내적인 면에서 관객을 감동시킬만한 수준의 작품은 아니었다. 반면 상반기의 최고 수작이라 할 수 있는 미추의「죽음과 소녀」는 내용에 있어서나 공연의 질적 수준에 있어서 손색이 없었다. 특히 이 작품과「딸에게…」는 해적공연이 아니라 법적인 원작 사용료를 지불하였고 더욱이 후자는 세계 초연이라는 점에서 실로 의의가 컸다. 그간 우리는 수많은 외국작품을 공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연극계에서는 이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작료를 지불하지 않은 공연은 그 작품 공연기록에 오르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한국의 연극은 이제까지 세계연극의 미아였고 괄호 밖의 버림받은 자였다. 우리 연극도 이제는 세계연극의 일원으로 당당한 자격과 존경을 받아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정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를 관객에게 묻는 「죽음과 소녀」

「죽음과 소녀」는 칠레 출신(에리엘 도르프만)의 작품이다. 오랜 국사독재국이었던 이 나라 역시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으며 바로 그 상황을 극화한 것이라 우리 관객에게 표현된 것 이상의 공감을 줄 수 있었다.

군사정권의 인권유린과 성고문. 그러나 도르프만은 가해자를 찾아내는 스릴러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단지 그러한 멜로드라마에 머물지 않고 가해자의 자인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가해자로서의 전적인 책임을 지울 수 없는 현대조직사회의 익명성과 정의(正義) 실종현상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깊은 함축을 내포하고 있었다.

더 철저히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더욱더 모호해지고 은폐되어가는 악의 정체. 현실과의 타협과 순응이 정의 그 자체를 호도하는 세상을 고발하고, 정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를 관객에게 묻고 있는 연극이 이 연극이었다.

손진책의 견실한 극 구축과 권성덕의 당당하면서도 도덕성이 결여된 가해자 의사로서의 연기, 히스테리칼하고 집요한 희생자로서의 김성녀와 남편 신구덕분에 이 극의 한국 공연은 세계연극계의 화제작을 실감 있게 입증시켰고, 이 원작의 공연사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연극 쉽게 만들기의 대표적인 사례를 언급하게 되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고전작품일수록 쉽고 허술하게 만들면 그만큼 더 결함이 돋보이게 된다.

극단 성좌의「베니스의 상인」(권오일 연출, 윤주상 주연)은 연출의 해석이 보이지 않고 연기의 기량이 너무 부족하여 셰익스피어의 장점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반면 5월 극단 띠오빼빼의 에드먼드 로스탕 원작의「시라노」(김철리 연출)는 오랜만에 보는 낭만주의 고전으로 좋은 레퍼터리 선정이었으나 낭만주의는 실종되고 희극만 강조된 공연이었다. 그래서 이호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라노는 시인이요, 협객이요 지고한 사랑의 소유자이기보다는 남의 글이나 대필해 주면서 짝사랑만 하다 일생을 마친 화아스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낭만적 이상과 서정성이 사실적 산문성과 단순한 희극성에 희생된 공연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언제가서야 세계의 고전들을 멋들어지게 공연해 볼 수 있을런지!

우리연극이 꼭 본받아야 될 두 개의 공연이 있었다. 중화민국 해광 경극단의 내한 공연은 전통의 엄격함과 예술작품이 가져야 될 높은 미의식과 철저함을 보여주었으며「아시아 1인극제」에서 오카모도 호오이찌는 창의적인 장인의 고도의 예술성과 탁월한 기교를 유감없이 과시하였다.

이제 우리 연극은 공연만이 능사가 아니라 말과 정신과 기교가 예술성을 획득하는 보다 높은 차원으로의 상승이 절실히 요망되는 시점에 서 있다고 생각된다.